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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 8. 백석 ‘집게네 네 형제’,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
저는 지금 두 권의 동화책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시인 백석(1912∼1996. 본명 기행夔行)의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와 일본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입니다. 백석이 남북 분단 후 북에서 쓴 동화시 ‘집게네 네 형제 ’는 북한의 아동문학을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작품이고, 미야자와 겐지가 1933년에 썼다는 ‘은하철도의 밤’은 조반니와 캄파넬라의 우주열차여행 이야기로 훗날의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걸작 동화인데, 두 분의 글이 동화를 표방하고는 있었지만 어른도 새겨 읽어야 할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백석의 동화시 ‘집게네 네 형제’전문입니다.
집게네 네 형제/ 백석
어느 바닷가 물웅덩이에
깊지도 얕지도 않은 물웅덩이에
집게 형제가 살고 있었네.
막내동생 하나는 내놓은
집게네 세 형제
그 누구나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웠네.
남들같이 굳은 껍질 쓰고
날들같이 고운 껍질 쓰고
뽐내며 사는 것이 부러웠네.
그래서 맏형은
굳고 굳은 강달소라 껍질 쓰고
강달소라 꼴을 하고
강달소라 짓을 했네.
그래서 둘째 동생은
곱고 고운 배꼽조개 껍질 쓰고
배꼽조개 꼴을 하고
배꼽조개 짓을 했네.
그래서 셋째 동생은
곱고도 굳은 우렁이 껍질 쓰고
우렁이 꼴을 하고
우렁이 짓을 했네.
그러나 막내동생은
아무 것도 아니 쓰고
아무 짓도 아니 하고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워 아니 했네.
그런데 어느 하루
밀물이 많이 밀어
물웅덩이 밀물에 잠겨 버렸네.
이 때에 그만이야
강달소라 먹고 사는 이빨 센 오뎅이가
밀물 따라 떠와
강달소라 보더니만
우두둑 우두둑 깨물었네.
강달소라 껍질 쓰고
강달소라 꼴을 하고
강달소라 짓을 하던
맏형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런데 어느 하루
난데없는 낚시꾼
주춤주춤 오더니 물웅덩이 기웃했네.
이 때에 그만이야
망둥이 미끼 하는 배꼽조개 보더니만
낚시꾼 얼른 주어
돌에 놓고 돌로 쳐서
오지끈 오지끈 부서졌네.
배꼽조개 껍질 T고
배꼽 조개 꼴을 하고
배꼽 조개 짓을 하던
둘째 동생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런데 어느 하루
부리 굳은 황새가
진창 묻은 발 씻으러
물웅덩이 찾아왔네.
이 때에 그만이야
황새가 좋아하는 우렁이 하나 기어가자
황새는 굳은 부리 우렁이 등에 쿡 박고
오싹바싹 쪼아냈네.
우렁이 껍질 쓰고
우렁이 꼴을 하고
우렁이 짓을 하던
셋째 동생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러나 막내동생
아무 것도 아니 쓰고
아무 꼴도 아니 하고
아무 짓도 아니 해서
오뎅이가 떠와도 겁 안 나고
낚시꾼 기웃해도 겁 안 나고
황새가 찾아와도 겁 안 났네.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워 아니 하는
막내동생 집게는
평안하게 잘 살았네.
백석(白石)은 평북 정주 출신으로 남북분단 후 북에 남아 글을 쓴 분입니다. 어느 동화작가는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타고난 본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여 죽음을 면한 막내 게를 좋아했어요.”라고 해설을 했더군요. 아마 백석이 의도한 바도 그러한 것 같은데,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글을 쓰는 분들의 고통 같은 걸 엿본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아래는 백석의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중의 '개구리네 한솥밥'을 소개한 위의 동화작가의 글입니다.
한국적 서정성이 가득한 백석의 동화시
백석은 우리 민족의 삶과 원형에 대한 시적 탐구와 모국어에 대한 애정이 돋보이는 시인입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사람과 사물, 풍속과 자연이 하나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80년대 후반 월북 작가들의 작품이 출간되며 백석의 시 세계가 다시금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고, 이제 우리 어린이들도 백석의 작품을 보게 되었습니다.
