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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1.4.28.PM 2시)
현수품(賢首品)
현수보살이 게송으로 대답하다
화엄경 한단락 공부하겠다. 오늘도 현수품(賢首品) 지난 시간에 이어서 권수는 14권이 되겠다.
약견세계시성립(若見世界始成立)에 중생미유자신구(衆生未有資身具)어든
시시보살위공장(是時菩薩爲工匠)하야 위지시현종종업(爲之示現種種業)이니라
만약 세계가 처음으로 이룩될 때
중생의 자신구(資身具)가 없음을 보거든
이때 보살이 공장(工匠)이 되어서
그를 위해 갖가지 업(業)을 나타내 보이느니라.
옛날에 사람이 원시생활을 할 때, 이 지구가 생기고 여러 가지 생물들이 이 지구상에 많이 생겨서 살게 되고 그리고 나서 여러 번 진화를 거듭해서 사람이 사람의 형태를 갖추어서 사람으로서 살아갈 즈음에
중생의 자신구(資身具)가 없음을 보거든
그랬다. 몸에 필요한, 신체에 필요한 도구가 없음을 보고, 신체에 필요한 도구는 무엇인가? 농사를 지으려면 농사를 짓는 도구가 필요하고, 불을 필요로 할 때는 불을 만드는 도구도 필요하고, 옷을 해 입어야 된다면 옷을 해 입는 데 필요한 도구들, 재료들 이런 것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거기에 관심이 있고, 거기에 조금 소질이 있고 기술이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공장(工匠) 그런다. 공인 공(工)자에 장인 장(匠)자, 기술자라는 뜻이다. 이때 보살이 기술자가 되어서
이때 보살이 공장(工匠)이 되어서
그를 위해 갖가지 업(業)을 나타내 보이느니라
옷을 만드는 사람, 또 농사지을 때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사람,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도구, 나무들 등등 일상생활을 하는데 여러 가지 도구가 필요하고 할 때 그것을 제공해주는 업을 나타내 보인다 그랬다.
그렇다면 원시생활 초기에 우리가 발가벗고 살 때 차츰차츰 인지가 발달하면서 옷도 필요함을 느끼고, 불도 필요함을 느끼고, 집도 필요함을 느끼고, 또 온갖 생활도구가 필요함을 느낄 때, 그것을 머리를 써서 제공해주는 사람들이 보살이라고 하는 뜻이다. 그때 다 그런 것을 먼저 생각해서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 내는 사람을 보살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부작핍뇌중생물(不作逼惱衆生物)하고 단설이익세간사(但說利益世間事)호대
주술약초등중론(呪術藥草等衆論)의 여시소유개능설(如是所有皆能說)이니라
중생을 핍박하여 괴롭히는 물건을 만들지 않고
단지 세간을 이익하게 하는 일만 말하되
주술(呪術)이며 약초며 온갖 언론 등
이와 같이 있는 바를 모두 능히 말하느니라.
중생을 핍박하여 괴롭히는 물건을 만들지 않고
지금 음식물에 대해서 많은 연구들이 있고, 그 연구한 발표를 보면, 원시사람들이 맨처음 생활을 할 때 무엇을 먹고 살았는가? 최소한도 짐승을 잡아먹고 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생을 핍박하여 괴롭히는 물건을 만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짐승을 잡아서 동물을 잡아서 먹는 일은 초기에는 없었고, 나무에 열려 있는 과일들, 채소들, 풀들 약초들 이런 것을 주로 주식으로 삼았다고 하는 사실이다.
사람은 어디를 봐도 동물을 잡아서 먹고 살도록 신체가 되어 있지 않다. 이빨도 그렇게는 안 되어 있고, 신체적으로 모든 것들이 그렇게는 안 되어 있다.
과일을 따먹고 그다음에 풀을 뜯어 먹고, 그러니까 지금은 채식과 과일식 그다음에 곡식 같은 것을 먹는다고 해도 초기에는 통곡물을 먹었다. 예를 들어서 보리나 벼를 수확하면 그것을 크게 갈거나 하지 않고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정도로 해서 먹었다. 그것을 통곡물이라고 그러는데 콩 같은 것은 지금도 통으로 그대로 먹는다. 물론 가루를 내서 먹기도 하지만, 그 외에도 많다.
