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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금강경 강좌
http://www.jungto.org/tv/tv1_03.html?sm=l&page=6&p_no=31
제 6 正信希有分 : 바로 믿기가 희유하다 (3)
法尙應捨 법도 응당히 버려야 된다. 거기에 도달하게 되면 그 도달한 그 부처님 법.
즉 나를 운반해 준 그 뗏목마저도 놓아 버려야 되는데 하물며
何況非法 법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말이오. 부처님 법도 놓아 버려야 하는데.
하물며 부처님 법도 아닌 부모니, 자식이니, 형제니, 돈이지, 재물이니, 명예니,
욕망이니. 이런 것은 말 할 것도 이런 얘기요.
자~ 그래서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법은 우리를 저 니르바나의 세계로 인도해 주는 뗏목과 같고
배와 같다. 그러면 버려라 하니까 건너기도 전에 버려버려? 아니겠죠. 건널 때는 어떻게 하고 건넌다? 의지하고, 타고 건넌다. 건넌 뒤에는 버린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계율은 수행을 할 때는 철저하게 지키고. 깨달음의 길에 도달하면
그걸 붙들고 있다고 계를 지키는 게 아니다 이거야.
그것을 우리는 지팡이와 같다 이렇게 생각 할 수 있어요.
건강한 사람은 지팡이가 필요합니까? 없습니까? 필요 없죠? 그냥 걸어 다니면 되.
그런데 다리를 다쳐서 절뚝이게 될 때는 지팡이가 있어야 되. 지팡이가 있는 게 나아요?
없는 게 나아요? 있는 게 나아. 그러니까 지팡이에 의지해서 걷게 된다.
그러다 다리가 다 낳으면 지팡이는 버려야 되요? 계속 집고 다녀야 되요? 버려야 되요? 버려야죠.
다 나았는데도 계속 지팡이를 계속 집고 다닌다. 왜? 고마우니까. 너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이렇게 나았겠냐? 그래서 계속 집고 다니면 사람들의 뭐라 그래요?
저 다리병신 이런단 말이에요. 병신이라 그런단 말이에요.
그러니 병이 났을 때는 의지를 하고. 병이 나으면 버린다. 약도 마찬가지죠.
병이 났을 때는 어떻게 하고? 먹고. 병이 나았는데도 계속 먹어요? 아니에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공부를 할 때 아직도 어리석어서 깨우치지 못했을 때는 스승에게
의지하고. 스승에게 복종하면서 자기의 아상을 내려놓고, 자기의 아상을 깨뜨리고,
그래서 니르바나의 경지로 간다. 그러면 스스로 그러한 경지에 도달했을 때는
바로 스승에게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 고마움은 있지만은 계속 업고 다니면 안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그 자기가 도달해야 될 자리는 바로 자기가 주인이 되는 자리다.
누구도 그 자리는 대신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이 말이오.
바로 자기 발로 걸어야 하고, 자기 눈으로 봐야 한다. 자기가 눈이 어두울 때는 다른 사람의 눈을
빌리고. 자기가 다리를 다쳤을 때는 지팡이를 의지해서 하지만은. 궁극적인 목적은 영원히
그렇게 살라 그래요?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가 걷고 자기가 볼려 그래요?
자기가 걷고 자기가 보면 된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처음에 절에 왔을 때는 스님에게 물어 볼 것도
많고, 스님에게 도움 받을 것도 많고. 자식 문제, 남편문제 ,갖가지 조언을 얻을게 많지만은.
열흘을 다니고, 한 달을 다니고, 일 년을 다니고, 이년을 다니고 하면. 물을 것도 없어지고 도움 받을 것도 없어져야 되. 다 자기가 알아서 처리 할 수 있어야 되. 그러면 어디로 가야 되느냐?
그 은혜는 어떻게 갚는 거냐? 그건 스승에게 갚는 게 아니에요. 부처님에게 갚는 게 아니다 이 말이오.
바로 다른 사람에게. 아직도 눈 먼 사람. 아직도 절뚝거리는 사람. 아직도 병든 사람에게
그 공덕이 베풀어 져야 한다. 이걸 뭐라 그러느냐? 회향한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어요? 일체중생에게 회향한다.
