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이 나를 붙잡고 청산에 살라하네
청산도(靑山島)에는 산이 없나. 고작해야 보적산과 범바위를 소개하는 정도가 전부이니 말이다.
청산도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雌─� 나 ‘봄의 왈츠’ 촬영지를 둘러보고 이곳에서 사진 몇 장 찍고는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막상 청산도를 찾아 섬 안을 파고들면 여인의 속살 같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때 묻지 않은 청산(靑山)이 소리 없이 반긴다. 산(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만 해도 여섯 개나 된다.
가벼운 산행코스로는 도청리-선음약수터-대선산(254m)-고성산(310m)-보적산(330m)-범봉-권덕리가 무난하며 청산도의 그림 같은 비경을 조망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다소 강도 높은 산행을 좋아하는 산꾼이라면 도청리-선암약수터-대선산(254m)-대성산(343m)-대봉산(379m)-양지리로 하산해 문화재인 상서리 돌담을 지나 주봉인 매봉산(384.5m)에 오른 후 원동리나 동촌리로 내려서는 5시간30분~6시간 코스가 호감이 갈 것이다.
청산도엔 산이 무려 여섯 개
청산도로 출발하던 날 기상청 일기예보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고 했다. 비 내리는 잔잔한 봄 바다, 그리고 빗속을 걷는 섬 산행은 생각만 해도 맥박이 빨라지는 황홀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완도 여객터미널을 출항하면서 강한 비바람과 거친 파도가 일순간에 나의 생각을 일장춘몽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렇게 심하게 요동을 치던 철부선은 50여 분 만에 우리를 도청항에 내려놓았다.
아직도 바람이 강하게 불지만 다행히 비는 그쳤다. 커다란 ‘靑山島’ 표지석이 지친 원객을 맞이한다. 면사무소에서 소개해준 이 고장의 토박이이며 전 완도군의회 부의장을 지낸 정옥남씨를 찾았다. 정 부의장은 산악회장을 몇 번씩 지낸 산꾼이며 청산도 산은 손바닥 보듯 훤하게 알고 있다고 한다. 정 부의장은 산행에 관해 상세히 설명해주며, “청산도에는 좋은 산이 많은데 외부에는 서편제 촬영지로만 알려져 있어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워요”라고 말하며 손수 제작했다는 등산 안내도를 건네주며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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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바위를 돌아 권덕리로 내려서는 그림산행팀.
우리는 서둘러 도청1리 등산로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는 ‘선음약수터 2.0km, 대성산5.0km, 대봉산8.0km, 양지리13.0km’로 표시된 이정표가 길안내를 한다. 마을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어 청산중학교와 유치원 사이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올랐다. 얼굴을 스치는 잡목을 양손으로 헤치며 조금 오르다 보니 키보다 높게 축대를 쌓은 다랑논이 숲속에 묵정밭이 되었다. 지금은 일손이 모자라 이곳까지는 손길이 닿지 않는 모양이다.
묵정밭을 지나 너덜지대로 접어드니 아무렇게나 얽혀 있는 잡목과 칡넝쿨, 담쟁이넝쿨, 가시덩굴이 서로 어우러져 어느 것이 바위고 어디가 구덩인지 구분하기 힘이 든다. 좀사철과 옷나무, 동백나무를 타고 기어오른 넝쿨들은 마치 설치미술 작품 같다. 뒤늦게 핀 동백꽃 한 송이가 유난히 붉은색을 띠고 고개를 비죽 내민다. 간간이 표시 리본이 매달려 있지만 잡초가 무성하게 우거지고 사람의 통행이 적어 번번이 등산로를 놓치기가 일쑤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선암약수터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약간 더 또렷하다고 했다.
너덜지대를 벗어나니 또렷한 등산로가 나타나며 길 옆에는 검정 열매 ‘며느리배꼽’과 ‘보리수 열매’가 탐스럽게 열려 있다. 보리수 열매 하나를 따서 입에 넣으니 아직은 단맛보다 떫은맛이 더하다. 바로 옆에는 콩란이 바위와 소나무 줄기에 빼곡히 붙어 있어 신비함을 더한다.
