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히포크라테스는 다른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평생을 바쳤지만 정작 자신은 생전에 말 못할 ‘질병’을 안고 있었다.
그의 고민거리는 탈모증. 기록에 따르면 히포크라테스는 아편·고추냉이·비둘기 배설물 등 갖은 성분을 혼합한 약재를 만들어 자신의 머리 숱을 되살리려 애쓴 것으로 돼 있다.
대머리로 불리는 남성형 탈모증과의 ‘전쟁’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흔히 현대인들만의 고민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탈모증은 기원 전부터 인류를 괴롭혀왔다. 고대 이집트 무덤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4000년경 파라오 차타가 탈모증으로 고생하자 그의 어머니가 특별히 치료제를 만들어준 것으로 돼 있다.
또 로마의 영웅 시저도 불에 태운 생쥐, 곰의 기름과 사슴의 골수 등을 탈모 치료제로 썼다고 전해 온다. 그를 위해 치료제를 만들어준 사람은 연인이었던 클레오파트라였다.
인류는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머리와의 전쟁에서 변변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한때 독일 군인들은 말의 타액을 대머리 치료에 이용하기도 했고, 미국 농부들은 소에게 머리를 핥게 함으로써 대머리를 치료할 수 있다고 믿기도 했다. 온갖 속설과 민간요법이 난무했지만, 머리 숱으로 고민하는 인류는 줄지 않았다.
은밀한 경로 통해 조금씩 국내 유통
하지만 20세기 들어 대머리와의 전쟁에서 점차 승전보가 들리고 있다. 의학의 발달로 대머리의 발생 원인을 상당 부분 밝혀냈고, 이에 근거한 새로운 약들이 속속 선보이거나 개발 중이다. 또 유전자에 대한 최근의 비약적인 연구 성과는 대머리의 완전 정복도 조만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낳고 있다.
현재 남성형 탈모증 치료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약은 프로페시아(Propecia)다. 다국적 제약회사인 MSD(Merk Sharp & Dohme)가 개발해 지난 97년 12월부터 시판하고 있는 이 약은 세계 최초의 먹는 대머리 약으로 미국에서만 50만명, 전 세계적으로는 37개국 100만명의 탈모증 환자들이 복용하고 있다. 현재 대머리 전문 치료제로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약은 프로페시아와 지난 88년 시판 허가된 미녹시딜(미국에서는 ‘로게인(Rogaine)’이라는 상품으로 판매) 밖에 없다.
이 약은 오는 5월 한국시장에서 정식 시판을 앞둬 국내 탈모증 환자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아시아의 경우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는 이미 시판되고 있으나, 국내에선 ‘수입 의약품도 국내에서 별도의 임상실험을 거쳐야 한다’는 까다로운 법 규정 때문에 수입이 지연되다 올해 초 법 개정으로 최근에야 수입 허가가 났다. 요즘 인터넷 대머리 동호회 사이트에는 이 약의 효능과 기전(작용 메커니즘)에 대한 숱한 정보가 떠 있고, 이미 복용해본 사람의 감상문까지 올라와 있다.
MSD 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프로페시아는 의사들의 처방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는 전문 의약품이지만, 최근 들어 관심이 높아지면서 은밀한 경로를 통해 조금씩 국내에 유통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MSD의 설명에 따르면 프로페시아는 이미 과학적인 임상실험에서 효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경미하거나 중간 정도의 탈모증이 있는 남성 1879명을 대상으로 한 3건의 위약(僞藥) 대조실험(환자는 알 수 없는 가짜 약과 함께 투여해 결과를 비교하는 시험)에서 프로페시아를 24개월 복용한 사람 중 83%는 정수리 부분의 모발 수가 그대로 유지되었고, 눈에 띨 정도로 머리카락이 다시 자란 사람도 66%에 이르렀다고 한다. 반면 위약 투여 대상자들은 28%만이 모발 수가 그대로 유지되었고, 모발이 다시 자란 사람은 7%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또 정밀 사진 분석 결과 프로페시아는 성장기에 있는 모발의 수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도표 참조). 즉 모발의 성장 주기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모발의 두께, 길이, 성장 속도, 성장 기간 등 전체적인 모발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프로페시아가 대머리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은 대머리 발생의 근본 원인인 디하이드로 테스토스테론(DHT)의 생성을 억제하기 때문. DHT는 남성호르몬의 일종인 테스토스테론이 5α환원효소의 작용을 받아 바뀐 물질로, 탈모 유전 요인을 갖고 있는 모낭을 점점 위축 소멸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로페시아는 이 5α환원효소를 억제해 DHT의 생성을 막는 작용을 한다.
