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는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가 평생을 처녀로 지냈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마리아가 낳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6:3 이 사람(예수)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갈2: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행15: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약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1] 12사도중 큰 야고보로 부친은 세베대 모친은 살로매다. 그 아우 요한과 같이 갈릴리 해변에서 어부 생활을 하다가 베드로의 형제와 같이 예수의 부르심을 받았다(마4:20). 그 성격이 급하여 어떤 날 주님과 같이 사마리아를 지나다가 유숙하고자 하나 허락지 않을 때에 그 형제가 주님에게 와서 그 곳에서 천벌을 내려 멸하기를 청하였다. 그 때에 예수님이 우뢰의 자식이라는 별명을 주셨다(눅9:54, 막3:17). 베드로와 같이 그 형제는 주의 특별하신 교훈을 받고 또 다른 사도들이 보지 못하는 이적을 여러번 보았다(마7:1, 막5:37, 막1:29-31, 막13:3-14, 14:32-35). 주후 44년에 헤롯왕에게 참살당했다.(행 12:1-2).
[2] 12사도중 작은 야고보. 그 부친은 알패오 모친은 마리아 형제는 요세이다(마10:3, 막5:40).
[3] 예수의 동생(막 6:3). 그는 예수의 부활 때 부터 믿기 시작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큰 기둥이 되었다(갈2:9).예루살렘 공회의 회장(행 15:13). 야고보서의 저술(약 1:1). 전설에는 주후 62년에 돌에 맞아 죽었다고도 하고
[야고보]는 야곱과 같은 이름으로서 약탈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는 여러명의 야고보가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믿음을 실천하는 신 앙으로 이름을 남긴 예수님의 동생도 있다. 보잘 것 없는 나사렛 마을의 목수 집안에서 태어난 야고보는 가난하기는 했지만 신실한 부모와 형제들 사이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대교의 엄격한 생활 습관을 익혔다.
예수의 바로 밑의 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어린 시절부터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더욱이 아버지 요셉이 죽은 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형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은 야고보로 하여금 형제로서 의 우애를 초월하여 가장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함께 생활하면서도 야고보는 그가 사랑하는 형에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자신보다 남을 위하고 선행을 하며 사는 예수의 모습이 그에게는 단지 자랑스러운 형의 모습일 뿐이었다. 공생애 기간에 집을 떠난 그의 사역을 수행하는 예수가 세속적인 혈연관계만을 생각하는 야고보에게는
가족을 버리고 객지를 전전하며 이상한 짓을 하는 미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형을 사랑하고 의지했던 만큼의 무게로 이제는 배신감과 불안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와 같은 불신의 마음은 사랑하던 형 예수가 처형되는 데에도 찾아가지 않는 무정한 동생이 되게 했다. 그러나 인간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부 활 사건이 있은 후 그의 영혼을 덮고 있던 불신의 구름은 걷힌다. 예수는 더 이상 육신의 형이 될 수 없었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그의 마음 을 점령한 것이다. 뜨거운 믿음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 야고보의 인생은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받고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다. [예수의 동생]이 아닌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믿음의 행진을 하는 야고보의 활약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야고보는 무릎이 단단하게 굳어 [약대 무릎을 가진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기도를 많이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야고보는 중생한 이후에도 계속 율법을 준수하며 성별된 생활을 하였는데 이러한 신앙관은 그가 성경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야고보서]에 잘 나타나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야고보는 스스로 믿음을 실천하며
삶으로써 불신자들에게까지 존경을 받았다.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 [의로운 사람]으로 인식되던 야고보의 인생은 오히려 율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그막을 내렸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인이 되어 삶 전체를 통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야고보의 굳은 믿음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미움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져 돌과 몽둥이에 맞아 죽은 야고보의 영혼은 그의 영원한 주인이신 순간까지 경건하게 살가 간 야고보의 신행일치 의삶은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입으로만 믿음을 자랑하는 오늘의 외색하는 자들에게 일침을 주고 있다.
진정한 예수 사랑과 올바른 복음전도는 믿음을 실천하는 성화된 생활을 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야고보 (예수의 동생) ***
[야고보]는 야곱과 같은 이름으로서 약탈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는 여러명의 야고보가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믿음을 실천하는 신앙으로 이름을 남긴 예수님의 동생도 있다. 보잘 것 없는 나사렛 마을의 목수 집안에서 태어난 야고보는 가난하기는 했지만 신실한 부모와 형제들 사이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대교의 엄격한 생활 습관을 익혔다.
