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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실동 성당 7월 27일 특강
김성훈 스테파노 신부님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는가?"
1. 하느님에 대한 체험
하느님을 만나 보았는가? 만나는 것인 지 알고 하느님을 체험하였느냐? 하는 것은 가톨릭 신자에게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일 만나지 못했다면, 천국에서 예수님께 불러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여야 하는데 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 삶의 모습이 예수님의 빛을 닮아 가고 있는지도 생각해 보고.. 아~ 저런 것이 예수님을 만나는 거구나. 하고 알게 될 수 있습니다.
2. 진짜 달은 어떤 것인가?
깊은 산속에서 제자들과 함께 사는 훌륭한 스승이 보름이 아까운 날 호수가에서 제자들과 달놀이를 하였습니다. 술도 빛고 음식도 만들어서 호수에 배를 띄우고 흥겹게 지내면서 스승이 제자들에게 "달을 어떻게 생각하느냐?"하고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향의 어머니가, 또 다른 이는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모습이, 어떤 사람은 첫사랑 여인의 얼굴이 달을 닮았다고 했습니다. 대답을 하지 않고 머리를 숙이고 있던 한 제자가 " 저 달은 가짜입니다." 술을 먹고 즐기는 사람들이 보는 달과 보따리를 이고 소박을 맞은 여인의 달은 다릅니다. 쫓겨난 여인에게 달은 차디차고 냉혹하고 슬퍼 보입니다.
달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 또는 마음가짐에 따라서 달은 달라지기 때문에 "진짜달은 마음속에 있는 달에 대한 생각입니다. " 하고 말하였다.
3.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인가?
마음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는 말과 행동으로 이어지고, 오래 계속되면 습관이 되고, 반복된 습관은 인격을 형성합니다. 도둑의 마음은 훔치려는 생각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은 그 사람의 인격을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내게 주어진 시간과 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내 마음 전부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4. 인간은 위대한 존재인가?
인간은 그야 말로 어마어마하고 위대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비참한 모습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가지 모습을 가진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호주유학 때 처음 비행기를 타는데, 400~500명이라는 많은 사람을 태운 쇠덩이가 뜨는 것을 보고 인간이 위대한 존재임을 알았습니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핸드폰 하나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사람의 머리가 천사의 머리에 가까와지면 심판이 가까와 진다는 옛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 인간의 능력이 그 정도에 가까와 지지 낳았을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5. 인간이 하지 못하는 일
인간의 두뇌는 어마어마하고 엄청난 일을 하는데.. 혹시 사람 만드는 공장이나 오징어 또는 벼를 만드는 공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습니까? 없지요? 없습니다. 생명을 만드는 공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두뇌와 손과 과학이 만들어낸 어마어마한 생산량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그 보다는 사람을 토막내고, 죽이고 그래서 위대함도 좋지만 "왜 인간이 불행하고 외로운가도 알아야 합니다.
6. 예측하지 못하는 불행
추석날 모처럼 집을 방문한 가족들을 위해 밤을 따러 간 할아버지가 밤을 따다가, 미처 살피지 못한 손자의 눈이 밤송이에 찔리는 일이 발생했다면... 할아버지의 희생이 손주가 눈에 밤송이 가시를 찔린 일 때문에 불행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똥지게꾼이 아침에 일을 나갈 때 트럭에서 빠진 바퀴에 걸려 똥지게의 똥을 다 뒤집어 쓰고 죽을 것을 알지 못하고 일을 나갑니다. 오송 지하차도에 들어가신 분들이 그렇게 죽을 것을 알고 들어갔습니까?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지만 어마 어마하게 연약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이런 인간이기 때문에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좋은 부모를 만나기 위해 흥정해서 태어난 사람 있습니까? 업지요? 100년 전에는 어디에 있었으며, 100년 후에는 어디에 있을 것인지 알야야 합니다. 예전에는 교리를 가르칠 때 "사람이 태어난 것은 천주를 알아 공경하기 위해서.." 라고 가르쳤습니다. 천주를 알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7. 천주님,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
1)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하느님은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어마 어마한 일을 하십니다. 사람은 살려면 먹어야 합니다. 나무들 사이에 심은 키작은 소나무는 햇빛을 먹으려려고 길게 자랍니다. 사람이 살기위해서는 음식과 석탄 같은 연료와 공기, 물, 햇빛 등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전 우주를 동원하여 사람을 먹여 살립니다. 그 만큼 하느님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2) 전능하신 하느님
"전능하신 천주 성부"
하느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은 독재자처럼 잘하는 사람은 잘해 주고,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는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에서 전능하신 분입니다.
