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 편
영혼의 갈망
요절: 2절
내용 관찰
63편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묵상함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1-4, 5-7, 8-11). 그리고 각 부분은 "영혼"에 대한 진술로 시작하고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첫째 부분(1-4)의 중심점은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1하)한 영혼의 갈급함입니다.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1) 합니다.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 광야에서 영적 갈급함으로 허덕이는 자가 어찌 다윗뿐이겠습니까? 여기에 63편의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갈급한 영혼은 가뭄에 농부가 하늘을 쳐다보듯 필연적으로 "간절히 주를 찾고", "주를 앙모"(1) 하기 마련입니다.
둘째 부분(5-7)의 중심점은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5)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약속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 하셨습니다. 첫 절에서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갈급해 하며 갈망한 영혼은 필연적으로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5) 말씀합니다. 만족한 영혼은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불리이다“(7)고 주의 품안에 거하며 은혜 안에서 즐거워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셋째 부분(8-11)의 중심점은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8)에 있습니다. 갈급한 영혼은 만족함을 얻게 되고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사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동행하되 떨어져서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8) 하고 힘있는 오른손으로 붙들고 동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 부분에는 조화로운 짝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갈급한 영혼은 앙모함과 바라봄이 짝이고, 만족한 영혼은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가까이 따르는 영혼은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심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어서는 아니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의문(儀文)만 보고 신령한 것은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영혼의 갈급함으로 허덕이던 영혼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이처럼 "영혼의 만족"을 누리며, 주님과 동행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됩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요4:14)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7)고 초청하고 계십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2) 하고 이날을 보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알았기 때문에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3)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모하는 시(詩)속에도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9) 대적자가 있음을 주의하십시오. 그가 누구이겠습니까? 그가 바로 사탄입니다.
묵상해 봅시다.
첫 부분의 중심점은 무엇입니까?
둘째 부분의 중심점은 무엇입니까?
셋째 부분의 중심점은 무엇입니까?
적용: 형제는 세 부분 중 어느 단계에 이르러 있다고 생각이 되십니까? 그러나 이 세 단계는 계속 순환하는 단계임을 명심하십시오.
암송: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3)
제 64 편
묘책을 찾고 있는 자
요절: 9절
내용 관찰
64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앞부분(1-6)에서는 사탄의 음모가 어떠한가를 말씀하고, 뒷부분(7-10)에서는 "그러나"하고 그 음모가 무산되고 심판받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1) 합니다. 다윗을 죽이려는 "원수"가 1차적으로는 누구이든지 궁극적으로는 영적 다윗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사탄이요 나아가 성도들을 삼키려고 우는 사자같이 두루 찾고 있는 “대적 마귀"(벤전5:8)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치명적인 허점은 원수 마귀에 대한 경계가 허술하다는 점입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고(엡4:27) 마귀를 대적(약4:7)하기는커녕 마귀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귀에 대한 말을 하면 거부감을 나타내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그와의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2-6까지에서 묘사하고 있는 원수의 궤계를 "비밀한 꾀"(2), "숨은 곳에서"(4), "비밀한 올무"(5), “우리가 묘책을 찾았다"(6) 등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사탄의 간교함을 말해 줍니다. 사탄은 여간해서 자기의 정체를 들어내지 않습니다. 인류의 시조를 유혹할 때에도 숨은 곳에서 조정하고 있었습니다. "묘책을 찾았다"는 말에서 사탄이 얼마나 틈과 허점을 찾으려고 궁리하고 있는가를 보게 됩니다. 돈에 눈이 어두운 가롯 유다를 은 30에 매수하고는 "묘책을 찾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각 사람의 속뜻과 마음이 깊도다"(6하)는 말은 좋은 의미가 아니라 그 흉계는 너무 깊어서 알 길이 없다는 가공스러운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에 걸려들지 않고 속아 넘어가지 않은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이에 대한 신약성경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후2:11)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바울도 “우리도 전에는 속은 자요"(딛3:3) 하고 사탄에게 속아 교회를 핍박하던 장본인입니다. "근심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벤전5:8-9)고 권면하고 있는 베드로 사도도 주님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16:23) 는 호된 책망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화살같이", "겨누고", "쏘며 갑자가 쏘고"(3-4) 하는 화살 비유가 많은데 사도바울은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불화살)을 소멸"(엡6:16)하라고 경계합니다. "그들은 악한 목적으로 서로 격려하며"(5) 한다는 말을 주목하십시오. 사탄의 궤계는 한 마디로 악한 목적, 즉 하나님의 선한 목적인 구속의 경륜을 파괴하려고 서로 장려, 즉 한 패거리가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눅23:12에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 중에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마21:38)고 도모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부분(7-10)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들의 종말을 보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쏘시리니"(7) 합니다. 쏘려던 자를 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입니다. "저희가 홀연히 살에 상하리로다" 하십니다. 그때에야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9) 합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말은 과연 하나님은 계시는구나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자랑하리로다"(10)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최후 승리할 것을 말씀합니다.
묵상해 봅시다.
원수의 궤계가 어떻게 묘사되어 있습니까?
악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결국이 어떻게 됩니까?
적용: 사탄은 묘책을 찾고 있는 자입니다(6). 즉 약점을 찾고 있습니다. 형제의 허점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암송: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