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비스님 - 금강경 핵심 강의 (19회)
제17. 구경무아분(2) 제십칠 궁극의 가르침,무아(2)
하이고 여래자 즉제법여의
何以故 如來者 卽諸法如義.
왜냐하면 여래는 모든 존재의 진실한 모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약유인언 여래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실무유법
불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若有人言 如來得 阿褥多羅三邈三菩提 須菩提 實無有法
佛得 阿褥多羅三邈三菩提.
어떤 사람이 여래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수보리여! 여래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은 법이 실제로 없다.
수보리 여래소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어시중 무실 무허
須菩提 如來所得 阿褥多羅三邈三菩提 於是中 無實 無虛.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에는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다.
시고 여래설 일체법 개시불법
是故 如來說一切法 皆是佛法.
그러므로 여래는 ‘일체법이 모두 불법이다.’라고 설한다.
수보리 소언일체법자 즉비일체법 시고 명일체법
須菩提 所言一切法者 卽非一切法 是故 名一切法.
수보리여! 일체법이라 말한 것은 일체법이 아닌 까닭에 일체법이라 말한다.
수보리 비여인신장대 수보리언 세존 여래설 인신장대 즉위비대신 시명대신
須菩提 譬如人身長大. 須菩提言. 世尊 如來說 人身長大 卽爲
非大身 是名大身.
수보리여! 예컨대 사람의 몸이 매우 크다는 것과 같다.
수보리가 말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사람의 몸이 매우 크다는 것은 큰 몸이 아니라고 설하셨으므로 큰 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 보살 역여시 약작시언 아당멸도 무량중생
즉불명보살
須菩提 菩薩 亦如是. 若作是言 我當滅度 無量衆生
卽不名菩薩.
“수보리여! 보살도 역시 그러하다. ‘나는 반드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리라’ 말한다면 보살이라 할 수 없다.
하이고 수보리 실무유법 명위보살 시고 불설일체법 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
何以故 須菩提 實無有法 名爲菩薩 是故 佛說一切法 無我 無人 無衆生 無壽者.
왜냐하면, 수보리여! 보살이라 할 만한 법이 실제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모든 법에 자아도 없고, 개아도 없고, 중생도 없고 영혼도 없다고 설한 것이다.
수보리 약보살 작시언 아당장엄불토 시불명보살
須菩提 若菩薩 作是言 我當莊嚴佛土 是不名菩薩.
수보리여! 보살이. ‘나는 반드시 불국토를 장엄하리라.’
말한다면 이는 보살이라 할 수 없다.
하이고 여래설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何以故 如來說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
왜냐하면 여래는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장엄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하였으므로 장엄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수보리 약보살 통달 무아법자 여래설 명진시보살
須菩提 若菩薩 通達 無我法者 如來說 名眞是菩薩.
수보리여! 보살이 무아의 법에 통달한다면 여래는 이런 이를 진정한 보살이라 부른다.
무비스님 - 금강경 핵심 강좌 (19회)제17 구경무아분(2)
철저히 아(我)가 없다 - (2
若有人이 言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면
약유인 언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若有人(약유인)이, (만약 어떤 사람이)
言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언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하면
여래가 깨달음을 얻었다,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 라고하면
須菩提야
수보리
實無有法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니
실무유법불득아뇩다삼먁삼보리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實無有法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실무유법불득아뇩다삼먁삼보리)니라.
실로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부처님은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다 말이야.
須菩提야
수보리
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於是中에 無實無虛하니라
여래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어시중 무실무허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여래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여래가 얻은 바[如來所得(여래소득)], 최상의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최상의 깨달음, 아뇩다삼먁삼보리, 성도, 成道節(성도절)주1)에 맞춰서 우리가 뭐 범종을 울려라, 행사도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데, 바로 그 성도입니다.
등 아뇩다삼먁삼보리는,
於是中(어시중)에 無實無虛(무실무허)하니라, 이거 아주 명구입니다.
‘無實無虛(무실무허)’!
여기에서, ‘是中(시중)에’하는 것은 ‘바로 이 순간, 이 자리에서’‘無實無虛(무실무허)’다!
