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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근본적 전환 한신대학교 사회혁신경영대학원 교수 이상헌 |
2018년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날씨와 가장 추운 날씨 간의 기온 차이는 70℃에 육박했다. 초미세먼지 경보가 일 년 동안 300일이 넘게 발효되었고, 단기간의 기습 폭우와 태풍으로 지방 도시가 초토화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북극의 빙하가 심각할 정도로 녹아내리고, 전 지구적으로 게릴라성 강우와 사막화가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에 따른 수자원 고갈, 사막화, 생태계 파괴, 농작물 피해, 질병의 증가, 건강상 피해, 정치적 갈등이 계속 증폭되고 있다. 한편, 기후변화는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데 기여하기도 한다. 가난한 나라들은 부유한 나라들이 화석연료에 의존하여 산업화를 진행시킨 탓에 빚어진 기후변화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한 사회의 내부에서도 사회적, 생물학적, 경제적으로 취약한 집단에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보면 기후변화란, 현재처럼 자연, 특히 화석연료를 무한한 경제 자원으로 간주하여 마음껏 사용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을 전제로 생산된 부를 소수의 기득권층이 독점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추구해온 근대적 산업 모델이 수명을 다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신호(signal) 같은 것이다. 이것은 현재 성장 모델의 부분적 변경이나, 기술적 돌파만으로는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제기하고 있는 심각한 도전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자연과 사회 모두에게 정의롭지 못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지금의 산업화 모델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2015년에 채택된 ‘파리협정’은 기존의 교토의정서 체제에서 개도국이나 온실가스 대량 배출국이 빠졌던 결점을 보완했으며, 전 세계가 모두 참여하여 “지구 평균온도를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2도 상승보다 낮은 수준으로 억제하고 1.5도 상승 이하를 위해 노력할 것”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 협정에서는 합의문 후속 조치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패널)에게 1.5도 상승 시나리오를 중점적으로 검토하는 특별보고서를 마련하라고 주문을 한 바가 있다. 이에 따라 2018년 10월 8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IPCC 48차 총회에서 ‘1.5도 특별보고서’가 발표되었다. 보고서는 지구 평균기온 1.5℃ 상승이 인간과 자연에 미치는 영향, 1.5℃ 이하로 온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경로 및 대응 과제, 지속가능한 발전과 불평등 해결을 위한 과제 등을 제시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려면 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최소 45% 감축해야 하고 2050년까지 순제로(net-zero) 배출을 달성해야만 한다. 이것은 사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의 전면적인 산업화 모델의 궤도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지난 2018년 12월 1일에서 15일까지 폴란드 카토비체에서는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4)가 열렸다. 2016년 COP22에서는 COP24까지 파리협정 이행지침(rulebook)을 마련하기로 합의를 하였는데, 이행지침은 실제로 파리협정이 이행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라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파리협정은 당사국이 5년마다 국가결정기여(NDCs,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를 제출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행지침이 있어야, BAU, 집약도 방식, 절대량 방식에 따라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고, 무엇을 실제로 이행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된다. 금번 COP24에서 마련된 세부 이행지침에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영향에 대한 적응, 감축 이행에 대한 투명성 확보, 개도국에 대한 재원 제공 및 기술 이전에 필요한 세부 사항들을 담았다. 늘 그렇듯이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 차이는 존재하지만, 공통의 단일 지침을 마련한 것은 의의가 크다. 하지만 이 자체로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구체적이긴 해도 이행지침 역시 강제성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란 듯이 과거의 성장 모델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나라도 있다. 개최국인 폴란드의 두다 대통령은 "에너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우리의 천연자원을 이용하는 것은 기후보호에 배치되지 않는다"며 자국의 석탄 산업을 옹호했던 것이다. 물론 아예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한 미국도 있기는 하니 이 정도는 작은 소동에 그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지배구조 및 지속가능 발전 연구소>의 더우드 잴케(Durwood Zaelke) 소장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처한 기후 위기 속에서 느린 성공은 성공이 아니다. 응급 상황에서 구급차가 병원에 제때 도착하지 못하면 환자는 죽는다. 소방차가 늦게 도착하면, 집은 불타 없어진다”. 상황은 심각한데도 획기적인 진전은 없었다는 뜻이다.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은 어떠한가? 한국은 2018년 7월에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수정하여 보다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 의지를 천명하였다. 즉, 전체 감축 목표는 기존 로드맵(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 37% 감축, 배출량 목표인 5억3,600만톤)과 같지만, 11.3%(9,590만t)로 잡았던 국외 감축 규모를 대폭 축소시켜, 국내 감축률을 25.7%에서 35.1%로 올려 잡은 것이다. 