‘개구리네 한솥밥’은 1957년에 북한에서 출간된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백석은 어린이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어린이에게는 산문보다 시가 더 적당하다고 생각하여 운율이 있는 ‘시’의 형식에 ‘서사(이야기)’를 담은 동화시를 많이 썼습니다. ‘개구리네 한솥밥’은 백석이 쓴 동화시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고 우리 민족의 공동체적 삶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어린이들에게 알맞은 간결하고 리듬감 있는 문장의 반복, 독특한 의성어와 의태어 등 다양하고 감각적인 우리말을 풍부하게 구사하여 작은 동물과 곤충들이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같은 책에 실린 또 다른 동화시‘귀머거리 너구리’의 전문을 옮깁니다.
귀머거리 너구리/ 백석
어느 산 속에
귀머거리 너구리가 살고 있었네.
어느 날 밤
마을 가까운 강냉이밭에
곰도, 멧돼지도, 귀머거리 너구리도,
다함께 내려와 강냉이를 따 먹었네.
그러자 밭 임자 영감
두-두- 소리쳤네.
그 소리 듣고
멧돼지가 먼저 달아났네.
그 뒤로 곰이 달아났네.
그러나 귀머거리 너구리
그 소리 들리지 않아
꿈쩍도 아니 하고
뚝하고 한 이삭
뚝하고 두 이삭
강냉이만 따 먹었네.
그러면서 하는 말
"달아나긴 왜들 달아나?"
멧돼지와 곰은 달아나며 생각했네.
너구리는 저희들보다 겁 없고 용감하다고.
이리하여 귀 밝은 도적놈들
귀먹은 도적놈을 우러러 보았네.
어느 날 밤
마을 가까운 메밀밭에
오소리도, 노루도, 귀머거리 너구리도,
다 함께 내려와 메밀을 훑어 먹었네.
그러자 밭 임자네 개들이
컹-컹- 짖어댔네.
그 소리 듣고
오소리가 먼저 달아났네.
그 뒤로 노루가 달아났네.
그러나 귀머거리 너구리
그 소리 들리지 않아
꿈쩍도 아니하고
쩝쩝하고 한 입
쩝쩝하고 두 입
메밀만 훑어 먹었네.
그러면서 하는 말
"달아나긴 왜들 달아나?"
오소리와 노루는 달아나며 생각했네.
너구리는 저희들보다 겁 없고 용감하다고.
이리하여 귀 밝은 도적놈들
귀 먹은 도적놈을 우러러 보았네.
어느 날 밤
마을 끝에 놓인 그 뉘집 닭의 홰에
여우도, 살쾡이도, 귀머거리 너구리도,
다 함께 내려와 닭을 채려 하였네.
그러자 안방 마나님
탕! 하고 방문 열었네.
그 소리 듣고
여우가 먼저 달아났네.
그 뒤로 살쾡이가 달아났네.
그러나 귀머거리 너구리
그 소리 들리지 않아
꿈쩍도 아니 하고
이리 쿡쿡
저리 쿡쿡
닭 냄새만 맡았네.
그러면서 하는 말
“달아나긴 왜들 달아나?”
여우와 살쾡이는 달아나며 생각했네.
너구리는 저희들보다 겁 없고 용감하다고.
이리하여 귀 밝은 도적놈들
귀 막은 도적놈을 우러러 보았네.
이리하여 귀 먹은 도적놈은
귀 밝은 도적놈들 속에서
겁 없고 용감한 첫째가는 도적놈 되었네.
그런데 한 번은
산위에 사는 짐승 - 도적들
산 아래 마을 사람네
낟알을 빼앗으러
개 돼지 잡아먹으러
마을로 처내려와
산짐승들과 마을 사람들
서로 어울려 싸우게 됐네.
이때 산짐승들 하나같이 말하였네.
겁 없고 용감한 너구리 대장으로 삼자고.