실다운 것도 없고, 허망한 것도 없다! 헛된 것도 없다 말이여.
무엇이 부처님의 깨달음이냐?
없다고도 할 수가 없고, 있다고도 할 수가 없어.
있다고 하면은 부처님의 뜻에 어긋나.
없다고 할라니까 우리가 목숨 바쳐서 이 깨달음에 이르러가려고 아등바등 노력하는
이 우리의 삶은 무엇이냐 말이야.
저 앞에서 무득무설, 무득무설분[第七 無得無說分(7. 무득무설분)](참고) 있었죠?
부처님의 재산 두 가지, 깨달음과 그 깨달음을 설명한 설법이다, 이 말이여.
아뇩다삼먁삼보리를 얻은 것과, 그 내용을 설법하신 내용이 ‘득과 설’이것이 부처님의 재산 두 가지인데, 여기서도 말하자면은 ‘無實無虛(무실무허)’라고 했어요.
그 문제에 대해서, 거기는 아예 ‘무득무설’, 얻음도 없고 설함도 없다 아예, 아예 그래버렸는데, 여기는 그래도 ‘無虛(무허)’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無實(무실)’이면서 또한 ‘無虛(무허)’다!
참, 의미심장합니다. 그래서,
‘수보리야! 是經(시경)은 義(의)도 不可思議(불가사의)며 果報(과보)도 亦不可思議(역불가사의)니라!’ 그랬죠.[第十六 能淨業障分(16. 능정업장분](참고)
그 다음에 또 참~! 정말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또 명구가 또 나오는데,
是故로 如來가 說一切法이 皆是佛法이라하노니
시고 여래 설일체법 개시불법
是故(시고)로 如來(여래) 說(설) 一切法(일체법)이 皆是佛法(개시불법)!
난 금강경 책을 선물할 때, 이 구절을 써줍니다.
‘一切法(일체법)이 皆是佛法(개시불법)’이다! 하~!
‘如來(여래)는 諸法如義(제법여의)’그랬어요. ‘諸法(제법)’,‘모든 존재’, ‘諸法(제법)’하면 ‘모든 존재’입니다. 가르침? 이 아니에요, 거기는.
‘모든 존재’입니다.
내가 뭐 ‘벼’를 예를 들어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여기 ‘一切法(일체법)’도 그렇습니다. ‘모든 존재’예요. ‘皆是佛法(개시불법)’이다, 모두가 불법이다.
아, 정말 가슴 툭 터지는 일이고, 그동안 하~ 우리가 설정해놓고, 그동안 배워오고, 거기에 기준 삼아서 이 기준에서 벗어나면 되느니, 안 되느니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우리가 갈등하면서 살았습니까? 이거는 불법이다, 이거는 불법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틀린 말이다, 이것은 법이다, 이것은 비법이다,
부처님 법대로 살자, 부처님 법대로 살자, 뭐, 그거는 일체법이 개시불법이다 하면서 뭘 부처님 법대로 살아. 부처님 법 아닌 게 없는데. 금강경에 오면은 봉암사에서 우리가 부처님 법대로 살자!
지금부터 60여년 전에 그 결사했던 그 결사를 아주 높이 우리가 받드는데, 그것도 그냥 한방에 깨지는 거야. 일체법이 개시불법인데 뭘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거야.
부처님 법 아닌 게 있어야지. 얼마나 근사한 말입니까? 이 말 한 마디만 건져도요, 금강경 정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정말 나는 금강경에 감동하는 구절이 많지마는, 특히 이 구절에 많이 감동합니다. ‘一切法(일체법)이 皆是佛法(개시불법)’이다.
그렇다고 어디 뭐 마음대로 살아란 뜻입니까?
‘一切法(일체법)이 皆是佛法(개시불법)’이라고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정~말 여법하게 제대로 삽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법한, 그런 어떤 그 원칙대로 제대로 살 줄 알아요. 이 부처님의 깨달음의 말씀은 우리가 참, 마음을 기울여서, 정말 穿鑿(천착)주2), 천착하고, 또 천착하고, 씹고, 씹고, 또 곱씹고, 뭐 우리의 한계는 거기니까. 곱씹고, 곱씹다 보면은 참~! 기가 막힌 도리를 알게 되고 또 그 맛을 느끼게 됩니다.
