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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樂民(장달수)
淸山 金善臣 編纂 頭流全志 의 구성 내용과 특징*
全 丙 哲**
1)
1. 문제 제기
2. 頭流志 와 頭流全志 의 내용
비교를 통한 정본 확정
3. 頭流全志 의 구성 체계와 주요
내용
1) 유기체적 국토관에 입각한 지리산의
자연지리 인식
2) 지리산권의 지역 설정과 명승지 선별
3) 지리산권의 문화유산 집대성
4. 맺음말
국 문 초 록
조선시대에 어떤 특정한 산에 관해 문학・역사・지리 등 종합적인 체계성
을 가지고 편찬된 山誌는 현재까지 조사한 바로는 3종이 있을 뿐이다. 지리
산은 金善臣(1775~?)의 頭流全志 가 있으며, 주왕산은 徐元模(1787~
1858)의 周王山志 가 있다. 그리고 청량산에 관해서는 李世澤(1716~
1777)의 淸凉志 가 있다.
이 글은 조선시대에 편찬된 산지가 지니는 중요한 의미와 그것에 상응하
는 연구 진행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작성하게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두류
전지 를 중심으로 구성 체계와 주요 내용에 관해 살펴본 것이다. 현재 두
류전지 는 국립중앙도서관본(위창古2706-1)과 고려대학교 도서관본(대학
** 이 논문은 2007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KRF-2007-361-AM0015)
**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HK교수, wooz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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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B10 A7)의 2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두 판본 모두 필사본인 점으
로 볼 때 간행된 적이 없다고 추정된다.
두류전지 상권 첫 면에 ‘崇陽金善臣輯’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므로 편찬
자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서문이나 발문이 수록되어 있지 않아 편찬 동
기와 경위 등에 관한 자세한 사실을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
으로 볼 때, 김선신이 1823년 무렵 2년간 嶺南 召村驛 察訪으로 재직할 당
시 편찬했다고 판단된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는 두류전지 와 달리 頭流志 (대학원 B10 A50)
라는 이름의 산지가 소장되어 있는데, 두류전지 의 초고본이라고 판단된
다. 그 근거는 첫째, 두류지 에서 수정한 내용이 두류전지 에 그대로 반
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째, ‘頭流全志’라는 편제는 ‘頭流志’의 초고본을
배경으로 하여 성립될 수 있는 이름이다. 두류지 의 제목이 ‘두류산에 관
한 기록’이라는 뜻을 가진다면, 두류전지 의 이름은 ‘두류산에 관한 완전
한 기록’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두류전지 는 두류지 의 거의 모든 내용이
수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서 보완되고 확장되어 더 많은 내용이 풍부
하게 수록되어 있다.
두류전지 의 구성 체계는 크게 상권과 하권으로 구분되어 있다. 상권은
첫 부분에 <頭流祖宗身子孫族黨摠略之圖>와 <頭流身圖>라는 2편의 지
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第一 <頭流祖宗譜>, 第二 <頭流身記>, 第三
<頭流子孫錄>, 第四 <頭流族黨攷>, 第五 <流水經> 등의 내용을 총괄하는
지도이다. 그 뒷부분은 第六 <麗山郡邑誌>, 第七 <選勝編>, 第八 <祠院樓
亭略>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하권에는 第九 <梵天摠表>, 第十 <古蹟箚>,
第十一 <貼山詩話>, 第十二 <補塞遺脫章>, 第十三 <頭流雜識> 등이 구
성되어 있다. 마지막 부분에 <環山州縣坊里圖>라는 제목의 지도는 第六
<麗山郡邑誌>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처럼 두류전지 는 상권의 8개와 하권의 5개를 합해 총 13개의 주제로
편성되어 있다. 이 13개의 주제를 유형별로 나누어 본다면, 第一~第五는
자연지리에 관한 내용이고 第六~第七은 지리산권의 지역적 범위와 명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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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서술이며, 第八~第十三은 문화유산에 관한 기록이다.
두류전지 는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지리산의 자연지리・군현・누정・고
적・문학작품・일화 등을 총망라했다. 특히 지리산을 한 인격체에 비견하여
<頭流祖宗譜>・<頭流身記>・<頭流子孫錄>・<頭流族黨攷> 등의 독특한 주
제를 통해 우리나라 국토에서 가지는 지리적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그리고 금강산을 才士에 비유하고 지리산을 德老에 빗대어 빼어난 금강산
보다 덕스러운 지리산을 더 높이 평가하는 관점을 드러냈다. 이와 같은 두
류전지 의 구성 체계와 지리산에 대한 김선신의 시각은 소촌역 찰방의 공적
임무를 가진 관리로서 가지게 된 입장에 연유한 것이 아닐까 추론해 볼 수
있다.
주제어
淸山 金善臣, 頭流志 , 頭流全志 , 智異山, 白頭大幹,
山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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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 제기
조선시대에 어떤 특정한 산에 관해 문학・역사・지리 등 종합적인 체계성
을 가지고 편찬된 山誌는 현재까지 조사한 바로는 3종이 있을 뿐이다. 지리
산은 金善臣(1775~?)의 頭流全志 가 있으며, 주왕산은 徐元模(1787~
1858)의 周王山志 가 있다. 그리고 청량산에 관해서는 李世澤(1716~
1777)의 淸凉志 가 있다. 청량산은 이외에도 李晩輿가 1901년에 편찬한
吾家山誌 가 있지만, 이 산지는 청량산과 관련된 退溪 李滉의 문학 작품
을 구역별로 갖추어 수록하려 한 것이므로 종합적인 측면을 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산지는 두류전지 ・ 주왕산지 ・ 청량지 등
이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학계에서는 산지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편이다.1) 중국
에서는 武夷山誌 를 비롯한 각 지역의 산지를 총서로 발간하여 연구를 진
행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 학계는 기초 작업과 연구 진행이 매우 뒤처
진 상태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산지로 편찬된 서적이 발
견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산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인식 차이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며, 조선 유교의 특징으로서 산과 관련한 독특한 문
화 양상을 해명하는 하나의 주요 지점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조선시대에 편찬된 산지가 지니는 중요한 의미와 그것에 상응하
는 연구 진행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작성하게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두류
전지 를 중심으로 구성 체계와 주요 내용에 관해 살펴볼 것이다. 김선신과
두류전지 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인물은 秋史 金正喜 연구의 선구자인 藤
塚鄰(1879~1948)이다. 그는 「淸朝文化東傳の硏究-嘉慶・道光學壇と李
朝の金阮堂-」에서 김선신에 대해 “일본 유학자들 사이에 李太華와 나란히
1) 현재까지의 연구성과로는 전병철의 「淸凉山 山誌의 간행과 장소의 의미화」, 한문
학연구 23집, 계명한문학회, 2014와 최원석의 「山誌의 개념과 지리산의 山誌」,
문화역사지리 제23권 제2호,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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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을 떨친 영재로 유명하며, 특히 미야케 기츠엔 같은 학자는 金淸山에게
자신의 저술인 薄遊漫載 에 서문을 청할 정도로 높이 보았다.”2)라고 서술
했으며, “김청산은 頭流全誌 라는 규모가 큰 저술이 있다.”3)라고 언급했
다. 따라서 藤塚鄰은 김선신을 동아시아 교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학자로 주목했으며, 두류전지 를 대단한 저술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후 夫馬進은 朝・中・日 학술 교류사에서 김선신이 가지는 역할과 의미
를 심도 깊게 고찰했는데, 그는 김선신에 대해 “일본의 文化 8년(1811) 일
본에 온 通信使의 일원으로서 유명하며, 그 때의 기록 通信行謄錄 에 의
하면 1775년(건륭 40년, 영조 51년) 출생이다. 그 당시 37세였다. 쓰시마
에서 古賀精里나 松岐慊堂 등과 필담하여 文名을 날렸던 점은 조선통신사
연구에서 주지의 사실이다.”4)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문제 의식과 궤를 같이 하여 김선신의 생애와 저술을
본격적으로 다룬 논문은 신로사의 「金善臣의 生涯와 그의 著作에 관한 一
考」이다. 김선신의 생애를 상세하게 알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
인데, 이 논문은 주변의 여러 자료들을 활용하여 대체적인 삶의 궤적을 파
악했다. 이 연구 성과에 근거하자면, 김선신의 본관은 善山이며, 자는 季良,
호는 淸山이다. 1805년과 1822년에 연행사의 일원으로 중국 심양에 다녀
왔으며, 1811년에는 통신사의 書記로 일본에 갔었다. 그는 이러한 계기를
통해 중국과 일본의 문인 및 학자와 교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5)
다음의 장에서는 두류전지 의 판본에 관한 사항을 검토함으로써 본론에
앞선 예비적 고찰을 진행하려 한다.
2) 藤塚鄰지음/藤塚明直 엮음/윤철규・이충구・김규선 옮김, 추사 김정희 연구-청조
문화 동전의 연구 , 과천문화원, 2009, 255면.
3) 상동, 259면.
4) 夫馬進 지음/하정식 외 옮김, 「조선연행사 신재식의 필담 에 보이는 한학・송학
논의와 그 주변」, 연행사와 통신사 , 신서원, 2008, 127면.
