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 10년의 소회>
9월의 끝자락이다.
뭔가 허전하다 싶어 곰곰이 생각을 더듬다 보니 영화 '도가니'에 다 달았다.
벌써 10년이 되었구나!
세상을 바꾼 영화였고, 나를 바뀌지 않게 만든 영화였다.
도가니는 황동혁 감독의 작품이다.
황 감독은 요즘 '오징어 게임'으로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축하드린다.
한밤중에 도가니 영화를 다시 보았다.
2011년 9월, 시사회에서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 났다.
그날 영화관에서 펑펑 울었다.
영화 도가니의 영문명은 'Silenced'다.
무진의 지독한 안개를 넘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소리를 잃고 '침묵당한' 사람들의 몸부림이 느껴진다.
퇴근하던 강인호(공유)의 차량 보닛에 비친 '유리'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유리는 강인호 선생님을 세탁실로 이끈다.
거기에서 윤자애에게 세탁기 린치를 당하고 있던 '연두'를 구한다.
김연두, 진유리, 전민수, 전영수... 박보현, 교장, 행정실장, 윤자애... 장경사, 장학사, 교수,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수화통역사... 그리고 강인호와 서유진.
영화와 현실을 오가며 오버랩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스쳐간다.
영화 끝부분에서 서유진(정유미)이 강인호에게 묻는다.
"후회해요? 이 일에 뛰어든 것을..."
강인호를 대신해 내가 대답한다.
"자칫 정치권을 넘보았을 나를 보석 같은 아이들 곁에 머물도록 붙잡아 두었어요."
영화 도가니는 내 인생에 있어서도 분수령이 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도가니 영화 제작자인 삼거리 픽쳐스 엄용훈 사장님이다.
2011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도가니 피해자와 인화대책위 활동가를 초대해 주셨다.
2박 3일의 서울 여행을 하며 주연배우인 공유 씨와 정유미 씨를 만나고, 대학로에서 연극도 보고 놀이동산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후 삼거리픽쳐스에서는 도가니 피해자들에게 1억 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영화 도가니로 인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05년부터 알려진 인화학교 성폭력 문제를 전 국민에게 알리고 해결해나가는 동력이 되었다.
또한 도가니법으로 불리는 사회복지사업법과 성폭력특례법이 개정되었다.
장애인 시설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의 인권과 여성인권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도가니는 여기저기에서 반복되고 있다.
진전은 있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번 대선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인권에 대하여 주장하지 못하게 '침묵당한' 사람들의 인권이 한걸음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2021.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