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말
플라톤은 자기가 행복한 까닭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 세 가지를 첫째는 자기가 아테네에 태어난 것, 둘째는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난 것, 그리고 세 번째로 그 중 으뜸으로 중요한 것을 꼽기를 자기 스승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에 태어나 그 아래서 가르침을 받은 것을 꼽고 있습니다. 그런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라는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에 의해서 오늘날까지 그 삶과 가르침이 전해지고 있다는 다행스러움을 엿보게 하는 책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변명'입니다.
이 책은 오래 전부터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글낯으로 번역되어 '변명'이라는 말맛 탓에 조금은 가까이 하기 싫은 면도 있지만, 어쨌거나 글을 읽으면 명문이라는 평가를 하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절창들로 이어져 있습니다.
사태의 정황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는 없지만, 미루어 짐작할 때 소크라테스는 당시의 현학적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사회의 지도층들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당시 철학의 주류는 소피스트들이었습니다. 자연철학의 왕성함 뒤에 이어지는 사회적 풍요 상황에서 철학은 서서히 사회 지도층을 지도하는 교육일반의 성격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회 지도층이 되는 길은 정치에 입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화와 토론이 활발했던 고대 민주정치 상황에서 변론술과 웅변은 교육의 중요한 핵심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술책들이 조금씩 조잡해지면서 소피스트라는 철학의 갈래에 넣기를 꺼려하는 무리들이 생겨났고, 그들을 중심으로 해서 사회체제가 이어졌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소크라테스라는 뛰어난 인물이 나타납니다. 그는 아직도 교육의 한 분야를 이루고 있는 자연철학을 공부하다가 자연스럽게 소피스트들의 한계와 문제점을 보고 그것을 지적하여 올바른 지혜를 추구하는 학문을 세우려는 노력을 하였고, 그 탁월함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뒤따르게 됩니다.
아마 이런 상황에서 소피스트와 지도층 사람들, 그리고 천박한 여론에 의해서 마침내 재판정에 서게 됩니다. 그 재판에서 자신을 변론하는 내용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니, '변명'이라는 말보다는 더 알맞은 다른 말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그 책에 다가서는 데 조금은 더 친근함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 보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으면서 그 가운데 절창이라고 할 수 있는 몇 군데의 글들을 뽑아 간추려 소개하고자 합니다.
고소의 이유:
그러나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나는 그 사람을 상대로 하여 문답을 해가면서 그를 자세히 관찰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고, 이 사람 자신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당신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설명해 주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나를 미워하게 되었으며,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도 또한 나를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와 헤어져 혼자 돌아오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과 나는 똑같이 선(善)과 미(美)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 사람보다 지혜롭다. 왜냐하면 그는 모르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나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보다 지혜롭다.'라고.(40-41쪽)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도 신의 명령에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우리 나라 사람이건 다른 나라 사람이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그를 찾아가 그의 지혜를 조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지자(知者)가 아닌 경우에는, 나는 신을 도와 그에게 그가 지자가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이와 같은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나라의 일이나 집안의 일에 관심을 기울일 시간이 없어 몹시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그것도 신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44쪽)
멜레토스(Meletos)가 나를 공격한 것도, 아뉘토스(Anytos)와 뤼콘(Lycon)이 나를 공격한 것도 모두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멜레토스는 시인들을 대표하여, 아뉘토스는 장인(匠人)들과 정치가를 대표하여, 그리고 뤼콘은 변론가들을 대표하여 나를 미워하고 있는 것입니다.(45쪽)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나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으며,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만일 나를 유죄로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멜레토스나 아뉘토스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나에 대한 중상과 질투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중상과 질투는 지금까지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 일은 결코 나에게서 끝나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55쪽)
조금이라도 품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옳은 일인가 옳지 않은 일인가, 선량한 사람이 할 일인가 악한 사람이 할 일인가 하는 것만을 생각해야 하며, 그 일을 하면 살게 되느냐 죽게 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55쪽)
재판의 결과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생각: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나를 죽이신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나를 해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러분 자신을 해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나는 멜레토스(Meletos)나 아뉘토스(Anytos)에 의해 해악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나를 해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善)한 사람이 악(惡)한 사람에 의해 해침을 당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를 죽게 할 수도 있고 나를 추방할 수도 있으며, 나에게서 시민권을 박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악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즉, 다른 사람의 생명을 부정한 방법으로 빼앗으려는 것이야말로 커다란 악이라고 생각합니다.(60쪽)
나는 신(神)에 의해 이 나라에 보내진 등에( )와 같은 사람입니다. 비유컨대, 이 나라는 혈통이 좋고 몸집이 크기는 하지만 몸집이 크기 때문에 동작이 둔하여 깨어나기 위해서는 등에( )를 필요로 하는 그런 말(馬)이며, 나는 신에 의해 그 말에 붙어 있는 등에( )입니다.(60쪽) *빈 괄호 안에는 등에를 뜻하는 '맹(벌레 충 변에 망할 망이 있는)'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 글자는 인터넷에서 지원이 안 되어 그냥 빈 괄호로 두었습니다.
내가 뽑는 명구(名句)
내가 패소(敗訴)한 것은 부족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언변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뻔뻔스러움이나 몰염치함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즉, 여러분이 매우 듣고 싶어하는 것들-울고 비통해하고 한탄하는 등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늘 들어 온,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78)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비굴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살아 남기보다는 나의 방법을 취함으로써 죽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78)
그러나 여러분, 어려운 것은 죽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악(惡)을 피하는 것입니다. 즉, 악(惡)에게 붙잡히지 않는 것이 죽음에게 붙잡히지 않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악(惡)은 죽음보다 발걸음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늙고 발걸음이 느리기 때문에 그 느린 것(죽음)에 붙잡혔습니다만, 나를 고소한 사람들은 영리하고 발걸음이 빠르기 때문에 그 빠른 것(악'惡')에 붙잡혔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여러분들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고 이곳을 떠나가지만, 그들은 진리에 의해 흉악과 부정(不正)의 죄가 있다는 판결을 받고 이곳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에게 내려지는 벌을 면할 수 없듯이 그들도 그들에게 내려지는 벌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일들은 운명으로 정해진 일이며, 또 그것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78-79쪽)
이제 나는 나의 유죄 쪽에 투표한 분들에게 예언을 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인간이 가장 훌륭하게 예언할 수 있는 시기, 즉, 바야흐로 죽으려 하는 시기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79쪽)
만일 여러분이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여러분의 사악한 삶에 대한 비난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릇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방법으로 비난을 막는 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며 훌륭한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난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용이한 방법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가능한 한 선(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에게 사형 투표를 한 분들에게 드리는 나의 예언입니다.(79쪽)
닫는 말.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장엄하기까지 하다고 할 만한 극적인 것이었습니다. 그의 변론 내용은 결국 아테네 민주정치의 허약함을 드러내고, 그 정치체제 안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단죄하고, 마침내 아테네 민주정치가 어떻게 멸망할지를 보여주는, 현실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하지만, 소크라테스에 의해 아테네의 모순투성이 민주정치가 사형판결을 받고 있다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위대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면, 이 여름이 그만큼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이 책을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