5) 신로사, 「김선신의 생애와 그의 저작에 관한 일고」, 동방한문학 제36집, 동방한
문학회, 2008, 129~15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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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頭流志 와 頭流全志 의 내용 비교를 통한 정본 확정
현재 두류전지 는 국립중앙도서관본(위창古2706-1)과 고려대학교 도
서관본(대학원 B10 A7)의 2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두 판본 모두 필
사본인 점으로 볼 때 간행된 적이 없다고 추정된다. 두류전지 상권 첫 면
에 ‘崇陽金善臣輯’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므로 편찬자를 확인할 수 있다. 그
런데 서문이나 발문이 수록되어 있지 않아 편찬 동기와 경위 등에 관한 자
세한 사실을 파악할 수 없다.
편찬 동기를 추론해 보자면, 김선신이 1823년 무렵 2년간 嶺南 召村驛
(현재 경남 진주시 문산에 속함)의 察訪을 지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저술
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淸山島游錄 서문에 김선신이 통신사로 일본을
가기 전 남쪽을 유람했다는 내용이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때 지리산을
유람하고 저술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6)
필자는 후자보다 전자가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첫째, 두
류전지 에 밝혀놓은 인용 서목의 방대함 때문이다. 김선신은 두류전지 를
편찬하기 위해 <遊頭流錄(金宗直)>・<頭流紀行錄(金馹孫)>・<遊頭流錄
(曺植)>・<智異山日課(南孝溫)>・<智異山記(李陸)>・<遊靑巖西岳記(河受
一)> 등의 遊山記와 李仁老의 문집을 참고했을 뿐만 아니라, 東國輿地勝
覽 ・ 山經表 ・ 晉陽志 ・ 昆陽志 ・ 固城志 ・ 泗川志 ・ 河東志 ・ 求禮
志 ・ 南原志 ・ 雲峯志 ・ 咸陽志 ・ 山靑志 ・ 丹城志 등의 지리지를 활
용했다. 사찰과 관련한 사실은 鏡巖 釋應允의 기문을 많이 인용했다.
또한 <柳氏紀聞錄>은 하동에 거주하는 柳赫奎라는 이가 지은 글인데,
현재 그 인물에 대한 다른 기록이 없으며 작품도 발견되지 않는다. 두류전
지 에서 어떤 사실을 고증할 때 ‘내가 월운에 사는 柳生에게 물었다[余問於
月雲柳生].’, ‘내가 월운에 사는 柳生에게 들었다[余聞之月雲柳生].’라는
6) 신로사, 「김선신의 생애와 그의 저작에 관한 일고」, 동방한문학 제36집, 동방한
문학회, 2008, 1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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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기록한 점에 근거한다면, 柳赫奎는 현재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에 거
주한 인물로서 김선신이 두류전지 를 편찬할 당시 자문의 역할을 담당할
정도로 지리산에 관해 상세하게 알고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이 외에
<金處士記>도 인용 서목에 포함되어 있는데, 누구의 작품인지 파악되지 않
는다.
둘째, 위의 내용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김선신은 두류전지 를 편찬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류혁규라는 지역민을 통해 실제
적인 고증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이 역력하게 보인다. 그리고 제3장에
서 두류전지 의 구성 체계와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자연스레 드러나겠지
만, 그는 지리산에 관한 모든 정보를 집대성하려 했으며 당시에 그가 파악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실제적인 내용을 체계성 있게 구성하려고 힘을
쏟았다. 이러한 점들은 두류전지 가 단기간의 지리산 유람을 통해 편찬될
수 있는 저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셋째, <選勝編>에서 지리산의 명승지를 선별하면서 月牙山을 제일 마지
막 항목으로 뽑았다. 그는 진주로부터 동남쪽 30리에 있는 월아산은 두 봉
우리가 대치하여 지리산의 가림막이 되는데, 동편은 飛鳳의 형국이며 서편
은 天馬의 형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예로부터 산의 동쪽에서는 재상이
나며 서쪽에서는 장수가 난다고 일컬어졌으며, 우리나라 인재의 절반은 영
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절반은 진양에 있으며 진양 인재의 절반은 월아에
있다는 말을 특기하여 수록했다. 그런 후 자신의 견해를 적은 부분에서 월
아산은 근원이 멀고 기운이 두터워 매우 靈異한데, 그 한 줄기가 서쪽으로
흘러 琴山이 되고 또 한 줄기가 서남쪽으로 흘러 文山이 되며, 이 산은 召村
驛의 主山이 된다는 점을 상세하게 밝혀놓았다.7) 이것은 김선신이 소촌역
7) 金善臣, <選勝編>, 頭流全志 , ‘月牙山’. “在月牙部曲(晉州東南三十里) 兩峰對
峙 爲頭流扞蔽 東有飛鳳形 西有天馬形 故古稱山東出相山西出將(相謂姜孟卿姜
渾 將謂曺潤孫鄭殷富) 又稱東國人才半在嶺南 嶺南人才半在晉陽 晉陽人才半在
月牙 神氣之所感 不可誣也 有祈雨壇及金將軍德岭木柵遺址 按 頭流之支 東南行
爲固泗諸山 又轉而西北 至晉東而起月牙 逆拒南江 拱挹天王 源遠而氣厚 故靑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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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의 연관성 속에서 월아산을 중시하여 상세하게 서술했다고 이해할 수 있
는 부분이다.
이러한 세 가지 점을 미루어 볼 때, 두류전지 는 김선신이 소촌역의 찰
방으로 재직할 당시 편찬했다고 추론하더라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김선신
이 두류전지 를 편찬한 동기에는 마산・고성・통영・거제・사천・남해의 해안
과 진주・사천・의령 등 南江 水系에 걸쳐 있는 소촌역의 기능 범위8)에서 우
뚝하게 자리하고 있는 지리산에 대한 자료 편찬이라는 공적 사명감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터이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지리산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가진 이유가 있
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편찬과 관련된 사실을 전혀 남기지 않았
을까? 그 까닭은 김선신의 성품에 기인한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는 글을
쓰기만 했지 자신의 글을 모으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나
마 형 金善民이 동생의 글을 모아 수집한 덕분에 金鑢(1766~1821)가 편
찬한 藫庭叢書 에 일부 저술이 수록될 수 있었다.9)
고려대학교 도서관에는 두류전지 와 달리 頭流志 (대학원 B10 A50)
라는 이름의 산지가 소장되어 있다. 이 책에는 편찬자가 밝혀져 있지 않아
자체의 내용만으로는 지은 이를 파악할 수 없다. 이 두류지 에 대해 주목
家亟稱其靈異 一支西爲琴山 又一支西南爲文山(卽召村驛主山) 樓臺泉石之勝
在在標奇 而去頭流遠 故不具著)
8) 최헌섭, 「召村道-慶南의 驛과 그 길 Ⅲ-」, 경남발전 제79호, 경남발전연구원,
2006, 52면.
9) 신로사, 「김선신의 생애와 그의 저작에 관한 일고」, 동방한문학 제36집, 동방한
문학회, 2008, 145면. 김선신의 저작은 담정총서 에 수록된 <左鹵樂府>・<淸山
小集>・<島槎別稿>,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淸山島遊錄 (零本 1책), 서울대학
교 규장각에 있는 淸山遺稿 등으로 산재되어 있다. 그리고 香半館藏書 에 <擬
矯志詩>와 <淸陽>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두 작품은 모두 청산소집 에 실려 있
다. 향반관장서 는 李書九・李鈺・權常愼・金善臣 등과 자신의 시문을 모아 편찬
한 책으로, 이서구의 작품 외에 이 책에 실린 모든 시문들은 담정총서 에 실려 있
다.(김영진, 「朝鮮後期의 明淸小品 수용과 小品文의 전개 양상」, 고려대학교 박사
학위논문, 2003, 8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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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언급한 경우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작성된 두류전지 의 해제에 ‘고
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필사본 頭流志 의 목차를 본 해제본과 비교해
보면, 제2장의 편명이 頭流全身記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
체적인 내용이 같은 것으로 보인다.’라는 말이 유일하다. 이 언급은 두류
지 에 대한 최초의 서술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크지만, 두 판본의 선후 관
계나 내용의 동이에 대해 상세하게 고구하지 못했다.
두류지 의 표지에 ‘頭流志天王峰抄’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책
을 편찬한 본래 의도는 지리산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집성하는 부분과 천왕
봉에 관한 여러 기록을 모아 초록하는 부분으로 구별하여 진행하려 했다고
보인다. 그리하여 내용의 첫 부분은 ‘천왕봉’이라는 제목으로 표제한 후, 李
陸의 <智異山記>, 金宗直의 <遊頭流錄>, 金馹孫의 <續頭流錄> 등에서
관련 기록을 발췌하여 수록했다. 이어서 두류지 第一卷이 시작되는데, 第
一 <頭流祖宗譜>, 第二 <頭流身記>, 第三 <頭流子孫錄>, 第四 <頭流族
< 頭流志 >
< 頭流全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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黨考>, 第五 <流水經>, 第六 <麗山郡邑誌>, 第七 <祠院樓亭略> 등의 순
서로 편집되었다. 第二卷은 <寺刹記>와 <古蹟箚>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따져볼 때, 두류지 는 두류전지 의 초고본이라고
판단된다. 그 근거를 밝히자면, 첫째 두류지 에서 수정한 내용이 두류전
지 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두류지 는 수정할 내용이 표기되
어 있어 아직 완정되지 않은 초고본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두류전지 는
깨끗하게 정사되어 있고 수정 표시가 보이지 않는다.
