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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같은 아내와 팔불출 남편!
影園 김인희
필링콘서트에 초대되어 홍산 행정복지센터 야외무대에서 시낭송을 하기로 했다. 가을의 오후는 태양의 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행사가 휴일로 잡혔기 때문에 남편과 동행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남편은 평일에 행사가 있을 때는 무대에 선 아내의 모습을 보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했다. 그때는 딸에게 두둑하게 용돈을 챙겨주면서 엄마와 동행하여 응원해 주고 사진을 찍어주라고 신신당부를 잊지 않았다.
남편은 집에서 행사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교회를 다녀오고 배경음악에 맞추어 시낭송 연습에 여념이 없는 아내를 위해 무대의상을 손수 다림질해 주었다. 아내가 어깨에 흰색 머플러를 두르겠다고 하자 머플러도 다림질했다. 자동차를 드라이브하는 남편 옆에서 아내는 긴장하는 모습을 들키고 말았다. 남편은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주면서 ‘여보, 아마추어처럼 왜 긴장할까. 집에서 연습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해. 내가 있어서 더 긴장하면 안 되는데...’라고 말했다. 아내는 심호흡해도 긴장이 누그러지지 않아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남편 앞에서 더 잘해 보이고 싶은 아내의 마음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일기예보를 모른 채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굵은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무대는 돔형 지붕이 있어서 다행히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객석과 출연 대기자들이 있는 곳도 천막을 설치했지만 바람을 동반한 비는 천막 안으로 거침없이 침범했다. 아내는 출연진들과 따로 떨어져 있었고 남편은 객석 천막에서 아내의 출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긴장의 끈을 단단히 움켜쥐고 스스로 점검하고 있었다. 배경음악 어디쯤에서 인사하고, 어디쯤에서 시낭송을 시작하고,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할 것과 감성으로 시를 낭송하여 객석에 앉은 사람들에게 詩를 통하여 문학의 바다에 풍덩 빠져들게 하고 싶은 야심을 간직했다. 행사를 주최한 필링콘서트에 노래와 어우러지는 시낭송으로 흡족한 결과를 안겨주고 싶었다. 아내는 스스로 주마가편하면서 객석에 앉아있는 남편을 바라봤다.
남편은 장대비가 들이치는 천막 안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아내의 가방을 품에 안고 보호하면서 동영상 촬영을 위해 휴대전화를 삼각대에 설치하고 있었다. 남편은 일주일 동안 한시도 쉼 없이 일하고 모처럼의 휴식시간을 아내를 위해 바치고 있는 숭고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 남편의 어깨너머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아내는 스물여덟 살에 스물아홉 살의 키 큰 청년을 지인의 소개로 만나서 4개월 만에 결혼했다. 결혼 전에 만난 횟수는 열 손가락 꼽으면 손가락이 남았다. 남편과 아내를 측근에서 지켜보고 만남을 주선한 양가 어른을 믿었고 둘이 연애 한 번 못한 숙맥이라는 공통분모가 가깝게 했다. 결혼 후 아내는 지인들의 연애 사연을 돈키호테의 무용담처럼 부러워하면서 연애 시절이 없었던 것을 핵무기를 능가하는 최신 무기로 여기게 되었다. 어쩌다 일상에서 전환하고 싶을 때면 ‘아, 연애하고 싶다!’라고 외마디 탄성을 내지르곤 했다.
책을 좋아하는 아내가 독서를 할 때마다 ‘지금은 시인과 열애 중이야!’, ‘지금은 소설가와 사랑에 빠졌어!’, ‘이번 사랑은 삼각관계야. 작가와 주인공 둘 다 멋있어!’라고 선포하면 남편은 빙그레 미소 짓고 ‘알았어, 데이트비용 필요하면 말해. 얼마든지 줄게.’하고 받아넘겼다. 요즘 아내에게 책을 읽을 때마다 누구와 열애 중이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언젠가부터 책의 저자를 직접 만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남편과 아내의 눈치를 살피면서 키득키득 웃고 남편은 개선장군처럼 박장대소를 하는 날들이다.