그리하여 귀머거리 너구리는
곰, 오소리, 멧돼지, 오소리,
살쾡이, 노루…… 뭇짐승들의 대장되어
장하게도 앞장서서 싸우러 나갔네.
그런데 정말로는 겁 많은 너구리,
귀를 먹은 탓에 무서운 소리 못 듣고,
소리를 못들은 탓에
용감하게 보이던 너구리,
바로 그 눈 앞에
몽둥이 든 사람들 개들을 앞세우고
오는 것 보자, 그만이야
맨 먼저 질겁을 하며
네발이 떠서 도망쳤네.
귀머거리 겁쟁인 줄 꿈에도 모르고
너구리를 대장 삼고 싸우러 나왔던
산짐승들 이 때에야 깨닫고 말았네.
"귀머거리 겁쟁이 너구리를 대장 삼은
우리들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귀먹은 도적놈을 어리석게 대장 삼고
싸우러 나왔던 귀 밝은 도적놈들
이리하여 싸움에서 지고 말았네.
백석은 일제식민통치시대에 한국과 한국인이라는 가장 민족적인 주제로 시를 쓰던 분입니다. 그러한 분의 글 세계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싶어, 위의 동화시는 이해하기가 난처하더군요. ‘집게네 네 형제’가 1957년 북한에서 출간되었다 하니, 쓰여 진 곳과 시간을 미루어 뜻을 짐작할 뿐입니다.
다음은 인터넷에서 찾은 미야자와 겐지의 소개말입니다.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 1896년 8월 27일- 1933년 9월 21일)는 이와테 현 출신의 일본의 문인이자 교육자, 에스페란티스토이다. 향토애가 짙은 서정적인 필치의 작품을 다수 남겼으며, 작품 중에 다수 등장하는 이상향을 고향인 이와테의 에스페란토식 발음인 ihatovo라고 명명하였다. 지주들의 수탈로 가난에 허덕이던 농촌의 비참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원작인 ‘은하철도의 밤’을 짓는 등의 문학활동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사후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점점 높아져 국민작가의 이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널리 읽히고 있다.
저서
쥐돌이 쳇
주문 많은 음식점
바람의 마타사부로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
은하철도의 밤
첼로 켜는 고슈
카이로 단장
‘은하철도의 밤’은 미야자와 겐지의 유작으로 그의 사후 발견된 미완성 동화입니다. 출판사는 다음과 같이 해설을 했더군요.
이 동화는 1933년 일본의 동화작가 미야자와 겐지가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의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뛰어난 상상력과 풍부한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 섬세한 표현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겐지는 여러 편의 시와 동화를 남겼지만 특히 ‘은하철도의 밤’에 깊은 애착을 갖고 있었지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여러 차례 이 동화를 손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른일곱 살의 짧은 생애를 마칠 때까지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말았지요. 그래서 이 작품은 중간에 몇 글자가 빠져 있고, 원고지 한 장이 통째로 빠진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맥에 맞춰 이어 읽으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답니다.
‘은하철도의 밤’은 일본의 동북지방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편찮으신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조반니와 그의 친구 캄파넬라가 주인공입니다. 조반니의 아버지는 솜씨가 뛰어난 어부로 가족과 헤어져 멀리 떠나 있습니다. 조반니는 자넬리를 비롯한 악동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아이입니다. “아빠가 해달 가죽 옷을 사가지고 오실 것”을 믿고 있어 그렇게 자랑을 한 걸 트집 잡아 괴롭히는 것입니다.
캄파넬라는 마을 유력자의 아들인데 늘 조반니를 편들어 줍니다. 마을에 은하 축제가 있던 날, 조반니는 편찮으신 어머니를 드릴 우유를 가지러 가다가 친구들을 만나 또 놀림을 받습니다. 캄파넬라의 응원으로 자리를 피한 조반니는 축제에 참석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여 목장의 뒤쪽 언덕에 오르는데,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들판의 경치와 별이 가득한 밤하늘 경치가 혼동되며 기적소리와 함께 열차가 달려오는 광경을 보게 되고 어느새 열차에 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열차 안에서 친구 캄파넬라를 만나 우주여행을 하는데 캄파넬라는 물에 빠진 자넬리를 구하다가 이미 죽은 사람이었고, 이 사실은 이야기의 끝에 가서야 밝혀집니다. 두 친구의 은하열차여행은 환상적인 요소가 충분하여 늙은 헌책장사를 감동시켰습니다만, 열차에 오르는 장면을 비롯한 각 에피소드의 변환에는 어색해 보이는 곳이 많아 왜 미완성 동화인지 알 수 있더군요.