옥수수라든지 그것도 통곡물을 지금 먹지 않는가? 콩같은 것은 통곡물을 그대로 먹고 그다음에 과일을 먹고, 과일 종류가 얼마나 많은가? 그다음에 채소를 먹고 야초(野草) 풀 지금은 사람들이 자연을 해쳐서 먹을 것이 산에 흔치 않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산에 가면 먹을 것이 천지다. 얼마든지 있었다.
지금부터 예를 들어서 삼 사만 년 전에 인류가 맨처음에 원시생활을 할 때에는 먹고 살 거리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먹었지 동물을 잡아서 먹지는 않았다.
또 생선도 물고기도 잡아먹지 않았다. 물고기도 잡아 먹게 되어 있지를 않았고, 동물도 잡아 먹게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하는 연구가 요즘 사람들에 의해 아주 많이 잘 되어 있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흔히 이렇게 나누는데 풀만 먹고 사는 초식동물들이 힘이 더 세다는 것이다. 코끼리 같은 것은 육식을 안 하지 않는가. 소 같은 것은 육식 전혀 안한다. 말도 육식 안 한다. 등등 얼마나 많은가?
육식 안 하고 힘이 세고 몸집이 큰 동물들이 너무너무 많다. 지금 그대로 전해 내려오지 않는가? 우리 인간도 처음에는 그렇게 과일식, 통곡물, 초식, 야초 이런 것만 먹고 살아오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도구들이 발달하고 하면서 먹게 된 그런 내용들이다.
그런 문제를 여기에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고, 대충 그런 것만 우리가 믿고, 그것에 의해서 식생활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중생을 핍박하여 괴롭히는 물건을 만들지 않았다 하는 것이 그런 뜻이다.
단지 세간을 이익하게 하는 일만 말하되
그런 내용만 설명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술(呪術)이며 약초며 온갖 언론 등
주술, 약초, 온갖 언론들 약초는 사람이 살다가 보면 몸에 온갖 병이 나고 하는데, 병이 나면 그것도 식물에서 약을 구입해서 그것으로써 치유를 했다는 것이다.
다른 동물에서 그런 약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식물에서 약초를 구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동양 한의학이나 중의학이나 보면 무슨 동물 뼈같은 것이 간혹 있기는 있지만 전부 식물이다. 전부 식물에서 또는 열매에서 약을 구한다.
약국이나 약방에서 가면 전부 식물이고 곡물이고 열매이고 대개 약이라는 것이 그렇다.
이와 같이 있는 바를 모두 능히 말하느니라
그러한 것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참 신기하다. 화엄경에 이러한 이야기까지 다 나온다. 화엄경에는 없는 이야기가 없다는 말이 틀림없다.
우리가 이러한 이치도 잘 알고 그래서 불교에서는 육식을 하지 말라고 하고, 채식만 하고 과일식만 하고 곡식만 하라, 곡물만 먹어라 이렇게 되어 있다.
곡물, 과일, 채소 이렇게 세 가지만 먹도록 되어 있다. 옛날부터 초기에 인류가 처음 생겨서 우리가 처음부터 그렇게 먹어왔다.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먹으면 아무 이상이 없다.
그래 불교에는 계율에 대해서, 음식문제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를 한다. 요즘에 사찰음식이라고 해서 어마어마한 음식을 개발해서 전시도 하고 사람들이 모여서 즐기기도 한다. 근래 작년하고 금년하고는 코로나 때문에 그런 행사가 없지만 그전만 하더라도 사찰에서 사찰음식이라고 해서 얼마나 만포장으로 여러 가지를 만들어 먹었는가?
원래 사찰에서는 1식 3찬이라 해서 밥하나에 세 가지 반찬이 원칙이다. 김치가 하나 있든지 간장이 하나 있든지 그다음에 다른 나물 무친 것이 있던지 그러면 끝이다.
우리 어릴 때 강원에서 그렇게 먹었다.
3찬이 못될 때도 많았다. 세 가지 반찬이 못될 때 해인사 강원에 우리 어릴 때 1950년 대 말 60년대 초에 강원생활을 했는데 밥은 으레 있었고, 아침엔 으레 죽을 먹고 그랬는데 반찬이 세 가지가 채 안 될 때도 많았다.
지금도 생각나는 그때 가장 입맛에 남는 것이 간장맛이다. 간장 한 숟가락 떠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해도 아무 이상 없이 잘 살아진다.
