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주. 전도서 12장 13절
샬롬! 주의 날입니다.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주님의 음성 듣기를 기도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곳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도서 12:13절 말씀)
1. 일의 결국을 다 들었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재물)는 결코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바로 솔로몬 왕 자신은 이러한 부를 누린 전무후무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전도서 5장 10절에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고 하였습니다(6:2).
록펠로는 그의 전성기에 하루에 25만 달러의 수입을 올릴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96세까지 오래 살면서 실로 기하학적인 많은 돈을 소유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소유했던 그 많은 재산은 결국 자신의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 돈을 소유했을 뿐입니다. J.P 모오건은 한 때 미국 재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막대한 세력을 행사하는 금융가의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사람들은 “모오간씨가 없다면 우리 금융계는 아무 일도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라고 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남프랑스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죽고 말았습니다.
한 때 헨리 포오드의 수입은 하루에 50만 달러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 액수는 시간당 2만 달러가 넘는 것이었습니다. 분당 333달러, 초당 5달러 50센트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재산은 결국 그의 전부가 되지 못했습니다. 재물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사람을 위해 잠정적으로 관계하는 한 부분이 됩니다. 결코 그 많은 재물이 죽음을 만난 인생 문제를 해결할 길이 전혀 없습니다. 이상하게도 재물에 대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가지면 끝없이 더 가지고 싶어 하다가 마침내 은과 함께 멸망에 빠지는 비운을 만나게 됩니다(행8:20). 돈(재물)을 인생의 전부로 삼는 자는 그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 그것이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러 자학에 이르고 맙니다(딤전6:10). 저 로마의 황제 쥴리우스 시저는 영원한 권세의 야망을 추구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자기의 심복이었던 부르터스에 의해 살해를 당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불과 32세의 젊은 나이로 당시에 알려졌던 세계를 다 정복했지만 30세 초기에 조사(早死)하고 말았습니다. 나폴레옹은 전 유럽을 그의 수중에 장악하려 했던 그 순간, 저 워터루의 전투에서 패전의 쓴잔을 마시고, 유배지에서 참담한 모습으로 영웅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민주당 정권의 장면 총리는 저격을 당했습니다. 다시 군사 혁명 정부를 수립했던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그의 심복에 의하여 저격을 당했습니다. 결국 해 아래 살아가는 인생들의 영화는 그것이 사람의 전부가 아니고 지극히 적은 한 부분임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가지고 가지 못할 돈을 죽기 전에 복음을 위하여 땅끝까지 가서 한 생명 살리며 삽시다.
2.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하여야 합니까?
성경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경외해야 한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본문도 그러하지만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기 때문입니다(잠9:10). 경외는 공경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온전히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공포심에서 나오는 두려움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임재를 느끼며, 그가 베푸시는 무한한 사랑과, 또한 은혜와 은총이 너무나도 크고 강하여 감히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이 그 분 앞에 나아갈 때 느끼는 두려움의 경외심을 말합니다. 절대자 하나님 앞에서 한 없이 약한 나를 느끼는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자임을 깨닫고 그 분을 의지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오늘, 혹시 이 아침에 정말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정말 내 힘으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성도가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분은 충분히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자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사람의 본분을 다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는데 성경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야곱도 고백합니다. 다음으로,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창31:42). 이 말씀을 통해 아브라함, 이삭이 하나님을 경외하였음을 알게 됩니다. 요셉도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창42:18). 동방의 의인이요, 큰 부자였던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욥1:1). 이들은 한결같이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여 크게 복을 누렸던 자들입니다.
1) 경외하는 자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열왕기하 17장 39절에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라고 말씀하고 있고, 시편 34편 7절,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라고 하셨고, 시편 60편 4절,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올해 영적인 승리를 원하시는 분은 이 말씀을 의지하십시오.
2) 지도력을 주셔서 관직을 얻게 하십니다.
느헤미야 1장 11절에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느헤미야 7장 2절,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3) 생업과 일터와 사업에 복을 주십니다.
시편 61편 5절에,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일터에 복을 주심을 믿습니다.
4)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시편 34편 9절,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5) 앞길을 인도하십니다.
시편 52편 12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앞길을 구하는 성도는 이 말씀을 받으십시오.
6) 인자와 긍휼을 얻게 됩니다.
시편 103편 11절,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시편 103편 13절, '자기(하나님)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22장 4절,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사셔서 2025년을 복의 해로 만들어 가시기를 기도합니다.
3. 하나님이 사람의 전부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1) 존재론적 의미에서 하나님이 인생의 창조자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생 전부, 곧 존재 자체의 근원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알파요 오매가 이십니다.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란 뜻입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의 전부를 창조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만이 사람의 사람된 내용을 다 아시는 자란 뜻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란 뜻입니다(1:26).
2) 가치와 목적론적 의미에서 하나님 경외를 위하여 창조하였다는 뜻입니다.
우리 본문에 「하나님 경외」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전부는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하여 지음 받았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사람의 사람된 내용과 가치와 목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전부는 ‘하나님 경외’에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창조 목적이요, 창조 질서요, 축복 질서라는 사실입니다. 전도서 3장 11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영원의 실존이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만물은 다 너희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3:21-23). 그렇다면 존재하는 피조 세계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존재하는 피조 세계는 인생을 위한 부분이요, 수단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인생의 전부는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3) 구원론적 의미에서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생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사람된 전부는 영생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자신의 창조 목적입니다. 태초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인생 창조는 영생이었습니다. 죽지 않는 영생의 존재로 창조했습니다. 죽음은 하나님 창조의 본래가 아닙니다. 영생이 창조의 본래요, 인생의 본래였습니다. 죽음도 인생이 범한 죄의 결과였습니다. 죄의 삯이 사망이었습니다(롬6:23). 죽음은 정상이 아니고 비정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생을 사망에서 구원하여 창조 본래의 영생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어 진노하심에서 구원하였습니다(롬5:6-11).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전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아들 예수와 함께 영원히 영생할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거저 거저, 그렇게, 이렇게, 저렇게, 아무렇게 살아갈 존재가 아닙니다. 그 큰 이유는 사람의 사람 된 존재 의미가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사람 된 존재는 그 본질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살다가, 단기선교로 행복한 인생을 살다가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