정글 같은 숲속을 빠져 나와 가슴 후련한 조망 좋은 마당바위에 서서 읍리 쪽 다랑논과 당리 쪽의 ‘서편제’ ‘봄의 왈츠’ 세트장을 내려다본다. 간밤에 모진 비바람에 유채꽃잎은 영혼의 시를 남긴 채 별빛이 되어 하늘로 떠났고 돌담 아래 얼마 남지 않은 노란 꽃잎이 멀리서 보아도 유채꽃밭임을 알 수 있다. 박상범씨는 돌담 황토길을 촬영하다 말고 마당바위에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진도아리랑을 불렀다. “사람이 살면은 몇 백 년 사나/ 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청산도는 길을 따라 걷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산에 올라 내려다보는 멋스러움이 한층 더한 것 같다. 나는 지금 이곳의 놓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광들을 하나 둘 가슴속에 담아, 펠리컨이 생선을 토해내듯 화선지 위에 낱낱이 토해내어 혼필(魂筆)을 추켜들고 미친 듯 춤을 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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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성산에서 내려다본 청산도의 비경을 촬영하는 모습.
문화재로 지정된 상서리 돌담길
다시 등산로로 접어드니 지난밤 내린 비로 연둣빛 새싹이 더욱 싱그럽고, 송지(松枝) 끝에 돋아난 송화 새순은 고개를 곧추세웠다. 작은 짐승의 족적 하나 남길 수 없을 것 같은 빽빽한 숲은 청산도가 천년을 지켜온 고도(古島)임을 말해준다. 송옆(松葉) 쌓인 작은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니 이곳이 왜 느림의 미학을 간직한 섬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누구나 이 산속에 들어서면 원시의 야인이 되고 영혼의 시간도 멈춰 설 것이다.
안부에서 고성산으로 올랐다. 고사리 새순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새롭게 태어난 생명은 어느 것 하나 신비롭지 아니한 게 있으랴만 갓 태어난 고사리 새순은 더욱 앙증맞고 신비롭다. 잔뜩 움켜쥔 모습을 한 고사리 옆에 하얀 머리카락 산발한 늙은 할미꽃이 거센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고성산 정상에 오르니 허물어진 성곽이 말없이 누웠는데 주왕산 수달래꽃을 닮은 붉디붉은 철쭉꽃은 지천으로 피어 가는 봄을 붙잡고 있다. 이렇게 옛 성터가 있어서 고성산이라 했나 보다.
정상에서 동부재로 내려서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곳에 보적산으로 이어지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러나 청산도의 주봉인 매봉산에 오르기 위해 청계리를 지나 상서리로 향하는데 길 옆 마을들은 강원도 두메산골을 느끼게 한다. 청산도는 산 아래 있으면 두메산골이요, 해안가로 나가면 섬마을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나오는 상서리 돌담길은 문화재 등록 제289호로 지정되기도 했으며 마을 앞에는 문화재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대부분 추녀 끝까지 돌담을 쌓은 것은 바람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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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 289호로 등록된 상서리 돌담길.
돌담을 지나 매봉산으로 올랐다. 물 가두기를 하던 농부에게 등산로를 다시 확인하려 물었더니 하던 일을 멈추고 종종걸음으로 논둑길을 따라 걸어오며 “저리 올라서 왼쪽으로 딱 꺾어지면 산길이 나올 거요. 저놈이 매봉산인께, 쪼-옥 올라가면 될 거요”라고 흙 묻은 손으로 친철하게 매봉산을 가리킨다.
길 옆 보리밭에는 지난밤 모진 바람을 이기지 못한 보리가 아무렇게나 편한 대로 누웠다. 지금은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가난하던 시절에는 보리가 익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보리밭을 지나 산길로 접어드니 등산로 작은 계단에는 잡초가 우거져 사람의 통행이 적은 듯하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오르다 능선 안부에 도착하니 산 너머에 있던 푸른 파도가 거센 바람에 산릉을 타고 기어오른다. 먼저 도착한 류수경씨가 앉아 있는 큰 돌멩이 옆에는 자장면 배달통이 놓여 있어 마치 설치미술을 보는 듯하다. 이곳까지도 자장면 배달이 된다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능선길을 따라 바다를 조망하며 정상으로 향한다. 신비의 원시림으로 다시 접어드니 고목에 콩란이 촘촘히 박혀 있어 신비함을 더한다. 마치 낙동정맥 오지 산행을 하는 느낌이다. 풀 향기가 가득하고 요란한 새소리와 솔바람 소리가 화음을 이루니 이곳이 청산임을 몸과 마음으로 느낀다. 정상에는 돌탑이 말없이 우뚝 서 있고 잡목은 키를 낮추어 청산도의 제일봉답게 사방의 시야가 거칠 것이 없다. 그림 같은 다도해에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오고, 눈앞의 여서도는 물론 여수시에 속하는 거문도까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오후 햇살을 받으며 원동리로 하산해 지리해수욕장 한바다민박집에서 창문을 열고 낙조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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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봉산에서 바라본 보적산과 범봉.