그러니까 부처님한테 와서 뭘 잘하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왜? 부처님은 이미 구족하신데 뭐가 부족해서 얻으려고 그러겠어요? 부처님은 아무것도 얻을 바가 없단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괜히 얻고 싶으니까 아양 떠는 거죠. 아양 안 떨어도 여러분들이 부족하면 그 분께서는 주시죠.
왜? 주시는 것을 원으로 세우신 분이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중생을 구제하는 일을 하면 부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냐? 부처님 앞에 와서
알랑방구 끼는 것 보다 중생에게 나아가는 걸 부처님은 더욱더 좋아하신다.
왜? 부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이 그 일 이니까. 그거를 대신해서 해 주니 얼마나 좋아하시겠어요?
그죠? 그러니까 뒤를 팍팍 밀어 준단 말이오.
그래서 우리가 계속 부처님의 좋은 말씀을 듣고 부처님의 은혜를 입으면서도 죽을때까지 부처님한테
매달려서 이거 해 주세요 저거 해 주세요.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 주세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에요? 여러분들 죽을 때까지 해달라는 소리만 하고 죽잖아. 이게 죽을 때까지 지팡이 집고 다니는 사람이에요. 지팡이 빨리 벗어 던져야 되. 그러니까 부처님한테 해 달라 하는 게 지팡이 집고 다니는 거 의지하는
거란 말이오. 처음에는 하도 답답해 의지했다 하더라도 불법을 알고 깨닫고는 홀로 서야 된다.
홀로 서는 게 아니라. 남의 지팡이가 되 줘야 된다. 남의 의지처가 되. 중생의 의지처가 되 줘야 되.
그래서 부처님께 이리 말해야 된다. 앞으로의 기도는 이래야 되. /부처님 가만히 계십시오. 이제 제가 다 컸으니까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제가 하다가 하다가 안 되는 일이 있으면 그 때 부처님께서 하시고. 뭐 이정도 일감이야 제가 다 처리할 께요./ 이렇게 해야 될 거 아니오. 자식도 크면 부모님한테 이렇게 말해야 되요 안 돼요? 말해야 되지.
그런데 요즘 자식들은 부모가 80이 됐는데도 아직도 그거 쳐다보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쳐다보고 있어. 죽은 뒤에 베개 밑에 뭐 들었나? 그것까지 쳐다보고 있어요. 이러니 이게 안 되죠.
나이가 스무 살이 넘으면 이제는 부모를 봉양하려고 생각해야지. 부모한테 얻으려고 하면 안 된다.
절에도 마찬가지에요. 젊은 스님들은 노스님을 봉양하려고 그래야죠?
그런데 노스님이 70이 되고 80이 되고 90되도, 노스님 그늘에 뭘 얻어먹으려고.
그런 사람들도 참 많아요. 잘못된 생각이에요.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서는 안 된다.
스승이 우리에게 도와주는 건 뭘 도와준다? 깨우치고 가르침을 도와주고. 경책하는 게 도와주는 거다. 나머지는 알아서 해야 되는 거요.
그런데도 여러분들이 뭘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에 자기가 잘 살다가 공연히 물어가지고 도움을 얻고는 나중에 시간이 흘러가면 안 물으면 아무것도 결정을 못해. 시간이 경과되면 연탄 불 가는 것까지 물어봐야 되. 물어보는 거 좋아하면 나중에 그렇게 되요. 한 번 물어보고 끝나야 되. 한 번 물어보고
그걸 답을 얻으면 그걸로 딱~ 인생이 끝나야 되는데. 몇 번씩 물어보잖아.
여러분들 여기 보면 ?보살님 뵐 때도 한 번 딱 물어보면 그 다음 인생이 다 끝이 나야 되는데.
조금 있다 가서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그러면 그게 좋은 약았지만은. 그 태도 때문에
그것이 도리어 독이 된다 이 말이오. 한 번 물어봤으면 그걸로 해답을 찾아야 되고. 그걸 끝장을 봐야
된단 말이오. 그런데 하기는 싫고. 그죠? 자꾸 물어서 해결하려고 그래. 지식은 물어봐도 괜찮죠?
그러나 화두는 물어본다고 되는 게 아니란 말이오.
수행은 묻는다고 되는 게 아니란 말이오. 그걸 꾸준히 실천을 해서 증득을 해야지.
