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주의, 국수주의를 낮잡아 이르는 말로 '국뽕'이라는 말이 있다. 특히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에서 이 말이 자주 쓰이는 걸 볼 수 있는데, 그 원인은 아무래도 세계 문화 시장에서 한국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데서 나온 과도한 의욕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을 찾은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두유 노 김치?'(여기서 '김치'에 해당하는 부분은 '강남스타일', '불고기', '코리안 무비' 등의 단어로 대체 가능하다)와 같은 질문을 하거나,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 "한국영화를 살린다는 마음으로 봐 달라"는 메시지로 우선 호소하거나 하는 경우가 그렇다. 나 역시 이처럼 콘텐츠의 객관적 가치를 가리는 과도한 애국주의에 휘둘렸던 적도 있고.
그러나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이 '국뽕'이라는 단어가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 자체까지 부정하려는 태도까지 일으키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른바 '쿨한 태도'가 응당 인정받아야 할 수준의 가치도 인정 받지 못할까 하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충무공 이순신 같은 역사적 위인을 다룬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진 적이 없는 것도, 점점 국민들이 일방적인 애국심을 경계해 가는 분위기 탓도 있을 것이다. 이미 서양에서는 이순신을 신화적 존재로 그린 그래픽 노블도 나온 마당에 말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에 처음으로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하여 만들어진 한국영화 <명량>은 두 가지 우려를 불식시킨다. 첫째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류의 영화가 아니며, 둘째로 대다수가 교과서 속 활자로 접했을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불안과 죄책감, 리더십으로 똘똘 뭉친 한 인간으로서 살아움직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뽕'으로 관객을 쉬이 끌어들이는 영화가 아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5년의 시간이 흐른 1597년, 이순신(최민식)은 당시 임금인 선조의 뜻에 따라 수군통제사에서 물러나 한양에서 심한 고초를 겪었다. 수군통제사의 자리는 원균이 대신하였으나 칠천량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원균이 이끄는 수군은 왜군에 대패하였고, 12척의 배만이 살아나서 도망하였다. 이 상황에서 선조는 백의종군하며 남은 병력을 수습 중이던 이순신을 다시 수군통제사 자리에 앉히고는, 남은 병력들도 육군에 합류하도록 하라는 어명을 내린다. 그러나 이순신을 어명을 순순히 따를 수 없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왜의 수군을 막아내지 못하면, 그 기세는 한양에까지 이를 것이 자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저히 승리를 말할 수 없는 싸움이 될 거라는 두려움과 패배감이 군사들과 백성들 전체를 뒤덮고 있고, 열악한 판세에 가장 의지했던 한 채의 구선(거북선)까지 설상가상으로 불타면서 상황은 최악을 향해 간다. 그러나 이순신은 울돌목, 즉 명량의 회오리바다를 들여다 보며 그곳에서 적은 아군의 수로도 왜군을 격파할 묘책을 궁리한다. 한편, 왜는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에게 대패한 와키자카(조진웅)를 대신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스카우트해 온 용병이자 한산도에서 이순신으로부터 동생을 잃은 구루지마(류승룡)를 선봉에 앉혀, 이순신과 남은 조선 수군을 격파하기 위해 나선다.
<명량>은 기존의 전쟁 영화나 역사 드라마와는 다소 차별화된 노선을 따른다. 하나의 큰 전쟁을 소재로 한 것도 아니고, 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것도 아니고, 몇년 간의 전쟁 속에서 단 며칠을 차지한 하나의 전투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하나의 전투만으로도 12척의 배로 330척의 적군을 물리쳤다는 충분히 극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만, 전후 설명이 충분히 있어야 그래도 승부의 중요성이나 이 전투에 결집한 인물들의 절박함에 몰입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감독이 향후 '이순신 3부작'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그 첫 이야기를 전쟁의 시작이나 끝도 아닌 한 가운데에 자리한 하나의 전투로 시작한 것은 꽤 영리한 선택처럼 보인다. 이 하나의 전투에 실은 좌절과 극복, 갈등과 화합의 요소가 신기하게도 기승전결처럼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 모든 요소를 생각보다 매우 찬찬히 풀어나간다. 관객의 예상을 예리하게 뒤엎는 새로움은 없으나, 반목과 좌절, 전쟁의 발발에서 화합과 승리로 이어지는 과정을 일직선의 걸음으로 나아간다.
