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3년 국제결혼 초창기였기에 나로서는 신뢰할 수 있는 에이젼시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급선무였다.
그렇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였다.매일 인터넷을 보면서 아들(융)에게 해외 에이젼시를 찾으라고 말했다.
그러던 중 인터넷을 뒤지다가 필리핀에서 온 메일을 찾았다.
필리핀에 유학왔다가 영어학원을 운영한다는 박사장이었다.
그는 한국의 좋은 회사와 협력해서 오래도록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생각은 나도 마찬기지였다.
나는 필리핀 현지 상황을 전혀 몰랐으므로 그에게 맞선볼 수 있는 여성의 수.진행 방법.
또 여성회원 사진과 프로필을 보내줄 수 있는지 그리고 걸혼비용 등을 자세히 물었고
그는 나름대로 성실하게 답변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한국내 주소.주민번호와 학력까지도 확인한 후 에이젼시 계약을 체겔했다.
그 즈음 대전에 사는 한 청년과 상담하게 되었다.그리고 며칠후 매형과 함께 사무실에 왔다.
그는 매형이 운영하는 그릇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여성들이 그릇을 살 때면 곧잘 상담하고 물건을 잘팔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성으로서의 여성을 보면 입이 딱 막혀서 말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예 말이 통하지 않는 필리핀 여성과 결혼하러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자기가 데리고 왔으니 사장님이 직접 데리고 필리핀 가서
결혼시켜주고 자신도 따라 가겠다고 했다.
그는 키가 180센티가 다 되었고 체중은 65키로 정도인 호리호리하고 아주 순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우리는 곧 4박 5일의 일정을 잡고 아시아나를 타고가서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서 내렸다.
마닐라에는 신공항과 구공항이 있었는데 우리는 신공항에서 내렸다.
나는 기내에서 혼자갈 때는 어떤서류를 준비하고 어느 출구로 나가며 공항 내부는 어떤 구조이며
마중 나오면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등을 자세히 메모했다.
나중에 신링 혼자 보낼 때를 대비해서였다
우리가 공항밖으로 나가자 기다리고 있던 박사장이 반갑게 맞이했다.
그의 안내를 받아 시내의 한 호텔에 투숙했다.한국인 관광객들이 가면 흔히 투숙하는 그런 호텔이었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여성이 있는 직장으로 찾아가서 부근 커피샾에서 만나 선을 보았다.
필리핀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아 여성의 전화번호와 프로필을 빋아두어도
1-2개월 지나면 직장을 옮겨서 만나기가 여간 어려웠다.
문제는 필리핀 에이젼시는 자금력이 열악해서 여성회원 확보는 말할 것 없고 수속진행이나
에이전시의 신원확보 자체도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성혼된 여성은 한 직장에서 10년을 근무해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 정도 근무한다는 것은 여성이 심지가 굳고 무엇보다도 상사의 신임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것 한가지만 봐도 좋은 여성이라고 했다
우리는 두사람의 의사를 확인하고 성혼합의서를 작성하고 시청 부근에 있는 목사님의 사무실에서
그분의 주례로 간단한 결혼식을 가졌다.그리고 시청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그때 증인은 나와 현지 에이젼시 딱 두사람이었다.
저녁에 신부의 부모님과 친척들 십여명을 초대해서 식사하고 신랑신부를 호텔로 안내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에 신랑의 기분이 여간 좋은 걸 보니 첫날밤은 잘 치룬 것 같았다.
아침부터 시내관광을 하고 우리는 4박5일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런데 귀국 후 며칠 지나서 매형에게서 전화가 왔는데,신랑이 성병에 걸렸다면서 우울해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형이 "요사이 나이 30이 다된 여성이 남자 안만나 본 여자 있겠느냐 "고
설득해서 그 순둥이는 쉽게 풀어졌다고 했다.
2개월이 지나서 신부가 한국에 입국해서 대전 부근의 조그마한 아파트를 세 얻어서 잘 살고 있는데
신부가 닭고기를 좋아해서 자주 사주면서 신혼 재미로 깨가 쏟아진다고 했다.
이렇게 필리핀 결혼은 싱겁게 했지만 에이젼시는 처음 약속과는 달리 매사를 끊고 맺음이 부족했고
무엇보다도 돈이 없어서 보낼 때 마다 크고 작은 잡음이 생겼고 여성회원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서 항상 불안했다.
그래서 좀더 안정된 에이젼시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