예수의 바로 밑의 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어린 시절부터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더욱이 아버지 요셉이 죽은 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형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은 야고보로 하여금 형제로서 의 우애를 초월하여 가장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함께 생활하면서도 야고보는 그가 사랑하는 형에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자신보다 남을 위하고 선행을 하며 사는 예수의 모습이 그에게는 단지 자랑스러운 형의 모습일 뿐이었다. 공생애 기간에 집을 떠난 그의 사역을 수행하는 예수가 세속적인 혈연관계만을 생각하는 야고보에게는 가족을 버리고 객지를 전전하며 이상한 짓을 하는 미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형을 사랑하고 의지했던 만큼의 무게로 이제는 배신감과 불안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와 같은 불신의 마음은 사랑하던 형 예수가 처형되는 데에도 찾아가지 않는 무정한 동생이 되게 했다. 그러나 인간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부 활 사건이 있은 후 그의 영혼을 덮고 있던 불신의 구름은 걷힌다. 예수는 더 이상 육신의 형이 될 수 없었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그의 마음 을 점령한 것이다.
뜨거운 믿음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 야고보의 인생은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받고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다. [예수의 동생]이 아닌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믿음의 행진을 하는 야고보의 활약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야고보는 무릎이 단단하게 굳어 [약대 무릎을 가진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기도를 많이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야고보는 중생한 이후에도 계속 율법을 준수하며 성별된 생활을 하였는데 이러한 신앙관은 그가 성경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야고보서]에 잘 나타나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야고보는 스스로 믿음을 실천하며 삶으로써 불신자들에게까지 존경을 받았다.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 [의로운 사람]으로 인식되던 야고보의 인생은 오히려 율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그막을 내렸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인이 되어 삶 전체를 통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야고보의 굳은 믿음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미움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져 돌과 몽둥이에 맞아 죽은 야고보의 영혼은 그의 영원한 주인이신 순간까지 경건하게 살아 간 야고보의 신행일치의 삶은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예수의 동생 야고보에 대해 자세히 조명해주셔서 유익합니다. 야고보서의 저자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의 동생인 의인 야고보라는 걸 톰슨성경이 잘 설명해준 것 같습니다. 야고보가 44년경에 순교했는데, 바울은 46년부터 선교를 시작했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바울의 말을 오해한 유대인들에게 믿음에 따른 행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바울 선교 이전에 죽은 세베대의 아들, 곧 사도 요한의 형제가 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죠. 박용규 교수의 영상 강의가 교인들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될텐데 조회수는 많은 편이 아니네요. 그만큼 교인들이 이런 공부를 등한시한다는 걸 알 수가 있군요. 좋은 강의 올려주셔서 잘 보았습니다.
첫댓글 카톨릭의 입을 다물게 하는 인물이 야고보일 수 있지요. 짧지만 유익한 포스팅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야고보(James)
뜻 : 발 뒤축을 잡음
[1] 12사도중 큰 야고보로 부친은 세베대 모친은 살로매다. 그 아우 요한과 같이 갈릴리 해변에서 어부 생활을 하다가 베드로의 형제와 같이 예수의 부르심을 받았다(마4:20). 그 성격이 급하여 어떤 날 주님과 같이 사마리아를 지나다가 유숙하고자 하나 허락지 않을 때에 그 형제가 주님에게 와서 그 곳에서 천벌을 내려 멸하기를 청하였다. 그 때에 예수님이 우뢰의 자식이라는 별명을 주셨다(눅9:54, 막3:17). 베드로와 같이 그 형제는 주의 특별하신 교훈을 받고 또 다른 사도들이 보지 못하는 이적을 여러번 보았다(마7:1, 막5:37, 막1:29-31, 막13:3-14, 14:32-35). 주후 44년에 헤롯왕에게 참살당했다.(행 12:1-2).
[2] 12사도중 작은 야고보. 그 부친은 알패오 모친은 마리아 형제는 요세이다(마10:3, 막5:40).
[3] 예수의 동생(막 6:3). 그는 예수의 부활 때 부터 믿기 시작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큰 기둥이 되었다(갈2:9).예루살렘 공회의 회장(행 15:13). 야고보서의 저술(약 1:1). 전설에는 주후 62년에 돌에 맞아 죽었다고도 하고
혹은 69년에 유대 관리 들이 죽였다고도 한다.
[4] 사도중 한 사람인데 다대오의 부친(눅 6:16).
[3] 야고보 (예수의 동생)
[야고보]는 야곱과 같은 이름으로서 약탈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는 여러명의 야고보가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믿음을 실천하는 신 앙으로 이름을 남긴 예수님의 동생도 있다. 보잘 것 없는 나사렛 마을의 목수 집안에서 태어난 야고보는 가난하기는 했지만 신실한 부모와 형제들 사이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대교의 엄격한 생활 습관을 익혔다.