그리고 다만 점검 받을 때 필요하지. 뭘 자꾸 물을게 있겠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점치러 다니는 사람은 연연히 물으러 가야죠. 또 연연히 물으러만 가요? 월월이
물으러 가야 되고. 나날이 물으러 가야 되잖아. 그죠? 그게 병이다 이거야. 병. 그러니까 여자분들은
늘 남자한테 물어서 사니까 남자가 죽어버리면 어이 살고 걱정이 된단 말이오. 제가 아는 분 중에 이런 분이 계세요. 남자가 너무 부인을 사랑해요. 회사 끝나면 집에 금방 들어와요. 절대 딴 사람 만나고
친구도 안만나. 왜? 부인이 너무 좋으니까. 집에 오면 일도 거들어 주고, 직장도 다니던 거 못 다니게 하고. 다 옛날에 연탄 뗄 때 연탄까지도 남편이 주문해 다 넣어주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말 할 때
야~ 저런 남편하고 하루만이라도 살았으면 좋겠다. 하루만이라도 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 할 만큼 잘했다 이거요.
그런데 그 남편이 40 한두살인가 직장에서 과로로 탁 쓰러져 그냥 죽어버렸어요. 요즘 말하면 순직을 한 거죠. 그런데 이 부인이 원래는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남편하고 한 20년 살도 보니까.
아무것도 할 줄을 모르는 거요. 어떻게 해야 될지. 그리고 또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소개해 줘도
사귈 수가 없어. 왜? 남편하고 비교가 되니까.
그러니 그런 남편이 이 여자를 행복하게 한 거요? 평생 속박하고 있는 거요? 평생 속박하고 있는 거요. 죽은 뒤에 귀신이 됐어도 남손 못 데게 하는 거죠. 왜? 뭐가 방해를 해도 본인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요. 그러니 그런 게 좋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예?
자기가 장사해서 자기가 남편 벌어 먹이던 사람은 남편 죽으면 어때요? 더 좋은 일 생기지.
그러니 봐. 여러분들은 보호받는 게 좋은 줄 아는데. 그렇지가 않다 이거요.
보호받는 게 좋은 게 아니에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요.
내가 남을 보살피는 게 주인이고. 내가 남을 사랑해 주는 게 주인이에요. 사랑받는 거,
보호받는 거는 애완용 동물이다. 애완용 동물은 주인이 있을 때는 귀여움을 받지만은.
주인 없어지면 그냥 똥개보다도 더 못해. 그러니 이게 생각을 좀 바꿔야 되요.
그래서 제가 요즘은 차를 안타지만 전에는 신도님들 차를 타거든요.
그러면 남편이 착실한 사람들은 부인이 운전을 잘 못해요. 시내만 겨우 다녀.
왜? 고속도로나 어디 가면 다 해주니까.
그런데 그게 참 좋은 거 같지만은. 그럼 자기 혼자는 아무데도 못가. 시장이나 왔다 갔다 하지.
스님이 딱 탔다, 그러면 좀 다르죠. 남편이 타면 남편이 어떻게 합니까? 문도 열어주고, 태워다 주고, 정비도 남편이 하고, 체인도 남편이 감아주고. 다 그러잖아 그죠?
스님이 딱 타면 어떻게 해야 되나. 자기가 다 해야 되지. 자기가 이쪽으로 와서 문 열어 나 태우고,
자기가 가고, 체인도 눈 오면 누가 감아야 된다? 자기가 감고. 자기가 지도 보고. 자기가 찾아가.
스님 모셔다 주고.
그러니까 남편에 비하면 스님이 나쁜 사람이잖아 그죠? 그런데 한 두세 달만 타고 다니면 서울 시내
지리가 모르는 데가 없고, 고속도로 못타는데 가 없고 그래. 그러니까 고속도로에서는 80km 주행하지 마라 하니까 80km 딱 놓고 이렇게 다녀. 그러면 사고 더 나요. 연습을 한 130 140씩 팍 팍 달리는
연습을 딱 해서. 그 다음에 80km씩 조용히 달려야 뭘 한다? 사고를 막을 수가 있다 이 말이오.
제 말뜻 알겠어요? 그래야 위급할 때는 휙~ 무슨 대응을 하지.
