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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 선물이 아릅답습니다 .....꽃다발처럼 아름다운 글 쓰라고.
아름다운 야망/한국산문 49회 수필공모 당선작 金秀映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화창한 날씨가 있는가 하면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며 태풍이 불고 토네이도가 불어 가산과 인명피해를 가져올 때가 있다. 그 누구도 날씨를 내다 볼 수가 없다. 일기예보를 통해서만 날씨를 알 뿐 인간의 예감만으로는 알기가 어렵다. 우리 인생살이도 언제 어떻게 불행이나 불운이 닥칠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점쟁이가 생겨나고 사주팔자를 보는 관상쟁이가 많이 생긴 것 보면 인간은 한치의 앞을 내다 볼 수 없어서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서 궁여지책으로 점쟁이를 찾게 되고 관상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사람뿐만 아니라 국가에도 어떤 불행이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아이티의 지진 재난처럼 자연재해로 말미암은 갑작스러운 불행이 닥칠 수도 있고 미국의 9.11 사태처럼 테러의 공격으로 나라가 위태롭게 되고 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한다. 특별히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말할 나위도 없이 엄청난 피해가 국민과 국가에 재난으로 다가온다 일찍 인도의 시성 타 골이 읊었던 '동방의 등불'인 고요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에도 청천벽력과도 같은 6.25 전쟁이 발발해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가져오고 삼천리 강산은 하루 아침에 초토화되고 말았다. 내 고향 안동에도 공산군이 침입하여 우리 가족은 피난길에 올랐고 경주까지 남하하여 피난생활하다가 겨우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참혹한 전쟁의 앙상한 잔상만이 남아 있었다. 그 누가 꿈엔들 상상이라도 했던 일인가! 국가나 개인이든 이러한 불행이 닥쳤을 때 현명하고 지혜롭게 어떻게 잘 대처해 나가며 어려운 고난의 시기를 잘 극복하고 견디어 내어 좌절에서 승리로 이끌어 가는 삶을 살 것인가 우리는 한 번쯤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다. 우리에게 본이 된 많은 사람의 자서전이나 그들의 삶을 통하여 많은 교훈을 얻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지나간 삶을 돌이켜 보면 오늘날의 나를 있게 만든 허다한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 금할 길 없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을 통하여 많은 감화를 받아 내 인격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자라면서 두 오라버니를 통하여 내가 변화되기 시작했으며 대학교 다닐 때는 스승님이신 피천득 교수님을 통하여 많은 영향을 받아 삶이 변화해 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특히 내 신앙의 본보기가 되어주신 우리나라 독립유공자 제34번 째인 스코필드 박사님을 만난 인연은 나에게 참 소중하고 귀한 일아라 그분을 잊을 수가 없다. 나에게 신앙의 눈을 뜨게 해주셔서 오늘날 내가 목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서도 내가 병으로 좌절했을 때 내 곁에서 묵묵히 직분에 충실하면서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새 희망을 찾게해 준 Dr. 최를 나는 잊을수가 없다. 문둥이 시인 한하운은 문둥병을 천형이라 하였지만, 발가락 하나 손가락 하나 떨어져 나가도 절망하지 않고 시를 읊었던 불굴의 시인이었다. 나는 그래도 한하운 시인보다는 낫지 않는가! 그는 불치병을 앎으면서 죽음에 초연한 시인이 아니었던가! 나는 하루아침에 내 꿈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허탈감 속에서 병원 침실에서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슬픔이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세상은 암담하게만 보일 뿐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파도가 넘실대는 푸른 송도 앞바다가 내 시야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도 내 눈동자의 조리개는 그 영상을 담을 수가 없었다. 그 아름다운 꽃들의 향기는 봄바람을 타고 내 병실 안에 향수처럼 번져 와도 내 후각기능은 마비되어 있었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는 식각장애인이 되어 있었다. 