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너스(Bonus)>
정선(旌善) 민둥산 등산(登山)
민둥산 등산로 입구 / 빗속으로 등산 시작 / 정상의 억새길
언젠가 집사람이 TV에 나오는 정선(旌善) ‘민둥산’ 능선의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장면을 보고는 줄곧 함께 등산을 가자고 졸랐다. 산 정상부근에 나무가 없고 억새가 있다고 이름이 민둥산이다.
그런데 마침 내가 소속된 ‘인천 미추홀 은빛합창단’이 전국대회 일정이 잡혀있고, 연이어 야유회까지 겹쳐있어 짬을 내지 못해서 바쁜 스케줄이 끝나면 함께 가자고 약속을 했었다.
10월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 억새가 절정을 이루는 시기는 조금 지났지만 벼르던 민둥산 산행을 큰맘 먹고 실행에 옮겼다. 가랑비가 내려 날씨가 좋지는 않았지만, 많이 내리지는 않겠다는 예보를 들으며 아침 일찍 정선(旌善)을 향해 출발하였다. 등산 후 강릉의 처가에도 들르는 계획으로.....
영동고속도로로 가다가 ‘원주 IC’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바꾸어 들어서 달리다가 다시 ‘제천 IC’에서 빠져 국도를 이용하여 영월(寧越)을 거쳐 정선(旌善)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가랑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이기는 했지만, 치악산(雉岳山)을 지나 충북으로 들어서자 온통 만산홍엽(滿山紅葉), 단풍이 절정을 이룬 아기자기한 산들이 겹겹이 나타난다. 밝은 햇살 속에 보는 풍경이 좋겠지만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서 보는 단풍은 빛깔이 더욱 선명한 듯 감탄(感歎)이 절로 나온다.
제천(堤川), 영월(寧越)을 거쳐 정선(旌善)에 이르는 국도(國道)는 이른바 우리나라의 중부 산악지대로, 끝없이 이어지는 산굽이와 그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맑은 시냇물, 시원하게 뚫린 포장도로가 너무도 아기자기하여 우리나라 산야(山野)의 아름다움을 실감케 한다.
나는 여행을 좋아해서 비교적 많은 나라를 여행했는데 남아메리카의 안데스(Andes) 고원, 인도 중부의 데칸(Deccan)고원, 중국 위구르 자치구의 황량한 고비사막(Gobi Desert), 끝없는 옥수수밭의 만주(滿洲)벌판 그리고 미국 텍사스의 드넓은 평원(平原/Prairie) 등을 두루 볼 기회가 있었지만, 어느 곳도 우리나라만큼 아름다운 곳은 없었던 것 같다. 하나같이 광활한 황무지의 연속으로 토질도, 기후도 모두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은 척박한 지역이었지만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놀라웠었다.
민둥산 등산로 입구 부근의 증산초등학교 주차장에 주차하며 보니 인천에서 꼭 3시간이 걸렸다.
근처 식당에서 7.000원짜리 곤드레 나물밥을 맛있게 먹고 등산 채비를 하는데 계속 가랑비가 내려 등산을 주저하게 만든다. 모처럼 계획을 세워 온 터라 일회용 비옷을 사서 걸치고 등산을 시작했다.
이정표에는 가파른 경사의 오르막길이 50분쯤 걸리고 쭉 이어진 억새밭 능선(稜線)을 걸어 정상까지 다녀오려면 3시간 정도 걸린다고 나와 있다. 처음부터 가파른 길의 연속인데 땅과 나뭇잎이 젖어있어 미끄러워서 오르기가 쉽지 않다.
30분쯤 헉헉거리고 오르는데 밥을 먹고 곧바로 오른 탓인지 숨이 가쁘고 힘이 들어 10분쯤 오르다가는 쉬기를 반복하게 된다. 내려오는 사람에게 능선에 거의 왔냐고 물으니 아직 1시간은 더 올라야 한다고.....
집사람과 눈치를 주고받다가 결국 포기하고 되돌아서고 말았다.
우리 두 사람의 변명은.... 비가 온다. 길이 너무 미끄럽다. 넘어지면 다치기 쉽다. 다음 스케줄에 시간이 쫓기게 된다.
나중 날씨 좋을 때 다시 온다..... 훌륭한 변명꺼리였다.
등산을 포기하고 내려와서 몇 해 전, 친구들과 와서 먹었던 동해안의 생선회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고 집사람에게 자랑했던 ‘임원항(臨苑港)’의 횟집으로 내비(Navigation)를 맞추었다.
일단 삼척(三陟)으로 가서 동해안을 끼고 남쪽으로 30분쯤 달리면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경계선 부근에 자그마한 임원항이 있고, 작은 횟집이 수십 개가 붙어있는 회 골목이 있다.
3만 원을 냈더니 제법 큰 민어 한 마리에 쥐치 3마리, 오징어 두 마리를 썰어내고 매운탕도 따라 나오니 가격이 매우 저렴한 셈이다. 이곳 회의 특징은 냉면 그릇에 양배추, 상추, 깻잎 등 채소를 아주 가늘게 썰어서 담고는 그 위에 콩가루를 듬뿍 넣어 주는 것이 특징이다. 회를 상추와 깻잎으로 쌈을 싸서 먹다가 남은 회를 냉면 그릇에 쏟아붓고 초고추장을 넣어 버무려서 먹는 것이 이곳 방식인데 그렇게 고소하고 입맛에 맞을 수가 없다.
이곳은 시골이라 절대로 양식어류는 취급하지 않는, 순 자연산이라고 자랑한다.
매운탕도 아주 맛이 있었는데 우리 부부는 제법 회를 잘 먹는 편인데도 둘이 실컷 먹고도 남을 정도이니 무척 싼 편이다.
어스름 녘에 강릉을 향해 차를 달리니 잘 뚫린 동해고속도로 덕분에 1시간 남짓 만에 강릉에 도착한다. 하룻밤을 강릉에서 자고 이튿날 토요일, 장모님이 싸주시는 푸짐한 시골인심을 바리바리 차 트렁크에 싣고 룰룰룰...
인천을 향해 달렸던 아름다운 추억이다. <2014.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