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 서울에서 대전으로 12년
직업 군인의 삶은 일정한 주소지에서 오랫동안 살기 어려워 일단 본거를 서울에 두고 옮겨 다니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은 점차 달라지고 있지만 장군이나 고급장교들의 주소지는 늘 서울이었다. 전역 후에도 대부분 고향으로 귀향하지 않고 서울에 정착한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2010년경 귀향하고 싶은 생각이 솔곳이 살아났다. 아내는 내 생각에 반대하지 않으면서 나를 따르겠다고 했다.
2011년 봄. 작정하고 대전으로 향해 탐방에 나섰다. 대전중학교(6년제) 시절 살고 있었던 대전의 구도심으로부터 유성 그리고 세종시까지 두루 살펴 본 결과 유성으로 내심 결정했다. 유성 온천 도심에 40층 35층 33층 세동의 고층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공사가 막 끝나고 입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더러 빈 곳이 남아있었다. 41평 50평 외는 없다고 해 엄청난 값에 겁먹고 돌아서려고 하자 묻지도 않는 값을 말하는 관리사무소 직원의 말을 듣고 내심 놀랐다. 주상복합 아파트이고 철골 콘크리트 구조로 최고 수준의 아파트인데 값은 서울의 5분지 1도 안됐다. 나는 집필실이 필요했고 아내는 화실이 있어야 하기에 50평형으로 정해 그 자리에서 계약했다. 지방의 아파트 값이 싸다는 이야기는 듣고 있었지만 이렇게 엄청난 차이인지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2012년 6월 1일, 유성자이아파트에 새 거처를 정했다.
2023년 현재, 꼭 12년을 살고 보니 대전은 천국이었다. 새로 생긴 도시 건물은 8차선 널찍한 도로로 연결돼 있고 양쪽 도로변에는 정글로 비견되는 가로 공원이 한없이 이어져 있어 한여름이면 녹음 천지로 변한다. 아마 우리나라 도시 가운데 이렇게 널찍한 공용 공간이 어디 또 있을까?. 지하철도 쾌적하고 편리해 대전역에서 유성온천역까지 이용하면 서울 나드리도 불편이 없다. 주변은 녹음 우거진 공원 천지다. 승용차로 15분 거리면 계룡산까지 연결된다. 아파트 바로 옆에는 유성천이 흐르며 천변 양쪽에는 자전거 보행 겸용로가 장장 40Km 논스톱 스포츠를 즐길수 있다. 대전의 도심에 보문산이 있고 변두리에는 장태산, 식장산, 계족산이 있다. 어디 자연 뿐이랴, 온천수를 언제나 이용할 수 있다. 물가도 서울에 비하면 저렴하다.
특히 창작 환경도 좋아 12년 동안 여섯 권의 창작 단행본을 출간 했다. 그 가운데 세권의 단행본이 스테디 셀러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5성장군 김홍일, 전쟁영웅 채명신 장군, 박경석 에세이 정의와 불의가 그 세 권의 단행본이다. 더구나 2000년 출간한 박경석 장편실록소설이 육군사관학교 생도 필독 도서로 선정되었다. 최근 출간한 박경석 에세이 정의와 불의는 베스트 셀러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이러한 축복 속에서 나는 만 91세를 맞는다. 다시 100세를 행해 전진의 각오를 겸허히 다진다.
나는 이렇게 12년 동안 천국에서 살았다. 운동 여건이 좋아 건강도 훨씬 나아졌다. 앞으로 더 긴 세월 살다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아내 김혜린과 함께 영면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