아내가 두 자녀를 수술해서 출산하고 몸이 아파서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때 키 작은 아내는 넓은 침대에 뉘고 몸집이 큰 남편은 보호자용 침대에서 웅크리고 쪽잠을 자면서 간호했다. 아내가 신음하면 함께 밤새고, 간호사에게 달려가고, 수술을 기다리면서 금식해야 하는 기간에는 남편도 함께 금식했다. 병실에서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남편이 자리를 비울 때면 이구동성으로 ‘새댁이 복이 많아. 남편이 자상하게도 보살피네. 여기 둘러봐. 남편이 병간호하는 사람이 있나.’라고 말해주었을 때 비로소 남편의 사랑을 깨달았던 숙맥이었다. 자녀들을 출산했을 때는 빈혈이 심했던 아내가 넘어지지 않게 부축해서 신생아실로 가서 우리 아기들을 만날 수 있게 했다. 공주 같은 딸과 왕자 같은 아들을 얻을 때 우리 부부는 적금통장 하나씩 해약하고 산고(産故)도 함께 했다.
남편은 자녀들을 잉태했을 때 태교를 시작하고 자녀들을 출산한 후 양육할 때 전적으로 아내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한 배포 큰 남자였다. 아내가 자녀들의 백일반지와 돌반지를 팔아 방안에 가득 책으로 채울 때도 반대하지 않았다. 자녀들 학교생활과 학교 행사에도 아내에게 선택권을 주고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 주었다. 두 자녀를 옆에 끼고 아내가 방송통신대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남편의 외조는 빛을 발했다. 아내가 시험 보는 날에 남편은 대전 시험장에 아내를 내려놓고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대청댐에서, 대전 동물원에서 종일 지내고 태양이 서산을 넘는 어스름한 저녁에 꾀죄죄한 자녀와 녹초가 된 모습으로 시험장으로 아내를 데리러 왔다. 그 시절이 가장 힘든 시기라고 기억 속에 저장해 두었는데 시간이 약이라더니 그때 남편이 가장 젊었고 자녀들이 가장 예뻤고 아내의 꿈은 싱그러웠다!
남편은 아내가 대학교를 졸업한 후 단독주택을 사서 옥상을 공사하여 방을 지었다. 아내가 교육지원청에 과외교습소 인허가를 받아 공부방을 차리고 학생들을 불러 모아 공부방 교사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옥상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이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위험할 수 있어서 학생들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집 안에 있는 계단을 이용하기로 했을 때 남편과 두 자녀는 양보와 배려를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 만장일치로 집을 활짝 열어 공부방을 응원했고 아내는 15년이 넘는 시간을 행복하게 일했다. 아내가 공부방을 하는 기간에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성경을 읽다가 우쭐하고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거두어 가는 것을 보았어요. 내가 공부방을 하는 동안 당신에게 학생들이 몇 명인지 밝히지 않을 거예요. 단 수강료를 한 푼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거예요.” 남편은 아내에게 공부방을 운영하는 동안에 절대로 수입을 묻지 않았고 직장을 다니고 있는 지금도 단 한 번도 묻지 않고 있다. 남편은 지금도 철없는 아내가 두 손을 벌리고 용돈을 달라고 하면 웃으면서 지갑을 열어서 돈을 주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다.
아내가 예쁜 옷을 사달라고 하면 아내를 데리고 쇼핑을 가서 아내가 옷을 고르는 동안에 매장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기다려주는 남편이다. 아내가 이 옷 저 옷을 고르고 입어보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해도 웃으면서 기다려준다. 매장의 직원이 보통 사람들은 옷을 살 때 남편하고 오면 재촉해서 힘들다고 하소연하면서 잔잔하게 기다리는 우리 남편을 보고 감탄을 하곤 했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팔찌와 반지를 선물로 받았다.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도둑이 들어서 선물을 잃어버렸을 때 경찰이 다녀가고 사이버수사대가 다녀갔어도 찾지 못했다. 아내는 다른 것은 몰라도 결혼 20주년 선물이라는 의미마저 도둑이 가져가 버린 것만 같아서 속상해서 울었다. 남편은 아내를 달래기 위해 도둑맞은 것과 똑같은 팔찌와 반지를 다시 사 주었다. 그때 성인이 된 딸은 남편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세상에 둘도 없는 순애보라고 인정했다. 아들은 어깨를 올리면서 남편을 아내만 아는 팔불출이라고 했다.
