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명은 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에 있으며(요6:63), 사람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영, 즉 예수님의 영인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거하시는 영의 사람이 있고 성령께서 거하시지 않는 육의 사람이 있습니다(롬8:9). 이 가운데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영의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으로서 영생을 얻었다고 말합니다(요5:24).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 이 영생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1~12).
예수님은 이 영생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로 비유하셨습니다. 포도나무는 예수님을 비유합니다. 가지는 사람에 대한 비유로서 나무와 떨어져서 스스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 가지는 나무에 접붙여져야만 나무로부터 공급되는 생명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영생이 있으므로, 사람이라는 가지가 예수님이라는 포도나무에 접붙여지면 그 가지는 그때부터 포도나무와 생명을 함께하므로 포도나무의 생명인 영생을 가지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농부는 접붙인 부위를 테이프로 동여매줍니다. 테이프로 단단히 동여매주지 않으면 가지가 나무에 붙지 못하므로 말라 죽습니다. 교회가 이 테이프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테이프로 동여매졌다고 모든 가지가 다 사는 것은 아닙니다. 테이프로 동여매져 있어도 나무에 밀착되지 않은 가지는 죽습니다. 즉 교회에 다닌다고 다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영생을 얻은 증거는 나무에 붙은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처럼 그 사람의 삶 속에서 맺는 열매로 나타납니다(갈5:22~23). 천국은 이 좋은 열매들이 거두어지는 하늘의 곳간입니다(마3:12). 따라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 열매로 자신이 예수님께 접붙여져 생명을 얻은 가지인지 아닌지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