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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1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약점을 강점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 - 2. 질투가 힘이다!
본문 : 신명기 6장 15절(10~16절)
당신들 가운데 계시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분노하시면, 당신들을 땅 위에서 멸하실 것입니다. <새번역>
두고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뛰게 만들었던, 아니 지금도,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이 있었던 그 날로 오늘 함께 떠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에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이스라엘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그 날로 다윗을 자기와 함께 머무르게 하고,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다윗은 외로웠지만 그래도 제 목숨을 아끼듯이 자신을 아껴주는 요나단으로 인하여 겨우 버틸 수 있었습니다. 요나단은 왕자로서 주어진 겉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주었고,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모두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요나단은 정말로 다윗을 아껴 주었습니다. 그렇게 요나단의 응원을 받은 다윗은 사울이 어떤 임무를 주어서 보내든지, 맡은 일을 잘 해내게 됩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장군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장군이 되었지만, 꽤 특혜를 입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 누구도, 온 백성을 포함해서 사울의 신하들까지도 그 일을 마땅하게 여길 정도였습니다. 정말로 다윗의 전성시대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 전성시대가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한 날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 죽이고 군인들과 함께 돌아올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소구와 꽹과리를 들고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군인들을 맞이하는 사울 왕을 환영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의 귀를 불편하게 만드는 노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에 여인들이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 <사무엘상 18장 7절, 새번역>
이 말에 사울은 몹시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만을 돌렸으니, 이제 그에게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리 밖에 없겠다”고 투덜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때부터였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그렇게도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이유! 바로, 질투에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사무엘상 18장 9절, 새번역>
이 날로부터 시작하여 사울은 다윗을 죽이고자 참으로 안간힘을 씁니다. 그가 싸워야 할 대상은 블레셋이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무리들이었는데, 이제 그의 대적은 오직 한 명, 다윗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번번이 사울의 계략에서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도우신다는 사실을 사울 역시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는 것을 안 사울은, 다윗이 두려워졌다. <사무엘상 18장 12절, 새번역>
그래서 더 이상 자신의 곁에 두지 못하고, 오히려 다윗을 천부장으로 임명하게 됨으로, 그 임명이 앞으로 자신의 불안을 더 크게 만든다는 것을 생각도 못한 채, 다윗을 자기 곁에서 떠나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군대를 이끌고 공식적으로 사울을 떠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결론적으로 오히려 사울 덕분에 다윗은 더욱 더 승승장구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그는 항상 이겼다. <사무엘상 18장 14절, 새번역>
그리고 계속해서 전해지는 다윗의 승전가를 전해들은 사울은 다윗을 더욱 매우 두려워하게 된 동시에, 더욱 더 불타는 질투심으로 다윗을 더욱 더 죽일 생각 밖에 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질투에 눈이 먼 사울을 다윗이 몇 번이나 살려 주게 되고, 사울은 용서를 구한 듯 하다가도 다시 다윗을 공격하게 되는, 그러다 결국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윗을 향한 분노와 전투력을 블레셋이나 다른 나라의 공격에 사용했다면 최소한 그의 죽음이 안타깝지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질투에 눈이 먼 사울을 기다리는 것은 허무한 죽음이었습니다. 질투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질투는 정말 눈을 멀게 만드는 마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질투심이 많은 사람을 우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질투라는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질투하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는 것 같아 보여도, 실상은 질투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지 않아 합니다. 질투라는 감정은 정말 많은 감정의 소모를 가지고 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질투로 인하여, 진짜 봐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게 되는 순간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로, 질투심은 약점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비교의식을 없애고, 나로 만족하고, 환경에 감사하며, 최대한 질투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자족하는 법을 배운 바울로부터 시작하여 마치 유교처럼 하나의 전통이 된 것이, 그리스도인은 질투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법칙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질투는 약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정말 ‘질투’라는 감정은 약점이기만 할까요? 그렇다면 이 구절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삼키는 불이시며,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신명기 4장 24절, 새번역>
당신들 가운데 계시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분노하시면, 당신들을 땅 위에서 멸하실 것입니다. <신명기 6장 15절, 새번역>
그러나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주님을 섬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신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수아 24장 19절, 새번역>
질투하시는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도 약점을 가진 분이시라는 것입니까? 하나님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도 가지지 말아야 할 감정을 가질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입니까? 단호하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질투가 약점이 아니라 얼마나 큰 강점인지를 오히려 보여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엘 칸나(El Kanna)’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해 더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더 사랑하셔서 그 사랑을 독생자 아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심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큰 사랑이라는 것을, 독생자 아들보다 사랑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이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9~10절, 새번역>
우리가 사랑하는 그 모든 것에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그래서 더 사랑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있다는 것을 독생자까지 포기하면서 우리에게 증명하고 싶으셨던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질투입니까? 얼마나 은혜로운 질투입니까? 얼마나 닮아가야 할 질투입니까?