그런데 사찰 음식이라고 해서 요즘 전시하고 행사하고 하는 그것은 조선시대에 왕궁에서 궁녀들이라고 할까 또 공주급 되는 사람들이라고 할까 이런 이들이 절로 와서 살게 되는 사연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궁중에서 못살게 되면 하는 수 없이 피난을 절로 온다. 그래 절에 오면 딸려오는 시녀들이 여럿이 딸려온다. 그러면 그 사람들에게 육식은 제공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도 사찰에서 채식으로써 할 수 있는 데까지 최고의 음식을 장만한다. 그것이 쭈욱 전통으로 내려왔다. 그것이 오늘날 소위 전시하고 행사하고 하는 사찰음식이다.
사찰 음식이 어디 그렇게 여러 가지 지지고 볶고 기름에튀기고 하는 그런 것이 어디 있는가?
또 말 난 김에 우리 어릴 때만 하더라도 나무를 때서 물 한 그릇이라도 덥힐 수 있었고 죽을 끓이든지 밥을 하든지 무조건 나무를 때거나 이렇게 해서 장만했다.
그래서 부엌에 금연(禁燃)이라고 하는 말이 많이 써붙여져 있다. 금연 또는 불연(不燃) 아닐 불(不)자 태울 연(燃)자 금할 금(禁)자 태울 연(燃)자 지금 담배 피우지 말라는 금연이라는 말하고 말은 같다. 그런데 그 연이 담배 연(煙)자는 아니다. 불 때지 말라는 뜻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렇다. 그것이 원래 절에서 쓰던 말이다.
절에서 담배 못 피우라고 금연이라는 팻말을 써 붙인 것이 아니다. 때아닌 때, 하루 세 끼면 세 끼, 때 아닌 때 불 피우지 말라는 듯이다.
때아닌 때 불 피우지 말라. 불 한 번 피워서 예를들어서 객스님이 어디에서 왔다손 치더라도 때를 넘겨서 왔다고 해도 그 사람을 위해서 불을 피울 수가 없다. 배가 고파도 때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
주지스님이 설사 어디를 갔다 돌아왔다 하더라도 때가 아닌 때 도착하면 때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 절대 불 못 피우도록 되어 있다.
그 불 한 번 피워서 물 끓이고 밥하고 하는 것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가? 대중을 위해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채공이나 공양주가 대중을 위해서 불을 피우고 음식을 장만하는 시간 외에는 공부해야 한다.
공부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개인을 위해서 불을 피워서 음식을 장만한다고 하는 것은 상상을 못할 일이다. 그래서 금연 또는 불연 이렇게 딱 붙여 놓은 것이다.
절대 때아닌 때 불피우지 말라 이런 뜻이다. 그런 생활인데 어디에 사찰 음식이 그렇게 아주 풍요하게 기름에 볶고 온갖 여러 가지, 열 가지 스무 가지가 넘는 음식과 반찬을 장만해서 전시회를 한다 등등 그런 일이 어디에 있었겠는가?
내가 스님들에게 강의할 때 그런 이야기를 언젠가 한 번 했다. 어떤 스님이 그 말을 듣고는 ‘아 참 속시원한 법문 들었다’고 하면서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공부하러 다닌 분도 계셨다.
그런 유래들 ‘세상이 변하는데 뭐 옛날 소리만 하고 있느냐’ 그런 말도 일리는 있다. 그렇지만 너무 지나치니까 그런 옛날 우리 전통도 한 번씩 떠올려서 할 필요가 있다 하는 내용이다.
일체선인수승행(一切仙人殊勝行)을 인천등류동신앙(人天等類同信仰)이어든
여시난행고행법(如是難行苦行法)을 보살수응실능작(菩薩隨應悉能作)이니라
일체 선인(仙人)들이 수승한 행(行)을
사람과 천신들은 다 같이 믿어 우러르나니
이와 같은 난행(難行)과 고행(苦行)의 법을
보살이 응함을 따라 다 능히 짖느니라.
사찰에서 수행하는, 출가해서 수행하는 사람들은 신선처럼 산다. 생활은 신선하고 똑같이 산다. 그래서 신선처럼 사는
일체 선인(仙人)들이 수승한 행(行)을
사람과 천신들은 다 같이 믿어 우러르나니
그렇게 신선처럼 깨끗하게 사는 것 그 사는 모습을 보고 존경심을 갖고 우러른다. 그것이 난행 고행 아니겠는가.
