괜찮아, 사랑이야 드라마를 보면서 가정폭력과 관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최근에 여러 가지 일이 어그러졌지만, 작은 일부터 재성취하면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이겨냈습니다.
종교 문제로 인해 가정에서 마음이 떠났고 자신을 자학하는 성격이 생겼던 것 같네요. 말도 안 되는 내용을 왜 수용했냐구요?
그것은 가정폭력이 빈번한 우리 집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경청과 안정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따뜻한 가족'이 되어주는 대신에 나의 정체성을 원했던 것 같아요.
아이로서 그러한 안정감을 집에서 느낄 수 없었기에,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고 말도 안 되는 것도 수용하는 아이처럼
저는 그것을 잃기 싫어서 그 댓가로 정신의 독약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요즈음 제가 받는 심리치료의 성과가 나타나는 것인지...
나의 억압은 종교에서 설정한 비현실적 자아와 실제적 내 모습과의 자아 갭에서 온 것이었음을 점점 실감합니다.
그것이 열등감, 수동적 성격, 폐쇄성을 만들었다는 것을. 감정을 억압하도록.
그 토대 위에서 다시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제가 부친을 살해하기 직전까지의 상황이 왔었고, 저는 제가 진짜로
그럴 것 같아 자신을 극도로 억압하여 정신적 쇼크를 받았던 것 같아요.
그 전부터 가정 폭력 환경에 지지 말자고, 스스로를 더욱 더 몰아갔었구요.
아버지는 전형적인 열등감 심한 둘째였습니다. 자식간에 비교하고, 친구간에 비교하고...참 무식한 대한민국 문화의
피해자일지도 모르죠. 지금도 친구들 간에 그런 멍청한 놀이(비록 농담이라도...장난 속에 진심도 있으니까요.)
를 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습관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행하고 있을 거라고, 불쌍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무식하다고도 생각합니다.
내가 나를 억압했던 것은 '탈선'과 '살인'를 방지하기 위한 나름의 자기 보호 장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발톱은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비정상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극지에서는 그런 것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그 때가 아닙니다. 이제 나는 가족이라도, 친구라도 유해한 인물은
멀리하거나 버릴 수 있는 대담함을 회복합니다. 의리? 의리 때문에 같이 망하는 것은 참 어리석음이죠.
한국 특유의 오지랍과 정 문화가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여기에 적응하기 위해서 항상 대응책을 강구해
두어야 하지요. 받아칠 말들이나 장난으로 넘길 수 있는 행동 패턴들이요. 반복해서 당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방어 기제가 되겠지요.
현실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과거의 분노를 점점 인정하고 체감할수록, 억압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인지가 증가하네요.
이것이 바로 과거에서 벗어나 오늘을 '유연'하게 살아가는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있네요. 뛰어내리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앞으로도 힘들겠지만. 남의 인생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만해도 학생으로서는 좋은 성과를 냈었지만, 나와는 관계 없는 인물들에 의해서 이렇게 괴로운 삶을
살게 되었으니까요. 이제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내가 버릴 수 있습니다.
인생이란 참 허무해요. 내가 최선을 다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살아갑니다.
트라우마...괜찮아요. 극복의 길이 보여요. 지금도 진행중이라 강하게 말은 못하겠지만,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
빚이 많으면 갚아야겠지만, 약간의 여유가 있다면 과감하게 심리치료를 받아보세요. 유능한 사람에게. 책만으로도
변할 수 있지만 사람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느껴요.
어릴 때 꿈꾼 성공에서 멀어져 있는 현실이지만, 괜찮아요. 살아있잖아요. 내면의 지옥에서 벗어나서.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쁠 수
있다면 많이 회복된 것일 거에요. 삶의 기쁨을 아무도 막지 못하게 하세요.
살아도 산게 아닐 때가 있고, 산 것 같을 때가 진짜로 살아있는 것이니까요...
약을 극복하기 위해 많이 운동을 했었고, 오랜만에 공부하는 동시에 이제는 습관이 된 자학을 극복하고 있어요.
네, 자학의 끝에서 약을 먹었었고, 피지컬은 운동으로 회복했죠. 심리치료의 영향으로 자학하던 타이밍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내면에서 약기운을 극복하고 너무 괴로워서 회피하려고 했던 그것을 역으로 파고 있지요. 잊고자 했던 고통을 생생하게 경험한다는
것은 마취에서 풀려나는 고통이 수반되고...그 때와 지금을 오가는 혼란 속에 허무함을 느끼기도 하지요.
괜찮아요. 죽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맞아요. 이게 원래 나였어요. 자신을 소중히, 현실을 소중히 하던 그 아이.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실패 속에서도 다시 꿋꿋하게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던 아이. 단점도 무척 많은 아이.
자신을 되찾는다는 것은...내가 회피하고자 했던 부분을 되찾는 것이에요. 누군가의 비판으로 인해서 나 자신도 그런 모습을
숨기거나 수치스럽게 생각했던 부분들. 부분들이 비판받을지언정 전체인 나는 항상 소중해야. 부분과 전체...우리가 아무리
실패하고 상처를 받아도 그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일부일 뿐.
