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나의 아버님께서는 태백산맥 줄기의 농촌에 머무르시면서 농민들에게 엽연초생산기술을 가르치셨다. 교통이 매우 불편하던 그 시절, 아버지의 근무지가 평균 이태를 주기로 옮겨지는 바람에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를 세 군데나 거치고서 졸업할 만큼 번거롭게 이사를 자주 다녔다. 그러나 곳곳을 쏘다니며 자랐으므로 농촌에 사는 또래도 많고 추억도 다양하고 다채롭다.
나의 어릴 적 추억은 육이오 난리(亂離)가 일어난 이듬해, 충주지방에서 대구까지 겨울피난길에 오른 것부터 또렷이 떠오른다. 피난길에 오르기 전날 추운 밤, 괭이와 삽으로 부엌 바닥을 파고 큰독을 몇 개 묻은 뒤 재봉틀을 비롯한 귀한 가재도구와 옷가지를 넣는 어머니에게 그 까닭을 여쭈어본다. "엄마, 이거 왜 묻어." "쉿, 조용히 해. 떠들면 들켜. 숨바꼭질할 거야." 이튿날, 어머니는 젖먹이 내 아우를 등에 업은 채 커다란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형님 둘과 나는 각각 륙색을 지고 집을 나선다. 다섯 살배기이던 내 륙색에는 엿만 잔뜩 들어 있다. "즐거운 가족 나들이, 웃으며 가!"라는 어머니 말씀에 마음이 들뜨고 신바람이 절로난다. 그러나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다리도 아프고 낌새도 이상해서, "엄마, 집으로 가자!"고 자꾸 떼를 쓰며 보채는 바람에 어머니의 눈망울에서 반짝이던 눈물이 내 가슴속으로 흘러들어서 두고두고 마르지 않는다.
대구에서 3년을 힘겹게 지내다가 휴전이 되자마자 고향으로 돌아오니, 난리에 생때같은1) 가족이 죽거나 크게 다쳐서 가슴이 새카맣게 멍든 사람도 많고 허름한 집과 변변찮던 세간마저 망그러져서 알거지나 다름없이 된 사람이 많다. 가족을 잃었거나 살림이 송두리째 결딴났다고 해서 마냥 시름에 잠겨 한숨만 내쉰다고 일이 술술 풀리는 것도 아니다.
살아갈 길이 아득할수록 정신을 가다듬고 부지런히 꿈지럭거려야 하루 빨리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도짓돈2)을 내어 생계비도 쓰고 농사자금도 대면서 도지농토를 얻어 도짓소를 부리며 흙과 씨름하면서 삶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몸부림친다. 켜켜이 쌓인 도지(賭地)에 짓눌려서 애옥살이의 끝은 보이지 않지만, 농민들은 얼어붙은 마음을 이웃끼리 나누는 포근한 인심으로 녹이고 힘든 농사일을 품앗이와 울력으로 슬기롭게 꾸려가면서 앞일이 암담한 가난의 터널을 천천히 빠져나간다.
요즘 어린이는 같은 나이 또래끼리 모여서 몸을 부둥켜안고 뜨거운 숨소리를 들으며 노는 시간보다 컴퓨터나 전자게임기 앞에 제각각 앉아서 차가운 화면을 쳐다보며 노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집에서는 컴퓨터를 통해 필요한 정보도 얻고·게임과 채팅도 즐기며, 밖에서는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거나 자신에게 필요한 각종 학원을 다니면서 온갖 재주를 익히며 영민하고 애바르기3) 짝이 없게 자란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혼자 앉아 있는 시간보다 같은 나이 또래끼리 몰려다니며 철철이 몸을 서로 부딪쳐가며 재미있게 노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얼음장 밑으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크게 들려오기 무섭게 버들피리를 만들어서 "삘리리∼, 삘리리∼." 불어대며 봄이 왔음을 동네방네 알리고, 날마다 흙바닥을 기어 다니며 자치기·구슬치기·딱지치기 따위를 해서 까마귀 발등처럼 손등이 새까맣다. 막대기로 나무 도막을 쳐서 멀리 보내기를 겨루는 자치기는 나무 도막에 눈을 다칠 수도 있어서 어른들은 한사코 말리지만, '귓등으로 듣고4)' 더 열심히 논다. 구슬치기는 땅바닥에 판 구멍에 구슬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집어넣기를 겨루므로 몸과 옷이 더러워져서 꾸중을 듣지만, 여봐란듯이 딴전을 펴고 논다. 딱지치기는 종이가 몹시 귀한 시절이었기에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 종이가 얼마나 귀했던지, 딱지를 몽땅 잃으면 '나중에 산수갑산을 갈지라도' 공책이나 책을 찢어서 딱지를 접어서 친 또래도 더러 있을 정도이다. 놀이시설이 없던 시절에 어린이끼리 노는 놀이마다 탈이 많아서 꾸지람을 듣지만, 그것을 칭찬으로 여기면서 오히려 더 재미있게 놀았으니 짓궂기 짝이 없는 철부지였다.
