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깔모자
신금철
갈대가 눌눌해지는 가을이다. 황금빛 들녘, 하얀 머릿수건을 쓰신 어머니가 구슬땀을 흘리며 고구마를 캐신다. 밭둑에는 허수아비 어깨 위에 앉아 조잘대는 새를 쫓느라 자갈 넣은 깡통을 흔드는 단발머리 소녀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참새가 놀라 날아가면 가끔 갈 기슭을 타고 온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고, 메뚜기들이 ‘푸드덕’ 거리며 소녀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명화처럼 펼쳐지는 유년의 추억 한 장면이다.
그리움은 슬픈 날에 더 바짝 다가온다.오늘은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의 아흔세 번째 생신날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어머니의 마지막 생신날, 집에서 따끈한 미역국 한 그릇을 끓여드리지 못하고 병원에서 보내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는 파킨슨씨병, 고혈압, 게다가 팔과 다리 골절로 병원에서 2년을 고생하시다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
마지막 생신날,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딸기 케이크와 빨간 꽃을 피운 시클라멘 화분을 들고 우울한 마음으로 병원 문을 들어섰다. 병원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합동 생신 잔치를 위해 간병인들과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허공에서 춤추는 오색 풍선이 회색빛으로 보였다. 예쁜 색종이로 알록달록 꾸민 고깔모자를 쓴 어머니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생일을 맞을 때마다 해사하게 웃던 손녀의 고깔모자 이미지가 저만큼 달아난다. 나비처럼 승무를 추던 무희舞姬의 고결한 고깔모자의 상징을 외면하고 싶다. 고깔모자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었던 어머니를 더욱더 힘들게 하는 듯 버거워 보였다. 마치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쓰는 피에로의 모자처럼 슬퍼 보였다. 어머니에게 다가가서 고깔모자를 벗겨드리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어색하게 할까 봐 마음을 억눌렀다.
어머니 옆에서 노랫가락에 맞춰 장단을 치며 슬피 우시던 할머니처럼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휠체어에 번데기처럼 잔뜩 웅크린 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웠다.
생신 축하 인사말을 하면서 목이 메어 인사말도 끝까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목숨처럼 사랑하던 딸이 울먹이는데도 어머니는 무표정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 나니….”
어머니는 목청을 돋우는 소리꾼들의 흥에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사탕만 우물거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슬픔과 기쁨, 미움과 사랑, 행복과 불행의 감정을 모두 초월한 무연한 모습이었다. 향연을 즐기며 환호하는 관객은 아니어도 어머니의 얼굴에서 잔잔한 미소라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혼자 노닐고 계시는 것 같았다.
잔치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이 없던 어머니는 딸의 존재가 희미하게 기억나셨는지 내 손을 붙들고 늘 하시던 말씀처럼
어떻게 왔어? 못볼 줄 알았는데….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직장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스물다섯의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잃고 딸 하나를 위해 일생을 바친 억울한 삶을 보상받지도 못하고 병으로 누워계시는 게 모두 내 탓인 것 같아 어머니를 바라보며 죄인처럼 느껴졌다.
어머니는 지난한 살림에 외동딸인 나를 대학까지 보내시느라 온갖 고생을 하시면서도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직장에 다니는 딸을 위해 집안 살림 다 해주시고, 외손자를 셋씩이나 기르시느라 등이 휘고 팔다리가 성하지 않으면서도 오직 딸의 건강을 걱정하시던 어머니에게 아무런 보상도 못 해 드렸다. 어머니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마음뿐 정작 어머니의 순서는 항상 밀려났다.
간병인들의 말을 잘 들어 병원 내에서도 착하고 고운 할머니로 소문난 어머니는 인정 많고 착한 분이며 겸손한 분이셨다. 청상으로 힘들게 지내셨지만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시고, 음식 솜씨 좋으시고, 바느질 솜씨도 좋아 마을에서 칭송을 받으셨다.
고향의 이웃집 아주머니, 사랑하는 외손자들, 손목시계, 대학 졸업 여행을 가지 않고 해 드렸던 남색 한복과, 다시 입으실 희망 없는 주름치마 이야기도 더 듣고 싶은데 어머니는 점점 기억을 지우셨다.
