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전 통일 연구원장 손 기웅 객원 논설위원이 4.27일 올린 글입니다. 이 글을 문빠들이 보면 氣絶招風할 것 같아 소개하니 음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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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에 한 번 쓰는 글, 소중한 공간을 더 이상 문재인 씨에 할애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쓸 수밖에 없다. 그의 남은 임기 십 여일, 그를 뇌리에서 지울 조용한 시간으로 보낼 꿈을 접을 수밖에 없다. 문 정권 아래 쓰는 그에 관한 마지막 글에 ‘대통령’이란 칭호를 지운다.
(도보다리 회담모습)
잘했건 못했건 대통령의 공과에 대해서는 시시비비로 평가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일·대북정책의 관점에 있어서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에게 꼬박꼬박 ‘대통령’ 직함을 붙여왔다.
어찌되었건 국민 41.1% 지지를 얻어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임을 지척에 두고 다시는 그를 대통령이라 칭하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를 만들고, 최악의 독재자로 폭압적으로 군림하며,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핵무기를 개발하고 도발을 멈추지 않는 김정은이 존경한다는 사람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 씨가 김정은에게 작별 편지를 보냈고, 김정은이 “문 대통령의 고뇌와 수고, 열정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경의를 표하며 문 대통령을 잊지 않고 퇴임 후에도 변함없이 존경할 것”이라 답해왔다고 자랑스럽게 공개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편지 교환이 ‘깊은 신뢰 속에서 이뤄진 것’이라 환심장(換心腸)을 보였다. 깊은 신뢰라, 그저 우습다.
김여정을 위시한 주위 사냥개들을 풀어 대한민국 대통령을 인간 취급하지 않고 물어뜯었던 김정은이 이제 와서 존경한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그런데 사실은 존경할만하다. 문 씨가 그에게 엄청난 선물을 베푼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독재에 부역한, 김정은에게 ‘일대종사(一代宗師)’였기 때문이다.
문 씨의 집권 기간은 김정은에게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아버지의 급사 이후 권력은 잡았으나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남북관계는 단절되었다. 경제난 극복이 무망한 상황에서 오직 핵 무력 완성으로 정통성을 다지고 권력을 틀어쥐고자 한 김정은이다. 그 과정에서 김정은은 악의 상징으로 세계 정치무대에 자리잡았다.
그런 김정은에게 문 씨가 대문짝 길을 화려하게 열어주었다. 가장 증오하면서도 가장 두려워하는, 세계 최강 미국 대통령을 김정은이 세 번씩이나 만나게 해주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이루지 못한 대위업을 달성하는데 마중물 역할을 문 씨가 자임하고 해낸 것이다. 지구상 최강의 미국 대통령과 일대일로 마주앉아 담판하는 김정은, 북한 주민들이 “아이고 우리 수령님” 하며 눈물을 뿌리며 열광하지 않을 수 없는 그 가슴 벅찬 장면을 문 씨가 연출해주었다.
21세기에 그것도 사회주의를 표방한 인민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을 3대째 세습하며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했던 김정은이었다. 두발이나 복장으로, 걷는 모습과 행동거지에서 절대 수령 할아버지 흉내 내기, 인민들에게 김일성 환영 되살리기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다. 체중조차 줄일 수 없었다.
그런 김정은이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면서 북한 지도자로 공식 등장하여 인정받도록 한 것이다. 권력 정통성 확립 기둥에 콘크리트를 붓고 다져주었다. 기대했던 대북제재를 풀기 위한 미국 설득에는 실패했지만, 문 씨는 김정은에게, 한 푼 돈도 들지 않는 ‘존, 경, 한, 다’는 립 서비스 정도는 원한다면 몇 번이고 해줄, 충분히 가치 있는 쓰고 버리는 돌, 사석(捨石)이다.
퇴임 후 문재인 씨는 아마도 김정은의 ‘존경’ 편지를 금박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액자에 고이 모시고, 셀프로 곧 부부가 받을 무궁화대훈장과 함께 벽에 걸어둘 것이다. 그 곁에는 그의 평양 연설, 판문점 도보다리 대화, 김정은과 손잡고 판문점 분단선을 오간 장면, 공동 합의문 서명 사진들이 놓일 것이다. 감동 감회에 잠겨 영광의 순간을 내내 떠올리고 음미하며, 김정은 편지를 대대손손 가보로 물려줄 결심을 할 것이다.
자신의 ‘분단 부역’ ‘독재 부역’ 5년 동안 벼랑 끝에 몰린 대한민국 안보,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던 북한 주민, 이산가족과 북한이탈주민의 한(恨)은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아직도 북한에 붙잡혀 있고, 총 맞고 화형당한 우리 국민 역시 남의 나라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뿌연 안개 속에 서서히 그러나 점점 또렷하게 보이는 듯하다. 북한 주민이 자유를 찾는 날, 슬그머니 액자를 떼어내 감추는 문재인 씨의 황망한 모습이.
출처 : 최보식 의 언론(https://www.bos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