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질의 봄
곽 흥 렬
우륵박물관 가는 초입에서 길이 갈라졌다. 잠시 후, 약간의 경사로를 올라서자 커다란 못이 눈앞에 펼쳐진다. 공식적인 명칭은 중화저수지이지만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낫질못’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고령에 살면서 이 못을 모른다면 그를 두고서 고령 사람이라고 할 수 없으리라. 그만큼 고령에서는 가장 크고 이름난 저수지다. 시퍼런 물빛이 함부로 접근을 허락하지 않을 깊이임을 가늠케 한다. 수면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으로 보아 조금씩 봄이 찾아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행정구역상으로 중화리와 저전리, 내상리 그리고 신리를 아울러 속칭 ‘낫질’이라고 부른다. 중학생 시절, 처음 낫질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낫으로 풀이나 나무를 베는 일을 뜻하는 그 낫질을 떠올렸다. 들이 넓다 보니 자연 낫질을 잘하는 농군들이 많아 ‘낫질’이라는 이름이 붙은 줄로 여겼다.
나중에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그게 아니었다. ‘낫질’에서의 ‘나’는 본래 ‘비단 라(羅)’ 자인데 두음법칙현상에 의해 ‘라’가 ‘나’로 바뀌었고, ‘질’은 ‘길’이 구개음화현상을 일으켜 그리 변한 것이며, ‘나’와 ‘길’이 결합하면서 중간에 사이시옷이 들어가 ‘낫질’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낫질은 ‘비단길’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름의 유래를 더듬어 가노라니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진다. 낫질을 이루고 있는 들판이 아주 넓고 평평하여 멀리서 바라다보면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것 같아 그런 이름이 붙었는가 보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지난날 이곳에 누에를 먹이기 위해 뽕나무가 널리 재배되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비단이 많이 생산되어 외지로 팔려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설에는 신라 진흥왕이 대가야를 정벌한 뒤 상황을 살피기 위해 이 마을에 ‘납시었다’고 하여 ‘납실’로 불리던 것이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려나 참 희한하고 재미난 이름이구나 싶다.
언덕길을 돌아서 내려온다. 후사경에 비친 못의 물빛이 비단처럼 아름답다. ‘중화저수지’라는 곰팡내 나는 명칭보다는 ‘낫질못’이 훨씬 정감 어린 이름이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한다.
머지않아 봄이 완연해지면, 못은 물 캔버스에다 둘레의 야산에서 자라고 있는 연분홍 진달래꽃으로 환상적인 풍경화 한 폭을 그려낼 것이리라. 그 장관을 눈요기하러 갈 꿈을 꾸며, 어서 시절이 무르익기를 기다린다.
<'대가야신문' 2014년 3월 17일>
첫댓글 지명의 유래를 들어보면 의미도 다가오고 재미도 좋습니다. 사투리에 적용되는 구개음화는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참지름 짜러 가신다는 할머니 말씀이 아련합니다.
지명 속울 파고들면 구수한 숭늉을 마시는 듯합니다.
옛사람들의 삶이 그려지니 더욱더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