영화는 크게 두 단계의 구성으로 나뉘는데 전반은 해전이 발발하기 전 내외적으로 발발하는 위협과 갈등을, 후반은 본격적인 명량해전에서의 전략전술과 승부를 풀어낸다.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로부터 기대할 해상전 장면이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전투신이 거의 없는 전반부가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군사들과 백성들 전체에 빼곡하게 자리한 패배감과 두려움, 그 속에서 그들을 이끌어야 하는 이순신이 겪는 내외적 갈등으로 인해 전반부도 후반부 못지 않은 긴장감이 흐르고, 어떻게 보면 정서적인 여운은 전반부가 더 진하게도 느껴진다. 전반부에서 이순신은 자신의 향후 전략에 대해 외부로부터 끊임없는 의심을 받는다. 수군통제사라는 자리를 다시 맡겨놓고는 육군에 합류하라며 지원조차 하지 않는 군주는 물론, 그가 직접 지시하고 통제하는 지역 군 간부들조차도 사사건건 태클을 건다. 그러나 이순신 역시 불안과 의심으로 가득한 군사들을 쉽게 다스리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이들 사이에 자리한 두려움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얼마나 꺼뜨리기 힘든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수많은 백성들의 가족이기도 한 병사들이 왜군에 의해 몸과 코를 잃은 채 머리만 남아 돌아오는 이 상황은, 섣부른 희망조차도 조롱처럼 느껴질 만큼의 절망과도 같다. 영화의 전반부는 이처럼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끔찍한 위협과 내부로부터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두려움의 기운 속에서 이순신이 겪는 내적 갈등에 집중한다.
이 부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순신으로 하여금 이토록 담대한 판단을 하게 한 심리적 요인이었다. 그 심리적 요인이란 앞서 떠나간 동료들, 스러져 간 목숨들에 대한 죄책감이다. '울며 돌아가는 목'이라 하여 '울돌목'이라 이름붙여진 명량의 넘실대는 바다, 마치 사내가 우는 듯한 그 물살의 소리를 들으며 이순신은 마치 먼저 스러져 간 무고한 목숨들의 울음을 듣는 듯 하다. 그로 인한 이순신의 심리적 고통은 세상을 떠난 동지들과 만나는 악몽을 꾸는 장면에서 더욱 극심해진다. 병사들 사이에서도 두려움의 기운이 점점 짙어지고 심지어 탈출하려 했다 붙잡힌 병사까지 생기는 상황에서, 이순신은 돌아올 다리를 불사른다는 심정으로 부하 병사의 목을 베기까지 하는 가혹한 결단까지 내린다. 그러나 그 역시 인간인지라, 꿈 속에서 함께 싸우다 목숨을 잃은 동지와 자신의 칼에 목숨을 잃은 부하 병사들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힌다. 급기야 이순신은 꿈 속에서 자신을 서럽게 바라보는 떠나간 동료들을 따라 몽유병 증세까지 보인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결국 이순신을 남들이 보기에 무모하기까지 할 길로 나아가게 한 것이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두려움, 그로 인한 책임감이었을 거라 얘기한다. 불안과 패배감이 점차 영혼을 잠식하려 하는 그때 떠나간 동료들과 부하들은 그에게 마치 '이렇게 우리의 목숨이 헛되게 할 것인가' 하며 원망을 내비치는 듯 하다. 바로 그 꿈을 꾼 직후, 운명은 마치 이순신을 시험하듯 거북선을 불살라버리면서 이순신에게 가장 강력한 좌절을 안긴다. 하지만 결국 이순신을 편히 잠들 수 없게 한 그 죄책감, 미안함이라는 감정은 그가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게 만들고, 그 막다른 길에서 결국 묘책을 찾게끔 만든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주저앉아도 자신은 결코 주저앉거나 물러설 수 없는 리더의 위치에서, 이순신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주문을 어쩌면 자기로부터 시작해 병사들과 백성들에게로 퍼져나가게 한 건 아니었을까. 기적같은 승리를 만든 역사적 전투에 뛰어들게끔 한 이순신의 심리적 파고를 표현한 이 장면은,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해상전 이상으로 강렬한 여운으로 다가왔다.