파도소리 바람 소리 새 소리에도 마음이 감동이 일지 않고 사막처럼 삭막한 메마른 심정이 되고 말았다. 기쁨이 사라진 삶 속에는 슬픔과 눈물만이 얼룩져 나를 비통하게 만들었고 나에겐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도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생에 대한 애착이 집요하게 나를 휘 여 잡았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열심히 투병생활을 한 결과 3년 만에 퇴원할 수가 있었다. 미국유학도 교편생활도 주치의사의 만류로 포기하고 나는 보건사회부에 파견 나온 세계보건기구 WHO 고문관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세계보건기구에 보내는 모든 영문서류를 내가 맡아서 작성 영어로 번역해서 보사부 장관 이름으로 발송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보사부 방역과장이던 Dr. 최께서는 큰 오라버니 친구로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보사부에 의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내 영어실력이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나를 아껴주고 동생처럼 사랑해 주었다. 나는 오라버니처럼 그를 따르고 존경했다. 그는 늘 슈바이처 박사가 위대한 인물이라며 그를 존경하고 그의 삶에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다. 친구 의사들은 졸업 후 대개 개업을 하거나 학교에 남았지만 Dr. 최는 박봉의 월급쟁이 공무원의 길을 택했다. 그는 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을 너무 많이 닮아 나는 Dr. 케네디란 별명을 지어 주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을 때 슬퍼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나라에 갑자기 콜레라가 창궐하여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확산일로에 있을 떼 Dr. 최는 콜레라 발생지역인 마산에 내려가 최 일선에서 방역대책을 진두지휘 하면서 뜬 눈으로 밤을 며칠 계속 지새우다 과로로 그만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각혈을 하다가 핏덩어리가 기도를 막아 숨이 막혀 그만 질식사하고 말았다. 평상시 아주 건강하게 보였던 그가 아무도 모르게 지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가 죽은 다음 모두가 알게 되었다. 자기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그에게 더욱 주위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눈시울을 적셨다. 나는 Dr. 최의 죽음을 통하여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비관 자였었고 꿈을 잃은 자였었는데....., 나는 나의 옛 허물을 벗으면서 서서히 탈바꿈하고 있었다. 짧게 굵게 멋있게 살다가 간 아름답고 고귀한 삶의 사나이! 그 이름 Dr 최! 그는 나에게 귀중한 꿈을 심어주고 간 사나이! 대한민국의 공중보건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순직한 그의 이름 석 자 영원히 내 가슴에 별처럼 빛나리라! 그는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국민의 건강을 위해 일하다가 순직했는데 나는 내 병을 비관만 하고 자학을 그동안 해 왔으니 우리 두 사람은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각각 정반대의 명암의 길을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슬픔에서 나 자신을 추스르고 개구리가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기지개를 켜며 인생의 새봄을 맞이할 수가 있었다. Dr. 최가 돌아가신 후 나는 내가 입원하고 있었던 송도에 있는 적십자 요양소를 다시 찾아갔다. 봄철이라 만발한 철쭉꽃이 나를 반기는 듯 함빡 웃음으로 활짝 피어서 하늘을 향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나무들은 여전히 푸르르 청청 지조를 자랑하며 이곳저곳에 우람드리 잘 자라고 있었다. 송도 앞바다는 신선한 해초 냄새로 싱그러이 나의 코를 간지럽게하고 있었다. 일렁이는 파도소리에 장 꼭 도의 소라 귀가 되어 해 조음을 유유히 들을 수가 있었다. 갈매기떼들은 줄지어 날아다니며 푸른 창공을 가슴에 품고 자유자재로 곡예를 하면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는 뜨거운 감회로 눈물이 주르르 내 뺨 위로 흘러내렸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은 체 그곳에 한참을 머물러 서 있었다. 저녁노을이 빨갛게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면서 Dr. 최의 못다 핀 청춘의 꿈이 그 곳에서 활짝 핀 꽃으로 눈부시게 떠올랐다.