청량국사 같은 이들은 화엄경을 척~ 보다가 ‘아! 得其死所(득기사소)라, 내 죽을 곳을 얻었구나!’ 아~! 얼마나 근사한 표현입니까? 내 죽을 곳을, 화엄경이, 화엄경이 내 무덤이다 말이야. 그래서 그 ‘豈無慶躍(기무경약)’주3) 하~ 얼마나 경사스럽고 환희스러운 일이 아닌가! 거기에 그 주석을 달기를 ‘ 得其死所(득기사소)’라, 내 죽을 곳을 이 화엄경에서 얻었다! 정말 불법 만나서 자기 죽을 곳을 얻어야 돼요. 아! 바로 이 자리구나! 아! 여기에 내가 목숨을 건다면은 정말 여한 없다 말이야.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이 위대한 가르침에 내가 목숨을 거는데, 다시 이 목숨, 이보다 더 소중하게 값지게 쓸 곳이 어디 있겠는가? 이보다 더 소중하게 쓸 곳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야.
어차피 가는 인생이고, 한계가 있는 인생인데.
‘一切法(일체법)이 皆是佛法(개시불법)’, 참! 근사한 말이죠! 불법 아니라고, 아닌 것을 너~무 우리가 생각해 왔던 역사이기에 그래서 이런 말을 만나면 뭐 정말 속 시원하고 기쁘고 그럴 수 없이 좋습니다.
그 ‘一切法(일체법)이 皆是佛法(개시불법)’하면, 또 이게 집착하기 좋아하는 중생들은 덥석 무는 거야. 덥석.
금강경의 안목에서 보면 이 문제가 또 이제 큰 함정이 되는 거야, 큰 함정이 돼.
돌을 던지면 사람을 물 줄 모르고는 그냥 돌이 뭐 먹을 것인냥 쫒아가는 중생들의 속성. 그래서 그것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는 부처님이 뭐라고?
須菩提야
수보리
所言一切法者는 卽非一切法일새 是故로 名一切法이니라
소언일체법자 즉비일체법 시고 명일체법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所言一切法者(소언일체법자)는 卽非一切法(즉비일체법)이다!
이래 버렸잖아요. ‘즉비’또 나왔습니다. ‘즉비’! 그래 금강경을 ‘즉비경’이라 해야된다니까! (일동 웃음) 卽非一切法(즉비일체법)일새,
一切法(일체법)이 곧 非一切法(비일체법)일새,
그래서, 그 돌덩이 던진다고 거기 가서 물지마라, 하고 아주 막 뒤꽁무니를 사정없이 차 버리는 거야. 부처님이 그런 분이라. 우리가 그 일체법이 개시불법이라고 하니까 그 좋다고 그냥 킁킁 대면서 뭐 먹을 것인냥 쫒아가니까 부처님이 있다가 뒤에서 그냥 꽁무니를 사정없이 차 버리는 거야.
그거 먹을 거 아니다, 말이야.
所言一切法者(소언일체법자)는 卽非一切法(즉비일체법)일새, 와! 참, 일체법이 개시불법이라고 했는데 그 좋다고 내가 설명을 했는데, 아니네요, 결국은. (일동웃음)
所言一切法者(소언일체법자)는 卽非一切法(즉비일체법)일새, 아, 정말 참, 이거, 부처님만이 이런 말씀 하실 수 있지 누가 이런, 이런 교설이 세상에 어디있습니까?
어느 철학, 어느 종교에 이런 말이 있어요?
是故(시고)로 名一切法(명일체법)이니라
(그러므로 그 이름이 일체법이니라!)
須菩提야
수보리
譬如人身長大하니라
비여인신장대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譬如人身長大(비여인신장대)하니라, 그래버렸네요.
저 앞에서 ‘인신이 장대하기가 수미산만하다’하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죠. ‘수미산만하다’하는[莊嚴淨土分(장엄정토분)(참고)], 그걸 그대로 복습하는 이야기라니까.
