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이란 명분에 상응하도록 실질을 바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는 각각 그 이름에 걸맞은 윤리가 있고 그 윤리적 관계를 통하여 질서가 존재한다. 즉 각자 그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경공(齊景公) : 정치란 어떤 것입니까?
공자(孔子) : 임금은 임금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각각 저마다 구실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경공(齊景公) : 옳은 말씀입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면, 비록 풍년이 들어 곡식이 많다 하더라도 내가 어떻게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齊景公問政於孔子孔子對曰君君臣臣父父子子公曰善哉信如君不君臣不臣父不父子不子雖有粟吾得而食諸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이다.
<정명론>의 내용을 요약하면;
임금과 신하를 이름 지어 구분함으로 상하 존비 관계가 어지럽지 않게 된다.
하늘은 존귀하고 땅은 비천하다는 진리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사람만 영장한 능력을 갖춘 까닭은 명분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삼대를 문명하다고 보는 이유는 그 때는 명분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춘추시대로 내려오면서 지켜져야 할 인륜의 도가 사라지고 문란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극상(下剋上)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맹자는 왕이 반복 간언해도 들어주지 않으면 몰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언어가 순리를 따르면 정사가 바루어지고 예법과 음악이 크게 흥성해 진다.
명분을 위한 한 마디 말이 없다면 짐승이나 오랑캐와 다를 바가 없다.
<정명론(正名論)>
위나라 태자 괴외는 남자의 아들인데도 어머니(남자)를 해치려하였고
위나라 사람 첩은 괴외의 아들인데도 왕이 되어서 아버지를 위나라로 돌아오지 못하게 막았으니 부자간의 명분을 말할 수 있는가?
蒯聵者南子之子也而欲害之衛輒者蒯聵之子也而以拒之是可謂正父子之名者乎
이야기가 좀 복잡한데 앞서 <독소학입교편문>에서 자로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간단히 언급했던 내용이다. 많은 기록이 있지만 사마천의 <사기>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위나라 태자 괴외(蒯聵)는 영공(霊公)과 남자(南子)의 아들이다.
괴외는 어머니(남자)를 미워하여 죽이려고 했다가 탄로가 나자 송나라로 도망쳐서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이 생활을 했다.
영공이 죽자 괴외(蒯聵)의 아들 첩(輒)이 왕위를 이어받아 출공(出公)이 되었다.
괴외가 진나라의 도움을 받아 위나라로 돌아가려 하자 위나라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는데 괴외가 위나라로 숨어 들어와 반란을 일으키므로 출공은 노나라로 도망갔다.
반란이 일어나자 자로가 반란 현장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자고가 말렸다.
자로는 나라에서 녹봉을 받으면서 반란을 피할 수는 없다면서 현장으로 들어가고 자고는 나가 버렸다.
자로는 반란군들과 다투다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군자는 죽을지언정 모자는 벗지 않는다(君子死冠不免)
라고 말하면서 갓끈을 다시 고쳐 매고 죽었다.
위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공자가 말하기를
자고는 돌아오겠지만 자로는 죽겠구나!
라고 탄식했다.
반란에 성공하여 괴외가 왕위에 오르니 장공(莊公)이다.
<정명론(正名論)>
아버지 없는 자식이 어디 있을 것인가? 나는 감히 알아듣지 못하겠거니와 어질지 못한 사람이 임금이 되는 경우는 있어도,
아버지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이 또 어찌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나는 알아듣지 못하겠다.
所謂無父者歟我不敢知不仁而得國者有之無父而治國者亦有之乎我亦不知昔者
어머니를 죽이려고 한 괴외, 왕위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아버지를 외국에서 돌아오지 못하도록 막은 출공, 아들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은 장공, 이와 같은 골육상쟁(骨肉相爭)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이름과 실제가 어긋난 것이다.
<정명론(正名論)>
언어가 순리를 따르면 정사가 올바로 이루어지고, 예법과 음악이 크게 흥성해 진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공자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성인께서 다시 나타나신다고 하더라도 나의 이 말만은 바꿀 수 없을 것이다.
言順事成而禮樂大興此豈非夫子之意也聖人復起不易吾言矣
산당공은 자신의 주장이 진리이기 때문에 지금 다시 성인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주장을 꺾지는 못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정명론(正名論)>
위나라의 신하 주우는 위나라 임금 환공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으며,
최저는 제나라에서 녹을 먹으면서도 제나라 임금 장공을 죽였으니
임금과 신하 사이의 명분이 안정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州吁從仕於衛而弑其衛君崔子食祿於齊而弑其齊君君臣之分又安在哉
최저(崔杼)는 춘추시대 제나라(齊) 권신(權臣)으로, 자신이 세운 임금 장공(莊公)이 자신의 아내와 사통(私通)하였으므로 죽이고, 다시 경공(景公)을 임금으로 세워 전권을 휘둘렀지만 집안의 불화로 인하여 멸문 당했다.
뒤에 제나라 역사에서 설명하겠지만 중국 최씨들이 최씨의 발상지 최읍(崔邑) 고지라고 하면서 성역화 하고 있는 중국 산동성 빈주시 최팔촌의 최씨역사문화원에는 최저의 사적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고대 중국 최씨는 매우 왕성하였다.
<정명론(正名論)>
명분은 바르게 해야 하는 것이고, 군자가 임금을 섬기는 방법이므로, 명분에 합당하면 벼슬에 머물러 있고 합당하지 않다면 벼슬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것이다.
名分之不可不正也君子之事君也合則留不合則去
종합 정리하면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을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임금이라 할 수 없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 신하라 할 수 없고,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면 아버지라 볼 수 없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면 자식이라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