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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 유년, 고향, 어머니, 자연, 겨울의 의식지향
―김명수(金明洙)의 시세계
이은봉(시인, 광주대 명예교수, 대전문학관장)
1.
김명수(金明洙)의 시는 낭만성을 토대로 한다. 그의 시의 낭만성 역시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는 마음에 기초해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는 마음은 그의 시에서 우선 여행에의 의지와 함께한다. 그가 “겨울이 그려놓은 수채화 속으로/나는 오늘도 여행을 떠난다(「겨울 수채화」)라고 했을 때의 여행 말이다. 그의 시와 함께하는 이러한 낭만성은 일단 공간여행이 아니라 시간여행의 모습을 취한다.
이때의 시간여행이 지향하는 곳은 미래의 세계이기보다는 과거의 세계일 때가 많다. 이처럼 과거의 세계를 향한 시간여행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그의 시에서 낭만성이다. 지금 이곳의 삶보다는 과거 저곳의 삶을 지향하는 것이 그의 시의 낭만성을 이루는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시에 드러나 있는 과거 저곳의 삶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을 갖고 있는가.
김명수의 시에서 과거라는 시간 및 공간이 이루는 형상은 먼저 전통 혹은 토속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통 혹은 토속의 세계는 그가 살았던 유년의 시간 및 공간과 무관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그는 오늘의 피곤하고 지친 삶, 곧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전통 혹은 토속의 세계를 꿈꾸는 것으로 위무한다. 이때의 꿈이 지향하는 세계는 미처 철들기 전 체험한 마을공동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가 꿈꾸는 행복한 세계가 사람들이 다 함께 어울려 살던 고향 마을에서의 유년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고추장떡’을 소재로 하고 있는 아래의 시 역시 유년시절 고향 마을에서나 체험했을 법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앞마당 툇마루 위에
가을햇살이 다소곳이 모여 있다
어머니의 고추장떡이 몸을 말리고
덤으로 안겨준 생일 떡 한 접시에
벌써 목이 멘다.
해마다 가을떡하는 날
왕 시루 속 위층은
누렁 방콩 듬뿍 덮은 엄마표 고추장떡
아래층은 왕 팥고물 숭숭 뿌린
생일 축하 멥쌀 찹쌀 혼합 떡이다
그곳엔 어머니의 모세혈관이 보인다
가을이 되면 목이 메는 추억
한 겨울 폭설에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리운 모태 온도
고추장떡 하는 날 내뿜던
시루 속 그 하얀 입김
가을하늘에 그린
바다보다 깊은 어머니 마음이다
―「고추장떡」 전문
이 시는 가을 어느 날이 생일인 시인의 유년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국민들의 대다수가 농촌공동체에서 살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추수가 끝나면 ‘가을떡’을 해 이웃들 및 귀신들과 나누어 먹는 풍속이 존재한 바 있다. 이 시는 그때의 풍속에서 기인한다. 이웃들과는 물론 방안의 성주님, 부엌의 조앙님, 토방의 디운귀신, 시렁의 제석님, 굴뚝의 굴대장군, 뒤꼍의 천륜대감, 대문간의 수문장과도 나누어 먹었던 것이 가을떡이다.
이처럼 이 시는 전통 혹은 토속의 가치라고 할 만한 지난 시절의 체험, 곧 ‘가을떡’과 관련된 체험에서 비롯되고 있다. 위의 시에 따르면 이때의 가을떡은 고추장떡이기도 하지만 생일 축하떡이기도 하다. “해마다 가을떡하는 날/왕 시루 속 위층은/누렁 방콩 듬뿍 덮은 엄마표 고추장떡/아래층은 왕 팥고물 숭숭 뿌린/생일 축하 멥쌀 찹쌀 혼합 떡이다”와 같은 구절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 시의 형상은 다름 아닌 이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어머니의 따듯한 사랑이 담뿍 들어 있는 고추장떡 및 생일 축하떡과 관련된 풍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시의 이러한 형상은 불현듯 독자 일반을 과거라는 시간 및 공간 속으로 데리고 간다. 과거라는 시간 및 공간 속에서 체험했음직한 일들은 그것도 일인 만큼 자잘한 사건, 곧 자잘한 이야기와 함께한다. 다음의 시 역시 어머니의 너그럽고 넉넉한 사랑과 함께하는 유년시절의 충만한 기억을 소환한다.
