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은의 루트' 부터
그날 밤, C 할머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아직 시차적응이 되지 않았던 인야는, 호세의 차 안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찌나 잠이 쏟아지던지 차에 탄 것 까지는 기억했지만, 그 뒤로는 자신이 졸았다는 것만이 조금 떠오를 뿐... 호세가 다 왔다며 깨울 때에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비몽사몽 돌아왔는데도 어차피 다음 날 떠나야 했던 인야는 다소 짐정리를 해둬야만 했기 때문에, 또 반 시간 정도를 보내다가... 거의 자정 무렵에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런 뒤 잠에서 깨어보니 세 시경이었다.
'겨우 이것 밖에 못 잤나?'
시간이 남아있음에도 잠을 그것 밖에 자지 못한 것에 인야는 약이 오르기 까지 했으나, 자신의 잠버릇이 첫 잠을 그렇게 서너(어떤 때는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나면... 또 서너 시간은 컴퓨터를 하며 보낸 뒤, 나중에 다시 한 두 시간 자는 식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까지야 어쨌거나 괜찮을 수도 있지만, 앞으로 두어 달은 통째로 까미노에서 보내야 할 처지라... 그런 잠습관에, 어떻게 그 많은 밤들을 보낼 것인지... 인야는 벌써부터 그게 걱정이었다.
어쨌거나 일어나 컴퓨터를 키긴 했으나, 인터넷 접속하는 방법이 한국과 다르다 보니 알 수가 없어서... 그저 지난밤에 C할머니와 함께 찍었던 사진 등을 USB 칩으로 옮기는 작업만을 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호세 몫으로 남겨둘 것은 그 PC에 저장해 놓는 일도 해 두고는, 이내 다시 침대에 누웠다.
밤은 다소 쌀랑한 기분이었다.
'이대로 가을인가?'
아침이 되면 떠나야 하니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두어야 했는데, 그렇게 바로 잠이 들 인야가 아니었다.
더구나 시차 문제도 있어, 몸은 피곤하기만 한데... 상대적으로 머릿속은 맑기만 했다.
그러니 누워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뒤 늦게 살짝 잠이 들 조짐도 있었지만... 옆방의 호세가 먼저 일어나 서둘렀기 때문에, 결국 7시쯤 일어나게 되었다.
우선 샤워부터 하고 부랴부랴 길 떠날 배낭을 꾸렸다.
호세의 집을 나서니, 새벽 공기가 쌀쌀하다 못해 춥기까지 했다.
'아, 9월 촌데도 이렇게 쌀쌀한데... 앞으로는 매일 아침마다 이렇게 알베르게를 나서야 할 것이다......'
인야는 이미 2004, 2007년 두 번에 걸쳐 '은의 루트'의 반절 정도를 걸었기 때문에, 그날의 행선지는 이전에 끝냈던... 그러니까 그 반절 지점이었던 '살라망까(Salamanca)'로 가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거기서 출발하여 목적지를 산티아고로 해서 걸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마드릳에서 살라망까로 가는 건 직행버스를 타도 되는데, 그날은 호세가 인야를 살라망까행 기차를 태워 보낸 뒤, 본인도 기차역에서 자기 노모가 있는 ‘바야돌릳(Valladolid)'에 갈 계획이어서... 둘이 함께 기차역으로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일단 거기서 가까운 전철역까지 간 다음, 마드릳 시내 외곽을 빙 돌아가는 기차를 타고 '차마르띤(Chamartin)'역에 도착했다.
인야 혼자서도 기차를 탈 수 있었지만, 호세는 인야가 기차에 오른 뒤 자리를 잡는 것 까지를 밖에서 지켜본 뒤... 손을 흔들면서 떠나갔다.
'흠, 저 친구가 선천적으로... 착한 사람이 분명하구나......'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인야는 다시 한 번 호세의 사람 됨됨이를 느끼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 부터는 나도... 혼자구나.'
그의 뒷모습이 보이자 그런 생각이 스쳤다.
11 시 23분에 살라망까 역에 도착했다.
그 전에 다닐 때는 직행버스만을 탔기 때문에 기차역에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살라망까 역은 도시에 비해선(살라망까는 고풍적인 도시다.) 상당히 현대적인 역사였다.