어느 날, 어머니는 몸을 가누지 못하시면서도 신발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검은색 망사 구두를 사서 누워계신 발에 신겨드리며 나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잘 걸으실 때 예쁜 신발을 사드리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의 눈물이었다.
병원이 춥다고 하셔서 분홍색 스웨터를 사다 환자복 위에 입혀 드렸더니 주무실 때도 벗지 않으셔서 땀을 흘리신다는 간병인의 말을 들으며 벗으시라는 말을 못 했다. 낮과 밤을 구별하지 못 하시면서도 시계가 필요하다고 가져오라고 하셨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 내 첫 월급으로 사드렸던 무척이나 아끼시던 시계였다. 신발에서, 스웨터에서, 시계에서 딸의 체취를 느끼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비록 병상에 계시지만 어머니가 오래 사셔서 다음번 생신엔 색종이로 만든 고깔모자 대신 하얀 레이스가 달린 가볍고 예쁜 모자를 씌워드려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갑작스러운 폐렴으로 유언도 남기시지 못하고 다음 생일을 천국에서 맞으셨다.
해마다 어머니의 생신날이 돌아오면 고깔모자를 쓰신 어머니의 모습이 나를 누름돌처럼 짓누른다. 어머니의 신산辛酸했던 삶의 무게만큼 무거워 보였던 고깔모자를 벗겨드리지 못했음에 한이 서린다. 풍수지탄風樹之嘆으로 괴롭지만 갑이별을 해야 했던 어머니가 아버지를 재회하여 이승에서 못다 한 부부의 정을 나누시리라 스스로 위로하며 기도 속에서 어머니를 만난다.
이제 내 나이도 일흔 고개를 넘어 황량한 들판에 서 있다. 행여 어머니처럼 병원에서 고깔모자를 쓰고 합동으로 생일잔치를 하게 되어 자식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을까 두렵다.
나락을 거두어 황량한 들판은 이별의 슬픔을 서러워하는 마른 풀잎이 서로 몸을 비비고 떠나는 길을 묻는 잎새들의 소시락거리는 소리가 서글프다. (2018)
첫댓글 누름돌에 짓눌리는 그 기분 어찌 모를까요~~아휴 유구무언입니다. 저 역시 요즘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 생각하면 정말 지옥입니다. 우울해서 못견디게 생겨 뭔가에 미친듯이 집중해버린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돌아버릴 것 같으니까요
그래도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서 얼마나 뿌듯하시겠어요. 손주며느리와 증손들이 예뻐 자랑하시기 여념이 없으실 것 같아요~~ㅎ
돌아오는 어머니 생신날에는 많이많이 웃으시고 손주들과 덕담 많이 나누시와요 회장님^^
최아영 선생님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 돼요.
사람은 마음과 행동이 이율배반인 이기적인 존재인 것 같아요.
누군가를 웃기기 위해 쓴 삐에로의 모자처럼 어머니의 고깔모자에 가슴이 먹먹해옵니다.
주최측에서 좀 더 세심한 배려를 하면 좋겠는데 말이죠.
진한 감동이 밀려오는 글 잘 읽었습니다.
늙으면 철이 들어 부모에게 감사하고 은혜를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할 줄 알았는 데 나는 늙어서도 여전히 어머니에게 철이 덜든 아이였어요.
돌아가신 후에 후회하며 우는 청개구리처럼.
부끄럽네요.
합동 생신에 고깔모자를 쓰신 친정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요양병원에 계셨던 내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핑 돕니다.
좋은 글 감동으로 잘 읽었습니다.
부끄러운 글이지요.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반성문입니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기도 하고요.
저도 어제 영상통화로 엄마를 뵈었습니다.
부모도 만날 수없는 이 상황에 많은 자식들이 가슴으로 울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견디는 부모님 마음은 오죽 할까요.
차라리 밖을, 자식을 잊어버리시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안타까운 일이네요.
정이 많은 권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알 것 같아요.
야속한 날들이 어서 지나가길 바랄 수 밖에요.
어머님에 대한 선생님의 마음이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 마지막 문단의 울림이 긴 여운으로 남는 좋은 글, 잘 감상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선생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썼지만 불효를 저지른 죄책감이 더 커지네요.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어머니라는 존배는 이름만 들어도 울컥하게 하나봅니다.
절절한 회장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감동의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