그래서 질투의 하나님이 가지신 질투를 소유하면, 이런 질투의 감정을 가진 자들은 오히려 더 큰 추진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마치 사울이 다윗을 향한 질투로 인하여 다윗을 공격하고,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을 선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갈구하면서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께 더 기도하고, 하나님을 더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 질투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했다면 어땠을까요?
자신도 다윗만큼, 아니 다윗보다 더 큰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싶다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질투로 인하여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더 뜨거워질 수 있었던, 아니 처음부터 은혜를 입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되었던 그 순수했던 사울로 돌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사울의 그 질투라는 약점을 통하여, 오히려 사울에게 강점으로 변화시켜 주고 싶으셨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질투는 더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합니다. 질투는 나도 그 사랑을 받고 싶은 갈망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질투는 오히려 더 사랑할 수 있는 추진력을 만드는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자신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하면서, 우리 역시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도록, 이 질투의 힘을 이용해서 하나님만을 더욱 더 뜨겁게 사랑하는 이로, 또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이로, 만들어 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 질투의 힘이 없어도 충분히 그 일을 감당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독 이 질투라는 감정에 약한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은 그 약점을 강점으로 변화 시켜줌으로 은혜의 길을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질투,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질투는 결코 약점이 아니라 충분히 강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은 질투라는 감정을 통해, ‘중보’를 배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지금 누군가에게 질투하고 계십니까? 질투라는 감정으로 인하여 자꾸만 그 사람이 눈에 밟히십니까? 그러면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사인으로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그를 미워하라는 사인이 아닙니다. 자꾸만 그 누군가와 비교하게 되어, 질투심이 생겨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여러분의 눈에 심어 주셔서, ‘중보기도’의 대상으로 보여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배우고, 닮을 점을 찾을 수 있는 시선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질투의 감정이 오히려 그를 향한 간절한 간구와 배움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위해 기도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사울이 다윗을 닮아가고자 했다면 어땠을까요? 다윗을 중보하며 이스라엘을 함께 강한 나라로 만들어 갔다면 어땠을까요? 함께 동반 성장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질투라는 감정이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질투라는 비교를 통해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나단이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사울보다 질투가 났다면 더 질투가 날 수 있는 인물이 같은 라인에 서 있는 요나단 아니겠습니까? 다윗만 없으면 요나단은 앞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왕의 자리를 빼앗긴 요나단은 다윗을 질투하는 마음을 넘어서서 중보 했고, 다윗을 닮으려 했고, 함께 동반 성장하고자 자신을 오히려 성장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2인자로 불리게 되는 요나단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혹여 요즘 누군가에게 질투가 날만큼 자신의 부족함을 보고 계십니까? 내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기에 질투가 불일 듯 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의 부족함을 오히려 채우기 위해 노력을 시작할 때입니다. 내게 없는 것을 발견했기에 그 것을 소유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도 나에게 주어진 삶이 있음을 질투로 인해 제자리에 멈춰 선 사람은 절대 발견할 수 없음을 우리 모두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린 요한복음 21장에서 요한의 거취를 궁금해 하는 베드로를 향해 던지신 예수님의 일침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돌아다보니,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이 제자는 마지막 만찬 때에 예수의 가슴에 기대어서, "주님, 주님을 넘겨줄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이다. 베드로가 이 제자를 보고서, 예수께 물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요한복음 21장 20~22절, 새번역>