예수의 바로 밑의 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어린 시절부터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더욱이 아버지 요셉이 죽은 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형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은 야고보로 하여금 형제로서 의 우애를 초월하여 가장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함께 생활하면서도 야고보는 그가 사랑하는 형에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자신보다 남을 위하고 선행을 하며 사는 예수의 모습이 그에게는 단지 자랑스러운 형의 모습일 뿐이었다. 공생애 기간에 집을 떠난 그의 사역을 수행하는 예수가 세속적인 혈연관계만을 생각하는 야고보에게는
가족을 버리고 객지를 전전하며 이상한 짓을 하는 미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형을 사랑하고 의지했던 만큼의 무게로 이제는 배신감과 불안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와 같은 불신의 마음은 사랑하던 형 예수가 처형되는 데에도 찾아가지 않는 무정한 동생이 되게 했다. 그러나 인간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부 활 사건이 있은 후 그의 영혼을 덮고 있던 불신의 구름은 걷힌다. 예수는 더 이상 육신의 형이 될 수 없었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그의 마음 을 점령한 것이다. 뜨거운 믿음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 야고보의 인생은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받고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다. [예수의 동생]이 아닌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믿음의 행진을 하는 야고보의 활약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야고보는 무릎이 단단하게 굳어 [약대 무릎을 가진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기도를 많이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야고보는 중생한 이후에도 계속 율법을 준수하며 성별된 생활을 하였는데 이러한 신앙관은 그가 성경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야고보서]에 잘 나타나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야고보는 스스로 믿음을 실천하며
삶으로써 불신자들에게까지 존경을 받았다.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 [의로운 사람]으로 인식되던 야고보의 인생은 오히려 율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그막을 내렸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인이 되어 삶 전체를 통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야고보의 굳은 믿음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미움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져 돌과 몽둥이에 맞아 죽은 야고보의 영혼은 그의 영원한 주인이신 순간까지 경건하게 살가 간 야고보의 신행일치 의삶은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입으로만 믿음을 자랑하는 오늘의 외색하는 자들에게 일침을 주고 있다.
진정한 예수 사랑과 올바른 복음전도는 믿음을 실천하는 성화된 생활을 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야고보 (예수의 동생) ***
[야고보]는 야곱과 같은 이름으로서 약탈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는 여러명의 야고보가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믿음을 실천하는 신앙으로 이름을 남긴 예수님의 동생도 있다. 보잘 것 없는 나사렛 마을의 목수 집안에서 태어난 야고보는 가난하기는 했지만 신실한 부모와 형제들 사이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대교의 엄격한 생활 습관을 익혔다.
예수의 바로 밑의 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어린 시절부터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더욱이 아버지 요셉이 죽은 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형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은 야고보로 하여금 형제로서 의 우애를 초월하여 가장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함께 생활하면서도 야고보는 그가 사랑하는 형에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자신보다 남을 위하고 선행을 하며 사는 예수의 모습이 그에게는 단지 자랑스러운 형의 모습일 뿐이었다. 공생애 기간에 집을 떠난 그의 사역을 수행하는 예수가 세속적인 혈연관계만을 생각하는 야고보에게는 가족을 버리고 객지를 전전하며 이상한 짓을 하는 미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형을 사랑하고 의지했던 만큼의 무게로 이제는 배신감과 불안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와 같은 불신의 마음은 사랑하던 형 예수가 처형되는 데에도 찾아가지 않는 무정한 동생이 되게 했다. 그러나 인간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부 활 사건이 있은 후 그의 영혼을 덮고 있던 불신의 구름은 걷힌다. 예수는 더 이상 육신의 형이 될 수 없었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그의 마음 을 점령한 것이다.
뜨거운 믿음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 야고보의 인생은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받고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다. [예수의 동생]이 아닌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믿음의 행진을 하는 야고보의 활약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야고보는 무릎이 단단하게 굳어 [약대 무릎을 가진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기도를 많이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야고보는 중생한 이후에도 계속 율법을 준수하며 성별된 생활을 하였는데 이러한 신앙관은 그가 성경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야고보서]에 잘 나타나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야고보는 스스로 믿음을 실천하며 삶으로써 불신자들에게까지 존경을 받았다.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 [의로운 사람]으로 인식되던 야고보의 인생은 오히려 율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그막을 내렸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인이 되어 삶 전체를 통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야고보의 굳은 믿음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미움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져 돌과 몽둥이에 맞아 죽은 야고보의 영혼은 그의 영원한 주인이신 순간까지 경건하게 살아 간 야고보의 신행일치의 삶은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입으로만 믿음을 자랑하는 오늘의 외식하는 자들에게 일침을 주고 있다.
진정한 예수 사랑과 올바른 복음전도는 믿음을 실천하는 성화된 생활을 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KCM사전>
@장코뱅 좋은 설명으로 자세하네요.
예수의 동생 야고보에 대해 자세히 조명해주셔서 유익합니다. 야고보서의 저자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의 동생인 의인 야고보라는 걸 톰슨성경이 잘 설명해준 것 같습니다. 야고보가 44년경에 순교했는데, 바울은 46년부터 선교를 시작했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바울의 말을 오해한 유대인들에게 믿음에 따른 행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바울 선교 이전에 죽은 세베대의 아들, 곧 사도 요한의 형제가 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죠.
박용규 교수의 영상 강의가 교인들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될텐데 조회수는 많은 편이 아니네요. 그만큼 교인들이 이런 공부를 등한시한다는 걸 알 수가 있군요.
좋은 강의 올려주셔서 잘 보았습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