둘째, ‘頭流全志’라는 편제는 ‘頭流志’의 초고본을 배경으로 하여 성립될
수 있는 이름이다. 두류지 의 제목이 ‘두류산에 관한 기록’이라는 뜻을 가
진다면, 두류전지 의 이름은 ‘두류산에 관한 완전한 기록’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두류지 는 여러 기록이 누락되고 일부 사실은 오류가 있었던 데에
비해, 두류전지 는 전체적인 체계가 확립되고 내용의 사실 여부도 검토되
어 보다 완정성을 가진다. 따라서 두류전지 의 ‘全’자는 단순하게 사용된
글자가 아니라, 두류지 의 초고본을 보완하고 체계화하여 완정했다는 의
미로 읽혀진다.
두류지 와 두류전지 의 내용을 도표로 정리하여 대비하면 다음과
같다.
頭流志頭流全志
卷頭天王峯卷頭
頭流祖宗身子孫族黨摠略之圖
頭流身圖
卷一
頭流祖宗譜
頭流全身記
頭流子孫錄
頭流族黨考
流水經
麗山郡邑誌
祠院樓亭略
卷上
頭流祖宗譜
頭流身記
頭流子孫錄
頭流族黨攷
流水經
麗山郡邑誌
選勝編
祠院樓亭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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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
寺刹記
古蹟箚
卷下
梵天摠表
古蹟箚
貼山詩話
補塞遺脫章
頭流雜識
卷末없음 卷末環山州縣坊里圖
위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두류지 에 비해 두류전지 는 <頭流祖
宗身子孫族黨摠略之圖>・<頭流身圖>・<環山州縣坊里圖>라는 3폭의 그림
과 함께 <選勝編>, <貼山詩話>, <補塞遺脫章>, <頭流雜識> 등이 추가되
어 지리산의 지리・군현・누정・고적・문학작품・일화 등이 총 망라되어 있다.
두류지 의 첫 부분에 실려 있는 <천왕봉>은 두류전지 권상 <選勝編>에
편입되어 맨 앞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두류지 권2의 <寺刹記>는
두류전지 권하의 <梵天摠表>로 이름이 바뀌었다. 따라서 두류지 의 거
의 모든 내용이 두류전지 에 수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서 보완되고
확장되어 더 많은 내용이 풍부하게 갖춰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 頭流全志 의 구성 체계와 주요 내용
두류전지 의 구성 체계는 크게 상권과 하권으로 구분되어 있다. 상권은
첫 부분에 <頭流祖宗身子孫族黨摠略之圖>와 <頭流身圖>10)라는 2편의
10) 국립중앙도서관본(위창古2706-1)은 두 번째 지도의 제목인 ‘頭流身圖’가 누락되
어 있으므로, 한 편의 지도가 2면에 걸려 그려져 있는 듯한 오해를 준다. 표기의 누
락이나 오탈자 등을 고려할 때, 국립중앙도서관본(위창古2706-1)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본(대학원 B10 A7)이 보다 완정된 판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고려대
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두류지 와 두류전지 는 동일 인물이 필사한 것으로 판단
된다. 차후 고려대학교 도서관본의 필사자에 대한 고증도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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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第一 <頭流祖宗譜>, 第二 <頭流身記>, 第
三 <頭流子孫錄>, 第四 <頭流族黨攷>, 第五 <流水經> 등의 내용을 총괄
하는 지도이다. 그 뒷부분은 第六 <麗山郡邑誌>, 第七 <選勝編>, 第八
<祠院樓亭略>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하권에는 第九 <梵天摠表>, 第十 <古
蹟箚>, 第十一 <貼山詩話>, 第十二 <補塞遺脫章>, 第十三 <頭流雜識>
등이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부분에 <環山州縣坊里圖>라는 제목의 지도는
第六 <麗山郡邑誌>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처럼 두류전지 는 상권의 8개와 하권의 5개를 합해 총 13개의 주제로
편성되어 있다. 이 13개의 주제를 유형별로 나누어 본다면, 第一~第五는
자연지리에 관한 내용이고 第六~第七은 지리산권의 지역적 범위와 명승지
에 대한 서술이며, 第八~第十三은 문화유산에 관한 기록이다. 이 세 가지
유형으로 주제를 나누어 두류전지 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유기체적 국토관에 입각한 지리산의 자연지리 인식
<頭流祖宗譜>를 비롯한 <頭流身記>・<頭流子孫錄>・<頭流族黨攷> 등
의 주제는 국내의 여타 산지에서 보이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현재로서
는 국외의 어떤 산지에도 보이지 않는 독특한 설정으로 판단된다. 두류전
지 의 인용 서목에서 확인되듯이, 김선신이 이 주제들을 설정한 연유에는
산경표 가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이해할 수 있다. 산경표 는 우리나라의
산줄기와 산의 위치를 일목요연하게 표로 나타낸 지리서인데, 그 형식이 족
보와 같은 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김선신은 산경표 의 체제를 응
용하여 지리산의 근원・본체・흐름 등을 祖宗・身・子孫・族黨 등으로 명명하
여 자연지리를 독특한 방식으로 설명했다.
<頭流祖宗譜>의 첫 부분에서 ‘山經云’11)이라는 내용을 인용한 후, 지리
11) 기존에 산경표 의 저자가 申景濬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신경준이 편찬한 東國文獻備考 「輿地考」에 바탕하여 1800년 이후 작자 미상의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현진상, 한글 산경표 , 도서출판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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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산의 근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드러냈다. 천하에는 三大幹龍이 있는데 모
두 중국의 崑崙山에서 유래되었다고 전제했다. 그런 뒤 그 가운데 한 줄기
인 白頭大幹이 남쪽으로 내려와 조선의 여러 산이 되고 頭流山에 이르러
그 흐름이 다 했으며, ‘頭流’라는 이름은 白頭大幹의 流脈이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리고 백두대간의 유맥이 바다를 만나 멈추게 되었으므로, ‘頭留’
라 일컫기도 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12) 이러한 맥락을 근거로 백두산으로
부터 두류산에 이르기까지 大幹의 嫡傳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白頭山 (東)→ 臙脂峯・虛項嶺
(東南)→ 多會山・沙伊峯・緩項嶺・漁隱嶺・圓山
(西北)→ 馬騰嶺・掛山嶺
(南)→ 黃土嶺・天秀嶺・趙哥嶺
(西)→ 厚致嶺・香嶺・太白山
(西南)→ 赴戰嶺・大白亦山・小白亦山・黃艸嶺・麝香山
(西北)→ 雪寒嶺
(東南)→ 狼林山・上劍山・馬踰山・橫天嶺・頭蕪山・艾田山・鐵甕瓮
山・吳江山
(東南)→ 雲嶺・及亐羅鉢山
(東)→ 巨次山
(東北)→ 土嶺・莊佐嶺
(東南)→ 大峩峙・竹田嶺・猉狑嶺・載靈山
2000, 36-37면.) 그런데 김선신이 인용한 ‘山經云’의 내용은 산경표 는 물론 신
경준이 지은 <輿地考>・ 山水考 등에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李圭景이 편찬한 五
洲衍文長箋散稿 의 <智異山辨證說>과 <白頭山辨證說>에서 모두 첫 부분에 비
슷한 내용을 인용하고 있는데 출처를 밝혀놓지 않았다. 차후 이 문제에 대한 연구
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부기한다.
12) 金善臣, <頭流祖宗譜>, 頭流全志 . “按 山經云 天下有三大幹龍 皆從崑崙來 其
北條自天山 至東北毉巫閭 自此又東北行爲白頭 回南行爲朝鮮諸山 至頭流而盡
頭流云者 白頭流脈也 白頭流脈 遇海停留 故亦稱頭流爲頭留 大抵自白頭來者 千
支萬葉 不可勝書 故特書其大幹嫡傳如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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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花餘山・豆流山
(東南)→ 蘆洞峴・盤龍山・馬恩山・老人峙・朴達嶺・白鶴山・洩雲嶺・
雪呑嶺・分水嶺・靑霞嶺・楸浦嶺・風流山・鐵嶺
(東)→ 板機嶺・騎竹嶺
(南)→ 猪踰嶺・楸池嶺・板幕嶺・洒嶺
(東南)→ 溫井嶺
(南)→ 金剛山
(南)→ 檜田嶺・珍富嶺・磨耆羅山・屹里嶺・彌時波嶺
(西)→ 雪岳・五色嶺・連水嶺・曺枕嶺
(南)→ 九龍嶺・五臺山
(東南)→ 大關山・揷當嶺・百福嶺・頭陀山・靑玉山
(西)→ 竹峴・建儀嶺・朴大山・太白山
(西)→ 水多山・白屛山・馬兒山・串赤山・小白山・竹嶺
(西南)→ 兜率山・鵲城山・黛看山・雞立嶺・鳥嶺・伊火峴・曦陽山
(南)→ 周峴・大耶山・佛日山・萃山・俗離山・九峯山・鳳凰山・熊峴・熊
耳山・高山
(東)→ 黑雲山
(西)→ 秋風嶺
(南)→ 桂榜山・黃岳山・三聖山・牛頭山・三道峯・大德山
(西南)→ 德裕山・三峰・白巖峰・鳳皇山
(南)→ 六十峙・長安峙
(南)→ 本月峙・白雲山・箕峙・柳峙・女院峙
→ 知異山 (雲峯咸陽南 山靑西南 丹城晉州西 河東昆陽西北 求禮
南原西 祥全圖)
백두산으로부터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대간의 흐름을 위와 같이 파악했으
며, 그 사이에 대표되는 중요한 산들의 이름을 제시했다. 지리산의 근원을
이렇게 파악한 것은 산경표 의 내용을 그대로 따랐으므로, 김선신의 독창
적인 견해는 아니다. 다만 김선신이 산경표 의 족보식 체제를 응용하여 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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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身・子孫・族黨 등으로 새롭게 명명하고 주제를 설정한 점은 그의 창견이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한 지역에 독립된 개체로 파악하지 않고 국토의 전체적인 맥락에
서 근원을 파악하고 본체와 줄기를 구획한 사실도 지리산이 우리나라의 지
리에서 가지는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리산이 국
토의 남단에 치우쳐 있는 산이 아니라, 유기체적 국토 속에서 백두산의 대
간과 연결되어 그 흐름을 거두어들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
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두산의 근원을 중국 곤륜산
에서 끌어들이고 있는 점은 ‘山經’의 설을 인용한 것이라 하더라도 별다른
비판이나 견해가 있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丁若鏞이 곤륜산과 백두산
을 祖孫 관계로 바라보는 데 반대하고 백두산을 동방의 곤륜산으로 설정함
으로써 백두산의 초월적인 모습을 강조한 사실13)에 비해 天下觀의 주체적
인식이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頭流祖宗譜>가 지리산의 근원을 밝힌 부분이라면, <頭流身記>는 지리
산의 본체에 대한 설명이다. <頭流身記>로부터 <頭流族黨攷>에 이르는 내
용은 지리산의 본령과 산줄기에 대해 김선신 자신이 파악한 견해를 서술했
다고 보인다.