하나님이 허락하신 질투의 진짜 얼굴은 그 사람만 보게 하다가, 그를 위해 기도하게 하여, 그를 닮게 하시며, 나를 보게 하고, 나를 성장시키고, 그래서 함께 성장 시키시는 동력으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되면, 하나님께 더욱 매달리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더 간구하고, 더 찾게 되는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분명히 사울이 가진 ‘시기’라는 질투는 버려야 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자신부터 시작해서 서로를 무너뜨리는 질투는 스스로에게 약점이 아니라 반드시 버려야 할 요소일 뿐입니다. 열등감을 동반하고,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쓸모없는 감정으로서의 질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진짜 ‘질투’는, 엘 칸나, 질투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질투는, 우리의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약점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강점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질투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추진력을 얻으시길 소망합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고 있어 질투가 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우리도 그 곱절의 사랑을 구하면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질투를 통해 ‘기도’를, ‘중보’를, 배움과 닮음을 배울 수 있길 소망합니다. 내가 질투하는 그 상대방을 향해 사랑의 마음을 담아 중보 한다면, 그의 모습을 닮아가고 배워간다면, 그도 성장하게 될 것이며, 나도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질투를 통해 스스로가 성장하게 되시길 소망합니다. ‘질투는 나의 힘’이란 생각으로 나의 부족함을 오히려 채우려는 노력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멋진 선의의 경쟁이 되어, 결국은 나도 성장하고, 내가 질투하던 그도 성장함으로, 함께 성장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더 깊고, 넓게 드러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울이 다윗을 질투하게 된 이야기의 첫 시작이 된 사건인 ‘다윗과 골리앗 사건’을 그린 그림 한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그림, ‘다윗과 골리앗’은 바로 신이 인간 세상에 잠시 내어준 천재라고 불리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그림입니다. 그는 1400~1500년대 르네상스의 3대 천재로 불리는 거장이었고, 특히 조각에 있어서는 최고 중에 최고라고 불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계십니까? 이 천재 미켈란젤로도 질투하던 대상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켈란젤로보다 23살이 많았던 또 한 명의 천재,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의 주인공, 레오나르도 다빈치입니다.
이 시대의 천재들인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서로를 질투했다고 전해지는데 그들과 함께 했던 이탈리아 화가이자 건축가인 바사리라는 사람은 이렇게 두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서로 깊이 경멸했으며, 서로에 대해 커다란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질투가 어떻게 세상에 드러났는지 아십니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앙기아리 전투’라는 벽화를 그리면, 미켈란젤로는 ‘카시나 전투’라는 벽화를 그리면서 경쟁하게 됩니다.
다빈치가 ‘성 안나와 성모자와 어린양’ 이라는 그림을 그리면, 미켈란젤로는 ‘성 가족’이라는 그림을 그립니다.
이쯤 되니 사람들은 서로를 더 질투해 주길 바랐다고 합니다. 둘이 서로를 질투할수록 르네상스 문화는 더욱 더 꽃피우게 되었고, 대단한 작품들은 계속해서 만들어 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와중에 하나님을 믿던 두 사람에 의해서 하나님의 영광은 더욱 더 많은 이들에게 감동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9년 미국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2위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10위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의 질투라는 약점을 변화시키셔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강점으로 바꾸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 오늘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그 분의 ‘질투’를 받아, 진짜 질투를 통해 더 사랑하고, 더 기도하고, 더 배우고, 더 성장하게 되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결단찬양 - 더 원합니다 + 내 삶을 깨뜨립니다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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