다음은 같은 책을 출판한 또 다른 출판사의 해설인데 나머지 소개말에 대신하겠습니다.
《은하철도의 밤》은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자 동화 작가인 미야자와 겐지가 천문학을 비롯해 자연과학에 대한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10여 년에 걸쳐 쓴 작품입니다. 우리에게는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된 동화로 더욱 유명하지만, 일본에서는 누구나 이 책을 읽고 자란다고 할 만큼 ‘일본의 국민 동화’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지요.
사실 이 작품은 아이들이 깨닫기에는 심오한 주제가 담겨 있어,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기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필요한 만큼만 취하며 살아가는 삶의 기쁨,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와 수용, 진정한 행복에 대한 물음과 타인의 행복을 위한 숭고한 희생의 가치 등은 아이들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에 대하여 등대지기가 “아무리 괴롭고 힘든 상황에 부딪쳤다 하더라도 그것이 올바른 길로 가다가 생긴 일이라면, 가파르고 험한 고갯길의 오르막과 내리막이라고 해도 그건 진정한 행복으로 다가가는 길이니까요.”라고 한 말과 “가장 큰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은 슬픔과 고통도 모두 겪어보아야 합니다.”라는 청년의 이야기, 가치 없이 목숨을 버리게 된 것을 후회하면서 “어차피 이렇게 죽을 바엔 차라리 내 몸을 그대로 족제비에게 내주어야 했는데. 하느님, 부디 제 마음을 헤아려 모두의 참된 행복을 위해 제 몸을 쓰도록 해주십시오.”라고 한 전갈의 기도, “난 이제 저런 새까만 어둠 속도 무섭지 않아. 정말 모든 사람의 진정한 행복을 찾으러 갈 거야.”라는 조반니의 대사 등이 그렇지요.
하지만 풍부한 상상력으로 지어 낸 겐지의 동화 속 세상은 아이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일 것입니다. 우리 눈에 항상 새까맣게만 보이던 밤하늘이 동화 속에서는 마치 다이아몬드를 쏟아 놓은 것처럼 수억만 개의 별들이 반짝이는 곳이고, 춤을 추듯 사냥하는 인디언과 하늘로 뛰어오르는 돌고래가 있으며, 기러기와 백조가 납작하게 눌려 과자가 되고, 드넓게 펼쳐진 옥수수 숲과 우주를 비행하는 까치, 등에서 동그란 금빛 후광이 나는 귀여운 다람쥐가 등장하는 신비한 곳으로 바뀌니까요.
또 조반니가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해 슬퍼하는 마음이나 캄파넬라와 부쩍 친해진 카오루를 질투하면서 괴로워하는 마음, 사람들과 헤어지기 싫어 안타까워하는 마음 등 아이들이 자신과 동일시 할 수 있는 친구들의 순수한 마음도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겐지는 <은하철도의 밤>에서 은하수를, ‘신비한 은하의 물은 너무나도 투명해서 형태도 없고 소리도 없이 흐르지만, 손목에 부딪쳐 반짝반짝 인광을 발하는 물거품을 보면 분명히 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땅의 강과 하늘의 강(은하수)을 배경으로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정말 상상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처럼 환상적이지만 반면 실제 우리 생활에서 겪는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담고 있어서, 마치 은하수처럼 ‘손으로는 쥘 수 없어도 분명히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비록 삶과 죽음, 떠남과 돌아옴, 헤어짐과 만남을 교차시키며 전해 주는 작가의 뜻을 아이들이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읽고 또 읽을수록 전해져 오는 잔잔한 여운은 아이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은하철도의 밤’을 보기 전에 ‘은하철도999’를 보았던 저로서는 작품 안에서 ‘은하철도999’의 흔적을 살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보다 자식을 먼저 친해 버린 원죄라고나 할까요. 다음은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중에서 찾은 ‘은하철도999’류의 문장 들입니다.