이와 같은 난행(難行)과 고행(苦行)의 법을
보살이 응함을 따라 다 능히 짖느니라
ㄴ. 외도(外道)와 함께하다
보살은 앞에서 사람이 원시생활을 할 때의 경우도 있었고, 또 외도들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보살은 어떤 자세를 갖는가? 하는 내용이다.
혹작외도출가인(或作外道出家人)하고 혹재산림자근고(或在山林自勤苦)하며
혹로형체무의복(或露形體無衣服)하야 이어피중작사장(而於彼衆作師長)이니라
혹은 외도에 출가하는 사람도 되고
혹은 숲 속에서 스스로 부지런히 고행도 하며
혹은 의복이 없이 몸을 드러내기도 하여
저 대중에게 스승이 되기도 하나니라.
인도 같은 데는 10억이 넘는 인구, 종교도 10억이 넘는다고 한다. 한 사람이 세 가지 종교를 선택하면 예를 들어서 13억 인도 인구라 하면 종교는 그것의 세 배라 할 정도로 여러 가지 종교가 많다. 그래서 인도는 종교의 나라다.
여러 가지 생활환경이라 할까, 그런 것들이 그렇게 되어 있는가 보다. 그래서
혹은 외도에 출가하는 사람도 되고
혹은 숲 속에서 스스로 부지런히 고행도 하며
혹은 의복이 없이 몸을 드러내기도 하여
빨가벗고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저 대중에게 스승이 되기도 하나니라
보살은 그들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별별 일을 다한다.
혹현사명종종행(或現邪命種種行)하야 습행비법이위승(習行非法以爲勝)하며
혹현범지제위의(或現梵志諸威儀)하야 어피중중위상수(於彼衆中爲上首)니라
혹은 사명(邪命)의 갖가지 행을 나타내며
그런 법을 익혀 행하여 수승함을 삼고
혹은 범지(梵志)의 모든 위의(威儀)를 나타내어
저 대중 가운데 상수(上首)가 되느니라.
혹은 사명(邪命)의 갖가지 행을 나타내며
삿되게 생활하는 것, 그것을 사명(邪命)이라고 한다.
그런 법을 익혀 행하여 수승함을 삼고
혹은 범지(梵志)의 모든 위의(威儀)를 나타내어
저 대중 가운데 상수(上首)가 되느니라
‘외도와 함께 한다’ 하는 제목이 이러한 일들에도 전부 그들을 배척하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하면서 동사섭(同事攝)이다. 함께하면서 그들의 상수가 되고 그들의 소견을 바르게 잡아준다, 이런 뜻이다.
혹수오열수일전(或受五熱隨日轉)하고 혹지우구급녹계(或持牛狗及鹿戒)하며
혹착괴의봉사화(或着壞衣奉事火)하야 위화시등작도사(爲化是等作導師)니라
혹은 오열(五熱)을 받아서 해를 따라 구르고
혹은 소와 개와 사슴의 계(戒)를 가지며
혹은 떨어진 옷을 입고 불을 받들어 섬기어
이런 이를 교화하기 위하여 도사(導師)를 짓느니라.
도사가 된다.
오열(五熱)이라고 하는 것은 오열자신(五熱炙身)이라고 해서 오체를 말하는 것이다. 오체를 가지고 불에 태우는 것을 수행이라고 여기는 경우다. 그리고 또
혹은 오열(五熱)을 받아서 해를 따라 구르고
햇빛이 뜨겁게 비추는 쪽으로 몸을 갖다가 누인다든지 뜨겁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 쓸 데 없는 고행이다. 부처님은 초기에 이런 고행도 했지만 나중에는 뉘우치고, 고행을 하는 것을 바른 수행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알고는 고행을 떠났다. 또 외도들은 어떤 일도 있는고 하니
혹은 소와 개와 사슴의 계(戒)를 가지며
소가 어쩌다가, 예를들어서 경전을 말리려고 탑전에다가 쭈욱 경전을 널어 놓았는데 소가 풀을 뜯으러 마침 들어왔다가 코를 힝힝 풀어서 화엄경 몇 장을 넘겼다. 그러면 그 인연으로 소가 아무것도 모르고 경전을 그것도 화엄경을 널어 놓았는데 화엄경 책장을 몇 장 넘겼다, 그 공덕으로 천상에 태어났다고 하는 내용이다.