네 트럭 뒤에 똥구머리에 이렇게 운전대만 딱 잡고 덜덜덜덜 떨고만 있으면 사고가 나는 거요.
그러니까 일단은 해 놓고 해 놓고 그 다음에 지켜야 된단 말이오. 연습을 딱 해 놓고 그 다음에.
그러니까 140이든 160이든 달릴 수 있는 능히 힘을 길러놓고 이제 얼마를 달린다? 80km만 딱
달리면 걱정이 없단 말이오.
그러니까 법규를 지키지 마라가 아니라 법규를 지키되 배우기는 배워놓고 거기에 법규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 응급한 상황, 긴급한 상황에 대응을 할 수 있다가 있다.
그런데 그건 겁이 나서 못하잖아 그죠? 빈 도로, 도로가 비었거나 딴데 가서 연습을 좀 해야 되는데.
그런데 스님은 떡 타면 연습하시오 이래요. 아이고 안 됩니다.
스님 탔으니까 죽지는 않을 거야. 한 번 해 봐. 그래요.
그러니까 제가 생각 할 때는 자립심을 키워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아이들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여러분들 아이들에게 과잉보호를 하니까 애들이 자립심이 없어지는 거요.
그러니까 일도 시키고. 뭐도 하고. 하다보면 다리가 부러질 때도 있고 손가락 다칠 때도 있고 그러죠. 자전거를 배울려면 넘어지면서 무릎 깨는걸 각오 안하고 어떻게 배웁니까? 자~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여러분들을 주인 되게 하는 거다.
그런데 왜 이 대명천지에 21C에 접어드는 시대에 태어나서 그렇게 종 되는 것을 좋아하세요? 아직도 이조 500년 동안 종으로 살아온 게 부족해 종 좀 더 돼서 살고 싶어요? 이제 주인으로 살아가는 시대다.
이 상에 집착하는 거에 대해서 하나 더 말씀을 드릴게요. 옛날에 어떤 스님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지극정성으로 용맹정진을 한 번 해 보겠다고 이렇게 결심을 하고 천일기도에 들어갔어요. 보통 우리가
기도를 한다 이러면 4분 정근을 많이 하거든요.
4분 정근이라 하면 하루에 4번 한다 이 말이오. 정진을.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먹기 전까지. 아침 먹고 점심 먹기 전까지. 점심 먹고 저녁 먹기 전까지. 저녁 먹고 자기 전까지. 이렇게 하루에 4번씩.
두 시간씩 하면 8시간, 3시간씩 하면 12시간. 이렇게 되겠죠.
그러면 혼자서 산속에 가서 기도하는 사람이 수행하는 사람이 산에 가서 나무해서 불 때야지. 물 길러 와야지. 또 양식 동네 가서 얻어와 가지고 해 먹어야지. 이렇게 하려면 하루에 두 시간씩 4분정근해도 눈코 뜰세가 없단 말이오. 잠잘 여가가 없어. 해 주는 밥 먹고 가만히 앉아서야 하루에 열 몇 시간이라도 할 수 있지만. 천일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한다고 딱 정진을 했어. 그래 거의 천일이 다가오는 마지막 회향 때가 다 되가는데. 그해 너무 많이 눈이 와서. 이 마을에 내려가서 양식 얻으러 다니기가 어려워서. 그냥 있었단 말이야.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러다보니까 나무도 다 떨어져 버리고.
그러니까 눈이 와서 땔감도 못하잖아. 땔감도 없어지고 음식도 떨어졌어.
도저히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단 말이오.
그래서 마을에 내려 온거요. 마을로 내려와서 몇 십리를 내려왔죠. 내려와서는 양식을 좀 먹고 장작이라도 한 짐 지고 올라 가서 눈이 좀 녹을 때 까지 버티려고 내려왔는데.
다시 또 폭설이 와 버렸어요. 그러니까 올라 갈 수가 없는 거요. 그러니 이게 걱정이죠. 십년공부 도루아미타불이라더니. 아 3년간 천 일간 하루도 안 빠지고 부처님께 공양을 탁 정성을 드려 예불을 드렸는데. 아 이거 막판에 와서 양식 얻으러 왔다가 돌아갈 수가 없으니. 큰일이란 말이오. 그래도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고 사흘 지나고 나흘 지나고 닷세 지나고 이렇게 된거요. 사람들이 말리지만 뿌리치고 올라갔단 말이오.