후반부에 몰아치는 명량에서의 해상전은 이순신의 그러한 책임 의식이 낳은 필사적 전략 아래 펼쳐진다. 영화는 왜군의 선공과 조선 수군의 반격, 위기와 반전, 화포를 이용한 원거리 전투와 병력들이 직접 부딪치는 근거리 백병전 등 다양한 국면의 전투를 자세하게, 그러나 어렵지 않게 보여준다. 화포를 맞아 당황하고 있는 왜군의 전함에 화살을 날려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기도 하고, 이순신을 노리는 저격수를 후면 지원군의 궁술로 방어하기도 하고, 백병전으로 인해 열세에 놓여있던 상황에서 갑판 아래에서의 집중 포화로 달라붙어 있던 왜군의 전함들을 순식간에 흩뜨려놓기도 한다. 아찔한 위기와 화끈한 반전이 반복되면서 한 시간여 동안 해상전이 지속됨에도 긴장을 놓을 여지를 찾기 힘들다. 영화는 화포와 소신기전은 물론 조란탄 같은 특수무기의 파괴력도 매끈하게 담아내면서, 아군과 적군의 무기와 몸과 피가 뒤엉키는 백병전의 광경을 롱테이크로까지 잡아내어 치열한 현장감도 구현한다.
그런데 이 해상전의 중요한 특징은 이순신이 지휘하는 대장선이 조선 수군의 원톱 선봉으로 선다는 것이다. 이순신의 의지로 남은 전함들이 모두 전투에 나서긴 했으나, 대장선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함은 전방에 나서기에 소극적이다. 이 상황에서 이순신은 시작부터 굳이 다른 전함들을 불러 모으기보다 자신이 탄 대장선이 먼저 앞서 나가 가능성을 타진한다. 자신이 먼저 나가 가능성의 일부를 실현시킴으로써, 우리가 충분히 해볼 만한 전투라는 것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다. 뒤에서 "괜찮다, 나가보라"며 지시하는 리더가 아니라 앞서 나가 입증하며 "괜찮다, 나와보라"며 이끄는 리더 앞에서, 결국 군사들이 나아갈 용기를 얻고 그 용기는 지켜보는 백성들에게까지 미친다. 위험 앞에 가장 먼저 나서서 분투하는 리더를 뒤따르는 병사들과 지켜보는 백성들은, 물러나 있다가도 본능적으로 응원하고 나아가 지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리더의 용기가 불을 붙여 이름모를 병사들과 백성들도 위대한 전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영웅이 된다. 시작은 리더가 많은 것을 무릅썼지만 마무리는 리더와 병사들과 백성들이 함께 이끌어낸 전투. 그래서인지 영화는 이순신에게만 향해 있을 줄 알았던 카메라로 백성들을 심심치 않게 비춘다. 이순신의 대담하고도 절묘한 전략, 그로 인해 힘을 얻는 병사들과 백성들의 모습은 일종의 대칭을 이루면서 이순신이 발휘한 리더십이 얼마나 거대한 것이었는지를 꽤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말하자면 이순신의 리더십은 울돌목이 품고 있던 회오리바다와도 같은 것이었다. 먼저 떠나간 동료들과 백성들을 향한 뼈저린 미안함, 그리고 더 많은 희생을 당하고 그들의 얼굴을 떳떳치 못하게 만날까 하는 두려움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게 하는 필사의 용기를 낳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작된 역전의 회오리는 퍼지고 퍼져서 병사들과 백성들을 뒤흔들기에 이른다. 결국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얻는 감동이 있다면, 그것은 딱딱한 애국주의로부터 비롯된 나라를 향한 감동이기보다 미안한 마음을 잊지 않았던 이상적 리더에 대한 감동에 더 가까울 것이다.