또 개가 예를 들어서 아이가 탑전에 똥을 쌌는데 개가 그 아이가 눈 똥을 먹었다. 그 얼마나 큰 공덕이 있겠는가? 탑에다가 싸놓은 똥을 개가 치웠으니까 공덕도 보통 공덕이 아니다. 그래서 개가 천상에 태어났다, 등등 사슴도 역시 그와 유사한 계(戒)들이 있다.
외도들은 특별한 그런 경우 하나를 가지고 그만 계행을 삼아서 그것을 확대해석해서 소가 하는 짓, 개가 하는 짓을 흉내를 내는 어리석은 일들도 옛날에는 많았다.
혹은 떨어진 옷을 입고 불을 받들어 섬기어
떨어진 옷을 입는 것,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사실은 옷이 떨어져서 기워입기도 했는데 그것이 큰스님이고 도인스님인가 싶어서 떨어지지도 않은 옷을 일부러 조가리 조가리 붙여서 떨어진 옷처럼 해서 입고 다니는 수좌들이 참 많았다. 어떻게 가르칠 수도 없고, 감당도 못한다. 그리고 막 그냥 두루막을 길게 늘어뜨려서 땅에 질질 끌게 해서 옷을 입지를 않나 그런 인간들 참 어떻게 두드려 팰 수도 없고, 고칠 수도 없고, 말도 안 듣고 그런 경우도 많이 있었다.
누더기옷을 입고 다니는 것 그거 전부 가짜다. 어떤 큰스님들 누더기옷을 입고 한 것을 전시도 해놓고 그랬는데 그것도 전부 가짜다. 무슨 그런 옷을, 없어서 그 옷을 입었단 말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도 말라고 하라. 그냥 그야말로 가짜고 폼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불을 받들어 섬기어, 여기 화엄경에 딱 나와있지 않은가. 그런 것은 다 외도들이 하는 짓이라고.
불을 받들어 섬기고, 불을 받들어 섬기는 사람들을 부처님이 제도를 여럿 했다.
불은 참 신기한 물건이다. 그러니까 신기하니까 불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이를 교화하기 위하여 도사(導師)를 짓느니라
내가 혼자 유튜브 방송을 하면서 이렇게 화엄경을 가지고 이야기하니까 1식 3찬 이야기, 사찰에서 음식을 만포장으로 늘어놓고 무슨 사찰음식 전시회다 하는 것도 마음껏 내가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누더기옷 이거 가지고 내가 이야기를 할 때 떠오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 실컷 할 수 있어서 좋다.
처음에 내가 유튜브 방송을 시작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어서 좋겠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오늘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 속에 뭔가 우리가 생각할 바가 없으면 좋지 아니한 말이 되겠지만, 깨우칠 바가 있고 뉘우칠 바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혹유시알제천묘(或有示謁諸天廟)하고 혹부시입항하수(或復示入恒河水)하며
식근과등실시행(食根果等悉示行)호대 어피상사기승법(於彼常思己勝法)이니라
혹은 모든 천신을 모신 사당에 배알함을 보이고
혹은 다시 항하강에 들어감을 보이며
뿌리와 과일 등을 먹는 것을 다 행하여 보이되
거기서 늘 자기의 수승한 법을 생각하나니라.
혹은 모든 천신을 모신 사당에 배알함을 보이고
여기에 천신을 모신 사당에 배알하는 것, 이런 것이 많다.
혹은 다시 항하강에 들어감을 보이며
지금 인도에 가면 항하강에 목욕하고 물 마시고 그 항하강에서 시체를 태우고 시체를 태워서 재를 버리고 물이 보통 더러운 것이 아니다. 위생적으로 보통 더러운 것이 아닌데 거기 그 물을 그렇게, 한국의 불자들도 거기가서 그 항하강의 물을 떠서 가져오기도 하고 항하강의 모래를 담아오기도 하고 그러고 있다.
‘그러면 그 항하강에 사는 고기들은 제도가 되었겠네? 내내 거기에서 사니까 벌써 천상에 태어났겠네? 항하강 안에는 무슨 고기 한 마리가 없어야 될 거 아니요?’
그렇게 성스러운 물이라면, 그렇게 위신력이 있는 항하강의 모래고 항하강의 물이라면 거기에 축생이 있을 택도 없고, 어패류도 있을 택도 없고 그래야 될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것을 생각 못하고는 거기가서 더러운 물을 마시고, 거기에 목욕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그렇게 하고 있다. 사람의 소견이 한 번 잘못되면 못 말린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거기에서 모래 떠오고 물 떠오고 인도에 처음에 갔을 때는 뭐든지 신기할 것이다. 그것을 들고와서 모셔다 놓고, 법당에 모셔놓고 하는 한국 불자들 한국 스님들도 심지어 스님들도 소견이 제대로 안나서 그런 사람들이 있다. 참 잘 생각해야 될 일이다.