‘수미산만하다’라고 하는, 그런, 당치도 않는 그런 표현을 했잖아요. 그 당치도 않는 그런 그 수미산만한 크기의 인신이 있다, 사람 몸이 있다 라고 하자. 그런 이야기가 있잖아요. 당치도 않는 것과 같은, 수미산 만한 몸뚱이, 그와 같은 것이다.
뭐가?
‘一切法(일체법)이 非一切法(비일체법)일새,
是故(시고)로 名一切法(명일체법)다!’이 이름이 일체법이다!
일체법이라고 하는 것은, 인신 장대가 마치 수미산 만한 몸이 있다, 라고 하는 그런 엉터리 같은, 당치도 않는, 아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비유, 그런 비유와 똑 같은 것이다, 그 말입니다.
그래, 연관시켜서 생각하면 전부 착 연결이 되고 꿰어져요.
須菩提가 言하사대
수보리 언
須菩提(수보리)가 言(언)하사대, 수보리가 말씀 아뢰되
世尊하
세존
世尊(세존)하, 세존이시여!
如來가 說人身長大가 卽爲非大身일새 是名大身이니이다
여래 설인신장대 즉위비대신 시명대신
여기도 ‘卽非(즉비)’가 나오네요. ‘卽爲非大身(즉위비대신)’, ‘人身長大(인신장대)’, 비유를 들어서 한 이야기지만 무슨 세상에 수미산만한 몸뚱이가 있단 말이야. 그건 뭐 어쩌다가 비유를 엉터리 비유를 할라니까 그런 말을 했을 뿐이지,
卽爲非大身(즉위비대신)이죠, 是名大身(시명대신)이다.
말하자니 그런 비유를 들어서 한번 수미산만한 몸뚱이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랬습니다.
須菩提야
수보리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菩薩도 亦如是하야 若作是言호대 我當滅度無量衆生이라하면 卽不名菩薩이니
보살 역여시 약작시언 아당멸도무량중생 즉불명보살
菩薩(보살)도 亦如是(역여시)하야 若作是言(약작시언)호대,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약 이런 말을 하되,
我當滅度無量衆生(아당멸도무량중생)이라하면,
내가 마땅히 무량중생을 제도했다고 한다면은,
卽不名菩薩(즉불명보살)이니, 곧 보살이라고 이름할 수가 없다.
何以故오 須菩提야
하이고 수보리
何以故(하이고)오 須菩提(수보리)야, 왜냐하면 수보리야!
實無有法名爲菩薩이니라
실무유법명위보살
實無有法名爲菩薩(실무유법명위보살)이니,
여기 이제 보살이 없다! 이 말입니다. 우리야 뭐 보살은 어떤 것이다, 라고 대승경전에서 무수히 나오죠. 實無有法名爲菩薩(실무유법명위보살), 어떤 고정된 법이 있어서 보살은 이래야 된다, 뭐, 상구보리 하화중생, 뭐 보살에 대한 원칙이 얼마나 많습니까? 화엄경 같은데에는 뭐 수십 장이 나와요.
그런데 實無有法名爲菩薩(실무유법명위보살)이야. 어떤 고정된 법을 딱 세워놓고 이것을 이름하야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없다 말이야.
그러니까, 처음에, ‘일체법이 개시불법’, 얼!~마나 근사한 말입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다 말이야.
‘卽非一切法(즉비일체법)’, 그래놓고, 보살도, 너거 참 좋아하는 보살도, 또한 그와 같다.
보살이 뭐라고? 즉 ‘卽不名菩薩(즉불명보살)’이다, ‘是名菩薩(시명보살)’이다!
‘實無有法名爲菩薩(실무유법명위보살)’이다!
보살에 대한 개념도 완전히 깨버리는 거예요. 보살에 대한 개념!
그러니까 금강경에서 열거한 개념들을 낱낱이 적어나가보면,
저 앞에서 뭐 ‘미진’이 있었죠. 그 다음에 ‘세계’가 있었죠. 그 다음에 ‘보살’이 있었죠. ‘장엄불토’, 또 나옵니다만, ‘장엄불토’의 문제가 있었죠. 뭐 많았습니다.
