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미사 강론 : 늘 준비하고 있어라(루카 12,35-40) >(2.10.토.06:30)
1. 오늘은 우리 민족 최대명절 중의 하나인 ‘설’입니다. 설날을 맞아,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복을 많이 받으라고 서로 인사하고, 덕담을 주고받습니다. 새롭게 주어진 한 해는 주님이 그냥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는 더 살고 싶다고 해서, 한 달, 하루, 1분 1초도 우리 마음대로 우리 수명을 더 늘일 수 없습니다. 우리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신 새로운 한 해 동안 선행과 배려를 통해 주위사람들에게 기쁨과 축복이 되어야겠습니다.
2. 어느 대학교수가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빈민가에 사는 청소년 200명의 생활을 조사하고, 그들의 미래 모습을 써서 내시오.”
그 청소년들의 생활은 생각보다 더 열악했습니다. 범죄사건이 자주 일어날 뿐만 아니라, 부모는 술과 약에 찌들고 교육에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청소년들 중에 약 90%가 감옥에 갈 것’이라는 예측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로부터 20여년 뒤, 다른 교수가 그 보고서를 발견했고, 학생들에게 보고서 내용이 얼마나 맞는지 조사해보도록 지시했습니다. 200명 중에 180명과 연락이 닿았는데, 감옥에 간 사람은 단 4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보고서 확인조사를 했던 학생들은 그들과 일일이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고등학교 선생님 덕분’이라고 말했고, 이미 은퇴한 선생님을 찾아가 교육비결을 묻자,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전 아이들 모두 사랑했을 뿐입니다.” 그 선생님이 겸손하게 대답하셨지만, 선생님 덕분에 학생들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3. 오 헨리 작가의 단편 중에서 < 강도와 신경통 >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어느 집에 강도가 침입했습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 주인은 강도와 맞닥뜨리게 되었고, 강도는 잽싸게 총을 들이대며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손들어!”
집주인은 엉겁결에 왼손을 들었지만, 오른손을 마저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강도가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왜 한 손만 드는 거지?”
주인이 자초지종을 말했습니다. “나는 신경통이 심해서 오른손이 거의 마비되었습니다. 아무리 들려고 해도 도저히 들 수가 없어요.”
그 말을 들은 강도가 험한 표정을 누그러뜨리면서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사실은 나도 신경통이 있기 때문에 이 짓을 하고 있소. 낮엔 일을 할 수가 없고, 밤엔 온몸이 쑤셔서 잠도 못 자고. 결국 이렇게 강도짓밖에 할 수가 없소.”
이렇게 시작된 대화가 서로의 아픔을 털어놓게 했고, 날이 밝을 때까지 얘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신경통’이라는 말은 강도의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동질감을 느낄 때, 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4. 오늘 복음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종은 주인에게 시중들기 위해 깨어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주인은 종에게 시중들라고 시키는 대신 오히려 그 종을 식탁에 앉히고, 시중들어주었습니다. 종들이 평소에 얼마나 충실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그렇게 마음 좋은 주인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매주 금요일 성당 곳곳을 깨끗이 청소하고, 명절미사 제사상을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주시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사상 차림을 위해 새벽 5시에 오셔서 준비하셨습니다. 교우들의 열성을 볼 때마다 저도 그런 교우들을 조금이나마 격려하기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해서 교우들과 함께 나눠 먹곤 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렇게 많이 나눠주는데도 불구하고, 먹을 게 계속 채워진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희한합니다. 나눌수록 커지는 사랑입니다.
5. 어느 날 아침 반갑게 사제관으로 본당신부를 만나러 간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마리아 할머니였습니다. 사제관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했는데 기어코 마다하시며, 본당신부에게 선물을 하나 주었습니다. ‘와인 1병’을 주면서, 할머니가 한 얘기는 본당신부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습니다.
임종 전에 투병 중이었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할머니에게 백화점에 가자고 하더니, 직접 와인 한 병을 골랐습니다. 그러고는 할머니에게 주시면서 “나중에 내 장례미사 드려주는 신부님께 대신 좀 전해줘.”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 순간, 본당신부는 온화했던 미소를 가진 할아버지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언제 세상을 떠나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임종을 준비하며 “깨어 있는 종”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그것은 하루 이틀의 준비가 아니라, 와인을 살 때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해왔던 “깨어 있는 준비”였습니다. 우리 교우들 중에도 자신의 임종을 잘 준비하며 살아가는 분들이 종종 보입니다.
6. 오늘 복음에서처럼, 주인이 돌아올 날은 당장 닥치지 않아도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을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준비를 더 이상 뒤로 미룰 시간이 없습니다.
다른 명절과 마찬가지로, 이번 구정 설에도 가족, 친척, 친구들을 만날 것입니다. 서로 자기주장만 말하다가 잘못해서 눈살을 찌푸리거나 싸우지 말고, 오히려 상대방을 배려하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친구가 되어줘야겠습니다. 항상 깨어 준비하며,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아멘.
첫댓글 어제나 한결같은 본당 공동체 모습 감사합니다.변치않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여서 행복합니다. 언제나 같은 마음 이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