“100명 중 한명 꼴로 성욕감퇴등 부작용”
국내 전문가들은 프로페시아가 그동안 나온 대머리 치료제 중에 가장 효능이 확실하지만 한계도 있다고 강조한다. 한승경 박사(우태하·한승경 피부과의원 원장)는 “프로페시아를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복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복용을 중지하면 수개월 후에 다시 원상 회복되기 때문에 일시 복용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다”며 “100명 중 1명 정도는 발기부전, 성기능 감퇴 등의 부작용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경희의료원 피부과 심우영 교수는 “프로페시아는 정수리 부위에만 효력이 나타나고 완전 대머리들에게는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는 MSD 코리아측도“임상실험 결과 프로페시아는 전체 7단계 대머리 진행 과정 중 2∼5단계에만 듣는다”고 설명했다. 프로페시아는 매일 1㎎ 한 알을 먹으면 되는데, MSD측은 한달 분을 5만원 가량에 시판할 계획이다.
과학적인 임상실험을 거친 먹는 대머리약은 현재 프로페시가 유일하지만 개발 중인 약도 있다.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그락소 웰컴이 개발 중인 대머리 약으로 현재 2상까지 실험을 마찬 상태다. 그락소 웰컴 코리아 측은 “올해 3상에 들어갔는데 앞으로 2∼3년 후면 상용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약은 ‘GL198745’라는 물질로 5α환원효소의 생성을 막는 기전은 프로페시아와 똑 같다. 하지만 5α환원효소를 2중 차단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 그락소 웰컴측의 설명이다. 5α환원효소의 경우 1형, 2형 두 종류가 있는데, 프로페시아는 2형 효소의 생성만 억제하지만, 이 물질은 1형 효소까지 억제함으로써 더 효과가 뛰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바르는 대머리 약으로 폭넓게 쓰이고 있는 미녹시딜의 경우는 아직 기전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물질 역시 본래는 혈압치료제로 개발됐다가 탈모 방지제로 쓰이게 된 경우. 혈관 확장 및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탈모 방지 및 발모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녹시딜 제제는 현대약품의 마이녹실, 중외제약의 볼두민, 한미약품의 목시딜 등 다양한 제품명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국내에서 허가된 유일한 발모 의약품이었다. 이 미녹시딜 제제는 국내에서 연간 20억원대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에서 ‘대머리 치료제’로 알려져 온 것은 이러한 전문 의약품보다는 의약부외품이나 식품류들이었다. 현재 연간 60억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의약부외품 시장에는 주로 바르는 발모제들이 인기를 끌어왔는데,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인 그로비스(경인제약)를 비롯해 태평양제약의 닥터모, 제일제당의 모발력, 조선무약의 모생천, 한독화장품의 스펠라 707 등 다양한 제품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또 발모 식품류로는 검정콩 다시마 효모 등을 원료로 한 모리나가(제조원 H&C)가 있다. 모리나가의 경우는 일본인들이 많이 찾아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 사이에 필수 구매품으로 떠오를 정도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나온 탈모 방지나 발모제의 경우 100% 효능을 보이는 것은 아직 없으며, 자신에 맞는 제품을 꾸준히 사용하는 게 좋다고 조언하고 있다. 특히 앞으로 출시될 프로페시아 같은 전문 의약품은 의사 처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전문의약품은 의사 처방 필수
