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사천중 2학년때 교지 ‘한가람’에 첫시 ‘해바라기’를 발표했고, 1963년 개천예술제 제1회 한글시조백일장에 ‘날개’로 장원을 했고, 1965년 시조를 현대화 한다고 ‘율시조동인’ 활동에 참가했으니 문학에 정진해온 세월로 보면 내 개인의 문학사는 50년이 넘는 셈이다. 그런데 아직도 제대로 된 작품이 없는 걸 보면 나도 한심한 문사가 아닐까 싶다.
시는 나의 인생에 무엇인가? 20대 30대에는 직장도 여러 번 바꾸었고, 멕시코 바하사막으로 들어와서 농부가 된 것이 28년 가까운 세월인데 그 농부라는 직업을 다시 바꾸지 못한 것은 직업의 특성상 쉽게 바꿀 수 있는 업종이 아닌 점도 있지만 한편 생각해 보면 운명의 끈으로 묶여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게 진솔한 표현이다. 나에게 시, 시조 역시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적으로 애와 증의 날줄과 씨줄로 엮인 어쩔 수 없는 그런 관계가 아닐까 싶다.
시가 내 운명의 궤도를 수정하지 않았나 싶다. 시가 때로는 날 가두는 감옥이고, 시가 남보다 뭔가 다른 운명을 엮게 하지 않았나 싶다. 파일럿이 직업이던 사람이 먼 이국 사막에서 농부가 된 것은 생텍쥐페리가 사막에 불시착한 사건에 비길만 하지 않을까. 시가 나의 좌절과 추락과 절망으로부터 도피를 이끌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나의 시가 나의 운명을 이끌어 왔고 그 운명의 동반자가 된 셈이다.
직업 파일럿이 농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1985년 〈LATIMES〉 일요판에 트랙터를 모는 사진과 함께 대서특필 된 적이 있다. 빈주먹으로 남의 사막에서 내가 택한 길이 얼마나 험난한 자신과의 사투였는지는 그들이 알 바 없고 그들은 단지 특종만을 노리지 않았나 싶다. 그때의 지옥 끝에 처박힌 듯한 절박한 심정은 내 시를 주관하는 시신이 있다면 그 시의 정령이 날 좀 이해하여 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절박하고 신산한 사막에서 사투를 벌인 개척자의 삶이 어언 28년이 흘러갔다. 어쨌든 머지않아 고희를 맞게 되는 세월이 그렇게 휑하니 지나가고 말았다.
사람들은 날 성공한 농부의 반열에 올려놓지만 나는 성공한 시인의 반열에 들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다만 내 시의 정령이 있다면 그 시와 그 문학에 한참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사람이 한 생을 살면서 한곳에 집중하여 영혼을 불살라도 제대로 이룰까 말까 한 일인데 그 사이 이것저것 온 생애를 한눈팔며 본업인 문학에 온 영혼을 쏟아 보지 못한 그 회한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변경의 삶
해외에 나와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변경의 삶(Marginal Life)이라고 표현한다. 지구촌 구석구석 우리 한인들이 나와서 개척자의 삶을 살아나가고 있고, 사이버문명의 발달로 국외와 국내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시대를 맞고 있다. 이제 남은 인생 나의 활동 영역도 지구촌을 두루 떠돌며 글로벌 노마드 집시(Global Nomad Gypsy) 시인으로 살게 될 것으로 짐작된다. 시심을 지니고 시인의 자부심을 지니고 산다는 것이 결국 나의 운명을 역경으로 몰고간 셈이고 상처투성이 내 인생이 영욕으로 얼룩져 있다. 하지만 시를 짝사랑하고 시와 어깨동무한 세월을 되돌아보면 마냥 헛수고는 아닌 듯싶다. 마침 한국 법무부에서 국적회복 통지서를 보내왔다. 몸은 비록 세계를 떠돌고 있지만 내 고향의 본적지를 다시 회복했고 영혼의 고향을 되찾은 셈으로 내 개인사로 보면 시의 고향을 되찾은 듯 행복한 순간이다. 이제 남은 세월은 문학 하나로 정진해 볼 생각이다.
두더지와 시의 영역
두더지는 자신이 판 굴 속에 안주하는 법이 없다. 계속 새 땅을 파서 새 터널을 만든다. 어떤 때는 풀이 전혀 없는 딱딱한 한길 가운데를 파기도 한다. 굴과 굴로 연결된 미로 속에 생풀이나 마른 풀등 먹잇감을 끌고 들어가서 저장해 두고 미래를 대비한다. 시인으로 치면 두더지는 참 대단한 시인이다. 한번 자리 잡은 영역을 버리고 작품 세계의 새 영역을 끝없이 확대 개선해 나가는 시인으로 간주할 수 있다. 지금도 땅속 캄캄한 곳에서 새 터널을 연방 뚫어 내고 있는 두더지의 그 용기와 인내의 시간에 박수를 보낸다.
바다로 열린 창(La Ventana)
내가 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라 벤타나’ ‘엘 사르헨토’는 멕시코 바하캘리포니아주 라파스시에서 약 1시간 떨어진 동녘 바닷가, 현지 이름으론 코르테스해 쪽이다. 새해 2월인 지금은 세계에서 몰려든 윈드서핑(Wind Surfing) 족으로 바다는 온통 울긋불긋 화려한 천연색으로 채워져 있고 거친 파도 위를 구릿빛 젊은이들이 서핑보드 하나에 제각기 형형색색의 깃발과 풍선을 올린 채 파도 위를 상어처럼 휘젓고 있다. 나는 서핑을 할 줄도 모르지만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재충전되는 느낌이라 자주 내려다보곤 한다. 개중에는 내 나이 또래의 철없는 늙은이도 간혹 보인다. 이곳에서 자주 만나는 서핑 코치는 서핑을 배우는 일은 나이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한번 배워 보라 하지만 아직 그 용기까지는 내지 못하고 있다. 그 윈드서핑이라는 것이 참 해볼 만한 스포츠가 아닌가 싶다. 이곳은 겨울철 한낮이면 북풍이 강력하게 불고 배들도 운행을 중단할 정도로 높은 파도가 이는데 그때 산더미 같은 거친 파도 위를 절정의 기회로 삼고 바다로 달려나간다. 서핑보드 위에 박힌 작은 돛폭 하나와 작은 판자 같은 서핑보드 위에서 거친 파도 위를 스쳐가고 방향을 바꾸고 때로는 파도 위에 꼬꾸라졌다가 다시 일어나서 상어처럼 휘젓고 다니는 윈드서핑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슬아슬한 예술이다.
―『유심』(2012. 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