부처님은 일찍이 고행을 하시다가 고행이 바른 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깨닫고는 같이 고행하던 5비구들로 부터 비난을 받고 배척을 당했지만 당신의 소신대로 그렇게 갔다. 그래 결국 그 사람들도 결국은 다 깨닫고 귀의를 하는 사연들을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다.
참 이 화엄경에는 이런 바른 이치를 깨닫고 바르게 살도록 하는 가르침이 무수히 많다.
혹현준거혹교족(或現蹲踞或翹足)하고 혹와초극급회상(或臥草棘及灰上)하며
혹부와저구출리(或復臥杵求出離)하야 이어피중작사수(而於彼衆作師首)니라
혹은 걸터앉음을 나타내고 혹은 발을 들고
혹은 가시덤불에 눕고 재를 뒤집어쓰기도 하며
혹은 다시 절굿공이에 누워 벗어남을 구하며
그들의 대중에서 우두머리가 되기도 하느니라.
이런 등등의 외도들이, 인도에는 별의별 외도들이 많다. 뜨거운 나라니까 나무 밑에 가만히 앉아서 머리는 총명하지 먹을 것은 없지 배는 쫄쫄 굶었지 그러니까 생각은 말똥말똥하지 그러니까 별별 생각을 다 자아내는 것이다.
잠인들 그렇게 늘 오는가? 아무리 자고 싶어도 계속 잠이 오지 않는다. 좀 자고는 그만 눈 뜨게 되어 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뭔가 작용을 하니까 그 작용하는 것이 정상적으로 작용을 해야하는데 비정상적으로 작용을 하니까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이다. 어디에 걸터앉기도 하고 혹은 한쪽 발을 들고 서서, 나는 두발도 딛고 서기 어려운데, 한쪽 발 딛고 서는 고행도 하고, 가시덤불에 눕고 재를 뒤집어쓰기도 하고 땅을 파고 땅속에 몸을 뭍고 목만 내놓고 있는 고행도 있다.
별별 고행들 그렇게 하면 천상에 난다고 그렇게 알고 있다. 그리고 나서 죽은 뒤에 천상에 난들 무엇을 하겠는가? 천상에 나는 것보다 고행하는 고통이 훨씬 많다.
나는 몸을 치료하다가 ‘치료하면서 고통받는 일이 오히려 치료 안받고 고통받는 것보다 더 힘들다’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특히 침 맞을 때 그렇다. 어떻게나 침이 아픈지 한꺼번에 200개씩 300개씩 꽂지 않는가? 그것은 보통 고행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낫는 것보다 그대로 아픈 것이 차라리 훨씬 소득이겠다’ 계산이 그렇게 되었다.
아무튼 화엄경에는 이런 것까지 다 이렇게 이야기가 되었다.
그들의 대중에서 우두머리가 되기도 한다. 우두머리가 되어서 그들의 소견을 바꿔준다, 하는 내용이다.
여시등류제외도(如是等類諸外道)에 관기의해여동사(觀其意解與同事)하야
소시고행세미감(所示苦行世靡堪)을 영피견이개조복(令彼見已皆調伏)이니라
이러한 종류의 모든 외도들에게
그 뜻을 관찰하고 더불어 일을 함께하여
보인 바 고행을 세상에선 견디지 못함을
그들로 하여금 보게 하고 나서 모두 조복케 하나니라.
이러한 종류의 모든 외도들에게
그 뜻을 관찰하고 더불어 일을 함께하여
보인 바 고행을 세상에선 견디지 못함을
그들로 하여금 보게 하고 나서 모두 조복케 하나니라
결국은 시대가 이렇게 26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우리가 자기의 업력이라고 할까, 자기의 집착, 자기의 편협심 여기에 사로잡혀서 이와 똑같지는 않다 하더라도, 이와 유사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도 또한 적지 않다,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ㄷ. 어업(語業)의 큰 작용
중생미혹품사교(衆生迷惑稟邪敎)하야 주어악견수중고(住於惡見受衆苦)어든
위기방편설묘법(爲其方便說妙法)하야 실령득해진실제(悉令得解眞實諦)호대
중생이 미혹하여 삿된 가르침을 받아서
악견(惡見)에 머물러 온갖 고통을 받거든
그들을 위하여 방편으로 묘한 법을 설하여
다 하여금 진실한 진리를 알게 하나니라.