생선장사 합죽 할머니가 새벽같이
광천장에 누워 있는 생선들을
머리에 가득 이고 왔다
동해바다 동태 고등어
서해바다 오징어 조기 갈치 황석어
합죽 할머니 광주리 위에서
바람과 파도가 출렁이고 있었다
만년 단골손님 어머니는
싱싱하고 잘 생긴 것만 골라
쌀 한 됫박과 바꾸고
부엌 항아리 속에
소금 한 주먹씩 뿌리며
파도소리를 재운다
생일날, 제삿날, 사위 오는 날 올리는
귀한 상차림을 위해
합죽 할머니 광주리에선
밤새 만선으로 귀항한 어부들의 함성이
파도와 어우러진다
고등어 등 위에서 미끄러진 햇살이
만선을 축하하는 듯
서로 부둥켜안고 손을 흔든다
―「얼굴」 전문
위 시는 시인이 유년시절에 체험한 충만한 기억들을 담고 있다. 시인의 충만한 기억을 소환하는 것은 “고등어 등 위에서 미끄러진 햇살”의 이미지가 특별히 강렬했기 때문인 듯하다. “만선을 축하하는 듯/서로 부둥켜안고 손을 흔”들고 있던 것이 이때의 햇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이들 구절은 바로 앞의 “합죽 할머니 광주리에선/밤새 만선으로 귀항한 어부들의 함성이/파도와 어우러진다”라는 구절과 맞물려 있다.
시인의 기억을 소환하는 것과 관련해 이들 구절을 주목하는 까닭은 별로 복잡하지 않다. 앞의 구절인 “서로 부둥켜안고 손을 흔”드는 일이나, 뒤의 구절인 “어부들의 함성이/파도와 어우러”지는 일이 모두 하나됨의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됨의 정서, 곧 합일의 정서를 담고 있는 것은 이 시의 다른 구절에 의해서도 확인이 된다. “만년 단골손님 어머니”가 “생일날, 제삿날, 사위 오는 날” “귀한 상차림을 위해” “동해바다 동태 고등어/서해바다 오징어 조기 갈치 황석어” 등을 “쌀 한 됫박과 바꾸”는 것도 그 한 예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합죽 할머니의 마음과 어머니의 마음이 대립하거나 갈등하지 않고 합일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시간 및 공간으로의 회귀는 그의 다른 많은 시에 의해서도 확인이 된다. “수천도의 불가마 속에서/새롭게 태어난 자태”를 자랑하는 「백자 항아리」나 “냉이꽃과 제비꽃도/온 산천을 초록빛으로 울리는” 「옛터」 등의 시도 그 중요한 예이다. 이들 시에서도 징험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시간 및 공간으로의 회귀가 유년 혹은 추억의 세계로의 회귀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유년 혹은 추억의 세계로의 회귀가 언제나 고향 혹은 농촌공동체에의 그리움을 낳는다는 점이다.
2.
유년 혹은 추억의 세계로의 회귀는 고향 혹은 농촌공동체로의 그리움을 낳고, 고향 혹은 농촌공동체로의 그리움은 자연 혹은 전원에로의 그리움을 낳기 마련이다. 고향 혹은 농촌공동체, 자연 혹은 전원의 세계는 본래 유년의 세계, 원시의 세계이기도 하다. 시적 주체가 타자와 분리되기 이전의 온전한 삶, 곧 신화적 삶이 가능했던 공간 말이다.
이들 공간과 관련된 그리움, 곧 향수가 발생하는 것은 시인이 이들 공간과 분리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향수라고도 부르는 이때의 ‘그리움’은 본래 분리된 개체가 갖는 가장 원초적인 정서이다. 그리움은 본래 기다림과 짝을 이루는 정서이다. 이때의 그리움의 정서는 항상 분열된 개체에게 하나됨에의 정서, 합일에의 정서를 갖도록 한다. 세계와 미분화되어 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이 갖는 원초적 회귀의지이기도 하거니와, 김명수의 시에는 그것이 좀 더 특화된 모습으로 드러나 있어 주목이 된다.
