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개성을 만드는 것은 감성이다. 대중적인 브랜드라면 감성이라는 면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프리미엄 브랜드를 노린다면 감성과 이미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3사가 전 세계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와중에 캐딜락과 재규어가 선전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숙성된 감성, 그리고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렉서스의 이미지, 또는 렉서스가 줄 수 있는 감성은 과연 무엇일까? 1989년에 토요타의 럭셔리 디비전으로 등장한 렉서스는 최근까지 이미지 또는 감성적인 면을 전달하지 못했었다. 세련된 디자인, 가죽을 사용한 고급스러운 품질, 믿을 수 있는 내구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성능이 있었지만 그동안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시장에서의 이미지는 ‘감성이 없는 무채색의 브랜드’라는 면이 강했었다.
사실 이러한 무채색은 렉서스가 자초한 면도 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할 당시 렉서스는 토요타 셀시오를 기반으로 한 LS400의 보닛에 샴페인 잔을 얹고 시동을 거는 TV CF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이후에도 렉서스가 강조했던 것은 조용함이었다. 이후에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등을 통해 조용함과 효율을 동시에 논했는데, 판매량은 분명히 성장해도 유럽의 자동차들과 대비되는 맛을 보여주지는 못했었다.
그러한 무채색에 색이 입혀지기 시작한 것은 2007년 IS F가 등장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2010년에 도요다 아키오가 주도하여 개발한 LFA가 등장하면서 렉서스는 성능과 감성을 동시에 논하게 되는 주요 전환기에 오게 된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LFA 전용으로 개발했던 4.8L V10 엔진과 그 엔진이 발휘하는 일명 ‘천사의 울부짖음’이라고 불렸던 소리였다. 모터사이클 제조사인 ‘야마하’와 협력하여 개발한 이 소리는 인위적인 면이 하나도 가미되지 않은, 순수하게 엔진과 울림통, 배기관만으로 만들어 낸 소리로 이후 렉서스의 맛을 내는 주요 요소가 된다.
그 LFA가 등장한 지 7년 이후, 렉서스는 LC500을 통해 본격적으로 ‘렉서스의 맛’을 알리고 있다. 이제는 독보적인 디자인과 렉서스만의 강점인 복잡한 면에 대한 가공 기술, 고급스러우면서도 렉서스만의 개성이 살아나는 실내 디자인, 고성능을 발휘하는 V8 자연흡기 엔진과 ‘천사의 포효’를 계승하는 렉서스만의 사운드 그리고 가속과 감속, 코너링 시에 다가오는 예리함으로 렉서스만의 감성을 집어넣고 있다. 그런 렉서스만의 감성을 속도 제한 없이 마음껏 즐겨 본 후의 감상은 이제 ‘이것이 렉서스다’라고 당당하게 알릴 수 있다는 것이다.
LC500의 외형은 몇 번을 살펴봐도 신선함이 느껴진다. 이 차의 디자인 근간이 되는 모델은 LF-LC 컨셉트인데 비록 양산형이 되면서 법규 충족 및 제작의 어려움으로 타협을 한 부분이 일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영역을 컨셉트와 동일하게 다듬어냈다. 이제는 렉서스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대형 스핀들 그릴도 그렇지만 ‘L’자 형태의 LED DRL과 3개의 큐브로 구성된 헤드램프, 세로로 긴 형태의 LED 방향지시등은 복잡한 선과 면이 어우러져 새로운 인상을 만들어낸다. 전면에 렉서스만의 거대한 개성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 놀라움은 측면에서도 이어진다. 고성능 자연흡기 엔진을 품고 있는 경우 일반적으로 보닛이 높게 솟아오르게 되지만, LC500은 가능한 한 보닛을 낮추어서 날렵한 이미지를 그대로 품고 있다. 그러면서도 측면의 프론트와 리어 펜더는 과감하게 돌출시키고 있으며, 그 안에는 고성능을 대변하는 21인치 휠이 휠하우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측면의 도어 손잡이는 가까이 다가가야만 돌출되는 형태이며, 사이드 스커트에는 에어 인테이크가 위치한다.
LC500의 특징 중 하나는 날렵한 형태의 루프 라인이다. A필러도 상당히 누워있는 형태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C 필러의 마무리다. A 필러에서 이어지는 부분을 C 필러 중간 부분에서 절묘하게 끊어내고 그 면에 색상과 재질로 마법을 부려 ‘플로팅 루프’를 조금 더 과감한 형태로, 어쩌면 미래지향적일수도 있는 형태로 다듬어냈다. 이를 통해 공기가 부드럽게 흘러나간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달된다. 루프는 카본으로 경량화에도 도움이 되지만 개성도 갖추고 있다.
테일램프 역시 헤드램프와 마찬가지로 과감한 형태로 다듬어졌다. 평상시에는 존재를 숨기고 있다가 점등 시에만 존재감을 발휘하는 인피니티 미러 LED 테일램프로 깔끔함과 동시에 시인성도 챙기고 있다. 트렁크 리드에는 액티브 리어윙이 적용되었고 후진등과 후방 안개등은 리어 범퍼 하단의 디퓨저에 위치한다. 리어 범퍼 좌우에는 어느덧 렉서스 고성능의 상징이 된 ‘사선으로 배열된 4개의 머플러’가 위치하고 있다.
실내로 들어서면 또 다른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직선으로 구성된 대시보드는 가죽으로 마무리했고, 운전석 좌우에는 운전자를 감싸는 형태의 콕핏 디자인을 연출하도록 했다. 지름이 작은 3 스포크 스티어링 휠과 대형 패들시프트, LFA를 통해서 처음 선보였던 8인치 TFT 미터 링 계기반도 놀랍지만 계기반 좌우에 주행 모드 변경 등 주행과 관련된 버튼이 자연스럽게 돌출되어 있어 기능 변경을 위해 시선을 돌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 더 놀랍다.