갖가지 고생을 해서 떡 올라가서 지개를 바쳐놓고 보니까. 아~ 자기 방에 신발이 하나 놓여 있는 거요. 짚신이.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한 거요. 왜냐하면 올라올 때 신발자국이 없었거든요. 그러면
이 사람은 자기 내려감과 동시에 올라왔단 얘기 아니오. 그죠? 그러면 절에는 나무라도 하나 없고, 양식이라도 한 톨 없었으니.이 사람 분명 굶어 죽었단 말이오. 굶어 얼어 죽었죠. 그러니 자기가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사람을 살릴 수 있었는데. 내 안 죽을라고 머뭇머뭇 하다가 사람을 죽였으니. 천일기도가 영험이 있기는커녕 사람을 죽였으니 재앙만 따르게 했단 말이오. 가슴이 철렁해서 후회되는 마음으로 문을 탁 열어 봤단 말이오.
꽁꽁 얼어 죽어 있어야 될 사람이 방이 후꾼후꾼 하게 열이 나는데. 아~ 코를 골고 자고 있단 말이오.
그러니까 문을 탁 닫고 나와서는 이게 무슨 일일까? 나무라고는 자기가 살은 집이니까. 삼년을 살은 집이니까 하나도 없었단 말이오. 그래 이상하다 이래 생각하고 일단은 부처님이 어떻게 돼 있느냐? 삼년간 지극정성으로 하루에 4번씩 기도하던 부처님이 어떻게 됐나 싶어서 법당에 쫓아갔단 말이오. 가서 탁 절을 하고 일어나서 보니까. 부처님이 안 계시는거요. 삼전불을 모셔 놨는데 부처님이 한 분이
안계셔. 딱 보는 순간 머리에 /이자식이/ 딱 생각이 난거요. /이 중놈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쫓아 간 거요. 멱살을 잡고 /야 이놈아. 네가 그래도 명색이 부처님 전에 출가한 중이 돼서.
어떻게 부처님을
불에 뗄 수가 있느냐고./ 그러니까.
옛날엔 다 나무를 깍아 부처님을 조성했잖아 그죠? 이 중이 뗄 게 없으니까 나무를 갔다가 부처님
한 분 모셔다가 떼버렸단 말이오. 그래 부처님을 불에 뗄 수가 있느냐? 이거야. 중이 돼서. 그래 멱살을 잡고 막 씩씩거리면서 두들겨 패고 난리가 났다. 그랬더니 이 자던 나그네가 /아~ 스님. 조금만 조금만 손 좀 놔 보세요./ 급한 일이 있다는 거요. /네가 뭐가 급하냐? /아니오. 조금만 놔보라는 거요. 급하게 하나 찾을게 있다는 거요. 하도 사정을 하니까 뭔가 싶어서 놔 줬어. 놔 줬더니만 쫓아 부엌으로 가더니. 부지깽이를 쥐고는 부엌 아궁이를 뒤져쌌는 거요. 그래서 /야~ 이놈아 또 무슨 미친 짓 하냐?/ 이렇게 방문을 열고 부엌을 쳐다 보며서 그랬단 말이오. 그랬더니 그 나그네가 사리 찾는다. 이런단 말이오. 부처님을 불에 뗐으니 사리가 나오겠어요? 안나오겠어요? 석삼 여덟 말이 나와야지. 사리 찾는다 이러니까. 이 기도하던 스님이 /그 놈의 자식. 마~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냐?/ 이랬단 말이오. 사리 찾는다 하니까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냐? 이러니까 그 나그네가 /어~ 그럼 마저 갔다 떼야 되겠네/ 이랬단 말이오. 그럴 때 탁 깨달았어.
그래 이게 모순이죠. 부처님을 불에 뗐다고 난리다가. 사리 찾는다하는 그 한마디에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냐 이 말이 무슨 말이에요? 그게 무슨 부처냐? 나무토막이지. 이 말이죠. 맞아요? 그러니 자기가 지금 부처님을 불에 땠다고 난리 법석을 피우다가. 금방 또 하는 말이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냐 이랬단 말이오. 그게 무슨 부처냐 나무토막이지 이런단 말이죠. 그러니까 그 나그네가 당연히 나무토막이면
거기 모셔놓고 절 할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없지. 그럼 마저 갔다 떼자 이거요. 그럴 때 자기모순을 봤다 이거야. 그때 확 깨달은 거요.