“어떤 것이 참된 행복인지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괴로운 일이라도 그것이 옳은 길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고비라면 오르막길이든 내리막길이든 모두 참된 행복에 다가가는 한 걸음이겠지요.”
“하늘나라 같은 곳에 꼭 안 가도 되잖아.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하늘나라보다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한다고 우리 선생님이 늘 그랬는걸.”
번역된 문장이니 원문과 다를지도 모르지만 전체 작품이 풍기는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되어 옮겼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아래는 두산백과에 실린 ‘은하철도999’의 소개말입니다.
《은하철도 999》는 일본의 저명한 만화가인 마쓰모토 레이지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린 타로 감독에 의해 1979년 8월에 개봉된 이 작품은 일본작가 미야자와 겐지가 쓴 동화 《은하철도의 밤》에서 그 영감을 얻었다. 이후 이 《은하철도의 밤》은 따로 제작되기도 했다.《은하철도 999》는 1977~1979년 까지 《소년 킹》에 연재되어 큰 호응을 얻은 후 1978~1981년에는 일본 후지 TV애니로 방영되기도 했다.
TV에서의 엄청난 인기는 극장판 《THE GALAXY EXPRESS 999》 탄생의 배경이 되었다. 린 타로가 감독을 맡았던 이 극장판도 그 당시 최고의 관객동원을 이루어 《은하철도 999》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기도 했다. 이 작품의 인기와 더불어 극장판 《안녕~은하철도 999》(1981년작)가 또 다시 만들어졌고 이 또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은하철도 999》는 도에이 애니메이션사에서 제작하여 후지 TV를 통해 2년 6개월간 방영되었는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일본의 대표적 드라마판 만화라고 볼 수 있다.
용감한 소년 호시노 데쓰로(한국판 이름은 철이이다)는 영원히 죽지 않는 기계의 몸을 얻기 위해 메텔과 함께 은하기차를 타고 안드로메다로 가는 먼 여행을 떠난다. 두 사람의 베일에 싸인 여정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그려나가는 이 작품은 극장판과 TV 시리즈의 관계에 있어 이례적인 작품이었다.
기차가 우연히, 혹은 예정된 역에 정차할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나타난다. 수많은 별들을 지나며 데쓰로는 점점 어른이 되어가고, 결국 기계인간이 살고 있는 기계제국에 도착한다. 그는 감정이 없는 기계인간으로 영원히 사는 것보다는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999호를 타고 그의 고향, 지구로 떠난다. 메텔은 마지막에 데쓰로와 헤어지며 말한다. “안녕, 나는 너의 소년 시절의 꿈에 있는 청춘의 환영일 뿐이야…” 이렇게 데쓰로는 그의 소년시절을 마감한다.
이 작품은 어린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상을 바라보며 비판하고 깨달으며 어린 시절의 꿈을 어른으로 거듭나며 재창조시킨다는 이야기이다. 마쓰모토 레이지는 옴니버스 형식을 지닌 이 작품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기계주의에 대한 비판, 계급주의의 비참함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두산백과는 다음과 같이 새로운 ‘은하철도999’를 소개하고 있던데 저는 아직 속편을 보지 못했습니다.
《은하철도 999》가 17년의 세월이 지나 또 다시 발진한다. 용감한 소년 데쓰로, 메텔, 999호에 타는 상냥한 차장, 그리고 우주해적 캡틴 하록이나 해적여왕 에메랄다스 등 마쓰모토 레이지의 친숙한 캐릭터가 새로운 구상과 성대한 스케일로 다시 살아난다. 이야기는 지난번 여행의 1년 후로부터 시작된다. 지구는 신정부 아래 표면상의 평화를 유지한다. 지하 10 km의 지하세계는 얼어붙고, 피지배자들은 미래가 없는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이전에 여왕을 쓰러뜨리고 영웅으로서 맞이할 수 있었던 데쓰로도 지하 감옥에 감금되어 있다. 그런 데쓰로의 귀에 다시 그리운 기적이 울린다. 지하감옥을 탈주한 데쓰로는 메텔을 다시 만나고 999호에 오른다.