태산의 옥황정이 이만큼 높게 느껴질까
다음날 아침 7시30분에 민박집 여주인이 서둘러 보적산 입구인 동부재까지 태워다 주었다. 어제 고성산에서 내려섰던 곳이다. 등산로 입구에는 ‘보적산 3.0km 범바위5.0km 권덕리 7.0km’ 라고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우리는 권덕리로 하산해 당리까지 가기로 했다. 입구부터 가파르게 오르던 등산로는 소나무 숲에서 우리에게 평탄한 길을 선물한다.
잘 정리된 등산로를 따라 보적산 정상으로 오르는데 발 빠른 권오철씨는 벌써 정상에 올라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우리에게 빨리 오라 손짓한다. 암봉으로 이루어진 보적산 정상에서 그림 같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내려다보았다. 유채밭은 연녹색으로 변했고 보리밭은 황색을 띠기 시작했다.
물 가두기를 해놓은 다랑논과 붉은색 파랑색으로 조화를 이룬 마을의 지붕과 돌담은 이곳만의 진풍경이다. 권덕리 앞바다는 ‘새땅끝’이 뻗어나와 바다를 가로막고 있어 이곳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커다란 호수처럼 보인다.
보적산 정상에서 가파른 바위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며 범봉으로 향했다. 조금 내려서니 차량 통행이 가능한 콘크리트 임도가 나타난다. 이정표에는 ‘보적산 1.0km 범바위 1.0km’로 표시되어 있다. 범바위 입구는 주차장 시설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머지않아 이곳에도 문명의 이기가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걱정이 앞섰다.
범봉에 도착, 바위를 오르며 기를 느꼈다. 범바위에서 뿜어나오는 자기가 지구자기보다 강하기 때문에 거문도에서 제주도를 항해하는 선박이 청산도에서는 나침반도 방향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움푹 파인 바위에 소사나무와 소나무가 분재처럼 자라고 있어 더욱 신비함을 느꼈다.
범봉에 올라 정상에 서니 태산의 옥황정이 이만큼 높게 느껴질까. 일망무제의 거칠 것 하나 없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니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는 보석으로 수놓은 둥근 양탄자처럼 느껴지고 나는 신선이 되어 천상세계로 날아오른다.
기(氣)를 온몸으로 느끼고 범봉을 돌아 권등리로 내려섰다. 청주가 고향인 손창덕(72·청산사랑 산악회장)씨는 청산도가 좋아 이곳에서 ‘낚시인의 집’(민박)을 운영하며 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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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봉산 입구 다랑논에 물가두기를 하고 있는 농부의 손길이 바쁘다.
손 회장이 당리 서편제 촬영장소까지 직접 태워다 주었다. 조금 전 한가로웠던 산길과는 대조적이다. 남녀노소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청산도는 2007년 전통을 보존하고 지속 가능한 생태주의를 실천하려는 국제단체 ‘슬로시티’ 국제연맹이 청산도를 전남 신안군 등과 함께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한 곳이다. 우리는 사진 몇 컷을 촬영하고 도청항으로 향했다.
청산도를 떠나는 뱃전에서 술 한 잔 마시고 멀어져 가는 청산도를 바라보니, 화담선방을 찾던 비에 젖은 황진이의 매혹적인 몸매처럼 청산도는 푸른 바다 위에 고고(孤高)히 누워 있었다.
위로는 靑天(푸른 하늘)이요, 아래로는 靑海(푸른 바다)라. 그 사이 원시의 섬 靑山(푸른 산)이 홀로 떠 있으니 정녕 이곳이 꿈에 보았던 이어도 아니런가. 곤륜산의 천정(天庭)도 나를 붙잡지 못했거늘, 아- 청산이 나를 붙잡고 청산에 살라하네.
월간산/ 그림·글 곽원주 cafe.daum.net/ksejung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