그의 시에 고향 혹은 농촌공동체, 자연 혹은 전원으로의 정신지향이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나 있는 까닭은 비교적 단순하다. 그러한 세계가 무엇보다 고통의 세계가 아니라 행복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유년 혹은 추억, 고향 혹은 농촌공동체, 자연 혹은 전원의 공간이 인간이라는 주체에게 좀 더 원초적인 세계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이곳이야말로 에덴으로 상징되는 어머니 대지, 곧 어머니 자궁이기 때문이다. 에덴이고, 대지이고, 어머니이고, 자궁이라는 것은 그곳이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없는 곳이라는 것인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곳이 더욱 욕망을 자극시키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시인 김명수가 거듭해 유년 혹은 추억, 고향 혹은 농촌공동체, 자연 혹은 전원으로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 세계야말로 고통이 없는 공간, 행복이 보장되는 공간, 언제나 “마음이 설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인들이 다 통증에 민감하다고 하더라도 그가 이러한 파라다이스를 갖는 것은 자못 의미 있는 일이다. 실제로는 그것이 그가 꿈꾸는 유토피아에의 의지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오늘 따라 대숲에
달빛이 하얗게 내립니다
달빛의 속삭임에 마음이 설레입니다
전해준 귓속말에 가슴이 떨립니다
앞산에 달빛이 가득 합니다
호수에 빠진 달빛이
헤어날 줄 모릅니다
젊어서 내 사랑을 보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바람과 달빛이 씨름합니다
오랜만에 열여섯 열일곱입니다
호수에 비친 물그림자가 응원합니다
사랑에 흠뻑 취해 있습니다
―「대숲에 달빛이 내리면」 전문
이 시에는 “대숲”, “달빛”, “마음”, “가슴”, “앞산”, “호수”, “나”, “사랑”, “바람”, “물그림자” 등의 사물이 등장한다. 우선은 이들 사물이 아무런 갈등이나 대립 없이 잘 어울려 “사랑에 흠뻑 취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시에서는 예의 사물들과 시인 또한 하나가 되어 “헤어날 줄 모”른다. 더구나 이 시에서의 화자는 사춘기 이전의 “열여섯 열일곱” 살의 소년으로 등장한다. “오늘은 바람과 달빛이 씨름합니다”라는 구절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때의 씨름은 싸움이 아니라 일종의 놀이라고 해야 옳다.
이 시는 유년 혹은 추억의 공간을 수용하고 있기도 하지만 고향 혹은 농촌공동체, 자연 혹은 전원의 공간도 수용하고 있다. 이들 공간이 그에게는 파라다이스이고 유토피아라는 것은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없다.
파라다이스이고 유토피아라고 했지만 이들 공간이 미래의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이고 유년의 것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시인의 이상향이 미래의 공간에 있기보다는 과거의 공간, 곧 유년의 공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의 이 시집에서 미래의 공간이나 시간으로의 의지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겨울 시래기」이나 「찔레꽃 피면」 등의 시에서처럼 그는 언제나 과거의 어느 때에 경험했음직한 사건이나 사물을 노래한다. 바로 그럴 때 그가 훨씬 윤기 있는 시를 창작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고향집 추녀 끝에
시래기들이 햇살을 안고 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지금까지
몸은 뒤틀리고 누렇게 떠서
한 줄의 시가 되어 누워 있다
오늘 저녁은
갈치전골의 푸짐한 보료가 되어
한 바탕 끓고 나면
고춧가루가 온몸을 휘저어 물들이고
푹 삶아진 몸뚱어리가 일품이다
살아온 시간을 적당히 말려
파 마늘 양념 섞인
펄펄 끓는 냄비 속에 토해내면
여름가을겨울 한 줄로 엮은
또 한 편의 시가
추녀 끝에서 입맛을 다신다
―「겨울 시래기」 전문
이 시의 서두에는 “고향집 추녀 끝”의 “시래기들이 햇살을 안고 있”는 풍경이 그려져 있다. 시인은 곧이어 “가을걷이가 끝나고 지금까지/몸은 뒤틀리고 누렇게 떠” 있는 시래기를 “한 줄의 시”라고 비유한다. 나아가 그는 “갈치전골의 푸짐한 보료가 되어/한 바탕 끓고” 있는 시래기를 두고 일품이라고 명명한다. 또한 그는 “파 마늘 양념 섞”여 “펄펄 끓는 냄비 속에 토해내”진 시래기를 한 편의 시라고 받아들인다.