3) 아버지이신 하느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은자식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는 아버지처럼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아들과 낚시를 갔던 아버지가 낚시에 정신이 팔렸다가 아들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해 찾아 해메다가 텐트에서 자고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는 끌어안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웁니다. 죽은 지 알았던 아들을 보고 흘리는 눈물처럼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기에 하느님은 아버지이십니다. 램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그림처럼 작은 아들을 감싸는 억세고 강한 아버지의 손과 부드러운 어머니의 손을 동시에 가지고 계신 분이 아버지 하느님입니다.
4) 사랑이신 하느님
삼위일체 하느님은 사랑으로 온전히 하나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지 다 해 주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을 죽도록 사랑한다고 할 때.. 죽도록 사랑하면 당신은 내 사랑의 전부라고 할 때, 너는 내 전부고 나는 없어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면은 만나게 하는 힘이 성령 하느님의 힘입니다. 하느님이 삼위 일체라는 것은 하느님은 한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한분이라는 것은 하느님이 전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할 때 사랑이라는 말안에 있는 뜻은 순종(따름), 희생, 나눔이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8. 순종 : 사랑의 다른 표현 1
사람들이 싸우는 것은 서로 상대의 종이 되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기꺼이 상대의 종이 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순종은 상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순종 중에서 으뜸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아기를 위해 온전한 종이 되는 어머니의 사랑이 순종입니다.
시골장에서 시집간 딸을 만난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시집살이 힘들지?"하는 한 마디에 딸의 설움이 북받쳐 오르며, 아버지 손의 따듯함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어머니의 순종과 아버지 손의 따듯함을 알아야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9. 희생 : 사랑의 다른 표현 2
부부가 양쪽이 서로 죽으면 절대 안싸웁니다. 너죽고 나살자하니까 싸우는 거지.. 희생제물은 너 살리고, 나는 죽는 것.. 내가 없어지는 것. 그 것이 희생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당신이 제물로 갈 때 다 바쳐 진 것입니다.
영성체는 희생제사가 다 바쳐지고 그 안에 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여튼 없어져 야 하는 것입니다.
10. 나눔 : 사랑의 다른 표현 3
엠마오로가는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걸어 갈 때 마음이 뜨거워 지는 것을 느낍니다. 다 와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걸어가면서 재미있게 하시오? 하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마지막에 가서 빵을 쪼갤 때, 나눌 때 그때에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빵을 쪼갤 때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러니까 내가 쪼개질 때 그 때 내가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됩니다. 쪼개질 때, 내가 나누어지는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모습은 순종하시고, 희생하시고, 나누시는 분입니다. 순종하고, 희생하고, 나누는 예수님을 하늘나라에서 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누라고 해서 나누었고,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가 나눈 것을 아시니까.. 그렇게 하느님과 친교가 맺어진 것입니다.
11. 하느님 사랑의 네가지 특징
하느님은 사랑이신데.. 하느님의 사랑은 네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똑같이 베푸신다.
사람의 사랑처럼 잘 난 사람 더주고 못난 사람 덜 주는 그런 사랑이 아니다.
전등불이 잘난 사람은 더 밝게 못난 사람은 어둡게 비추지 않는 것처럼 똑같이 비추신다.
