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제천국제영화제 개막식 풍경. (사진=이명희 영화평론가 제공)
13회를 맞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제천영화제)가 지난달 15일 막을 내렸다. 국내 최초의 국제음악영화제인 제천영화제는 올해 더욱 다채로운 음악 영화들로 돌아왔다. 34개국에서 온 107편의 음악영화로 역대 최다 상영작을 기록했다. 카페회원들의 안전을 위해 iframe 태그를 제한 하였습니다. 관련공지보기▶
음악은 한 시대의 정치와 역사를 뒤바꾸기도 하고, 이제는 사라진 문화를 영원히 간직하기도 한다. 여름을 보내는 지금, 이명희 영화평론가가 제천영화제에서 만났던 특별한 영화들을 음악 장르별로 모아봤다.
◇ 집시 스윙 재즈: '장고'
에티엔 코마르 감독의 '장고'는 야심찬 개막작이었다. 집시 스윙 재즈의 전설적인 창시자인 실제 인물 장고 라인하르트의 이야기를 다뤘다.
우리나라에서 음악애호가가 아니면 생소한 음악가 장고 라인하르트의 인생 일부분이 소개되는데, 주연을 맡은 배우 레다 카텝의 연기와 음악이 뛰어나다. 역사적 인물의 전기영화이면서도 나치가 저지른 집시 대학살의 역사를 말하는 정치적 영화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집시의 비통한 역사를 다룬 영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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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등장하는 집시들은 전문배우가 아니라 실제 집시들이고, 모두 집시 언어를 사용한다. 이는 집시 문화를 다룬 영화들 중에서 상당히 보기 드문 접근이다. 에티엔 코마르 감독은 '장고'가 나치에 의한 집시 박해를 다룬 첫 영화라고 강조했다.
◇ 인디언 음악: '미국 록의 인디언 뮤지션들'
'미국 록의 인디언 뮤지션들'은 미국 대중음악에 지대하게 기여하였으나 무시되었던 인디언 음악의 역사와 뮤지션에 대한 심도깊고 세밀한 연구이다. 20세기 초 음악연구가들은 인디언 음악이 사라질 것이라 확신했지만, 금지와 수난을 거쳐 아프리카 음악과 인디언 리듬이 합쳐 미국음악이 탄생했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배우이며 음악인이었던 인디언 인권운동가 존 트루델에 헌정된 이 다큐는 지미 헨드릭스, 랜디 카스틸로 등 대표적인 인디언 뮤지션들을 영광의 권좌에 올려놓으며 인디언의 자부심을 복권시킨다.
◇ 록(Rock) : '롤링 스톤즈, 올레, 올레, 올레!'
대중음악의 영향력이 놀랍다는 것을 보여주는 즐거운 다큐다. 1960년 이후 처음으로 록음악이 허용된 쿠바를 롤링 스톤즈가 방문하는데, 공교롭게도 미국 대통령이 80년만에 방문하는 시기와 맞물려 어느 것이 더 역사적 순간인지 알기 어렵다.
공산독재정부에 빼앗긴 젊음과 자유의 상처를 회복시키는 롤링 스톤즈 공연이 더 중요해 보일 정도여서, 온 국민이 자신보다 '롤링 스톤즈를 기다리는 쿠바'를 오바마가 거론하는 장면은 대단히 유쾌하다.
◇ 칠레 음악 : '칠레 음악에로의 여행'
나후엘 로페즈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독일 록밴드 '디 에르츠테'의 뮤지션인 로드리고 곤잘레스는 5살 때인 1974년 피노체트가 군부쿠데타로 장악한 칠레를 떠났다.
독일에서 성장해 거의 독일인과 다름없지만 40여년 만에 고국으로 '이미 했어야 할'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은 현재의 칠레음악이 과거의 음악을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여행이며, 칠레 음악인들과의 만남과 증언을 통해 칠레의 정치와 역사를 다시 기억하는 여행이다.
칠레 음악인들은 칠레의 누에바 깐시온(새로운 음악) 운동으로 칠레 음악이 곧 남미 음악을 대표했고, 칠레 음악의 본질은 저항이며, 음악을 하려면 자유가 필요하다는 보편적 진리를 증언한다. 카메라는 산티아고의 골목, 동네이발소, 공터, 시장 등 음악인들이 살아가는 일상적인 장소들을 친근하고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잡아낸다.
정치적 억압을 당해 온 음악인들의 유머와 위트 섞인 증언은 감동적이고 서글프며, 빅토르 하라와 같은 예술인들이 고문당하고 학살당한 유명한 산티아고 경기장 방문은 비감하다. 기타와 유사한 악기 차랑고 자체를 당시 군부 독재가 금지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영화는 음악이 곧 정치이며 역사이고 시대정신을 대변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