아래는 제 동심의 세계에 남은 ‘은하철도999’의 멘트 중 하나로 ‘화석의 전사’편 비디오에서 발견한 문장입니다.
화석의 전사
인간으로서의 긍지를 지킨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생명은 설령 저물었어도
그 영혼의 광채만은 영원히 철이의 마음을 비추어 줄 것이다.
철이를 태운 999호는 다시 무한궤도에 올라 달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별을 지날지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철이는 알 수 없었다.
999가 달려가는 앞길엔 무한한 별들의 반짝임만이 비추고 있을 뿐이다.
백석의 작품세계를 해설한 전문가의 글 일부와 시 몇 편을 올리는 것으로 백석의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와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소개를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특히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인 ‘민족의 뿌리’에 대한 백석의 시적 관심과 ‘지체장애인에 대한 애정’을 나타낸 해설이 있어 감동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나 사건에 관한 인상을 다룬 시적 코멘트
백석이 자신의 문학 세계를 통하여 주로 그려 내고자 했던 테마는 오로지 한국과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표상이었다. 시집 『모닥불』에서 하나의 구성과 기획을 형성하고 있는 기본 테마는 친족(親族)이라는 개념이다. 「여우난골족」, 「고야」, 「가즈랑집」, 「고방」 등을 비롯하여 시집 『사슴』의 세계는 온통 친족 집단의 분위기로 충만되어 있다. 시인은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씨족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변방 지역 농촌 마을의 삶과 정경을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 내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시대적 배경은 식민지라는 핍박의 시간이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일도 없는 듯이 보이지만 속에 감추어진 이면에서는 각종 수탈과 민족 정체성의 손상과 망실이 조직적 계획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경영에 적극 부응하고 협력했던 부류들은 절대 다수가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와 자본가들이었고, 그들을 정치적으로 비호하는 친일 관료들이었다. 백석의 시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중에 이러한 지배 군상들에 관한 코멘트를 찾아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등장인물의 절대 다수는 농민이며 서민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인 아동을 즐겨 다루고 있다. 또한 백석은 동일한 민족 공동체 구성원 중에서도 유난히 봉건적 핍박과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존재로서의 여성성을 있는 그대로 다루고자 하는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의 위치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가부장적 권위를 지닌 남성들로부터 버림받은 여성,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마침내 머리를 삭발하고 비구니가 되어 버린 여인, 식모살이를 하고 있는 가련한 소녀, 부잣집 씨받이로 들어가는 대가로 가족들을 부양하는 젊은 과부, 칼날 위에서 춤추는 신들린 소녀, 결핵에 걸려 죽어 가는 창백한 미혼 여성 등이다. 그들은 대개 현실의 중심에서 극도로 소외된 군상들이다. 거의 대부분 낮고 평범한 민중 신분들이며, 하나같이 외롭고 쓸쓸하며 가난한 서민들이었다.
한편 백석 시인은 지체 장애인에 대해서도 따뜻한 포용의 자세를 나타내 보인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모닥불」
시 「모닥불」에 등장하는 '몽둥발이 소년'은 부모를 모두 잃은 고아로서 어떤 환난을 당하여 신체적 불구가 되었다. 하지만 시인은 불구가 된 소년의 구체적 내력을 밝히지 않는다. 다만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력으로 풀어 가도록 이끌고 있다. 시인이 발표한 단편소설 작품에서도 불구 노인 부부의 삶을 매우 극명하게 리얼한 필치로 그려 내고 있다.
