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 하나님의 아들이라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8:14).
루터는 본문 말씀을 대했을 때에, “이 말씀은 황금문자로 씌어졌으면 좋을 뻔하였다”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으면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무엇을 발견했기에 그렇게 말을 했는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 말씀보다 더 크고 영광스러운 말씀은 달리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14) 하나님의 자녀”(16)라는 말이 로마서에서는 여기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에는, 영광과 함께 책임이라는 양면성이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만 합니다.
①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4) 합니다.
㉠ 이제까지는 성도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1), 영을 좇는 자(5), 그리스도의 사람”(9) 등으로 부르기는 했어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기는 처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지고지선(至高至善)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다음 절에서,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게 되고,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17) 하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것이 영광스러움입니다.
②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그들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책임이 있습니다.
㉠ 13절에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라고 말씀한 후에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14) 라는 문맥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여 주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③ 그러면 사도의 논증이 “영광과, 성화” 중 강조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가? 사도가 이 대목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성화(聖化)임에 틀림없습니다만, 그러나 사도가 지향하고 있는 바는 성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17),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18)에 있는 것입니다.
㉠ 어찌하여 “영화”가 중요한가? 그리스도인이란 “영”만이 아니라 “몸”도 구원을 받게 된다(11, 23절)는 점과, 그 때에야 비로소 구원은 완성(完成)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계 21:3) 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 다시 강조합니다만, 사도가 성화를 말하고 있다 해도 그가 확신을 주고자 하는 것은 구원의 완성인 “영화”이지 성화에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왜 이점을 강조하느냐 하면 많은 분들이 8장의 주제를 “성화”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④ 사도는 8장을,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1) 하고 선언함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 사도가, 성화문제를 가지고 성도들을 정죄감에 빠지게 하고 어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 왜냐하면 “성화”는 우리가 힘써야할 윤리요, 죽을 몸을 입고 있는 한에는 완전해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윤리에 머문다면, “율법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3),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9)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구원의 확신이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라고 말씀합니다.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믿음, 칭의, 중생, 구원” 등 모두가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입니다. 성화를 이루어 나감도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이요, 구원의 최종 목표인 “영화”(靈化)도,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시리라”(11하) 하는 영의 인도하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인도하여 줄,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9) 하고 단정을 한 것입니다.
⑥ 형제여,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引導)함을 받는 그들”이라는 표현은 더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장면인 것입니다.
㉠ 생각해 보십시오. 국빈(國賓)이 오면 의장대 사열을 하고 경찰차의 호위를 받는 법입니다. 형제가 나아갈 때에 경찰이나 헌병들이 앞길을 인도해 준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천사(天使)가 인도해 준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본문은 그 차원이 아닙니다. “성령(聖靈)님께서 나를 인도해 주신다” 하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형제가 “하나님의 자녀요,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 참여할” 신분(身分)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형제의 심정이 어떠합니까?
⑦ 문제는 성령께서 나를 인도해 주시느냐, 아니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을 내가 좇아 행하고 있느냐, 그렇지 아니하냐에 있는 것입니다.
㉠ 사도는 에베소서 4:30절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말씀하고, 5:10절에서는 반대로,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하십니다. 인도하여 주시는 성령을 소멸해 버리고 육신의 소욕을 좇아 행하게 되면 성령님은 근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에 계시는 성령인가? 형제 안에 내주(內住)하시는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근심하시는지, 기뻐하시는지 여부를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성령을 모신 형제의 마음에 기쁨이 있는가 여부를 보면 됩니다.
⑧ 성령님을 근심시키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히 12:7), 징계를 통하여 연단함을 받게 되니, 이것 또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인 것입니다.
㉠ 형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임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임금들도 왕자나 공주를 특별한 보살핌으로 양육하며 교육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이겠습니까? 성령님께서는 이들을 양육하시며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천사(天使)들까지도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 주셨다(히 1:14) 하고 말씀합니다.
⑨ 그리스도인들의 최후 목적지는 칭의(稱義)도, 중생(重生)도, 성화(聖化)도 아닙니다. 주님을 만나 뵙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영화(靈化)입니다. 그때까지, 거기까지 성령께서는 우리를 인도(引導)해 주시는 것입니다.
㉠ 이 인도(引導)하심을 그림자로 보여주신 출애굽기에서는,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引導)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進行)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 하니라”(출 13:21-22) 말씀하고, 모세는 노래하기를,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引導)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출 15:13) 했습니다.
⑩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고 선포하시는 이 정상(頂上)에서, 8장 말씀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 9절에 의하면 우리 안에 계신분이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영)”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이토록 다양하게 말씀하고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자 하는 구원계획에는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모두 관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사탄의 노예가 되어 지옥으로 끌려가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기 위해서,
㉮ “하나님은 하시나니” 한, 성부 하나님과,
㉯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3) 한,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26) 한 성령, 삼위 하나님이 다 관련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 이렇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얼마나 장엄합니까?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그래도 부족합니까? 그래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4) 하시는 것입니다.
⑪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중단(中斷)되거나 포기하시는 일이란 절대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성자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자들을 성령께서 잃어버리신다는 것을 상상인들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하십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을, 그리스도께서는 구속하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성령님은 믿게 하시고 거듭나데 하시고 양육하시며 성화시키시고 기어코 영화롭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 형제여,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십시다. 인도하심을 좇아 행하십시다. 성령님과 인격적인 교통하심이 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