그러니까 깨달음이라는 것은 이런 모순, 자기 속에 있는 모순, 이게 전도 몽상이란 말이오.
이 모순이 깨지는 거란 말이오. 그런데 우리는 이 모순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한편 나무토막이라고 한편 부처라고 하는데.
그게 정 반대라는 걸 자기가 전혀 몰라요.
자기 속에 있는 모순이 전혀 안 보인다 이거요. 여러분들이 남편에게 대하는 태도나,
자식한테 대하는 태도가 상대편이 볼 때는 완전 얼토당토 안는 거요. 어느 땐 이랬다가,
어느 땐 저랬다가. 본인한테 물어보면 본인은 이것도 똑바르고, 저것도 똑바르고 그랬다 그래.
여러분들 남편이 하는 행동보면 그러죠? 아~ 어떤 때는 이래 말하고, 어떤 때는 저래 말하고.
그래서 본인한테 물어봐라. 양쪽 다 맞지.
잘 해봐요. 남편이 뭐라 그러는가. 이게 또 미쳤나? 뭣할라 그래? 이러죠. 그래 또 알았다 그러면
관심안가지면 이게 또 삐졌나? 왜 나한테 말 안 하노? 이러죠. 또 관심가지면 어때요? 이런단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중생세계에선 이래도 문제가 되고 저래도 문제가 되니까. 여러분들 늘 하는 얘기가 어떻게 하란 말이냐? 그죠? 이러자 그래도 싫다. 저러자 그래도 싫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아이들 가르칠 때 그러죠? 공부안하니까 그럼 직장가라. 직장도 안가겠다. 그럼 공부해라. 공부도 안하겠다. 도대체 이 애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 속에선 이 전도몽상에 가려져 있으면 자기 속에선 아무 모순이 없어요.
그런데 담장 밖에서 보면 바깥사람이 보면 모순투성이에요.
앞뒤가 안 맞는 짓을 한단 말이오. 왜 저리 앞뒤 안 맞는 짓을 하느냐?
미쳐서 그런 거요. 미치면 앞뒤가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잖아. 그죠?
부부 싸움 할 때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싸움할 때는 한 대라도 더 때리고, 한 대라도 더 까불이고,
한번이라도 욕을 더 해줘야 이기는 거고. 속이 시원한 일이지. 말이라도 하나 밑지거나 뭐라도 하나 밑지면 어때요? 분해서 못살죠. 그런데 담장 밖에서 보는 사람은 어때요? 저래도 저래 한 대 더 때려봐야 자기 마누라 때리고, 저렇게 한 번 욕도 많이 해야 제 남편 욕하고. 아무 쓸데없는 짓이라는 거를 밖에서 보면 다 보이는데. 막상 부딪친 당사자는 그게 안보인단 말이오. 이게 모순이란 말이오.
이 미망에 가렸다. 아시겠습니까? 보이는 게 없다. 이게 無名, 無智란 말이오.
그러니 어떤 상이든 상을 짓고 거기에 집착하면 뭐가 된다? 뵈는 게 없어진단 말이오.
전도몽상이 일어난단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상이 상 아닌 줄을 알아야 되.
거기 실체가 없는 줄, 그것이 헛것인 줄 알아야 된다. 어떤 상도 취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이 경전에서 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른 믿음은 정말로 희유한 일이다. 드문 일이다. 그러나 진실 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즉시 받아들여지게 된다.
절에 오래 다녔다고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어제까지 교회 다녔다가도 우연히 지나가다가
법문을 듣고도 바른 믿음을 내는 사람이 있고, 절에 30년을 다녀도 까막눈인 사람도 있다 이 말이오.
차이가 뭐냐? 제가 네~ 말씀 드렸잖아요.
하늘에서 비는 늘 온다 이 말이오.
다 제 그릇 만큼 물을 받게 되는데. 바가지 거꾸로 쥔 사람만 어떻게 한다?
한 방울도 못 받는다.
여러분들이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타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그런 마음의 문이 열린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소귀에 경읽기가 된다 이거야.
첫댓글 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