그는 지리산의 직경이 1백 여리이므로 둘레를 3배로 계산하면 4백 여리
이며, 굴곡을 고려하여 계산하면 7-8백 리가 될 것이라고 추론했다. 이렇게
거대한 지리산 내에 千峰百壑을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으므로, 본체의 큰 줄
기만 소개하고 자세한 부분은 서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렇게 하더라도
지리산의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사람의 신체에서
비중이 큰 부분인 어깨와 등을 거론하고 지체와 마디의 작은 부위를 생략하
더라도 온몸을 드러내는 데에 해가 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
다.14) (부록 1 참조)
13) 배우성, 조선후기 국토관과 천하관의 변화 , 일지사, 1998, 37면.
14) 金善臣, <頭流身記>, 頭流全志 . “按 頭流全軆徑直可百有餘里 以圍三之數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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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지리산의 본령과 거점 산들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아래의 지도이다. 아
울러 第五 <流水經>의 내용도 반영하여 주요 물줄기를 그려놓았다.
<「頭流身圖」>
<頭流子孫錄>은 반야봉과 천왕봉에서 흘러간 산맥으로, 천왕봉의 줄기
는 북쪽으로 함양・산청에서 끝나고 동쪽으로는 丹溪・晉陽에서 다하며, 반
야봉의 줄기는 서쪽으로 南原에 이르고 서남쪽으로 求禮에 이르며, 동남쪽
에서 온 것은 河東・昆明・泗川・固城・晉州・咸安・巨濟・鎭海・漆原・昌原・熊
川・金海 등의 산들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두류산의 元氣가 본체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의 산줄기로 내려가는 사실을 참된 자식과 훌
之 尙可爲四百里餘 屈曲計周 可七八百里 就此七八百里之內 專據一山千峰百壑
烏可勝籌 唯人迹所逮 有名可載 則略標一二 命曰全身記 如一身之內 轝其肩背
略其肢節 而不害爲八之全身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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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자손이 있어 대대로 아름다움이 계승되는 일에 비유하여 ‘頭流子孫錄’
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밝혔다.15) (부록 2 참조)
<頭流族黨考>는 덕유산으로부터 내려와 지리산의 양 옆으로 羽翼이 된
산들인데, 이것을 族黨과 이웃에 비유하여 이름을 붙였다. 김선신은 이 산
들에 대해 祖宗의 같은 기운을 보존하고 있지만 본체 및 자손과는 구별된다
고 파악했다.16) (부록 3 참조)
이상으로 <頭流祖宗譜>, <頭流身記>, <頭流子孫錄>, <頭流族黨攷>
등을 살펴보았는데, 총괄하는 지도를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頭流祖宗身子孫族黨摠略之圖」>
15) 金善臣, <頭流子孫錄>, 頭流全志 . “按 頭流後屬 擧祖般若天王 而天王之支 北
窮於咸陽山淸 東窮於丹溪晉陽 惟般若之支 西至于南原 西南至求禮 其自東南來
者 爲河東昆明泗川固城晉州咸安巨濟鎭海漆原昌原熊川金海等山 州志稱雄據數
千里者 未爲過也 蓋頭流元氣 不當及身而止 必將有眞子肖孫 世濟其美 故峰巒水
石間有祖風 幽夐竊深 儼雅奇峭庶幾於無呑前烈 玆錄其大而聞者 目爲頭流子孫
錄云”
16) 金善臣, <頭流族黨考>, 頭流全志 . “按 自德裕來而爲頭流之接腋羽翼者 皆族
黨比閭之屬也 略撮其近而大者 所以存祖宗一氣 而區別於全身子孫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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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流水經>은 지리산의 水源과 下流를 설명한 부분이다. 김선신은 지리산
의 물줄기를 세 가닥으로 파악했다. 동쪽 수원은 雲峰에서 발원되어 咸陽・
山淸・丹城 등을 지나 安義의 여러 하천과 합쳐져 晉州의 南江이 된다. 서
쪽 수원은 長水의 물에서 발원하여 나뉘어져 南原・求禮 등을 거쳐 서쪽의
여러 하천과 합쳐져 河東의 蟾鎭江이 되어 南海로 들어간다. 남쪽 수원은
모두 天王峰에서 발원하여 菁川으로 흘러 南江이 된다.17)
김선신이 두류전지 를 편찬하면서 <流水經>을 넣은 이유는 신경준의
山水考 및 산경표 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신경준은
산수고 의 서문에서 나라의 근간이 되는 산과 강을 분합의 원리로 파악하
여 대칭적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음양의 구조로 이해했음을 드러내고 있
다. 산수고 는 山經・山緯・水經・水緯의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전국의 산과 강을 거시적인 안목에서 조망하여 전체적인 체계를
파악하고 촌락과 도시가 위치한 지역을 산과 강의 측면에서 이해했다.18)
산경표 도 산맥의 체계가 하천의 水系를 기준으로 나누어져 있다. 산줄
기의 이름이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청북정맥과 청남정맥은 청천강
을, 청남정맥과 해서정맥은 대동강을, 해서정맥과 임진북례성남정맥은 예
성강을, 임진북례성남정맥과 한북정맥은 임진강을, 한북정맥과 한남정백은
한강을, 금북정맥과 금남정맥은 금강을, 호남정맥은 영산강과 섬진강을 구
분하는 등 주요한 하천이 기준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백두대간과 장백정간
은 하나의 하천 수계를 기준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지금의 함경산맥 이남
과 태백산맥 동측의 작은 하천들을 나누는 구분선으로 大幹과 正幹으로 명
17) 金善臣, <流水經>, 頭流全志 . “按 山東之水 發源于雲峰 歷咸陽山淸丹城 合安
義諸川 爲晉州南江 (爲第一條) 山西之水 發源于長水之水 分峙歷南原求禮 合山
西諸川 爲河東之蟾江 入于南海 (爲第二條) 山南之水 皆自天王發源 爲菁川 而
合于南江 其迂曲斜直之勢 不睱致詳 而大略可見 故列爲三條 俾易尋究 (爲第三
條)”
18) 양보경, 「조선시대의 자연 인식 체계」, 한국사시민강좌 제14집, 일조각, 1994,
78-8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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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을 부여하여 하나의 하천 유역권을 기준으로 이루어진 正脈과 구분했
다.19)
2) 지리산권의 지역 설정과 명승지 선별
두류전지 에는 <麗山郡邑志>라는 편이 구성되어 있는데, 지리산을 중
심으로 그 둘레에 형성되어 있는 여러 군읍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달리 말
하면, 지리산권의 지역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이며, 그 범위에 속하는
군읍의 특성은 무엇인지를 고찰한 내용이다. 김선신은 지리산권에 속하는
고을로 雲峰, 咸陽, 山淸, 丹城, 晉州, 昆陽, 河東, 求禮, 南原 등을 설정했
다. 그리고 그 군읍에 관한 역사적 내력을 소개하고 접경 고을과 지리산과
의 거리 등을 기록했다. 그런 후 ‘按’자를 내어 각 군읍의 자연지리적 특성
과 그것으로 인한 지역민의 성정을 요약하여 표현했다.
각 군읍에 대한 김선신의 견해를 간추려 살펴보자면, 雲峰은 지리산의 後
腰脊에 자리하고 있어 1/3 정도의 고도에 위치하므로, 항상 雲氣가 조망을
가리고 있다. 그래서 운봉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많이 춥고 바람이
심하며 안개가 자주 끼고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곡식을 모두 일찍 심고
일찍 거두는데, 대체로 5년에 한번 정도 익는다. 이러한 자연 환경으로 인해
거주민은 지역에 대한 애착이 없어 흩어지기는 쉽고 모이기는 어렵다고 설
명했다.
咸陽은 지리산의 後麓에 자리하고 있으므로 지리산을 前案으로 삼는다.
그래서 府城의 남쪽에 있는 누각 이름이 望嶽樓이다. 우뚝한 봉우리, 깊은
골짜기, 맑은 시내, 백사장 등의 승경지가 있기 때문에 재력이 풍부하고 풍
속은 謹愿을 숭상한다. 골짜기에 거주하는 이들은 종종 관청을 알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山淸은 산이 구비지고 물이 휘돌아 풍속이 簡質을 숭상한다고 표현했다.