걷기에 앞서 인야는 제일 먼저 '끄레덴시알(Credencial. 알베르게(숙소)에서 직인을 받는 수첩)'을 준비해야만 했다. 그래서 일단은 살라망까의 중심부인 '쁠라사 마요르(Plaza Mayor. 중심광장)'로 향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여기 살라망까는 그곳이 중심부니까.
그래서 광장 한 쪽에 자리 잡은 '관광안내소'에 들러 물어보니, 살라망까 대학 가까이에 '알베르게(숙소)'가 있는데... 거기거나 대성당 옆의 한 신학교에서 판다기에,
인야는 신학교 쪽으로 가서 끄레덴시알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 가격이 1 유로였다.
'옛날에는 이런 게 다 공짜였는데, 이젠 돈을 받고 파는구나......'
그런데 하필이면 살라망까는 그날이 '축제'라며 중앙 광장에는 커다란 무대가 설치되는(그날밤에 콘서트가 있다는 것이었다.) 등, 도심이 술렁대는 느낌이었다.
인야에겐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인야는 관광객의 입장으로 이곳에 온 게 아닌,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까미노를 걷기 위한(나그네 입장) 차림으로... 그렇게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허긴, 애당초 인야는 그런 복잡한 곳은 싫어하기도 하거니와... 그날 까미노를 시작하는 시점에,
'웬, 축제?' 하고 시큰둥한 상태였던 것이다.
늘 그렇기도 하지만 살라망까 중앙광장 주변엔 수많은 관광객들이 여유롭게 관광을 즐기는 모습이었고, 콘서트를 위한 무대에선 벌써부터 커다란 앰프로 분위기를 띄워 술렁거리기도 했지만... 거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것 역시 인야에겐 반가울 리 하나 없는 현상이었다. 길을 출발하기에 앞서 가장 기본적인 뭔가 먹을거리도 준비를 해두어야 했는데, 도심의상점들이 문을 닫아버렸으니... 뭘 살 수도 없었던 것이다.
'에이, 이놈의 나라는... 맨날 축제야!'
마실 물도 다 떨어져서(아침에 기차역에서 호세가 사 준 물병도 거의 바닥이 나 있었다.), 최소한 빵(바게트)과 하몬이거나 초리소 그리고 과일 몇 개와 물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결국 먹을거리도 준비하지 못한 채, 인야는 몇몇 사람들에게 '노란 화살표'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 까미노를 찾아갔다.
아무래도 복잡한 도심이라 어디에 화살표가 있는지 찾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길을 물어보기는 쉬워서... 얼마 가지 않아 인야는 까미노 표시인, 이번 길의 첫 '노란 화살표'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네 번째 까미노, 은의 루트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은의 루트는 프랑스 코스보다 훨씬 덜 알려진 길이라 인터넷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야는 서툰 영어로나마 자신의 인터넷 까페에 짧게 소식을 남기게 되는데......
은의 루트는 프랑스 코스보다 훨씬 덜 알려진 길이라 인터넷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야는 서툰 영어로나마 짧게 소식을 남겼다.
Hi everyone!
Now I'm on 'La Via de la Plata'. 3 days ago I started from Salamanca walking to Zamora.
During 3 days I've walked about 70 km.
The weather is like early korean autumn, fresh and dry.
They say a few days ago, suddenly changed the climate.
That's why I'm happy. Good weather..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금 '은의 루트'를 걷고 있습니다. 사흘 전 살라망까에서 사모라로 걷기 시작했고, 그 사흘 동안 70km 정도를 걸었습니다. 날씨는 한국의 초가을처럼 청명하고 건조합니다. 며칠 전 갑자기 날씨가 바뀌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 좋은 날씨네요..)
Fist day (9 . 8)
I show some fotos on the camino.
It's very difficult for me to do internet on the Camino, but I'll try..
(까미노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보여드립니다. 이 길에서 인터넷을 하는 게 저에겐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애써 보겠습니다..)
See you soon!
Second day (9. 9)
Now I'm in province Zamora, continue walking.. If I were in Korea I'd like talk about the camino a lot.. And I've already prepared some images to show you, but this computer doesn't work well... That's why I cannot show you anything.. I'm sorry.
(지금은 사모라 지방에 있고, 계속 걷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이 길에 대해 할 말이 참 많았을 텐데요.. 보여드릴 사진도 이미 준비해뒀는데, 이 컴퓨터가 말을 잘 안 듣네요... 그래서 아무것도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9 .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