단오가 가까워지면 마을마다 어른들이 큰나무에서 그네를 뛰므로, 어린이들도 덩달아 작은 나무에 그네를 매어놓고 뛴다. 어른이 뛰는 그네의 밑싣개5)보다 막대기 사이에 새끼를 더 촘촘하게 엮어서 뛸 줄도 알았으니, 얼뜨기6)럼 보이는 농촌 어린이들이지만 솜씨도 좋고 머리도 좋다. 뜨거워지는 햇발을 받고서 들판과 산에 멋대로 터 잡고 사는 도라지와 참나리가 흐드러지게 꽃을 터뜨리면, 땅뺏기와 비석차기에 정신을 판다. 냇물에 벌거숭이로 뛰어 들어가서 물똥싸움이나 물장구질 따위를 할 때는 긴긴해7)도 짧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개울이나 못 가장자리에서 돌멩이·까팡이8)·사금파리 등으로 물수제비도 뜨고, 아주까리나 오동나무의 대통으로 물딱총을 만들어서 상대의 얼굴에 갈겨대며 티 없이 즐거워한다.
여름방학이 끝나면, 가을운동회가 열릴 때까지 어린이마다 학교에서 지정한 교복처럼, 밤낮으로 아랫도리는 양쪽 옆에 세로로 흰 띠를 내린 검정색 팬티에 윗도리는 팔 길이가 짧은 흰 메리야스 한 벌만 입고 지내기 일쑤이다. 그 차림새로 가으내 공부도 하고, 운동회도 연습하고, 놀기도 한다. 해마다 추석 다음날이면 으레 열리는 운동회에 많은 학부모가 추석명절에 준비한 송편, 다식, 과자, 과일, 떡, 고기 따위의 음식을 가지고 운동장에 모이므로 운동회 날이 곧 잔칫날이다. 만국기가 드리워진 가운데, 어린이들은 달리기·씨름·공굴리기·기마전·텀블링·모래주머니 던지기 따위를 경기하고, 각 마을의 젊은이들은 이어달리기와 씨름으로 경기를 벌이므로 운동회는 면민(面民)의 잔치로 무르익는다.
겨울에는 솜으로 만든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또래들과 팽이를 돌리거나, 연을 날리거나, 제기를 차거나, 썰매를 타면서 놀다 보면 금세 날이 저문다. 산골짜기를 휘감는 매운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랑논9)에서 하루 종일 썰매를 타고 놀아서 손가락에 동상이 걸리거나 양쪽 콧구멍으로 흰 할아버지가 들락날락하는 또래가 많아도 추운 줄도 모른다. 하루 종일 흙을 매만지고 놀면서도 제대로 씻지 않아서 손등에 때가 덕지덕지 끼다 못해 갈라져서 피가 흐르기도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계집애들은 방에서는 상대와 마주 앉아 손뼉을 치거나 공기놀이·윷놀이·실뜨기를 주로 하고, 밖에서는 널뛰기·고무줄넘기·숨바꼭질을 즐긴다.
그 시절에 함께 농촌에서 뛰놀며 자란 또래들은 숫되지만, 낫·도끼·칼·장도리·자귀 따위의 연장을 다루는 솜씨가 좋아서 종이·나무·짚·깡통·돌멩이·실·고무줄로 철철이 온갖 장난감을 만들어서 놀았다. 장난감마다 투박하고 볼품없지만, 티 없이 밝은 마음으로 어깻바람을 일으키며 즐겁게 놀았으니, 동심은 본디 꾸밈도 없고 한없이 가난한가보다.
1) 생때같다 : 몸이 튼튼하여 병이 없다.
2) 도짓돈 : 한 해에 얼마씩의 변리를 내기로 하고 꾸어 쓰는 돈.
3) 애바르다 : 이익을 좇아 덤벼드는 데 발밭다.
4) 귓등으로 듣다 : 듣고도 들은 체 만 체 하다.
5) 밑싣개 : 그네의 줄에 걸치고 발로 디디거나 엉덩이를 붙이게 만든 물건.
6) 얼뜨다 : 다부지지 못하고 어수룩하다.
7) 긴긴해 : 해가 떠서 질 때까지의 동안이 길다는 뜻에서, '여름날의 해'를 가리키는 말.
8) 까팡이 : 질그릇 깨진 조각. 이징가미.
9) 다랑논 : [비탈진 산골짜기 층층으로 된] 작은 논배미로 된 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