19) 상동, 8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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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지명이 山陰縣이었으므로 會稽로 일컬어지기도 했으며, 換鵝亭・洗硯
亭・修禊亭 등의 누정은 王羲之의 고사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丹城은 동쪽에 赤壁江이 있는데, 丹涯翠壁이 온갖 음산하고 기괴한 형상
으로 펼쳐져 있다고 한다. 풍속은 勤儉을 숭상하는데, 그 이유는 이곳에서
거주한 富民侯 文益漸의 遺意가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晉州는 지리산의 전체에서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산수의 빼어난
경치가 영남에서 제일이라고 李仁老가 칭송했다. 나라에 바치는 수륙의 물
산량이 영남 여러 고을 가운데 절반을 담당한다. 그러므로 東方의 陸海라
일컬어진다고 기록했다. 풍속은 富麗를 숭상하며, 배우기를 좋아하여 업으
로 삼는다고 표현했다. 고을에는 즐거움이 넘치고 인가가 서로 바라보이며
걸출한 인물이 많이 출생하는데, 鉅嶽과 大江에 가득한 맑은 기운이 그러한
결과를 이루게 했다고 호평했다.
昆陽은 풍속이 儉率을 숭상한다고 했다. 예전에는 昆明이 縣이었는데 지
금은 昆明里가 되었으며, 이전에는 金鰲山을 鎭山으로 삼았다가 지금은 銅
谷山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부기해놓았다.
河東은 蟾津江이라는 큰강이 서남쪽을 경유하며, 산을 등지고 바다를 베
고 있는 형국이다. 풍속은 儉率을 숭상하는데, 곤명과 대략 비슷하다고 한
다. 사람은 많고 땅은 좁아 곱절로 곡식을 심어도 수확이 적지만, 절약하고
부지런해서 부자가 많다고 평가했다.
求禮는 지리산권의 군읍 가운데 지리산과 가장 근접해 있는 고을이다. 일
상의 생활 속에서 매일 지리산과 접해 살아가므로 산이 있는 것조차 모를
정도라고 묘사했다. 이전에는 남원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풍속이 서로 같다
고 파악했다.
끝으로 南原에 관해 소개했는데, 이곳에 南嶽祠가 있는 까닭과 관련해
특별히 자세한 논평을 기록했다.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살펴보건대, 南嶽祠가 南原府 所義坊에 있으므로 이전 사람들은
모두 지리산의 소재를 湖南의 좌측이라고 일컬었다. 그러나 산의 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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勢가 嶺南의 우측으로 비스듬히 들어가 남원 지역과 서로 등을 지고
떠나가는 듯한 형상인데, 남원은 어떻게 남악의 제사를 주관할 수 있
었는가?
삼가 생각하건대, 남원은 호남의 巨鎭이다. 동쪽으로 두류산 서부
권역에 근거하여 산의 전체가 그 손바닥 안에 쥐어져 있다. 따라서 읍
을 올리는 듯, 쫓아가고 피하는 듯, 달아나는 듯, 동쪽으로 나가는 듯
한 형세가 하나같이 이 巨鎭[필자주-남원]의 힘이 등을 어루만지며
몰아서 보내는 듯하다. 진양이 빼어난 고을이지만 그 창의 예리함을
막아내기 부족하여 동쪽으로 나가는 쪽에 쏠려 있다. 여기에 근거해
말하자면, 남원이 남악의 제사를 주관하는 것은 형세 때문이다. 봉우
리와 골짜기의 빼어남은 영남의 우측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이른바
‘60리 아름다운 초목, 천만 봉우리 두류산’에 모두 포괄되어 남김없
이 묘사되었다. 李奎報의 기록에 “땅이 넓고 사람이 사나워 역모가
일어났다.”라고 말했으니, 天時가 혹 그렇게 한 것일까? 지금 자세히
논하지는 않는다.20)
김선신은 지리산에 산신제를 올리는 곳인 南嶽祠가 南原에 있는 까닭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지리산의 대세가 영남의 우측으로 비스듬히 들어가 남
원과 서로 등을 지고 떠나가는 형상이다. 그런데 어떻게 남원이 지리산의
산신제를 주관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남원이 지리산 서부 권역에 근거하
여 산의 전체가 그 손바닥 안에 쥐어져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읍
을 올리는 듯, 쫓아가고 피하는 듯, 달아나는 듯, 동쪽으로 나가는 듯한 산
의 형세가 하나같이 남원의 힘이 등을 어루만지며 몰아서 보내는 듯한 모습
20) 金善臣, <麗山郡邑志>, 頭流全志 . “按 南嶽祠在南原府所義坊 故前人皆稱智
異所在爲湖南之左 然山之大勢迆入嶺南之右 與南原一域 若相背而去者 南原何
得主祀南岳 竊意南原爲湖南巨鎭 東據頭流以西而山之全軆在其掌握 故其拱揖
趨避奔迸東出之勢 一似以此巨鎭之力 拊其背而驅使遣焉 雖晉陽雄府 不足以抵
其鋒銳而一任其東出矣 繇此言之 南原之主祀南岳 勢也 若其峰壑殊勝 遠不及嶺
右 所謂六十里芳艸 萬千峰頭流 括寫略盡 李奎報記云 地廣人悍 逆詐鋒起 則恐
天時或然 今不具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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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따라서 진양과 같이 빼어난 고을도 남원의 예봉을 막아내기에 힘이
부족하여 한결같이 동편으로 나가는 쪽에 쏠린 형세를 띠고 있다고 이해했
다. 그런데 산의 형세로 인해 남원이 산신제를 주관하지만, 봉우리와 골짜
기의 아름다움은 영남의 우측에 비해 훨씬 미치지 못한다고 보았다.
지리산권의 군현을 그림으로 표현은 지도는 다음과 같다.
<環山州縣坊里圖>
지리산의 승경지를 선별하고 그곳과 관련된 자료들을 기록해놓은 <選勝
編>이 있다. 天王峰을 필두로 삼았는데, 여기에 관련된 자료가 월등하게 많
은 분량이다. 그 다음 항목은 般若峰이며, 천왕봉의 줄기가 동남북 방면
100리 내에서 다하는 것에 비해 반야봉은 서쪽으로 굽이져 남쪽 수십 고을
의 산들과 봉우들이 모두 兒孫이 된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한 무제 때의 인
물인 王賀에 비견하여 그 음덕이 누대에 걸쳐 다함이 없을 것이라고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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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했다.
김선신의 이러한 견해는 지리산의 으뜸을 천왕봉으로 보는 일반적인 상
식에서 벗어나 지리산권에서 반야봉이 가지는 지리적 의미를 새롭게 인식
하고 그 의의를 조명한 것이다. 봉우리의 높이에만 주목하지 않고 줄기가
흘러가며 다른 산들에게 영향을 끼친 사실을 관찰한 면모는 지리산을 이해
하는 시각이 매우 깊고도 참신하다고 하겠다.
또한 반야봉의 명칭에 근거해 지리산의 ‘智異’라는 이름을 해석했다. 어
떤 승려가 “아무리 견고한 번뇌라도 般若智가 깨뜨릴 수 있으니, 반야봉의
이름은 대개 이러한 뜻을 가진다.”라고 말한 것을 인용한 후, ‘智異’라는 명
칭은 佛智에서 연유한 이름일 것이고 般若智가 최초의 禪關이 되므로 두류
산의 萬峰이 이 봉우리의 支屬이 된다고 풀이한 것이다.21) 그는 백두대간
이 지리산으로 흘러 들어오는 入首處가 바로 반야봉이고, 이 봉우리의 줄기
가 천왕봉보다 더 넓고 멀리 흘러가 주변 산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며, 지리
산의 이름도 여기에서 기원했다고 이해할 만큼 반양봉을 중시하는 관점을
가졌다.
남원에 남악사가 있는 까닭, 지리산 봉우리들 가운데 반야봉이 천왕봉 못
지않게 중요한 이유 등과 같이 지리산에 대한 김선신의 탁월한 인식을 볼
수 있는 측면은 <선승편>의 뒤에 ‘금강산과 지리산 중에 어느 산이 더 뛰어
난가?’라는 제목으로 부록한 <附論金剛頭流孰勝>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
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산 중에서 빼어난 경치는 금강산이 최고이며 웅장한 모습은
지리산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금강산은 나라의 중심 지역에
자리하여 사람들이 다투어 유람하고 그 빼어난 경치를 모두 알고 있는데,
지리산은 남쪽에 위치하여 아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다고 한다.
이처럼 지리산은 지리적 입지 조건이 금강산에 비해 불리하지만, 김선신
21) 金善臣, <選勝編>, 頭流全志 . “又按 比邱云 煩惱雖堅 般若智能破之 般若之名
槪以此也 其稱智異 當是佛智上起名 而般若智爲最初禪關 頭流萬峰 所以爲此峰
之支屬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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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지리산이 금강산보다 더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지리산은 몸체가 커서 신
령스러우며, 이곳에서 온갖 약초와 과일을 생산한다. 그래서 주변의 고을
사람들이 여기에 의지해 생활하기 때문에 베푸는 혜택이 매우 넓다. 그러나
그 형상이 흉측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므로 사람도 귀신도 진면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다만 하늘과 통할 뿐이라고 묘사했다.
이에 비해 금강산은 널리 알려져 사람들의 손에 모든 곳이 훼손되어 초목
은 살 수 없고 짐승은 숨을 곳이 없다. 그리하여 산 속에는 거주하는 백성이
없고 산 아래에는 밭이 없으며, 혜택을 줄 수 있는 자원이나 식물이 드물다.
