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TLS5hAQYCY
요즘 들어 내 머릿속에 굳어지는 생각 하나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내 숨이 내 생애를 지나오는 동안은 그곳이 어디든 그저 어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 지옥이 확실하거나 지옥 비슷한 곳이거나 라는 생각이다.
갑자기 번쩍 든 생각도 아니고, 최근에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의 경험에서 우러난 엑기스들만 추려서 머릿속에 정리를 해 두었다가, 일상에 그것을 다시 응용해보는 갸륵한 버릇이 하나 생겼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공사부터는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면 현장 쪽으로 눈을 잘 돌리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없는 돈 만들기에 몰입하기로 한 나는, 그래도 아침 투입 전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퇴근 시 타이머 찍으러오는 직원들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해 준다.
아이고, 선배님. 뭐 그렇게 오늘 보고 내일은 안 볼 사람 같이 정성을 들여서 인사를 하십니껴? 이 눔아. 보면 볼러? 내가 시방 그럴 나이다. 내일 못 일어날지 모레 염라대왕이 거기 공사 있다고 나를 부른대도, 그게 비명횡사가 아닌 것이 되는 그런 서럽고 아쉬운 나이다.
오늘 헤어져서 섭섭하시문 어데 저 짝 어둑한 포구 끄트머리에 돛자리를 깔까요? 됐다. 병원 가니 의사가 맨맨한 호구 늙은이 하나 왔다고 좋다고 허벌쭉하게 입 째지게 웃던디, 니들헌테 이렇게 나날이 인사라도 따땃허게 해야, 문득 떠나도 덜 섭섭하지.
근디, 곽팀장은 왜 안 뵈이는겨? 이 누무 자슥, 타이머 안 찍고 소주병에 빨대 꼽으려 삼길포 포차에 간 거 아녀 시방? 누구 전화해봐야. 내 얼굴 안 보고 가면 이 누무 자슥을 내가 오늘 중으로 갈고 삶아서 찬물에 빠뜨려 메밀묵 쒀 묵는다고 해라.^^
전화를 안 받는다고? 곽팀장 그 눔이 오늘 어디 일했냐? 오만 데 돌아댕김서 오분대기조(긴급업무처리팀) 하는 거 같던데유~ 그려? 가만 있자. 어제 곽팀장이 지하 전기실에 지지물 추가해야 하는디 복잡혀서 힘들겠다고 툴툴거리던디 거기 있는 거 아녀? 거긴 아직 전화가 잘 안 터질텐디...
누구 나랑 현장 좀 가 보자. 식식거리고 현장을 가서 그 놈을 불렀다. 곽가야~ 곽팀장~ 저쪽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들어보니 사람 살리 주소~ 사람 살리소~ 하고 있다. 가서 보니 더욱 가관이다.
전선이 얽히고설킨 가운데 무슨 작업을 하러 케이블 선반 사이로 기어들어간 그 놈이, 안전벨트에 뚱뚱한 자신의 몸에 케이블이 이리 저리 걸려 앞으로도 뒤로도 못 빠지고 옴쭉달쑥도 못하고 거미줄에 걸린 날파리 자세를 하고 그렇게 한참을 소리를 지르고 버둥거리고 있었는가보다.
야, 이 눔아~ 좀 꺼내 달라 소리치지? 재수 없을랑게 사람 없을 때 걸렸당게요. 아이고. 미치것네. 언능 나 좀 꺼내주쇼. 너 이 누무 자슥. 내가 그 만큼 노가다 살찌면 빌어 묵는다고 경고했는데도 뱃구레가 접혀서 케이블에 이렇게 걸려서리..ㅎㅎ
어찌어찌 간신히 꺼내 퇴근시키고, 그것도 고생은 고생이라고 고기 굽고 술도 부어 주었다. 곽팀장. 많이 묵어라. 쳐다보니 풀이 죽어서 잔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왜 안 먹어? 발버둥 치느라 진께나 빠졌을 텐데. 아녀유. 살 빼야지 이러고 못살겠시유~
됐다 이 놈아. 밥 세끼 제 시간에 묵고 가끔 술 한잔하는 걸 우찌 말리것냐? 밥 사이에 군것질 계속하고 저녁 묵고 밤늦게 자꾸 무얼 먹으니까 이렇게 살이 무지막지하게 찌는 거잖아?
오늘은 한잔에 한 점씩만 묵어. 녀석이 싱긋 웃으며 한잔한다. 구하러 와 주셔서 참 감사해유. 당연한 일에 감사는 무슨~ 니가 이렇게 내 옆에 있으니 너는 내 사람이고 내 사람을 그런 식으로 챙기는 건 사람의 기본이지.
한 가지만 묻자. 그런데 너는 지금 내 사람 맞냐? 당연하지유~ 다 쳐다 보도 않고 퇴근했는디 오직 형님만 저를 찾아 주셨으니께유. 고맙다. 그리 살자. 일찍 죽고 늦게 죽고가 뭔 소용이냐? 오로지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다한 최선의 뒤는 쳐다보지 말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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