최근에 아내가 강의 준비를 하면서 노트북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년부터 공부를 시작하려면 노트북이 필수라고 했다. 남편은 아내의 생일 선물로 가장 좋은 최신형 노트북을 선물했다. 남편은 노트북을 사면서 전문가에게 따로 부탁해서 영어공부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다른 프로그램들을 설치해 주었다. 남편은 그렇게 아내를 위해 철두철미한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에게 아내는 여우 같은 자신을 선물하고 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날 때 가장 달콤하고 따뜻한 언어로 하루를 열어주는 현숙한 아내를 주고 있다. 주말에는 거실 가운데 큰 상을 펴고 특별한 상차림으로 이벤트를 선물한다. 시댁에 갔을 때는 고분고분한 며느리가 되어 시어머니 밥상을 차려드리고 정겹게 대화하면서 기쁨을 주고,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현모양처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안겨주고 있다. 지인들의 모임에서는 남편을 존중하는 아내의 도리로 남편의 자리가 빛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런 일인다역의 아내를 보고 성인이 된 딸은 아홉 개의 꼬리를 감추고 있는 여우라고 놀려댄다.
남편과 단둘이 있을 때 아내는 언제나 귀여운 여인으로 돌변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부부가 드라이브를 시작하면 아내는 물개 손뼉 치면서 들떠서 노래하고 쉬지 않고 떠들어 댄다. 장거리 여행 중에 휴게소에 들러 맛있는 간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조차 소중한 추억이 된다.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도중에 ‘문학관’이라는 이정표가 나오면 남편은 무조건 문학관으로 행로 바꾸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글을 쓰는 아내가 문학관에서 감탄하고 진지해서 시간 가는 줄 몰라도 소리 없이 휴대전화에 아내의 모습을 담으면서 기다려준다. 아내가 문학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남편은 아내의 사진을 자녀들에게 전송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문학관에서 출발하여 목적지를 향해 가는 자동차 안에서 문학관이 어땠는지 감동을 묻는 자녀들의 카톡을 받고 답장하는 순간은 아내가 얌전해지는 시간이다.
남편과의 역사를 회상하는 동안 행사 시간이 무르익어가고 어느새 내 순서가 코앞에 있었다. 사회자의 안내를 받아 무대 중앙에 오르고 배경음악에 맞추어 시낭송을 했다. 가을로 가는 여정에서 시인의 눈앞에 다가오는 산은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객석에서 동영상을 촬영하면서 무대 위의 아내를 지켜보는 남편의 입꼬리가 귀에 닿아있는 것이 보였다. 아내가 무사히 낭송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를 듣고 남편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내는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오늘 궂은 날씨에도 나를 위해서 긴 시간 동안 함께 해주어서 고마워요. 당신이 있어서 무대에서 떨지 않고 잘한 것 같아요.”
“응, 나도 기분 좋았어. 당신, 정말 잘했어!”라고 남편이 대꾸했다.
아내는 다정하게 덧붙인다.
“여보, 당신이 최고 멋있는 남자라는 거 알아요? 신형 그랜저 자동차 옆자리에 무대에서 시낭송을 마친 예쁜 아내를 태우고 가는 남자가 몇 명이나 있겠어요. 헤헤...”
여우 같은 아내의 닭살 애교에 팔불출 남편은 말없이 웃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린다. 남편은 아내가 평생 무릎 꿇고 포복하면서 섬겨야 할 하늘 같은 사람이다. 계절이 시나브로 깊어가고 있는 시월의 멋진 날이었다!
첫댓글 두분 행복 하세요
감사합니다.^^
가장 아름다움은
부부의 넘치는 정과 깊어가는 사랑!
감사합니다. 국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