김선신은 이러한 금강산에 대해 그 정황이 지나치게 빼어나고 자취가 너무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이유에 근거해 그는 차라리 지리산의 묵묵함을 배울지언정 금강
산의 찬란함을 본받지 말며, 지리산의 엄숙함에 처할 것이지 금강산의 깨끗
함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하지만 금강산이 지리산
만 못하다고 갑작스레 사람들에게 말한다면 결코 믿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을 그 역시 감안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결론에서 금강산을 才士에 비유하고 지리산을 德老에 비유했
다. 재주 있는 사람은 사람들이 사랑하지만 사랑이 지극하면 해롭게 되어
그의 모습이 오히려 근심스러우며, 덕이 있는 사람은 사람들이 공경하지만
공경함이 오래되면 반드시 멀어지게 되며 멀어지면 잊어버리는 데에 이르
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공경함이 오래되어도 잊지 않는 자와 함께 지
리산의 온전한 덕을 논하고 싶다고 자신의 심경을 토론하는 것으로써 마무
리를 지었다.22)
22) 金善臣, <附論金剛頭流孰勝>, 頭流全志 . “按 東山之名國中者 以百數 然奇莫
奇金剛之奇 壯莫壯頭流之壯 之二山者 固東方之桀雄也 雖然金剛處當國中 貴游
之士 爭先爲快 故其奇莫不聞焉 猶之李郭同河人羨登仙 雖亟走逃名 而名不得逃
也 頭流處國南 徼知之者蓋尠有其知之至之者亦絶尠譬之黃憲徐穉不臣天子 不
友諸侯 遯世不見知而无悶 所謂其知可及 其愚不可及也 且也東山之首 首之以不
咸 終之以頭流 南北相距數千里餘 此其來遠矣 跨躡二路 括帶十治 其崇可百里
其圓爲千里 此其體洪矣 是生神物 雲霧是興 不崇朝 而偏雨嶺右 此其神甚靈 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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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통해 김선신이 지리산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었으며, 마치
德老처럼 우러러 경모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대부분
의 사람들이 유람자의 관점에서 경치가 빼어난 금강산을 최고의 명산으로
꼽는 것에 비해, 김선신이 거주민의 입장에 서서 금강산의 빼어남보다 지리
산의 풍부한 토양과 너른 품을 높이 평가한 점은 탁월한 식견이다. 그러므
로 두류전지 를 편찬한 동기와 추진력의 배경에는 이처럼 지리산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모가 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그가 <選勝編>에 선별해놓은 지리산 승경지의 항목을 도표로 정리하자
면 다음과 같다.
分 類名勝地 名稱 計
峰・嶺・山・峴
天王峰, 般若峰, 中峰, 甑峰, 山城峰, 雪峰, 花峰,
靈祭峰
8
中山, 九曲山, 靑巖山, 玉山, 牛山, 五臺山, 君山,
臥龍山, 尼邱山, 月牙山, 10
蟹踰嶺1
三呵息峴1
有百種百藥百果 與夫奇怪之珍 升箭之羔 千尋之名 材其下 爲膏衍萬民 所居列州
之所仰給而取足焉者 此其施極博 然其爲狀也 凶然爾 塔然爾 罕與物接 曰吾无隱
乎爾者 然人莫能測其奧 鬼莫能闚其晦 惽惽黙黙上與天通 此其德全矣 金剛則不
然 躝之躒之 磎不得其平 鑚之刻之 石不得其貞 垢之濯之 水不得其淸 攘之辟之
草木不得生 搜之剔之 鳥獸無所匿形 驅之役之 苾蒭且不得寧 故其中無民 其下無
田 其藏不珍 嘉生者不繁 貨生者不遷 其情過奇 其迹太露 其爲人也過重 而所以
自爲者反輕 故可少也 頭流則不然 豊其肉 矗其角 守其確 致其曲 知其白 處其黑
降然而特 竊然而谷 能以美利而不言夫所利 故曰 寧爲頭流墨墨 無效金剛郁郁 寧
處頭流肅肅 毋近金剛濯濯 則其理寧實然 非有所阿私而低昻之也 今言金剛之不
如頭流 而驟語人 人人定不信 然金剛才士也 才者人之所愛 愛極則殘 故其形反愁
頭流則德老也 德者人之所敬 敬之久者 必且遠之 遠之則至於忘之 嗚呼 吾安得與
敬久不忘者 居與論頭流之全德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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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臺・巖
懽喜臺, 議論臺, 少年臺, 唱佛臺, 迦葉臺, 坐高臺,
金剛臺, 文昌臺, 濯纓臺, 神仙臺, 鳳凰臺11
獨女巖, 馬巖, 世尊巖, 落水巖4
洞・村
靑鶴洞, 德山洞, 絲綸洞, 嘿契洞, 龍游洞, 獐項洞,
塔洞, 三神洞, 花開洞, 拂出洞, 龍湫洞
11
養堂村, 岳陽2
溪・淵・瀑布
靈溪, 桃川2
龍王淵, 九淵, 釜淵, 龍游潭4
龍宮瀑布, 鐵鞭瀑布2
其他沮洳原, 九壠, 平沙坪, 德川遷, 巖法主窟, 生米穴,
將軍水, 藥泉, 靑巖寺, 淸伊堂, 永郞站, 姑蘇城, 蟾津
13
合計69
3) 지리산권의 문화유산 집대성
두류전지 에는 지리산권의 문화유산과 관련해 <祠院樓亭略>, <梵天摠
表>, <古蹟箚>, <貼山詩話>, <頭流雜識> 등 5편이 편성되어 있다. <祠院
樓亭略>은 지리산권에 소재하고 있는 書院・祠・堂・齋・臺・館 등의 건축물
을 정리해놓은 것이다. 수록한 항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分 類建物名 計
書院
龍巖書院, 灆溪書院, 柏淵書院, 西溪書院, 道川書院,
德川書院, 宗川書院, 仁川書院, 陶灘書院
9
祠浣溪鄕祠, 杜陵鄕祠, 大覺鄕賢祠, 智異山神祠4
堂・齋虛白堂, 守愚堂, 在澗堂
山天齋, 蹄溪書齋, 養眞齋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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樓・亭
桂影樓, 海山樓, 誓海樓, 鳳栖樓, 矗石樓, 廣寒樓, 學士樓,
齊雲樓, 望嶽樓, 二樂樓, 雙淸樓, 新安樓12
醉醒亭, 伴鷗亭, 雲錦亭, 七松亭, 萬柳亭, 紅林亭, 門巖亭,
七樹亭, 三樹亭, 氷玉亭, 五龍亭, 桂影亭, 送客亭, 水越亭,
始有亭, 竹亭, 龍頭亭, 花山亭, 楓巖亭, 白沙亭, 涵虛亭,
雲皐亭, 雲鶴亭, 換鵝亭, 脩禊亭, 臥龍亭
26
臺拱玉臺, 築愁臺, 吏隱臺, 杏花臺4
其他道士館1
合計59
<梵天摠表>은 聖母祠에 대한 기록과 불교 사찰의 소재 및 현존 여부 등
을 밝혀놓은 것이다. 지리산권에는 雙谿寺・華嚴寺 등을 비롯한 큰 사찰뿐
만 아니라, 곳곳에 무수한 암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80,009所의 사
찰이 있다고 일컬어졌다 하는데, 김선신은 이 말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
고 여겼다. 그래서 자료와 탐문을 통해 지리산권의 사찰들을 정리해 산을
찾는 이들이 표식으로 삼을 수 있게 하려 한다고 의도를 밝혔다. 1823년 무
렵 김선신이 정리한 지리산권의 사찰들은 다음과 같다.