그러나, 정부나 기업 모두 훨씬 더 과감한 방향 선회가 필요하다. 외국 기관의 객관적인 평가에 의하면 현재 한국의 정책으로는 우리가 2030년에 목표로 설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네덜란드 환경평가청(Netherlands Environmental Assessment Agency)과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Applied Systems Analysis, IIASA)는 2015년 25개국(한국, 중국, 콜롬비아, 인도 등)의 온실가스 배출전망(2020~2030년)을 분석했으며 현재 이를 재점검하는 차원에서 국가별 NDC 이행 로드맵, 온실가스 배출량 및 감축 정책 등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담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0년에 6.95억에서 7.1억 톤(2010년 대비 6~8% 증가), 2030년에는 7.2억에서 7.5억 톤(2010년 대비 10~15% 증가)에 달할 것이며 현재 수립된 정책수단만으로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물론 지난 7월의 수정분이 반영되지는 않아서 정확하지 않다는 측면도 있겠지만, 크게 틀린 예측이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의 선도적인 기업들의 노력도 미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예컨대, 기업들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잘 보여주는 단서 중의 하나가 ‘RE 100(Renewable Energy 100)’이다. 기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100% 전환하자는 세계적인 운동이다. ‘RE 100’에 참여하는 기업은 필요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구매하거나 기업 내부에서 생산하여 충당해야 한다. Apple, Google, GE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RE 100’에 참여하기로 선언했다. 그러나 우리 기업 중에는 단 한 곳도 이 운동에 동참하는 기업이 없다. 물론 우리 기업들이 억울할 수는 있다. 한전이 전력시장을 독점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별도로 재생에너지만을 이용해서 생산한 전기를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RE 100’에 우리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봉쇄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압축적 근대화를 통해 경제성장 성공신화를 써왔던 우리는 어떻게 기존의 산업화 모델을 벗어나서 자연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근본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정책적 수준의 변화로는 부족하며(정책적 수단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차원의 결단과 광범위하고 탄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즉, 저탄소·지속가능 사회로 총체적인 방향선회를 위해 필요한 사회, 경제, 정치적 구조 조정의 내용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것은 전환국가(transition state)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의 경제적 이행(transition)에 맞먹는, 혹은 그것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의미의 이행을 의미하는 전환이 감행되어야 한다.
사실, 이런 전환은 기후변화 대응만이 아니라 현재의 경제 활력을 회복하고 사회의 포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당장 시작해야 한다. 건국대 최배근 교수는 최근의 칼럼에서 현 정부의 사회, 경제정책 실패는 “대규모 장시간-저임금 근로자들에게 의존해 수명을 연장해온 저부가가치 사업장들의 존재라는 경제 적폐의 원인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며, 이 “적폐의 근원은 (대기업-중소기업, 내수-수출, 가계-기업 소득 간)불균형과 격차 사회를 구조화한 재벌 중심체제라는 불공정 시스템과 더불어 제조업 종사자가 줄어드는 ‘탈공업화’라는 산업구조의 변화의 산물이다”라고 진단하였다. 이러한 진단에 근거한 처방은 “노동자를 저부가가치에서 고부가가치 사업장으로 재배치하는 산업구조조정과 더불어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직자를 위한 안전망 확충 및 복지강화”라고 제시하였다. 다시 말해서 현재 한국의 경제상황을 호전시키려면 한국 경제의 체질을 고부가가치 위주로 이행하는 동시에 포용성을 넓히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진단인데, 이러한 지적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환의 방향과 일치한다. 물론 모든 고부가가치 산업이 저탄소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탄소 사회의 물질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 자원투입을 최소화하고, 생산 과정 전반에 독성물질과 같은 위해요소나 위험요소를 줄이며, 최종 폐기물도 극히 적게 배출하는 경제시스템으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또한 이로 인한 일자리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노동자 재교육과 복지 확대를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기존의 사회민주주의적 방식(높은 세금, 완전 고용 추구) 보다는 사회의 공동재(commons)의 독점적 소유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개입을 통해 여기서 발생하는 이익을 공동체에 다시 직접적으로 나눠주는 방식(예컨대 기본소득) 형태의 방안을 적극 고려해봐야 한다. 특히 고용소득보다 자산소득 격차가 사회적 불평등의 근본적 원인이 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부분에서 과감하고 혁신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포용사회는 결코 달성될 수 없다. 기후변화 대응은 기존의 경험에 의존하는 관성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끌어당기는 인력(引力)에 의해 추동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에 필요한 힘은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에서 나오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리더십이다. 새해에는 이러한 정치적 리더십이 만개하게 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 이 전문가 칼럼은 저자의 개인적 견해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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