이러한 내용을 갖고 있는 시래기 역시 ‘유년 혹은 추억’의 것이고, ‘고향 혹은 농촌공동체’의 것이고, ‘자연 혹은 전원‘의 것이다. 따라서 이들 세계의 것인 시래기를 두고는 어머니 대지의 것이라고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시래기가 어머니 대지의 것이라는 견해는 그것이 근원적 자연 생태의 것이라는 견해와 다르지 않다.
시래기가 근원적 자연 생태의 것이라는 얘기는 그것이 이미 오래 전 떠나온 유년세계의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논의와 관련해서는 “오월 어느 날/찔레 향기를 이고 오”신 분, “새벽 별빛을 이고/밥을 지으시고/찔레향기를 따라/밭에 나가”시는 분이 어머니라는 것부터 기억해야 한다. “노오란 꽃술 위/바람으로 앉아 있”는 것이 다름 아닌 “고향의 그 텃밭/가만가만 내리는 별빛 속/어머니의 고운 발자국”(「찔레꽃 피면」)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유년 혹은 추억’, ‘고향 혹은 농촌공동체’, ‘자연 혹은 전원’의 세계는 어머니 대지의 세계, 곧 어머니 자궁의 세계이기도 하다. 「모시옷 사랑」, 「선수암 가는 길」, 「등불」 등의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저 자신의 시를 통해 지속적으로 어머니에의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다. 어머니에의 그리움도 실제로는 대지 자연에의 그리움, 곧 자궁 요람에의 그리움과 다르지 않다. “밤새 두레질하는 논에/밤참을 이고 가는 엄마”(「등불」)에의 그리움 말이다. 물론 이는 “한 손에 등불을 들고/기우뚱하는 논길을/졸랑졸랑 따라”(「등불」) 가는 엄마에의 그리움과 다르지 않다. 이때의 그리움은 “바람에 실려” 오는 “세모시 하얀 옷/곱게 풀 먹인 모시적삼” 속으로 “숨겨진 어머니의 향기”(「모시옷 사랑」)에의 그리움이기도 하다.
3.
김명수의 시에는 이처럼 대지 자연에의 그리움, 자궁 요람에의 그리움이 어머니에의 그리움으로 변이되어 나타난다. 이와 관련해 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시에서 어머니에의 그리움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삶, 즉 스스로 그러한 삶에 대한 그리움으로 전이되어 나타나기도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삶, 즉 스스로 그러한 삶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가리킨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물론 이때의 자연과 함께하는 삶, 즉 스스로 그러한 삶은 대립하고 갈등하는 삶이 아니라 조화롭고 균형 있는 삶, 일치하고 합일하는 삶을 가리킨다. 자신의 시에서 그가 말하는 “창문을 열면/산과 들이 한꺼번에/방안으로 들어”와 “풀벌레와 새들까지 한 식구”(「창문을 열며」)가 되는 삶 말이다. 이러한 뜻에서의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시인이 자연의 사물 및 존재를 시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그렇다. “가을날 흔들리면서 떨어지는 나뭇잎에”서 “시 읋는 소리”(「11월엔 바람소리도 시를 쓴다」)를 듣기도 하는 것이 그이다. 심지어는 “가을바람을 붙잡아/시 한 편 쓰게”하는 것이, “노란 은행잎 위에/햇살보다 더 따뜻한 시/바람보다 더 정겨운 시/별빛보다 더 그리운 시”(「나뭇잎 시」)를 쓰게 하는 것이 그이기도 하다.
가을날 흔들리면서 떨어지는 나뭇잎에선
시 읊는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귀대고 들어보면
바람이 한 묶음 들어 있는 것 같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햇살이 빼곡히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은행잎 위엔 은행잎만큼
단풍잎 위엔 단풍잎만큼
그리고 참나무 잎엔 참나무 잎만큼
오늘은 나뭇잎 위에 앉은 바람이
자꾸 시 읊는 소리를 내고 있다
나뭇잎이 노랗게 빨갛게 물드는 소리
나뭇잎끼리 속살 부딪는 소리
나뭇잎끼리 깊은 사랑에 빠지는 소리
아 그래 이제 알았다
너희들도 11월엔 시를 쓰는구나
흔들리는 만큼
물드는 만큼
서로 사랑하는 만큼
시를 읊는구나
시를 쓰는 11월의 바람소리
11월의 바람소리는 그렇게 시를 쓰는구나
―「11월엔 바람소리도 시를 쓴다」 전문
이 시에 의하면 시인에게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는 “시 읊는 소리”이다. 뿐만 아니라 “바람이 한 묶음 들어 있는 것”이 “가을날 흔들리면서 떨어지는 나뭇잎”이기도 하다. 시인이 듣기에는 “나뭇잎 위에 앉은 바람이/자꾸 시 읊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나뭇잎이 노랗게 빨갛게 물드는 소리/나뭇잎끼리 속살 부딪는 소리/나뭇잎끼리 깊은 사랑에 빠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이 시에서의 시인이다.