分類建物名 計
寺
存
香績寺, 法界寺, 雙谿寺, 神興寺, 義神寺, 智居寺, 華巖寺,
五臺寺, 德山寺, 嘿契寺, 靑巖寺, 般若寺, 斷俗寺, 岐林寺,
白巖寺, 地藏寺, 牛房寺, 多率寺, 君子寺, 嚴川寺, 安國寺,
文殊寺, 智谷寺, 王山寺, 靈岳寺, 延月寺, 文達寺, 實相寺,
水聲寺, 金堂寺, 源水寺, 長溪寺, 百丈寺, 甘露寺, 妙峰寺,
波根寺, 松林寺, 鷰谷寺, 華嚴寺
39
廢
會講寺, 翰林寺, 本石南寺, 安養寺, 三莊寺, 黑龍寺,
南上元寺, 臨江寺, 長安寺, 長興寺, 茅房寺, 見佛寺,
馬迹寺, 登龜寺, 王臺寺, 消怪寺, 玉溪寺, 大寂寺,
大谷(寺), 煙觀寺, 開良寺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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庵
存
大源庵, 七佛庵, 佛日庵, 國師庵, 佛出庵, 靈臺庵, 玉水庵,
寶文庵, 道士庵, 小隱庵, 地莊庵, 古靈庵, 社堂庵, 普照庵,
隱庵, 通日庵, 金紗庵, 靑紗庵, 中庵, 普賢庵, 沙惠庵,
東庵, 能仁庵, 上水谷庵, 下水谷庵, 大勝庵, 古大勝(庵),
上大勝(庵), 西庵, 東庵(三神洞), 圓寂庵, 圓通庵, 圓棲庵,
寂住庵, 銀庵, 東庵(義神洞), 北庵, 普明庵, 靈雲庵,
普明北庵, 鐵屈庵, 上鐵屈庵, 中鐵屈庵, 下鐵屈庵,
隱仙庵, 松老庵, 華莊庵, 靈神庵, 千佛庵, 白雲庵, 南臺庵,
古無爲庵, 上流庵, 紅蓮庵, 白蓮庵, 先涅庵, 新涅庵,
古涅庵, 彌勒庵, 西日庵, 無住庵, 金臺庵, 碧松庵, 靈源庵,
法華庵, 成道庵, 棲鳳庵, 龍鶴庵, 黃嶺庵, 深院庵, 石秀庵,
江淸庵
72
廢兜率庵, 花粧庵, 朴化主庵, 塔庵, 龍溪庵 5
其他
存聖母祠, 眞樂堂, 隱靜臺, 西臺(三神洞), 淸凉臺,
西臺(義神洞),
6
廢觀音方, 順鏡臺, 理盲窟, 3
合計
存117
廢29
<古蹟箚>는 지리산권의 유적과 역사 사건을 선별하여 총 60개 항목으로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는 건물, 비석, 읍성, 샘, 사찰, 석각 등 다양한 소재의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모든 항목의 제명을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碑殿, 血巖, 實相寺舊址, 古咸陽邑城, 義呑所, 皆品部曲, 丹溪廢
縣, 浣溪, 孝子橋, 孝子潭, 粥所, 江城君碑閣, 侍中柏, 巖石異書, 德
川梁, 院洞古堞, 血住村, 三壯元洞, 龍窟, 禹匿谷, 道邑村, 螺洞, 龜
城, 鷄鳴城, 夢泉, 馬洞石碑, 阿只巖, 鼎蓋山城, 帝釋山城, 政堂梅,
鈒巖, 取適臺, 德隱谷, 陶灘, 雙谿石門, 致遠碑, 八詠樓, 遯洞 江亭
遺址, 黃嶺, 鄭嶺, 㹳巖, 廣濟巖門石刻四字, 大鑑師碑銘, 神行碑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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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至正起居狀, 鴨脚樹, 精社記石碣, 眞鑑禪師碑, 劉將軍石刻, 楡谷部
曲, 劉仁軌城, 石桂鎭, 釣臺石刻, 山洞 龍淵石刻, 僧慧月碑, 天王
峰, 明月巖 防川, 靈神寺, 新興寺洞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3편 외에 문화유산과 관련해 <貼山詩話>와 <頭
流雜識> 2편이 더 있다. <貼山詩話>는 지리산과 관련된 시들을 수집하여
집성한 것이며, <頭流雜識>는 기이한 이야기나 설화 등을 채록해놓은 것이
다. 자세한 논술은 지면 관계상 할애하기로 한다.
4. 맺음말
이상으로 청산 김선신이 편찬한 두류전지 에 주목하여 여러 가지 측면
에서 살펴보았는데, 앞에서 논술한 내용들을 요약함으로써 결론을 대신하
고자 한다.
현재 두류전지 는 국립중앙도서관본(위창古2706-1)과 고려대학교 도
서관본(대학원 B10 A7)의 2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두 판본 모두 필
사본인 점으로 볼 때 간행된 적이 없다고 추정된다. 두류전지 상권 첫 면
에 ‘崇陽金善臣輯’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므로 편찬자를 확인할 수 있다. 그
런데 서문이나 발문이 수록되어 있지 않아 편찬 동기와 경위 등에 관한 자
세한 사실을 파악할 수 없다.
편찬 동기를 추론해 보자면, 김선신이 1823년 무렵 2년간 嶺南 召村驛
(현재 경남 진주시 문산에 속함)의 察訪을 지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저술
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淸山島游錄 서문에 김선신이 통신사로 일본을
가기 전 남쪽을 유람했다는 내용이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때 지리산을
유람하고 저술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후자의 가능성보다는 전자가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판단된다. 그 이유는 첫째, 두류전지 에 밝혀놓은 인용 서목의 방대함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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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漢文學 (第四十二輯)
344
문이다. 둘째, 두류전지 가 단기간의 지리산 유람을 통해 편찬될 수 있는
저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셋째, <選勝編>의 ‘月牙山’ 항목
에 보이는 김선신의 비상한 관심과 상세한 기록을 거론할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점을 미루어 볼 때, 두류전지 는 김선신이 소촌역의 찰방으로 재
직할 당시 편찬했다고 추론하더라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는 두류전지 와 달리 頭流志 (대학원 B10 A50)
라는 이름의 산지가 소장되어 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따져볼 때, 두류지
는 두류전지 의 초고본이라고 판단된다. 그 근거를 밝히자면, 첫째 두류
지 에서 수정한 내용이 두류전지 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
째, ‘頭流全志’라는 편제는 ‘頭流志’의 초고본을 배경으로 하여 성립될 수
있는 이름이다. 두류지 의 제목이 ‘두류산에 관한 기록’이라는 뜻을 가진
다면, 두류전지 의 이름은 ‘두류산에 관한 완전한 기록’이라는 의미를 지
닌다. 두류전지 는 두류지 의 거의 모든 내용이 수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서 보완되고 확장되어 더 많은 내용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
두류전지 의 구성 체계는 크게 상권과 하권으로 구분되어 있다. 상권은
첫 부분에 <頭流祖宗身子孫族黨摠略之圖>와 <頭流身圖>라는 2편의 지
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第一 <頭流祖宗譜>, 第二 <頭流身記>, 第三
<頭流子孫錄>, 第四 <頭流族黨攷>, 第五 <流水經> 등의 내용을 총괄하는
지도이다. 그 뒷부분은 第六 <麗山郡邑誌>, 第七 <選勝編>, 第八 <祠院樓
亭略>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하권에는 第九 <梵天摠表>」, 第十 <古蹟箚>,
第十一 <貼山詩話>, 第十二 <補塞遺脫章>, 第十三 <頭流雜識> 등이 구
성되어 있다. 마지막 부분에 <環山州縣坊里圖>라는 제목의 지도는 第六
<麗山郡邑誌>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처럼 두류전지 는 상권의 8개와 하권의 5개를 합해 총 13개의 주제로
편성되어 있다. 이 13개의 주제를 유형별로 나누어 본다면, 第一∼第五는
자연지리에 관한 내용이고 第六∼第七은 지리산권의 지역적 범위와 명승
지에 대한 서술이며, 第八∼第十三은 문화유산에 관한 기록이다.
두류전지 는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지리산의 자연지리・군현・누정・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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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2015년 2월 09일(월요일)에 투고 완료되어,
2015년 2월 17일(화요일)부터 3월 11일(수요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2015년 3월 12일(목요일) 편집위원회에서 게재 결정된 논문임.
淸山 金善臣 編纂 頭流全志 의 구성 내용과 특징(全丙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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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문학작품・일화 등을 총망라했다. 특히 지리산을 한 인격체에 비견하여
<頭流祖宗譜>・<頭流身記>・<頭流子孫錄>・<頭流族黨考> 등의 독특한 주
제를 통해 우리나라 국토에서 가지는 지리적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그리고 금강산을 才士에 비유하고 지리산을 德老에 빗대어 빼어난 금강산
보다 덕스러운 지리산을 더 높이 평가하는 관점을 드러냈다. 이와 같은 두
류전지 의 구성 체계와 지리산에 대한 김선신의 시각은 소촌역 찰방의 공적
임무를 가진 관리로서 가지게 된 입장에 연유한 것이 아닐까 추론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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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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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자 미상, 頭流志 .(고려대학교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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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馬進 지음/하정식 외 옮김, 「조선연행사 신재식의 필담 에 보이는 한학・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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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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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 「頭流身記」의 주요 산맥
白雲山 (西南)→ 荒山
(一支 東)→ 八良峴
(一支 西)→ 花水山
(一支 東北)→ 鼎峰
(又一支 北)→ 柳峙・赤山 (南)→ 城山 (以上 倂雲峰地)
(西)→ 女院峙 (南)→ 鄭嶺峙・鉢岳 (皆雲峰地)
(又一支 南)→ 智異山 般若峰
般若峰 (西)→ 靈祭峰・九水峰・宿星山
(一支 西)→ 犬首山
(一支 南)→ 屯山峙・鳳城山・大竹田山・五峰
般若峰 (西南)→ 花底峰・兄弟峰・面乙只峰
般若後麓 女院峙 以下 (一支東)→ 花長山 및 無名諸山
(至東山淸界) → 特峙・㟠高山・春羅臺
般若峰 (東)→ 悟道峰 및 無名諸山, 山淸의 王山
般若峰 (東南)→ 鷲嶺
鷲嶺 (東南) → 靈神臺
(東北)→ 中峯
(行十里)→ 天王上峰
細石坪 (西)→ 山城峰
(東南)→ 孤雲洞・嘿契・賓義峙・十二嵎
(分而東南)→ 五臺山
(東南)→ 羊耳峙・安養山・道去峙
(東) 玉山堂
(東南)→ 白土峴 (以上 倂晉州界)
山城上脈 (一支 西南)→ 雙磎主山
天王峰 (一支 東)→ 栗旨峙 (北行二十里)→ 五峰(智異後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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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支) 山淸之楡山