자세히 보면 도어 트림과 대시보드가 물결을 그리면서 앞으로 흐르는 형태로 이어져 있다. 도어캐치가 별도의 장식 없이 손잡이만 드러난 점도 인상적인 부분. 알칸타라를 적용한 세미 버킷 시트는 과격한 주행에서도 상체를 잘 잡아주고, 엉덩이를 통해 뒷바퀴의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알칸타라임에도 불구하고 열선과 통풍이 모두 적용되어 있어 한여름에도 쾌적한 주행이 가능하도록 했다.
LC500에 탑재된 엔진은 2UR-GSE 5L V8 자연흡기 엔진으로 7,100rpm에서 최고출력 477마력, 4,800rpm에서 최대토크 55.1kg-m을 발휘한다. 이와 같은 높은 출력과 토크를 10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온전히 뒷바퀴로 전달하는데, 이를 통해서 실현하는 것은 직결감 있는 주행 감각과 자연스러운 리듬감을 느낄 수 있는 역동적인 운전이다. 준비된 시승차에 앉아 시트를 조정하고 스티어링을 잡으니 자연스럽게 긴장감이 흐른다.
출발 전 지시로는 ‘수동 모드로 변속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가속 페달을 밟자마자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역동적인 주행을 위해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주행모드를 맞춰두면 굳이 패들시프트를 건드리지 않아도 가속 페달의 개도량과 현재 주행을 종합적으로 감지해 고회전까지 엔진 회전을 깔끔하게 돌려준다. 어설프게 패들시프트를 이용하는 것보다도 더 나을 정도이니 변속에 신경쓰지 않고 가속, 브레이크, 스티어링 조작에만 신경을 집중하면 된다.
LC500을 밀어붙이고 있는 곳은 일반도로가 아닌 서킷이기 때문에 속도와 상관없이 마음껏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있지만, 이 서킷 안에서도 풀 스로틀이 가능한 상황은 거의 오지 않았다. 넘치는 출력으로 인해 가속 페달을 50~60%만 전개해도 쉽게 속도를 얻을 수 있고, 직선 구간이 조금만 길어도 계기반 상 200km/h까지 쉽게 도달해 버린다. 1-4단이 클로즈드 기어이기 때문에 초반 가속에 상당히 유리한데,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급가속 주행을 해 본 운전자라면 익히 알고 있겠지만, 풀 스로틀이 무조건 가속에 유리한 것은 아니며 제일 현명한 가속 방법은 가속 페달의 피드백에 따라 전개 정도를 미세하게 조정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잊은 채 풀 스로틀을 하게 되는 이유가 있는데, 다름 아닌 LC500만이 줄 수 있는 특유의 ‘포효’ 때문이다. 스피커가 내는 인위적인 소리가 아닌, 엔진의 공명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이 음색은 운전자를 자극하고 자꾸만 가속 페달에 발을 올리도록 만든다. 그리고 배기음이 함께 어우러지니 천연 오케스트라가 따로 없다.
감동적인 것은 엔진의 포효만이 아니다. 속력에 맞춰 코너에 진입하고 가속 페달을 조절하면서 스티어링을 돌리면, 또 다른 감각이 스티어링을 통해 전달된다. 앞머리와 프론트 타이어가 코너를 파고드는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는데 타이어의 그립력으로 차체를 버티면서 코너를 공략한다기 보다는 코너를 예리하게 잘라나간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전달된다. 종종 ‘칼날 같은 코너링’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는데, LC500의 코너링은 ‘칼날 같은’이 아닌, ‘칼날’이다.
이 느낌은 직접 스티어링을 잡고 느껴보지 않는다면 잘 모를 것이다. 그래도 비유를 해보자면 예리하게 다듬어진 검을 검집에서 바로 뽑으면서 코너를 베어나가는, 그런 느낌이다. 그만큼 코너링이 예리하고, 그 반응도 상당히 직관적이다. 시승 환경 상 코너에서 극한까지 자동차를 밀어붙이지 못하긴 했지만, 이런 반응이라면 극한의 속도와 코너에서도 칼날 같은 코너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브레이크의 반응 역시 ‘칼날’이다. 전륜에 20인치 디스크 로터와 6포트 알루미늄 모노블록 캘리퍼가 적용되어 있어 강하면서도 안정된 제동력이 발휘된다. 고속으로 주행하면서 선도차가 인도하는 지점보다 휠씬 뒤에서 브레이크 제동을 시도했는데도 순식간에, 체감 상 6-70m 정도를 지나는 순간 200km/h에서 100km/h까지 속도가 쉽게 떨어졌다. 여러 사람이 극한의 운전을 즐긴 차에서도 페이드 현상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렉서스 LC500은 디자인적으로 혁신적이면서도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실내를 갖추었다. 그리고 엔진과 가속, 코너에서의 반응을 통해 비로소 렉서스만의 느낌을 찾아냈다. 그 뒤에는 컨셉트카를 양산차로 반드시 실현시키고자 했던 도요다 아키오의 의지와 렉서스만의 맛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치프 엔지니어 코지 사토와 그가 이끄는 렉서스의 타쿠미(Takumi)들의 땀과 감성이 있다.
그동안 렉서스의 자동차들에게 있어 와인딩의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LC500이라면 석양이 지기 시작하는 구불구불한 해안 도로를 여유 있게 주행하는 그런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것 같다. 그리고는 어느 지점에 차를 세우고 차에 기대어 석양을 바라보는, 그런 여유도 어울린다. LC500은 그렇게 렉서스 내에서도 감성이 충만한 자동차로 자리를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