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실천을 위한 것이다
Schopenhauer(쇼펜하우어)
" 지혜가 이론으로만 그치고 실천으로 이행되지 않는다면, 그 지혜는 화려하게 핀 장미에 불과하다.
아무리 농염한 색상과 짙은 향을 내뿜고 있어도, 시들어버리면 씨앗조차 남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상인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쇼펜하우어가 아홉 살이 되자,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상인으로 거듭나게 해줄 사립학교에 입학시켰다. 여기에서 쇼펜하우어는 돈 계산과 상업적인 서한 작성법, 토지의 이윤 등등을 배웠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수업들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자신은 상인의 삶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더 명확히 알게 되었을 뿐이다. 심지어 상인이 되기 위해 교육받고 있는 자신의 삶을 혐오했다.
그즈음부터 쇼펜하우어는 대부분의 시간을 문학과 철하 서적을 읽는 데 쏟아부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 상황을 두고 골치 아파했다. 그의 어머니도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수업과 관련 없는 책들은 잠시 손에서 내려놓으렴. 너는 벌써 열다섯 살이나 되었고, 독일어,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로 된 일부 책들을 충분히 읽지 않았니' 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쇼펜하우어가 다니던 학교의 교장이 그의 부모에게 "쇼펜하우어가 철학에 푹 빠져 있으며, 열정이 대단한 것으로 보아 학자가 되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라고 조언했다. 결국 쇼펜하우어가 이미 집 안의 서고에 있는 철학과 문학, 역사 방면의 책을 모두 완독했음을 안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독서 열정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쇼펜하우어는 '억지로' 학교 수업을 받는 동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독서에 할애했다. 그렇게 억지로 입문한 상인의 삶은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끝이 났다. 이제 쇼펜하우어는 학자가 되는 공식 과정을 밟게 되었는데, 그의 저서에 나타난 고통관이나 철학 사유방식 등에는 그가 겪은 과거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철학에서 지혜를 발휘한 쇼펜하우어. 만약 그가 끝내 상인이 되었다면, 상인으로서의 삶을 계속 이어갔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세상이 위대한 철학자 한 사람을 잃었을 것만큼은 분명하리라.
말한 것과 실제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삶을 산다고 생각해보자. 아무리 재주가 넘치더라도 이런 삶은 헛수고에 불과할 것이다. 배운 것을 실천으로 옮겨야만 큰 성공도 거둘 수 있는 법이다. <<순자(筍子)>> <유효(儒效)>의 '알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알아도 반드시 곤궁하다' 라는 구절처럼 말이다.
그런데 머리를 파묻고 공부를 하면서도 바깥세상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해보자. 그러면 책 속 내용을 청산유수처럼 읊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게 낫다는 속담처럼, 결국 아무 의미도없지 않을까? 아무리 많은 책을 본들 알맹이를 빠뜨린 채 책을 읽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책 속의 내용이 어떻다는 사실만 알 뿐, 정작 왜 그렇게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즉, 제아무리 재능과 지식이 남들보다 뛰어난들 이론이 실천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이는 단순히 화려한 수사만 늘어놓는 행위일 뿐 실질적인 의의는 결여될 수밖에 없다.
세상의 위인들은 모두 지행합일(地行合一)을 생활화했다. 마르크스도 '사람의 사유가 객관적 진시를 지니고 있는지의 여부는 이론의 문제가 아닌 실천의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그렇기에 마르크스의 사상이 내노은 관점에는 일정한 객관성과 진리가 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저서가 사랑받은 이유도 대다수 사람이 생각하고 있던 마음의 소리를 말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비관론을 많은 이가 거부한다 해도 다음의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진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 게다가 당시 사회 및 현대사회와도 상당히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다는 점 말이다.
스탈린은 말했다.
"실천과 괴리된 이론은 공허한 이론이다. 하지만 이론을 이정표로 삼지 않은 실천은 맹목적인 실천이다."
삶의 천태만상을 느껴보라
생명의 의미가 단순히 삶과 죽음에만 머물러 있지 않듯, 쇼펜하우어의 아버지는 삶과 죽음에 관해 아들에게 대단히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1805년, 중병으로 고생하던 쇼펜하우어의 아버지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쇼펜하우어는 여러 감정을 한꺼번에 느끼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겪은 복잡한 감정을 '모든 자살은 그의 가족에게 두려움, 양심의 가책, 분노를 남긴다' 라는 말로 표현했따. 그리고 부친 사망 후, 쇼펜하우어의 저서에 등장하는 모든 주제와 관점, 사상에는 그의 아버지가 있었다. 그의 대다수 저서에서 아버지가 드리운 그림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나의 모든 공을 이 고결하고 걸출한 영혼에게 돌리며······ 만약 누군가 내 작품에서 한 가닥 기쁨이나 위안 혹은 지침을 찾았다면, 내 아버지의 이름자를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아울러 하인리히 쇼펜하우어가 없었더라면,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도 일찌감치 백 번이나 사라졌을 것임을 알아주기 바란다.'
쇼펜하우어가 철학자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데는 끊임없는 독서가 중심 역할을 했다. 그는 독서를 통해 얻은 이론을 눈으로 삼아 인간 삶의 천태만상을 보고 느꼈다. 그의 저서에 표현된 세상이 허구적이거나 정신적인 세계에만 존재하는게 아님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의 세상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실제 삶을 가장 이성적인 시각으로 관찰하고 살펴 표현한 것이다.
출처
저서 [쇼펜하우어, 딱 좋은 고독] 예저우 지음, 이영주 옮김
28p-32p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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