최민식 배우는 이러한 이순신의 인간적 면모를 두말 할 나위 없는 카리스마로 생생하게 재현한다. 그는 선봉장의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의 특성상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음에도, 어느 순간 들키고 마는 안타까운 번뇌와 내내 꿈틀거리는 불안과 책임감을 번갈아 보여주며 이순신을 충분히 생동감 있는 캐릭터로 만들어낸다. 더불어 이런 그의 연기는 적군, 아들, 병사, 백성 등 각기 다른 입장에 선 주변 캐릭터들과 어우러지며 프리즘을 거친 듯 조금씩 다른 색깔을 낸다. 적군 앞에서는 결코 지지 않는 호랑이 기운의 장수로, 아들 앞에서는 언제나 당당하고픈 아버지로, 병사 앞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상관으로, 백성 앞에서는 겸손하고 충직한 리더로 말이다. 최민식 배우와 그가 연기하는 이순신의 존재감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의 존재감이 그와 대등하진 못하다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굳이 어느 한 명이 특출나게 두드러지지 않아도, 명량해전이 만들어내는 절박함과 좌절, 분노와 희망, 갈등과 이해 등 오만가지 감흥의 풍경을 이끌어내는 요소로서 충분히 의미 있다. 구루지마 역의 류승룡과 와키자카 역의 조진웅은 아쉬운 후반부 활약에도 존재감 있는 갈등구도로 충분히 스크린을 채우고, 권율(이회 역)과 박보검(수봉 역)은 노쇠한 리더를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역할로서 고민과 믿음의 이미지를 충실히 보여준다. 이승준(안위 역)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라면 리더와의 대립도 불사하지만 확신을 얻는 순간 리더를 위해 무엇이든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강직한 군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진구와 이정현은 적은 비중이지만 전세를 이끌어 가는데 소리없이 한몫을 했던 무명 백성의 모습을 애절하게 보여준다. <명량>을 세련된 영화라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정적인 전반부와 동적인 후반부의 대비가 너무 확연하고, 이순신을 위시한 군사 및 백성 등의 앙상블은 상징적이지만 동시에 전형적이기도 하다. 이야기 전개에서 솔깃한 트릭을 구사하지도 않고 역사 속 한 전투의 기승전결을 충직하게 따라가서, 가뜩이나 역사가 스포일러인 이야기에서 색다른 반전을 찾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관객의 가슴 속에 첨벙하고 들어온다면, 그 이유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어째서 위대한지를 인간적인 근거로 풀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발견하는 이순신은 지략가, 충신, 승부사 따위의 교과서적 수식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백성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이 낳은 책임감으로 나아가는, 그럼에도 먼저 앞서 나가 백성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리더가 있다. 그 노력으로 결국은 그 사람 하나만이 아니라 동참하는 모든 병사들과 백성들까지 영웅이 되는 광경을 목격한다. 이 광경에 이 정도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들은 만날 수 없는 순간이기에, 지독하게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출처: Man`s Labyrinth 원문보기 글쓴이: jimmani
첫댓글 감동 입니다.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며 뭔가 벅차오르는 느낌은 뭘까?
애~국~심?
애국심도 있겠지만 현시점에 그런 리더가 없다는 것이 더 끌리게 하지
나는 두번 보았음
명량...나두 두번 보았어.... 이제는 시카고에서도 한국영화를 상영해....상업영화관에서,,,대형스크린으로, 아마도 관객이 많아서인지.... 군도 상영.... 내일 부턴 타짜2 상영...
락준아 너도 충무공을 존경 하는군
나 역시 충무공을 너무 존경 하는 마음에 내 호를 충무공의 자를 따서 여해로 했네
아산 충무공 묘소에 들러서 두번 절하고 허락을 고했네
존경하지... 현명한 판단. 지략. 결사각오. 자기희생. 군율. 민심. 선택과 집중.
그라고 추억...5학년때인가.... 나 그때 충무공 염결장? 받았지.... 그때 그런가 있었어..
그건 그렇구...두번 절하니까 .. 뭐라고 하시든.....ㅋㅋ
흔쾌히 허락 하시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