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돈암서원
돈암서원(遯巖書院)은 1634년(인조 12)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장생
(金長生)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1660년(현종 1)에 ‘돈암(遯巖)’이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승격하였으며, 1658년(효종 9)에 김집(金集)과 1688년(숙종 14)에 송준길
(宋浚吉), 1695년에 송시열(宋時烈)을 각각 추가 배향하였다.
산앙루(山仰樓)
외삼문인 입덕문(入德門)
응도당(凝道堂. 보물 제1569호)은 유생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1880년(고종 17년)
서원을 현재의 위치로 옮길 때 옛터에 남아 있던 것을 1971년에 옮겨서 지었다.
기둥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주초석 안에 소금을 넣어 흰색으로 보인다.
풍판에 덧대어 눈썹처마를 달았다.
양성당(養性堂)과 서재(精義齋), 동재(居敬齋)
양성당(養性堂)은 사계 김장생선생 생전에 강학하던
강당인데, 서원을 옮겨 지을 때 대강당인 응도당을
옮겨오지 못하고 양성당을 옮겨서 강당으로 활용하였다.
양성당과 원정비(사계 김장생선생의 문하생들이 돈암서원을 세운
사연과 사계와 그의 아들인 신독재 김집부자의 학문과 업적을 적은 비)
서재(西齋)와 동재(東齋)
서재인 정의재(精義齋)
동재인 거경재(居敬齋)
사마재(司馬齋) 담장
사계진서, 신독재 전서, 황강실기 등 목판이 보관되어있는
장판각(藏板閣)은 현재 1,841판이 보관되고 있다.
정회당(靜會堂)은 사계 김장생선생의 부친인 황강공께서
강학하던 건물로 대둔산자락의 고운사터에서 1954년에 옮겨왔다.
양성당
사마재 입구
제관들이 제향에 관한 일을 보던 사마재(司馬齋)
숭례사로 들어가는 내삼문과 꽃담장에는 김장생선생과
그 후손들의 예학정신을 보여주는 12글자가 새겨져 있다.
지부해함(地負海涵).. 땅이 온갖 것을 다 실어주고
바다가 모든 물을 다 받아주듯 모든 것을 포용하라.
박문약례(博文約禮)..지식은 넓히고, 행동은 예의에 맞게 하라.
서일화풍(瑞日和風).. 상서로운 날에 온화한 바람이 분다는 뜻.
항상 웃는 얼굴과 평화로운 마음으로 남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라.
돈암서원의 사우(祠宇)인 숭례사(崇禮祠)에는 김장생을
중심으로 김집·송준길·송시열이 배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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