이처럼 그는 자연과 혼연일체를 이루는 마음, 자연과 깊이 동화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가 자연과 혼연일체를 이루는 마음, 자연과 깊이 동화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스스로 그러한 마음, 다시 말해 꽃과 나무의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꽃과 나무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순결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거니와, 이는 또한 그가 시원의 마음, 곧 동심을 잃지 않고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시를 인용해 표현하면 이는 그가 “하얀 눈송이가 내리는 날/너의 가슴 속으로/들어가 보고 싶다”고 했을 때의 너의 세계, 곧 “아무도 그려 보지 못한/순백의 세계”(「겨울 동화」)를 갖고 있다는 것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순백의 세계”는 그의 시에 드러나 있는 “참나무 가지 위에/산과 호수 위에/내 가슴속”(「12월, 다시 첫눈」)에 내리는 첫눈의 세계와도 다르지 않다. 이처럼 그의 시에서는 순백의 세계에의 의지가 “첫눈”의 세계에의 의지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이때의 첫눈의 세계가 순수하고 무구한 시원의 세계, 동심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은 명확하다. 그의 시에서 첫눈의 세계가 “그냥 마음이 설레”는 세계, “누군가를 만날 것도 같”은 세계, “소원이 이루어질 것도 같”은 세계이기도 한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김명수의 시에서 자연 및 사물의 존재는 그 자신과 크게 변별되어 있지 않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사물 및 자연은 저 자신과 항상 착종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는 다음의 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올해도 첫눈이 내렸습니다
그냥 마음이 설레입니다
누군가를 만날 것도 같고
소원이 이루어질 것도 같습니다
세상은 하얀 도화지입니다
첫 번째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이 눈 속에 묻혀
두 번째 그림을 그립니다
이번엔 시 한 편 썼습니다
시 속에 사랑도 담았습니다
사랑 속에 그리움도 담았습니다
그냥 마음이 아려옵니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첫눈을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인다. 첫눈이라는 자연의 사물을 그가 그 자신과 동일한 인격체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심지어 여기서 첫눈이 내린 세상을 “하얀 도화지”라고까지 인식한다. 자연의 현존을 자아의 현존으로 받아들여 그의 마음 속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는 것이 그이다. 첫눈이라는 “하얀 도화지” 위에 쓴 “시 속에 사랑도 담”고, “사랑 속에 그리움도 담”는 것이 그라는 뜻이다. 이는 이미 그에게 익숙해져 있는 의인관적(擬人觀的) 세계관의 표현이거니와, 이러한 점은 그의 다른 시의 “겨울비가 유리창에/한 줄의 시로 다가온다”(「불빛」)와 같은 구절에 의해서도 확인이 된다.
김명수의 시에는 이처럼 자연의 사물이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참여해 저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가 보기에는 “오늘 따라 수줍어” 하는 것이 달빛이고, 바람이 앉아 “박자를 맞”(「가을밤」)추는 것이 달빛이다. “저녁엔 달과 별”까지 부르는 등 “모두 함께 모여/다정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꿈”(「창문을 열며」)꾸는 것이 시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냥 마음이 아려”오는 것을 느낀다. “그냥 마음이 아려”온다는 것은 그에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은 상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4.
시인 김명수가 지니고 있는 상처는 가을이나 겨울의 이미지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의 이 시집에는 봄이나 여름을 소재로 한 시보다 가을이나 겨울을 소재로 한 시가 훨씬 더 많다. 가을이나 겨울을 소재로 한 그의 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깊이 연루되어 있지 않은가 싶다. 가을이나 겨울은 조락의 계절이기도 하거니와, 이들 계절을 소재한 시에서는 진한 상실의 냄새가 난다. “아주 작은 바람에도/유난히 흔들리는 망초꽃대를 보고/이별의 때가 왔음을 알았”다고 노래하는 것이 그이다. “이별과 그리움을/반복하면서도/다시 또 이별을 하고/그리워”(「망초꽃」)하는 것이 그라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실제로는 시인이 매우 고독한 사람, 외로움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위틈에 외롭게 뿌리 내린” “소나무 곁에 앉”아 “외롭지만 외롭지 않게/쓸쓸하지만 품위 있게/어둠 속을 홀로/모진 바람을 견디고 있”(「고독」)는 것이 그라는 얘기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것이 그라는 것인데, 이를 두고 그는 “살기 위한 최소한의 투쟁”이라고 말한다. “마당가 마른 나뭇가지 위 새들이”나 “친구하자고 부”(「혼밥」)르는 것이 지금의 그라는 것이다.
