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묵상:
히브리서는 예수님에 관한 책이다.
3장에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나와 있다.
1절을 다함께 읽어 보자.
1절,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1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3장은 명령문으로 시작한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누구를 생각하라는 말인가?
"예수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얼마나 생각하라는 말인가?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시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도리"는 무엇을 말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말하는 "우리"가 누구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거룩하게 된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성도들이 공통적으로 "믿는 도리"는 무엇일까?
"믿는 도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Homogogia"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의 뜻은 "to agree(동의하다) / to confess(고백하다)"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거룩하게 된 성도들은
공통적으로 동의하고 고백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한글 성경에서
"믿는 도리"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믿는 도리"는 무엇을 말할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믿는 도리"가 수식하는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이해하면 된다.
1. 예수님은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신 분이시다.
여기서 흥미로운 단어가 하나 나왔다.
"사도"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의 12제자를 흔히 "사도"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사도이시라는 의미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이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성육신을 의미하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도로서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도로서의 사역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2. 예수님은 우리가 믿는 도리의 대제사장이신 분이시다.
예수님에 관해서 말할 때,
"사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성육신하셨다는 의미이고,
"대제사장"은 이 땅에서 사도로서 감당해야 할 구체적인 사역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서
히브리서 2장 말미에 아주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히 2:17,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예수님께서) 형제들과(인간들과) 같이 되심"이란
사도로서 보냄받아 인간이 되셨다는(성육신) 것을 의미한다.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심"이란
대제사장으로서 행하신 속죄 사역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셨지만,
다른 대제사장들과는 다르게 사역하셨다.
왜냐하면,
다른 제사장들은 짐승의 피로 매년 속죄의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님은 당신의 피로써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이다.
이제 정리해 보자.
우리가 믿는 도리 즉,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하고 고백하는 도리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사도로서의 사역)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백성의 죄를 사해주셨다는 것이다.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자,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믿는 도리는
신약의 두 구절을 머릿속에 떠오르게 한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사도)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대제사장)
우리가 믿는 도리는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왜냐하면,
진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맨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예수님의 무엇을 깊이 생각해야 할까?"
하나님의 보내심에 순종하여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을 희생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만 더 생각하고 넘어가자.
히브리서는
당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이 책에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과 율법과 제도 같은 것들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 하나가
히브리서 3장에 많이 등장하는 모세이다.
모세는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인물이었다.
모세 역시 "사도와 대제사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사람을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에 보내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셨던 것이다.
모세가 대제사장은 아니었지만,
모세가 대제사장이 섬기는 성막과 제물과 제사와 그 직분을 만든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모세와 예수님은 비슷한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유대교 혹은 구약성경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모세와 예수님의 차이점을 분명히 구분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 지금처럼 각 개인마다 성경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기독교의 교리가 체계화되어 명확하게 정립된 시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히브리서 저자는 3장에서 모세와 예수님의 차이점을 두 가지로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1) 예수님은 집을 지은 분이시고, 모세는 그 집의 일부이다.
히 3:3,
"그는(예수님은)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여기서 말하는 "집"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 혹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의미할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교회라고 볼 수 있고,
예수님은 교회를 지은 분이시고, 모세는 교회에 속한 성도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모세는 애초에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다.
히 3:5~6,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이 부분은 더욱 명확하다.
모세와 예수님은 모두 신실하였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다.
모세를 존중했던 당시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과 모세의 차이점을 분명히 이해했을 것이다.
참고로,
본문에 나오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에서
"깊이 생각하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katanoeo"로써
"to discern(분별하라) / to understand(이해하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문맥을 보았을 때,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은 "올바로 분별하고 이해하라"는 말씀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이해하고 있는가?
당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비교할만한 대상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우리에게 그런 대상이 있다면, 히브리서를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히브리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주님,
저희의 믿는 도리의 사도와 대제사장이 되신 주님,
주님의 순종하심과 이루신 사역을 찬양합니다.
주님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 무엇과도 짝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주님을 주님으로 믿고 섬기고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히브리서를 통하여 우리 주님을 더 깊이 알고, 더 깊이 생각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주님을 올바로 고백하고 주님만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저희 모두가 다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