백석이 그려 낸 지체 장애인은 상징적 표상으로서의 한국인에 다름 아니다. 시인은 제국주의자들에게 온갖 유린과 수탈을 당하여 신체적 자유를 박탈당한 한국인의 전형성을 지체 장애인의 표상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가 백석의 시를 읽으며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시인이 한국인의 뿌리와 기원에 관하여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부분이다.
시인은 한국인이 원래 몽골과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북방 지역의 대초원에서 살다가 점차 남쪽으로 이동해 온 유목민으로서의 기원설을 긍정하고 있는 듯하다. 북방 지역에서 생존의 악조건 중에서 가장 혹독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한겨울의 무서운 추위였을 것이다. 이 추위를 피하여 보다 따뜻한 남쪽 지역으로 이동해 내려와서 마침내 한반도 일대에 다다른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시인은 이러한 한국인의 민족 기원설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백석 시인은 한국인의 원래 터전이었던 아득한 북방을 직접 답사해 보고자 하는 의욕을 나타내 보인다. 실제로 백석은 일제 말 만주 거주 시절에 북만주와 몽골 지역 일대까지 답사한 흔적을 작품 속에 반영하고 있다. 민족적 근원과 뿌리에 관한 탐구심을 열정적으로 실천해 가는 시인의 자세는 국토와 민족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그 국토와 민족은 일본이라는 외세에 의하여 중심이 점유되고 경영 주체마저도 박탈되어 버린 상태이다. 그러므로 민족적 근원을 찾아서 떠돌아다니는 시인의 표상은 마치 농토를 잃고 두만강을 넘어온 유랑민의 내적 정서와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여우난골족(族)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
(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後妻)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 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
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
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 엄매, 사춘 누이, 사춘 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
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뽁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오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
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 깨돌
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 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
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육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 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북방에서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夫餘)를 숙신(肅愼)을 발해(勃海)를 여진(女眞)을 요(遼)를 금(金)을
흥안령(興安嶺)을 음산(陰山)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던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던 말도 잊지 않었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던 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던 것도 잊지 않었다
나는 그때
아무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침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 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여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하늘로 땅으로 - 나의 태반(胎盤)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 「북방(北方)에서 - 정현웅(鄭玄雄)에게」
첫댓글
전혀 아는 게 없었던
(백석)ㅡ
그의 주옥같은
名作들만 추려서
이렇게 소개해 주신
수고와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어린이 놀이방에서
아무렇게나
굴러 다니는
동화책이나,
만화책 이라해도
가볍게 보아넘길
일은 아니지요
그 속에도 나름
세상 만사의
근본 원칙이나
대대손손 이어오는
세상 살이의
참 모습이
간략하게 집약돼
녹아 있으니까요
ㅡ이렇게 수고해
주신 덕분에
백석과
미야자와 겐지의
수준 높은
다이제스트판을
수월하게
만나보고 가는군요
감사합니다
추천도 올립니다
읽어주셨군요. 변함없이 좋은 말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백석은 분단의 비극을 겪고 있는 우리 민족의 한 표상이지요. 일찍부터 민족 시인으로 알려져 있었으면서 해방 후에 북에 남은 탓에 오히려 지워졌던 분.....
그런 탓으로 동화시집이라는 독특한 분야의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듯 싶기는 합니다만, 그 사정이야 어찌....
어리지 않은 나이에 어린 기분으로 보았던 '은하철도999' 역시 동화가 원작이었다고 하여 백석에 연하여 글로 엮어 보았는데 또 칭찬을 받았네요.
아름다운문 님의 글이야말로 동화시와 같은 감동을 주곤 하던데 아이들에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잘 해주시는 분이신듯....
밤이 늦었는데 편안히 주무세요.
저도 '흰 바람벽이 있어, 여승, 나와 나타사와 흰 당나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외워서 낭송 가능합니다, 제가 자랑스러워요 ㅎㅎ.
그러시군요. 부럽습니다. 워낙 좋은 시라서 저도 읽어두기는 했는데 외우지는 못했습니다.
저두 외울려구 해두 자꾸 까먹어요! 치맨가요?
구태여 외워야 하나요? 그냥 읽어도 백석의 시는 좋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