인생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에 가치관을 정립할수는 없는가 봅니다 dr.최님의 짧지만 숭고한 삶에서 우리는 그 가치관을 세삼 존경으로 맞아 봅니다 그런 최님의 인생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 모양을 돌보시는 김수영 선생님의 재탄생하는 모습도 보통있는 일이 아닌듯 합니다 꽃물결 일렁이고 라이락 향기 진동하는 5월이 시작됩니다 김선생님 한국 산문문학 수필 당선을 축하 드립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인간관계의 소중한 글도 잘읽고 감명 한자락 깔아 봅니다 날로 발전 하시는 김선생님의 문운도 늘 아름다운 경지로 달려 가시길 빌고 바램도 합니다 10.05.01 07:41
감사합니다. 격려의 말씀이 큰 힘이 됩니다. 문학하시는 선생님을 알게 된 것 큰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엣세이플러스'월간지가 5월호 부터 순 한국식 이름으로 '한국산문'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05.01 08:22
시인님의 인생에 변화를 불러 일으키게 하는 최박사님과 스코필드 박사님 그리고 부모님과 오빠 두 분이 많은 영향을 끼쳤군요 피천득 시인님을 만나게 된 것도 그저 주어진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수필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 드리며 경사 축하방에도 소개를 올렸습니다 10.05.01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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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교수님은 서울대 사대 영문과 주임교수로 계셨어요. 저를 무척사랑해 주셔서 교수님 밑에 조교로 대학교에서 사사받다가 미국유학을 주선해 주셨는데 건강 진단에서 병이 걸려 모든 것을 다 포기하는 아픔을 겪었던 쓰라린 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인생을 관조하는 마음과 여유가 생기고 특히 글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스코필드 박사님은 참 고맙고
저에게 신앙을 키워 준 분이라 잊을 수가 없고 두 오라버니도 저의 존경의 대상이 되시는 분들이고 모두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선생님을 비롯 몇분을 알게 된 것 모두가 저에겐 축복이지요. 감사합니다. 10.05.02 01:13 김수영 작가님의 담백한 글이 모두의 마음을 열어 공감하는 삶의 진솔한 느낌이 됩니다..서로에게 영향되어지며 생의 축복이 되고 감명으로 본보기가 되어지는 은혜 충만한 관계의 귀한 인연을 읽어봅니다.우리 카페에 자랑스러운 일원이 되어주심에 더없는 기쁨입니다.일상의 사소함까지 감사와 지혜로 저장하여 빚는 글이 앞으로도 많은 분들께 귀한 선물이 되길 희망 둡니다 10.05.0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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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길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과분한 칭찬을 해 주시니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두 들 문학하시는 분들이라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앞으로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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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금년 2월에 당선이 되었는데 '엣세이플러스' 월간지가 잡지 이름을 순 한국식 이름 '한국산문'으로 5월호 부터 바꾸게 되어 새 이름 '한국산문'에 저의 글을 올리겠다고 해서 발표가 늦었습니다.
황혼 인생의 최고의 해를 맞이하심을 축하드리고 더더욱 좋은 글쓰셔서 많은 독자들에게 교감이 가셨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서울대카페와 뉴욕카페가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두 카페의 카페지기님으로 계셨기 때문에 양박님께 특히 감사드립니다.
수필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선배님께서 어려우셨던 시절에 만난 존경하는 Dr. 최의 죽음을 통해 새삶을 추리 실 수 있었던 것도 신의 뜻이었겠지요. 그리고 이제 이렇게 건강하게 신실한 삶을 살고계신 선배님께 사랑과 존경을 보내며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동문님이 늘 옆에 계셔서 격려해 주심으로 용기를 얻어 글을 쓰게 되어 동문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글 쓰도록 힘써 노력하겠습니다. 은혜 갚는 일은 좋은 글 많이 쓰는 일이라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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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아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늘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