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21회 노자와 불교의 회통 2 – 3
無名이라든지 常無이라든지 徼니 玄이니 이런 말을 번역을 하시지
않으시고 일단 逐字譯(축자역)으로 해놓으신 겁니다.
그래 놓고 난 다음에 여기에 대한 주석을 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탄허스님이 그러셨거든요.
“나는 당대의 일은 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써 먹을 수 있는 것을 나는 일삼고 있지 않다.
내가 하는 것은 천추만대에 남을 것을 한다.”
이렇게 얘기를 하십니다.
“천추만대에 남는다.”고 하는 것은 뭐냐면,
지금 한번 번역을 해놓으면 이 후에도 계속 쓸 수 있도록 한다는 그런
말씀이 되겠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내용들을 번역을 길게 길게
우리의 현대의, 지금의 언어로 번역을, 의역을 한다든지 이렇게 해놓으
면, 언어는 30년 50년만 지나면 계속 바뀐다는 겁니다.
1900년대 초반에 있는 번역들. 그 다음에
1900년대 중반의 번역들을 보면 지금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번역어로 되어있는 번역 영문도 이해를 잘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그것은 시대에 맞춰서 계속 다시 번역이 되어야 되기 때문에,
현토를 해놓으면 한문 공부하는 분들이 정확하게 문구를 통해서 한문
공부를 할 수 있게 되고요. 그것에 대해서 직역을 해놓으면, 직역하는
방식은 영원히 이대로 존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고 난 다음에 이 직역을 바탕으로 해서, 현대어로 다시 번역을 한다
든지, 의역을 한다는 것은 그 시대에 맞춰서 계속해서 바꾸어서 번역을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탄허스님이 뭐라고 하셨느냐? 하면,
“나는 도매상을 할 테니까 앞으로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해놓은 이 초벌 번역, 逐字譯(축자역)을 통해서 계속
현대에 맞추어서 번역을 하는 소매상은 후대의 학자들이
계속해서 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습니다.
지난 시대에 우리가 전부 한글로 다 많이 번역을 했는데요.
지금 와서 다 다시 번역해야 되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지요.
스님은 그런 것들을 이미 예견하시고, 한문을 그대로 놔두고 한문에
현토분을 싣고, 그 다음에 직역을 하고,
그 다음에 거기에 좋은 주석들을 많이 첨부를 해서 다양한 해석의 견해
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한문본을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는 세대를 양성하기 위해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이런 식의 번역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앞으로 한문 볼 줄 아는 사람이 적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라는 나라는 계속해서 세계의 중심국으로 앞으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한문이라고 하는 것이 없어질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한글 전용을 주장하고, 한자를, 한문을 모르기 때문
에 앞으로 굉장히 문제가 많이 생길 것이다.’ 해서 교육의 차원으로 이렇
게 해놓으셨던 겁니다.
노자 1장을 “觀妙章(관묘장)”이라 그럽니다.
이것은 청나라 때 도교를 수련했던 송상성이라는 분이 쓴 유ㆍ불ㆍ선을
모두 회통한 주석인 송상성의 “노자 도덕경 강의” 본에 의해서 1장 이름
을 “觀妙章”이라고 했습니다.
1장을 알게 되면, ‘노자의 전체의 모습이 확~~ 드러난다.’ 이렇게 보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有名과 無名을...
원래는 無와 有로 보던 중국의 진공이라든지, 우리나라의 김충렬선생
이라든지 이런 분들은 無와 有로 봤는데요.
“無名ㆍ有名으로 보았다.”
無名ㆍ有名으로 본 학자들.
예를 들면 소자유라든지, 여길보라든지, 사마광라든지 우리 교재
251쪽에 제가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 설명을 해놨습니다.
“그렇게 했던 견해들과 좀 같이 소자유나 사마광같은 주석이 有名ㆍ無名
으로 되어있다.” 고 하는 것이고요. 그 다음에
常無ㆍ常有라고 하는 것도 有欲과 無欲으로 보지 않았던 견해.
이것은 왕필의 견해와 완전히 달랐다고 하는 부분을 알 수 있겠습니다.
스님의 노자 도덕경 번역에 나타나는 형태를 보면,
無와 有라고 하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유무의 분별이 끊어진 세계!
‘有ㆍ無의 분별이 끊어진 세계를 반드시 스님은 常見하고 있다.’ ←이것이
禪적인 해석이 되겠습니다.
有가 있고, 無가 있는데요.
‘모든 유는 무에서 부터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無가 가장 귀한 것이다.’
이렇게 보지 않고, ‘무와 유. 둘 다 이름의 세계ㆍ모양이 끊어진 세계에서
봤을 때는, 無도 有도 말할 수 없다.’ ←이렇게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탄허스님은 굉장히 재미있는 해석을 해주고 있는 것이,
노자 42장에 보시면,
“道生一(도생1)이요, 一生二(1생2)요,
二生三이요, 三生萬物(3생만물)” 이라고 그랬거든요.
“도가 1을 낳고, 1이 2를 낳고, 2가 3을 낳고, 3이 만물을 낳는다.”
이렇게 노자 42장에 되어있습니다.
노자의 “道” 라고 하는 것이 뭐냐?
그것이 바로 1장에서 말한 “無名이다.” 하는 것이고요. 그 다음에
태극도설에서 말한 “無極이다. 무극의 세계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1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있음의 세계이고, 바로 태극의 세계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지요. 1이 있게 되면 그 다음 부터는 陰陽(음양)이라고
하는, 상대라고 하는 2가 생기게 되고,
2가 생기게 되면 天地人三才(천지인3재) 3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그동안 보았던 體ㆍ相ㆍ用(체상용)3대 = 법신ㆍ보신ㆍ화신.
이런 식으로 대방광이라든지,
‘1심 3덕이 나타나는 3의 양상이 나타난다.’ 이 것이지요.
3이 만들어지고 나면 “3이 만물을 만들어 낸다.” 는 말입니다.
만물이 만들어지는 첫 시작은 “1이라고 하는 세계에서 벌어진다. 이것을
有名의 세계라고 한다.” 이렇게 노자 도덕경 1장을 보신 것이지요.
노자 도덕경 1장은 천지의 시작이라고 하는 것과 천지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을 나누어서 無名과 有名으로 대별을 하고,
이것을 태극도설에서 무극과 태극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첫댓글 _()()()_
고맙습니다._()()()_
수희찬탄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 불 화엄경
_()()()_
고맙습니다 _()()()_
_()()()_
고맙습니다 _()()()_
老子 : 42章
'道生一이요, 一生二요, 二生三이요,
三生萬物'이라
고맙습니다 _()()()_
초벌 번역, 逐字譯에 전심이셨던 탄허스님.
후대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_()()()_
저는 이 법문을 녹취하면서,
'아~~ 나도 후대를 생각해서 쓰레기 하나라도 철저히 분리 배출해야지!!!' 결심하고,
부착된 이물질 제거하고, 헹구고 배출합니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文光스님 - 韓國學(呑虛思想) - 21-2-3. 老子와 佛敎의 會通.
후대를 생각해서...
멀리 내다 보는 분!
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