앞으로 대머리 완치의 길을 열 것으로 기대되는 것은 유전자 이식술. 이와 관련해 작년 10월 미국 코넬대 웨일 의대팀의 동물실험 결과는 언론의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연구팀은 털 발육에 관여하는 ‘소닉’이란 이름의 유전자를 보유한 바이러스를 어린 쥐의 털 없는 부위에 주입했는데, 며칠 뒤 모공에서 검은 색깔의 털이 돋아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연구팀은 “머리카락을 나지 않게 하는 유전자 변이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휴면 모공을 활동 모공으로 바꾸는 연구에 성공하기는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결과를 보도한 뉴욕타임스도 “아직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을 거치지 않아 결과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사람의 대머리 부위에 특정 유전자를 이식할 경우 머리카락이 다시 자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또 작년 11월에는 초보적인 두피세포 이식에 성공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당시 과학전문지인 네이처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 더럼 대학의 콜린 자호다 박사가 자신의 모낭 밑 두피세포를 아내의 팔에 이식해 털을 자라게 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당시 자호다 박사는 핀 머리 크기만큼 두피세포를 떼어내 다섯가닥의 털을 자라게 했는데, 부인의 팔에서 새로 난 털은 남편의 머리카락 성분과 정확히 일치했다고 한다. 당시 실험은 모발세포가 여타 세포와 달리 이식에 의한 거부반응이 없다는 학설을 뒷받침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대머리의 완전 정복 가능성에 대해 심우영 교수는 “대머리의 주요 원인이유전적 요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 탈모에 관련된 유전자가 다 밝혀진 것은 아니다”며 “코넬대 연구팀이 이식한 소닉 유전자도 모발 형성 초기에만 관련된 유전자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탈모와 발모의 ‘신비’를 풀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머리와 유전의 연관성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남성형 탈모증의 빈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가족력과 대머리 유발 유전자간의 정확한 연관성에 대해 아직 풀어야 할 의문점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형 탈모가 유전적 요인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은 거의 정설로 굳어져 있다.
이와 관련, 지난 3월 초 미국 피부과학회에서 경희의료원 심우영 교수팀이 발표한 논문은 흥미롭다. 심 교수팀이 97년 12월부터 99년 7월까지 경희의료원 동서건강진단센터를 방문한 1만132명(남자 5531명,여자 1602명)을 대상으로 남성형 탈모증 환자의 유병률을 조사한 결과 전체 유병률은 남성 14.1%, 여성 5.6%로, 남성의 유병률이 여성보다 거의 3배 가까이 높았다.
종래에는 남자의 경우 대머리가 우성유전, 여자는 열성유전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에는 다인자적 유전, 즉 대머리 유전자가 많을수록 대머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이 유력하다. 탈모증의 가족력은 남성의 경우 48.5%, 여성의 경우 45.2%로 나타났다. 이 결과만 보면 남성과 여성을 불문하고 가족 중 대머리가 있는 사람은 대머리가 될 확률이 거의 절반인 셈이다. 부친이 대머리인 남성의 경우 80%가 대머리가 된다는 통계도 있다.
남성과 여성은 탈모 진행 과정도 다르다. 남성의 경우 머리 앞 부분에서 시작돼 중앙부로 탈모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들은 주로 머리 중앙부 꼭대기 부위에서 탈모가 나타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 남성형 탈모증 환자들은 젊은층과 여성들 사이에서 급속히 늘고 있다고 한다. 두피 모발관리 전문회사인 스벤슨 코리아 김숙자 사장은 “지난 98년 오픈했을 때는 여성 탈모증 환자가 전체 고객의 8%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30%대로 높아져 탈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을 감안하더라도 환자가 늘고 있다고 판단된다”며 “20·30대 탈모증 환자들도 60%가 넘어 다른 나라 스벤슨과 비교하면 10% 가량 높다”고 말했다.