불교의 중요한 명제들, 중요한 개념들, 그 개념들을 금강경에 와서 사정없이 낱낱이 깨부셔버리고, 없애버리는, 우리들 머릿속에서 우리의 저~기 아뢰야식에서 전부 포맷해버리는, 싹 지워버리는, 완전히 포맷해버리는 게 금강경이에요.
‘보살’도 여기서 포맷해버리는 거예요. 싹 지워버려. 없어. 응.
대개 포맷을 잘 해도 해커들은 다 또 찾아내요, 요즘. 얼마나 뛰어난지.(일동 웃음)
是故로 佛說一切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하노라
시고 불설일체법 무아인무중생무수자
是故(시고)로, 그런 까닭에,
佛說一切法(불설일체법)이다,
여기 이제 최종 정리예요. 뭐 앞으로 또 이야기합니다마는, 지금까지 온갖 개념들, 온갖 명제들, ‘一切法(일체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무아인무중생무수자)’니라. 그러니까 일체법이 諸法無我(제법무아)주4)예요, 제법무아! 제법무아라고 보면 됩니다. (是故로 佛說一切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 하노라.
싹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 뭘 하나 배우고, 그~ 노력해서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고 하는 그런 과정이 참 좋은데, 불법의 그 안목에서 보면은 그런 것들이 또 하나의 어떤 흔적으로, 상으로, 금강경의 입장에서 보면 상으로 또 그게 남아 있단 말이야. 상으로 남아있어.
그러니까 이런 것을 우리는 뭐 끊임없이 읊조리면서, 공부하고, 기도하고, 참선하고 하지마는, 그래도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뭐, 세속에서 이런 말 한마디도 들어보지 못하고 마구 무턱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뭐 지식 좀 있고, 돈 좀 있고, 경력 좀 있고 한 사람들의 그 아상,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자기 아상이 무너지면 죽지 않고, 자살하지 않고 못 배기는 거예요. 허상이야! 아~무것도 아닌 그 허상에 짓눌려가지고 자살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거라.
그 모두가 허상이거든, 사실은.
그 허상인 것을 이 금강경에서 완전히 허상으로 이해시켜주는 거야, 우리에게는. 그런데 그런 소리라도 자꾸 접하는 사람은 뭐 그런 대로 ‘아, 부처님 말씀하시기를 제법이 무상이라고 하고 제법이 무아라고 했는데, 본래 그런데...’ 가슴이 쓰리지마는, 그래도 그런 중얼거림이라도 있죠.
그런데 그런 소리 한마디 들어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못 견디는 거죠. 자살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거야.
[是故(시고)로, 佛說一切法(불설일체법)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무아인무중생무수자)라하노라
그러므로 여래는 말하기를 ‘일체법이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다.’고 하느니라. 또는‘일체법이 諸法無我(제법무아)’라고 하느니라.]
須菩提야
수보리야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若菩薩이 作是言호대 我當莊嚴佛土라하면 是不名菩薩이니
약보살 작시언 아당장엄불토 시불명보살
若菩薩(약보살)이 作是言(작시언)호대,
我當莊嚴佛土(아당장엄불토)라하면, 내가 마땅히 불토를 장엄한다, 라고 하면은
是不名菩薩(시불명보살)이니, 그렇죠. 저 앞에서 장엄불토에 있었죠.
‘菩薩(보살)이 莊嚴佛土不(장엄불토부)아’라고 해서, 보살이 불토를 장엄하는 거야.[第十 莊嚴淨土分 (10. 장엄정토분)](참고)
훌륭한 사람이 세상을 장엄하는 거라. 부산에, 여러 스님들, 훌륭한 스님들이 있음으로 해서 부산 불교를 장엄하는 거야. 또 세속적으로 보면은, 세속적으로도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있으면은 부산이 높아지고, 한국에도 유명한 무슨 과학자나, 철학자나, 의사나, 뭐 발명가나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 한국 위상 높아지잖아요.
사람이 국토를 장엄하는 거예요. 본래 그게 상식이라.