물론 예의 “마당가 마른 나뭇가지 위 새들이”라는 이미지가 내포하는 계절은 봄이나 여름보다는 가을이나 겨울이기 쉽다, 이들 계절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그의 시 중에서도 양적이나 내용적으로 좀 더 주목이 되는 것은 겨울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시들이다. 「황태덕장」, 「겨울 금강」, 「불빛」, 「겨울 수채화」, 「겨울바다에 갔었네·1」, 「겨울산책」, 「아픈 겨울」 등의 시가 바로 그 예이다.
이들 시 중에서도 좀 더 확실한 상실의 냄새를 갖고 있는 것은 「아픈 겨울」이다. 이 시가 “올 겨울엔/유난히 아픈 시간들이 많았어/사랑하는 사람이 갔어/내 앞에 눈물만 가득 쏟아 놓고” 등의 구절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 나오는 “사랑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시인의 아내를 가리킨다. 시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저승으로 보낸 것이 겨울이기 때문일까. 그의 시 중에는 특별히 겨울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 많다. ‘겨울바다에 갔었네’라는 제목으로 4편이나 연작시가 창작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한다. 그가 보기에 “겨울바다는 슬픔을 파도에 녹”일 수 있는 곳이고, 파도가 “마음속의 아픔도 삼”(「겨울바다에 갔었네·1」)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들 예로부터 알 수 있듯이 그의 시에 등장하는 겨울은 늘 인생의 겨울을 상징한다. 이처럼 그의 시에는 인생의 겨울과 자연의 겨울이 겹쳐진 채로 드러나고는 한다.
그의 시에는 또 하나의 이별의 대상이 등장한다. 어머니와의 이별이 그것이다. 어머니와의 이별도 겨울에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물론 그의 시에서 어머니는 이별의 대상만이 아니라 그리움의 대상으로도 등장한다. “서른다섯 청상으로/세상 슬픔 모두 담아둔”(「모시옷 사랑」) 것이 그의 어머니이거니와, 어머니와의 이별 또한 겨울에 이루어지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의 시에는 이처럼 두 여자에 대한 그리움이 드러나 있다. 이때의 두 여자는 말할 것도 없이 작고한 어머니와 아내를 가리킨다. 물론 그의 시에는 오래 전 작고한 어머니보다 얼마 전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렇다. “가슴에 별 하나를 묻었다”(「별 하나」)라고 할 때의 ‘별’은 사별한 아내를 가리킨다. 아직도 그에게는 “잠을 못 잔다 하니/팔 하나를 주욱 펴주고/여기 베고 자라”(「불면증」)고 하는 것이 사별한 아내이다.
이상의 논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시에는 이들 두 여자에 대한 그리움이 충만하다. 그리움이 충만하다는 것은 사랑이 충만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 충만한 그리움만큼 충만한 사랑을 갖고 있는 것이 그이다. “나뭇가지 위에 수놓은 달빛/달빛 속에 숨은 얼굴/그 얼굴 보”(「어떤 사랑」)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라는 것이다. 물론 그는 자신이 “밤 새워 흘린 눈물 속에” “사랑이 들어 있다”(「아, 내 사랑」)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편으로는 “어느덧 상처가 아물고 있네요” “이젠 사랑할래요/그냥 사랑하면서 살래요”(「이제 사랑할 수 있어요」)라고 노래하기도 하는 것이 그이다. 그가 어서 빨리 “파도에 부딪혀 올라온 햇살이/하얀 포말을 그린다/지난겨울 내내 꿈을 키운 봄빛/야훼나무 잎새 위에서/더욱 싱그럽다”(「장사도에서」)라는 자신의 시 구절처럼 나날의 삶을 긍정적으로 노래할 수 있기를 빈다.(2020. 1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