(一支) 來山
(一支) 消怪山
天王峰 (一支 東北)→ 鉏屹山・雲象山・首陽山
鉏屹山 (南)→ 薩川後山曰九曲山 爲三壯曰三壯山 爲三壯後山曰楮田山
五臺山 (東)→ 蘆峴・黔陰山
求禮案山(般若峰 西支)→ (南) 燕谷・七佛
燕谷 (東南支)→ 岳陽
(自此平地落脈)→ 鳳皇臺 → (臺下數里) 君山(平沙坪)
賓義峙 (分)→ 河東之黃峙
(東起)→ 月雲村主山曰理盲山
(西南支)→ 狗峴・昆陽之金鰲山, 至露梁而止
雙磎後峰 (東南)→ 回南峙
(東)→ 門巖
(自此分二支, 東支) 無名可記
(南支)→ 梨峙・劍南峰
(自此又分二支, 東南)→ 靑巖山
(西南)→ 龜嶺・風集堂
(東)→ 河東之玉山峙・風峙・河東治之主山
(東支)→ 牛峙
白土峴 (分二支, 東支)→ 胎峯 (東)→ 金城之玉女峯而止
(南支)→ 鳳溪五 卽洞掛峽爲城方峙
(自此又分二支, 南支)→ 昆陽之還德 → 鞍島而止
(東支)→ 晉陽之蹲䲭山
(自此又分二支, 西)→ 漕倉後山
(南)→ 萬科倉
(東)→ 泗川縣之豆音伐山
(東)→ 固城之無量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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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2. 「頭流子孫錄」주요 산맥
陽慶山, 玉溪山 (智異南脈)
鷲嶺 → 黃峙 → 河東之車站, 理盲山, 金鰲山
車站 → 蟹峴 → 小卯山 (河東界)
理盲山 → 長嶺 (昆陽界), 又一支 → 鳴鳳山 (河東昆陽界)
鳴鳳山 → 銅谷山 → 昆陽鎭山
晉州之玉山 → 素谷山(亦稱所谷, 昆陽北), 牛山 (昆陽南)
金鰲山 → 南海 露梁
素谷山 → 玉女山 → 望晉山, 八音山, 千金山, 無量山 (固城鎭山)
無量來 → 無妓山, 宗送山, 甘峙山, 天王站, 南山, 龍水巖 (倂固城界)
宗送山 → 城山
甘峙山 → 武夷山, 文珠山, 佛巖山
南山 → 碧山, 流民山 (倂固城界)
武夷山 → 臥龍山
文珠山 → 佐耳山 → 城峴而止
南山 → 牛山, 大峙山
流民山 → 曲山 (倂固城界, 臥龍山 亦晉泗界)
大峙山 → 掛榜山, 彌勒山 (彌勤山在統營, 倂固城界)
無量山 → 豆音伐山 → 泗川主山
武夷山 → 尼邱山 (道德山與尼邱相對)
臥龍山 → 歸龍山
玉山 (在泗縣東五里)
箭竹山 (在北七里)
御停山 (在北十里) (倂泗川界)
混沌山 (在固城晉州兩界, 本號大屯山)
混沌山 → 芙蓉山 (混沌北支)
鉢山 (在晉東七十里, 卽混沌東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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鉢山 → 圓通山 → 月牙山
鉢山 → 靈鳳山 (在班城縣, 今屬晉州)
靈鳳山 → 長安山 → 東防禦山 (亦名砧山) (倂晉陽界)
無量山 → 餘航山 (在鎭海北十里) → 城山, 匡廬山
匡廬山 → 斗尺山 (咸安昌原界) → 靑龍山 (漆原昌原界) → 九龍山 (漆原
界) → 旃檀山, 龜旨峰, 大峙
旃檀 → 佛母山 (昌原界) → 龜旨山 (金海界) → 盆山 (金海界), 熊山
熊山 → 屛山 (倂熊川界)
餘航山 → 鷲山 (鎭海界)
大峙山 (南)→ 統營 轅門
(東)→ 巨濟之鷄龍山, 加羅山, 甑山, 主山, 諸島
大峙山南 → 彌勒山, 唐浦, 營內, 三川, 蓮臺, 鳥島而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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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3. 「頭流族黨考」의 주요 산맥
白雲山 (在安義咸陽界) → 天王站 (在咸陽北二十里) → 白巖山 (在北五
里), 文筆峰 (在北一里), 鷲巖山 (在北二十里), 霜山 (在西二十里),
鞍岾山 (在北三十里), 桃峴 (在東三十里), 蛇巖山 (在東二十里), 愁
智峰 (在東十里) (倂頭流北)
沙斤山 (在咸陽東十七里)
德裕山 → 東山 (在山淸縣東三里)
德裕山 → 馬淵洞 (在縣北十里) → 車灘主脈
德裕山 → 尺旨山 (在縣東二十五里) (倂頭流東北)
德裕山 → 黃梅山 (在丹城北四十里) → 寶巖山 (在北三十七里), 兀栗山
(在東二十里), 尺旨山 (在北五十里)
尺旨山 → 芚鐵山 (在縣北三十里) → 月明山 (在東北十五里)
宜寧之闍崛山 → 集賢山 (在縣東十五里) (亦晉陽界)
芚鐵山 → 赤壁 (在東五里) (倂頭流東)
集賢山 → 廣濟山 → 飛鳳山 (在晉北一里) (頭流東)
德裕山 → 水分峙 (長水界) → (分二支) → 智異, 南原之萬竹山
百工山 (在府東八里)
德陰峯 (在府東五里)
甑山, 蓮花峰, 古南山 (在山東坊)
天使峰 (在乫峙坊)
虞祭峰 (在源川坊)
龍闘山 (在黑城坊)
時羅山, 楓嶽西山, 月溪山, 蛟龍山 (俱萬竹餘麓) (倂頭流西)
白雞山 (亦云白雲山, 在光陽縣北二十里)
(其東麓) → 葉窟山
甑山 (在縣東三十里)
歌謠山 (在甑山南五里) (倂頭流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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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漢文學 (第四十二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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鹿頭山 (在南海縣北二十三里)
錦山 (在東二十五里)
望雲山 (在西二里)
猿山 (在南十六里)
城峴 (在南二十四里)
露梁 (在縣北四十里) (爲頭流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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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山 金善臣 編纂 頭流全志 의 구성 내용과 특징(全丙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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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of Cheongsan(淸山) Kim Seongsin(金善臣)’s
Compilation, Duryujeonji(頭流全志)
Jeon, Byeong-cheol
This study is prepared for the crucial meanings of mountain magazines
compiled during Chosun and also the necessity of researching into them.
Among them, the study is going to examine the organizational system and
major contents of Duryujeonji(頭流全志) mainly.
It is estimated that Duryujeonji(頭流全志) was compiled around 1823
while Cheongsan(淸山) Kim Seongsin(金善臣) was working as a
Yeongnam(嶺南) Sochonyeok(昭村驛) Chalbang(察訪) for two years.
The Korea University Library possesses a mountain magazine titled as
Duryuji(頭流志) , not Duryujeonji(頭流全志) , and it seems to be the
draft of Duryujeonji(頭流全志) .
Regarding the organizational system of Duryujeonji(頭流全志) , it is
largely divided into volume one and two. In the first part of volume one,
there are two maps drawn: 「Duryujojongsinjasonjokdangchongyakjido(頭
流祖宗身子孫族黨摠略之圖)」 and 「Duryusindo(頭流身圖)」, and these are
the maps that generally include the contents of the first 「Duryujojongbo(頭
流祖宗譜)」, the second 「Duryusingi(頭流身記)」, the third 「Duryujasonrok
(頭流子孫錄)」, the fourth 「Duryujokdanggo(頭流族黨攷)」, and the fifth
「Ryusugyeong(流水經)」, and so on. And next, it contains the sixth 「Yeo
sanguneupji(麗山郡邑誌)」, the seventh 「Seonseungpyeon(選勝編)」,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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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Words Cheongsan( ) Kim Seongsin( : 淸山金善臣), Duryuji(頭流志) , Du
ryujeonji(頭流全志) , Jiri Mountain(智異山), backdudaegan(白頭
大幹), mountain magazine(山誌)
大東漢文學 (第四十二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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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ighth 「Sawonnujeongryak(祠院樓亭略)」, and so on. Volume two
includes the ninth 「Beomcheonchongpyo(梵天摠表)」, the tenth 「Gojeokcha
(古蹟箚)」, the eleventh 「Cheopsansihwa(貼山詩話)」, the twelfth 「Bosae
kyutaljang(補塞遺脫章)」, and the thirteenth 「Duryujapji(頭流雜識)」, and
so on. On the last part, there is a map titled as 「Hwansanjuhyeonbangrido
(環山州縣坊里圖)」 which describes the sixth 「Yeosanguneupji(麗山郡邑
誌)」 as a drawing.
As mentioned above, Duryujeonji(頭流全志) is compiled with total 13
topics: 8 from volume one and 5 from volume two. Categorizing these 13
topics, you can see that the first to fifth are about natural geography, and
the sixth to seventh describe the regional range and scenic spots of Jiri
Mountain, and the eighth to thirteenth are about cultural heritages.
Based on a vast amount of data, Duryujeonji(頭流全志) covers Jiri
Mountain’s natural geography・Gunhyeon・arbores・ancient relics・literary
works・tales all. In particular, it personifies Jiri Mountain and reveals the
geographic meanings of our land distinctly through its unique topics like
「Duryujojongbo(頭流祖宗譜)」・「Duryusingi(頭流身記)」・「Duryujasonrok
(頭流子孫錄)」・「Duryujokdanggo(頭流族黨考)」. In addition, it compares
Geumgang Mountain to ‘a talented person’ and Jiri Mountain to ‘an old
man with a fine personality’, which shows its view to evaluate Jiri
Mountain more highly than Geumgang Mountain for its virtues. Kim
Seongsin’s such view to Jiri Mountain and Duryujeonji(頭流全志) ’s
organizational system may have been attributed to his position as an
official equipped with public duties as a Sochonyeok Chal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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