그래서 저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마는, ‘我當莊嚴佛土(아당장엄불토)’ 보살이 말하기를 훌륭한 사람이 있어서 ‘내가 뭐 부산을 장엄한다, 아니면 우리나라를 빛낸다’라고 하면은 ‘是不名菩薩(시불명보살)이라’이는 보살이 아니다.
何以故오
하이고
何以故(하이고)오, (왜 그런가 하면)
如來가 說莊嚴佛土者는 卽非莊嚴일새 是名莊嚴이니이다
여래 설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如來(여래)가 說莊嚴佛土者(설장엄불토자)는,
(왜냐하면, 여래가 말하는 세상을 장엄한다는 것은)
卽非莊嚴(즉비장엄)일새 是名莊嚴(시명장엄)이니이다,
(곧 장엄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장엄일 뿐이기 때문이니라.)
비교
何以故오 莊嚴佛土者는 則非莊嚴일새 是名莊嚴이니다
하이고 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왜냐하면 보살이 세상을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며, 그 이름이 장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第十 莊嚴淨土分(10.장엄정토분)>
저 앞에서 나왔던 그대로입니다. 장엄정토분에 나왔던 그대로 복습이에요.
즉비장엄, 시명장엄.
須菩提야
수보리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若菩薩이 通達無我法者는 如來가 說名眞是菩薩이니라
약보살 통달무아법자 여래 설명진시보살
若菩薩(약보살)이 通達無我法者(통달무아법자)는,
무아법을 통달한 사람이라면
如來(여래)가 說名眞是菩薩(설명진시보살)이니라,
진짜 보살이라고 내가 말하겠다 말이야.
무아법을 통달해야 내가 진짜 보살이라고 내가 인가하겠다. 진짜 보살이라고 인가하겠다, 이런 말입니다.
그래 무아법 통달한 사람이 뭐 진짜 보살이라 하든, 가짜 보살이라 하든, 이미 그 사람 마음에는 부처님도 없고, 보살도 없고, 진짜 보살도 없고 가짜 보살도 없어.
그 내가, 이 시대의 부처님이라고, 이 시대의 관세음보살이라고 존경하는 證嚴(증엄)스님주5), 교회를 몇 개를 지어줬잖아요. 교회를 거기 가가지고 찍어 가지고, 염화실 카페에다 올려놨어. 내가 그걸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나도 과거에 여러 번 기사를 통해서 들었거든. 그런데 어떤 거사가 거기 가가지고 그걸 직접 교회 지어준 걸, 증엄스님이 지어 준 걸 사진을 찍고, 또 그 마을을, 전체 1,000가구를 지었어. 1,000가구를 지은 그 마을을 사진을 찍어서 올려놓고, 일일이 가서 돈 들여서 답사를 해가지고 그걸 사진으로 올리고 기록을 해놨어요. 사실이라. 교회를 몇 개를 지어줬어. 그, 그 사람에게, 그 증엄스님에게 무슨 기독교인이 있고, 무슨 불교인이 있어요? 그저 고생하는 중생이 있을 뿐이야.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외로워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그 사람 눈에는 무슨 기독교인다, 불교인이다, 이런 게 없어. 대단한 부처님 아닙니까? 이 시대에 우리하고 같이 호흡하고,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야.
우리는 경전에나 그런 사람 봤지, 실지로 이 역사에 시대를 함께 호흡하고 하는 사람, 정말 살아있는 부처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증엄스님, 아니면 자제공덕회 (慈济功德会) , 그 한번 인터넷에서 검색해봐요.
그 자료가 수 백가지가 그냥 좌악 쏟아집니다. 여기에 이제 뭐 진짜 보살이다, 라고 이렇게 했는데 정말 무아상, 무아가 된 사람에게는 진짜 보살, 가짜 보살, 아~무 관심없어. 부처님이 진짜보살이라 하든, 진보살이라 하든, 가보살이라 하든, 이 사람인데(에게)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 그런 소리가.
그쯤 돼야 된다고요. 그래, 이제 증엄스님같은 이들은 참, 이런 데 해당되겠죠. 충분히.
우리는 경전에서만 보다가 실지 살아있는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 정말 불교가 위대한 거죠.
잠깐 쉬었다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