인간이란...남의 단점은 귀신같이 찾아내는 존재. 부정적이고 남의 단점 지적질하는 사람들을 피하거나, 혹은 말로 한 방 먹여주세요.
주변에 50억 땅이 있다고 허세 떠는 녀석이 있어요. 부친 땅이죠. 야...너 무지 한심해보여. 아버지 돈으로 산 차 타고 돌아다니는
졸부들보다 더. 그렇게 돈 많으면 나 좀 사줘...도와줄 것 아니면 그냥 지 자랑이잖아. 닥쳐. 이렇게 반박할 수 있어야 하죠.
나도 모순적이고 부족함이 있다 한들 누군가에게 비판할 권리나 자격이 없는 '존재'는 아니에요. 내가 신호등 위반한다고
남의 신호등 위반을 지적질할 권리가 없지는 않죠. 자신의 죄를 망각할 줄 아는 건강한 합리화...그것이 필요해요.
망각은 뻔뻔함이 아니라 가혹하지 않고 온화한 존재에 의해 용서받을 때 가능한 것이거든요. 이것이 바로 자기를 수용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자신을 용납하는 것이고 상실된 자존감, 혹은 자아 회복의 첫 걸음이죠.
그런 망각이 고장나서 자기 잘못이 자꾸만 생각나기 시작하기 이전의 '진짜 내 모습'으로.
'자아'는 용서의 반석 위에서 기초한다는 것. 그 용서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남을 정죄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피하세요.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을 자학하는 자요, 자존감이 붕괴된 찌질이니까요. 주변에 교제하는 사람을 조심하세요.
과시욕에 쩌든 사람, 자학하는 사람 모두...자존감이 무너진 사람이니까요. 진정한 자신을 내면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람을 볼 때 내면이 건강한 사람이 돈, 명예, 권력보다 중요함을 깨달아요. 교수 중에 열등감 있는 사람이 많고, 이런 사람들
중에 오히려 자존감이 낮거나 일의 노예가 된 사람이 많아요. 일 못해도 괜찮은 나....못생긴 나...못난 나...이런 나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반쪽짜리가 아닌 온전한 내가 회복될 거에요.
그럴 때 비로소 고통스러운 현실을 술이나 약으로 피하지 않고, 고통을 받아들이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건강한 사람이 될 거에요.
이 사회는 미쳤으니까...잘 분별하면서 살아갑시다. 꼴등이면 어때. 자신을 존귀하게 여길 줄 아는 나...현실 속에서 이런 마음을
지키는게 쉽지는 않지만, 마음 기둥으로 세우고 살 거에요. 모든 것을 버려도 버릴 수 없는 것이니까요.
첫댓글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좋은글 잘읽고 가요...
멋있습니다 화이팅
휴 심오한 글이군요. 어쨋든 우리가 자기억압을 많이 하고 정해놓은 규율들이 많은것 같군요
잘 읽고 갑니다.
치유의 기본은 참된 내가 되는 것....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닐까요??
치유의 기본은 그런 면도 있고, 자신을 천천히 탐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조급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 '압력'을 받고 '자학'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감정적으로 탐구하는 것입니다. 이론적인 내용은 사실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가이드라인일 뿐입니다. 두려워 마세요. 사람들 모두 자기들의 모난 부분을 숨기려고 쿨한 척 하고, 강한 척 하고, 관대한 척을 합니다. 나는 적어도 술,담배 즐기는 사람이 사회성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성이 좋은 척'을 술,담배를 통해서 하는 것이지요.
그들에게 술,담배를 뺏으면 초조할 것입니다. 그때 나타나는 그 조급함이 그들의 본성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산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들도 결국,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 맞추어 자신을 맞추는 것일 뿐. 우리가 우리의 본성을 드러내면 사람들이 좋아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거부하는 내 모습, 지하실에 있는 내 모습을 내가 발견하고 빛만 비추어 주는 것입니다. '약한 나를 강하게'하기 위해 약한 나를 발견하는 것. '가난한 날 부하게'하는 것. 잠시 신앙을 쉬고 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저는 종교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깨닫습니다. '약한 모습 그대로, 잘못한 모습 그대로...나를 받아주는 대상, 나아갈 대상'
@RoSo 의사는 아마도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것일 겁니다. 물론 종교를 가지고 안 가지고는 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5000년전부터 세상은 빈부격차, 무한경쟁, 생존의 시대였고 그 두려움과 상처를 치유해주는 역할이 종교였음을 실감하며 종교는 인간의 지혜이면서도, 가장 병폐가 많은 곳임을 알아갑니다.
마음 기둥 세우며 살아갑시다~^^ 마음에 쏙 들어오네요~^^
쉽지는 않지만, 뭔가 전해오는 느낌이 있어요. 감사합니다.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잘읽고 갑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글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