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이란 ㅡ3
충렬왕대의 대표적 유물로는
〈감지 은니 불공견색신변진언경紺紙銀泥不空羂索神變眞言經〉
(국보 제210호)·
〈감지 금니 문수사리문 보리경紺紙金泥文殊師利問菩提經〉(1276)·
〈감지 은니 불설보살 본행경紺紙銀泥佛說菩薩本行經〉(1278)·
〈감지 은니 보살 선계경紺紙銀泥菩薩善戒經〉(보물 제740호)·〈감지 금니 불설 잡장경紺紙金泥佛說雜藏經〉(1284)·
〈감지 금니 묘법 성념처경紺紙金泥妙法聖念處經〉(1285) 등이
전하고 있습니다.
돈독한 불교신자였던 충선왕은
사경 제작에 몰두하여
1312년(충선왕 4) 민천사旻天寺에서
금· 은 대장경 2부 및
묵본墨本 대장경 50부를 사성했다고 합니다.
이때 시작한 금자대장경은
충선왕이 재위 7년 만에 왕위를 물려주고
심양왕으로 간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충선왕 때는 원나라에 사경지를 보내기도 했으며
원나라 관리 방신우方臣祐가 민천사에 와서
승려와 속인 300명을 모아
금자대장경을 사성하여(1311)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충선왕 때 유물로는
〈감지 금니 섭대승론 석론紺紙金泥攝大乘論釋論〉(1319)·
〈감지 금니 불설 불명경紺紙金泥佛說佛明經〉(1319)
등이 전합니다.
또 개인발원사경은
그 종류가 다양하지만 〈법화경〉과 〈
화엄경〉이 주종을 이루어
신앙적으로는 전통성이 강하게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존하는 개인발원 사경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1055년(문종 9)에 당시 금오위대장군이었던
김융범金融範이 발원한
〈감지금니대반야바라밀다경紺紙金泥大般若波羅蜜多經〉
(보물 제887호)입니다.
조선시대의 사경은
조선초의 태조· 세조 등과 같은 왕들과
왕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억불숭유정책과 금· 은의 사용금지로 인해
성종대 부터는 급격히 감소하여
지방 사찰에서나 그 명맥이 유지되는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양적· 질적으로 고려시대에 미치지 못하며
유물수도 많지 않습니다.
현존하는 작품으로는
감지 금니 범본성 관자재대비 총지공능의경록
〈紺紙金泥梵本聖觀自在大悲摠持功能依經綠〉(1397)과
내소사 소장의 〈법화경절본사본法華經折本寫本〉
(1415, 보물 제278호) 등이 있습니다.
사경의 맥이 끊어졌다면
오늘의 불교가 남아 있지 않았을 겁니다.
사경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맥을 이어 왔고
지금도 도반사이의 진각 승처럼
감지 금니 사경을 독려하고 있듯이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도 사경은 계속 이어 왔었습니다.
옛 부터 감지에 금니, 또는 은니로 사경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인쇄술로 인하여 전통의 맥이 거의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