다 하여금 진실한 진리를 알게 하나니라.
혹변주어설사제(或邊呪語說四諦)하고 혹선밀어설사제(或善密語說四諦)하며
혹인직어설사제(或人直語說四諦)하고 혹천밀어설사제(或天密語說四諦)하며
혹은 지방의 주문으로 사제(四諦)를 설하고
혹은 좋은 비밀한 말로 사제를 설하고
혹은 사람들이 보통 쓰는 말로 사제를 설하고
혹은 하늘의 비밀한 말로 사제를 설하신다.
사제(四諦)는 고집멸도(苦集滅道)다. 여러 가지로 고집멸도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분별문자설사제(分別文字說四諦)하고 결정의리설사제(決定義理說四諦)하며
선파어타설사제(善破於他說四諦)하고 비외소동설사제(非外所動說四諦)하며
혹은 문자로 분별하여 사제를 설하고
또는 분명한 이치로 사제를 설하고
다른 주장을 잘 깨뜨리어 사제를 설하고
밖의 동(動)하는 바가 아니게 사제를 설하신다.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四諦)는 여기서는 사제라고 했지 사성제(四聖諦)라고 하지 않았다.
사성제는 사성제품에서 설한다.
사제와 사성제는 같은 고집멸도를 가지고 이야기하더라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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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레르기성 비염을 수십 년째 앓고 있는데 이것이 아무렇지도 않다가 한순간 어떻게 바람을 잘못 쏘인다든지 몸이 좀 따뜻해진다든지 아니면 차가와진다든지 하면 금방 이렇게 콧물이 나고 재채기가 난다. 제일 몹쓸 것이 알레르기성 비염이다. 참 정말 잘 안 고쳐진다. 그래서 죄송하다.
혹팔부어설사제(或八部語說四諦)하고 혹일체어설사제(或一切語說四諦)하야
수피소해어언음(隨彼所解語言音)하야 위설사제영해탈(爲說四諦令解脫)이니라
혹은 8부(八部)들의 말로 사제를 설하고
혹은 일체어(一切語)로 사제를 설하여
그들이 알 수 있는 바의 말과 소리를 따라서
사제를 설하여 하여금 해탈케 하나니라.
8부는 8부신장이다.
사제 고집멸도는 기본이다. 불교의 기본이 고집멸도다. 이것을 사성제라고 하기도 하는데, 인생은 때로는 살만하지만 그래도 이 사바세계는 근본적으로 고통스러운 세상이다. 고통에는 원인이 있고, 그것을 모두 소멸한 열반의 경지가 있고, 그것을 다 소멸하려면 8정도를 실천해야 한다. 그것에 4제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고 거의 공식화되다시피 되어 있는 내용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소유일체제불법(所有一切諸佛法)을 개여시설무부진(皆如是說無不盡)하야
지어경계부사의(知語境界不思議)니 시명설법삼매력(是名說法三昧力)이니라
가진 바 일체 모든 불법을
모두 이와 같이 설하여 다하지 못함이 없어
말의 경계가 부사의함을 아나니
이것이 이름이 설법삼매력(說法三昧力)이니라.
설법삼매력(說法三昧力)이니라. 화엄경에서는 여러 가지 내용이 많겠지만 부처님께서 기본불교, 근본불교라고 하는 것이 사제를 가지고 처음부터 설명했기 때문에 사제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진 바 일체 모든 불법을
모두 이와 같이 설하여 다하지 못함이 없어
말의 경계가 부사의함을 아나니
이것이 이름이 설법삼매력(說法三昧力)이니라
설법삼매력(說法三昧力)이다. 이렇게 해서 14권 책걸이 하는 날이다. 14권을 마치고 다음시간부터는 15권 현수품이 계속된다. 현수품이 계속되는 15권을 공부하겠다. 그렇게 준비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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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분들 한 번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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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성불하십시다.
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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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때 하지 않기. 계율이 반듯하게 서 있는 절제된 생활 규범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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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더 읽고 있습니다
금연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멀리 외국에서 혼자ㅜ공부하느라 이해가 안됐던 부분 도움이 많이 됩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