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전설 - 개미떼의 보은 — 광주 경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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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0.10. 23:39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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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전설 - 개미떼의 보은 — 광주 경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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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3. 17:44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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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전설
개미떼의 보은 — 광주 경양지
현재 광주시청이 들어선 자리에는 본래 야트막한 야산이 있었다 한다. 풍수설에 의하면 무돌골〔武珍州〕 광주는 이무기가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르는 형국, 소위 말하는 상룡승천(上龍昇天)의 지형인데, 그중에서도 시청 자리가 용의 여의주에 해당하는 명당이라는 것이다.
이 야산은 조선시대 인조 때 왕자의 태를 묻었기에 태봉산(胎峰山)이라 부르기도 했다. 당시 공주로 피신 중이던 인조는 왕자를 낳자 태를 계룡산에 묻었으나 뒷날 이곳 명당으로 옮겼다고 한다. 피난 중에 낳은 자식이라 평소 잔병치레가 많았던 왕자는 태를 태봉산으로 옮긴 뒤부터는 온전히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광주의 신역부근
옛날 이곳에 개미의 보은(報恩) 전설이 깃들인 경양지란 못이 있었다.
그런데 천하명당이라 일컫던 태봉산은 애석하게도 30여 년 전에 허물어지고, 그 흙으로 산 아래에 있던 경양지(景陽池)란 못을 메우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 광주 신역이 들어선 곳, 그 역사가 본래 경양지였다고 하는데 현장에서는 이런 유래를 적은 안내판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필요에 의한 것이라지만 개발이란 이렇게 전설의 현장을 무자비하게 허물기도 한다. 태봉과 경양지의 경우 전설의 현장은 물론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그 귀한 여의주를 우리 손으로 없애 버렸다고나 할까.
경양지, 또는 경양방죽이라 불리던 이 저수지는 세종 때 이곳 무돌골의 논농사를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된 인공못이었다. 볕이 잘 들어 ‘경양(景陽)’이라 이름했던 이 못에는 인간과 개미에 얽힌 따뜻한 전설이 남아 있어 더욱 포근했던 곳이다.
경양지 옛 태봉산 밑에 김방(金倣)이라는 농부가 살았는데, 어느 해 여름 급류에 휩쓸려 가는 개미집을 발견하고 물에서 건져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그 후 개미떼가 물고 온 낟알로 졸지에 갑부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김방은 그 동안 모은 재산을 털어 못 주변에 방죽을 쌓고 물을 끌어들이는 대공사를 벌인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경양지라고 한다. |
지금의 신안동 부근, 옛 태봉산 밑에 김방(金倣)이라는, 가난하지만 착한 농부가 살았다. 큰 홍수가 나던 어느 해 여름, 이 어진 농부는 급류에 휩쓸려 가는 개미집을 발견하고 이를 물에서 건져 무등산 기슭 안전지대로 대피시켜 주었다.
대단한 선행이랄 수도 없지만 이런 일이 있은 후 김방의 집안에는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 매일 아침 그의 집 마당에 쌀이 수북하게 쌓이는 이변이 생긴 것이다. 말하자면 개미의 보은(報恩)이 시작된 셈인데, 수많은 개미떼가 밤새 낟알을 물고 와서 김방의 집 마당에 떨구고 간 것이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나 까치 혹은 두꺼비 따위의 보은설화는 간혹 듣는 얘기지만 이처럼 미물에 지나지 않는 개미의 보은 이야기는 매우 드물다. 어떻든 가난한 농부가 하루아침에 큰 부자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졸지에 갑부가 된 김방은 개미의 보은으로 얻은 곡식으로 또 다른 선행을 베풀게 된다. 그 동안 모았던 전재산을 털어 못 주변에 부채 모양의 방죽을 쌓고 금계천의 물을 끌어들이는 대공사를 벌인 것이다. 이 지역의 논농사를 위함이요, 또 언제 있을지도 모를 홍수에 대비한 것이다. 이처럼 경양지 전설은 인간의 선행이 짐승의 보은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인간을 위한 선행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이야기다. 현재의 광주역, 한때 수많은 개미떼가 부지런히 곡식을 물어 날랐을 그곳에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드나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