나라별 대머리 발생비율에 대한 통계는 아직 없지만 인종간 대머리 발생비율을 보면 황인종·흑인종보다는 백인종에서 높다는 게 정설. 탈모에 가장 강한 인종이 아메리칸 인디언이라는 보고도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 MSD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40대 성인남자의 거의 절반이 대머리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고 지적했다. 대머리 치료에 대한 관심도 백인보다는 동양인이 훨씬 높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대머리의 2∼3%만이 치료에 신경을 쓴다고 알려져 있다.
◈모발 이식
효과 확실하지만 시술비 큰 부담
‘먹고 발라도 만족하지 못하면 심어라.’
남성형 탈모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확실하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모발 이식이다. 국내 최고 수준 의사들의 경우 2년간 시술환자가 밀려 있을 만큼 인기를 끌고 있으나 일반인들에게는 1회에 400만∼500만원씩 드는 시술비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모발 이식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은 자가모 이식술. 보통 1000개 정도의 머리카락을 두피와 함께 떼어내 벗겨진 부분에 한올씩 심는 기술이다. 떼어낸 부위는 두피를 잡아늘려 봉합하기 때문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 1000∼1500개 정도의 머리카락을 심는 데 걸리는 시간은 3∼4시간. 조밀도를 높이기 위해 보통 2∼3회 시술한다. 과거의 경우 차표에 구멍을 뚫는 펀처방식을 사용해 출혈이 심하고 흉터가 남았으나 요즘은 정밀한 시술기가 개발돼 출혈과 흉터가 적다고 한다.
고려대 의대 구상환 교수(성형외과)는 “이식수술의 경우 대개 이식한 머리카락의 85∼90% 이상이 제대로 자라지만 이 비율이 50% 이하로 떨어지는 환자도 5∼10% 가량 된다”고 말했다.
대머리가 많이 진행된 사람들은 인공모발 이식도 가능하다. 가격은 개당 3000∼4000원으로 색상과 굵기가 다양해 자신의 머리카락과 유사한 것을 고를 수 있다. 기존 머리카락 뿌리에 인공모를 묶어주는 증모법(增毛法)도 있는데 가격은 800개 단위 20만원 선이다.
이밖에 두피를 통째로 옮기는 두피판피술, 두피축소술, 두피재건술 등의 방법도 있다. 머리카락이 난 부분을 잡아당겨 대머리를 덮거나 귀 위쪽 옆머리를 절개해 이마에 붙이는 시술 등인데 마취가 필요하기 때문에 보통 4∼5일 입원해야 한다.
◈탈모 예방은 어떻게?
충분한 수면에 가공식품 피해야
사람의 머리털 숫자는 약 10만개 정도. 보통 성장기, 퇴행기, 휴지기의 단계를 거치는데 전체 머리털 중 85∼90%는 성장기에 있고, 1∼3%가 퇴행기, 6∼10%가 휴지기에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머리숱이 적어지는 것은 혈액순환이 나빠져 머리카락 성장 주기가 짧아지기 때문. 매일 40∼80개의 머리카락이 빠지면 정상이지만 이 숫자가 100개를 넘으면 대머리가 될 위험이 높다고 한다.때문에 전문가들은 평소의 모발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머리카락은 자기 회복력이 없기 때문에 정상모는 손상되지 않도록, 손상모는 그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보호 손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탈모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바른 식생활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 해산물, 야채류, 과일 등 모발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고 가공식품이나 커피, 담배, 기름진 음식 등은 피하라는 것이다. 또 탈모는 스트레스와도 밀접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모발 특성에 맞는 샴푸를 선택해 매일 머리를 감아주고, 빗질을 자주하는 것도 탈모 방지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현재 국내에는 스벤슨코리아 등 전문 모발 관리업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