2) 차별없이 베푸신다.
똑똑하거나 무식하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많이 가졌거나 적게 가졌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가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 베푸시는 무차별적인 사랑이다.
3) 열심히 사랑하시는 일을 즐기신다.
전등은 비추는 것이 자기의 일이니까, 열심히 비추는 일을 하는 것처럼 하느님은 열심히 사랑하시는 일을 즐기시는 분이시다. 사람처럼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보다 자기 자신의 기분에 따라 살거나, 남의 평가 때문에 꼭둑각시처럼 자기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가만이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보면 내가 내 주관으로 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남의 장단에 꼭둑각시처럼 살아가고 있어요.
4) 자유를 통해 사랑을 베푸신다.
처음에 하는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기분이 좋지만, 사랑합니다.를 연발하며 따라 다니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한여름 더운 날 나무 그늘을 만드시고, 너 열사병 걸리니까 나무그늘 밑에 와서 쉬어... 이렇게 안하신다. 사람이 자유롭게 그늘에서 쉴 수 있는 선택을 하시도록 한다. 사람의 사랑처럼 내 맘대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그늘은 마련해 주시지만 사람의 자유를 존중해 주시는 그런 사랑입니다.
12.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1) 가난한 사람과 나눌 수 있는 마음
빈부격차가 극심한 남미의 어느나라에서 가난한 모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젊은 어머니는 부자의 쓰레기 더미를 뒤져서 먹을 것을 구했습니다. 하루 종일 일해도 매일 강냉이 가루 한줌을 얻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것으로 하루 한끼 죽을 끓여 모녀가 끼니를 이어갔습니다. 하루는 딸이 내일은 내 생일이니까 과자를 먹고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기운이 없어 옆집에서 커피를 얻어 마시고 일을 하러 나섰습니다. 그러나 옥수수 한줌의 수입 뿐이었습니다. 과자 하나를 주지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과자하나를 나누어 주었는가? 빵이 쪼개질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듯이 빵을 쪼개 지듯이 너도 쪼개어 질 수 있느냐? 남은 살리고 너는 죽을 수 있느냐? 이렇게 물으십니다.
2) 배고픈 사람과 음식을 나누는 마음
부자들이 많이 가는 백화점 앞 포장마차에서 장사 시작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낡은 옷을 입은 늙은 거지가 배가 고프니까 오뎅 국물을 조금 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국수를 말아서 주었다고 합니다. 마음이 따듯해 지시지요? 장사망치려고 하느냐고 호통을 칠 수도 있는데.. 이렇게 국수를 말아주는 그 따듯한 마음이.... 경제적으로 손해가 될지라도 나누는 그 따듯한 마음이... 그 마음이 예수님을 닮은 마음이요. 예수님을 알아보는 마음입니다.
3) 모든 것을 다 내 주는 엄마의 마음
엄마를 싫어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눈에는 지지하게 물이 나와서 파리가 생기고 지저분해서 아들은 어머니를 싫어했습니다. 아들은 성장해서 대학교수가 되었지만 엄마를 싫어하는 아들은 어머니를 찾아가지 않았지만, 아들의 생일에 엄마는 떡을 해서 아들의 집에 찾아갔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보고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들의 아내에게 엄마는 잘못 찾아 왔지만, 돌아갈 때 짐이 무거우니 이 떡을 여기에 두고 갈테니 드시라고 하고 갑니다.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회의 초청을 받은 아들이 어머니 살던 곳을 가보니,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기 편지를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어릴 때 눈을 다친 아이를 위해 자신의 눈을 빼어주고 자신은 그렇게 고통 속에 살아왔다고 합니다. 아들은 성하게 되었지만 어머니는 눈에 고름이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 준다는 것.. 진짜 우리가 살면서 다.. 그렇게 하느님처럼 다 줄수가 없습니다. 모두 내어 주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자기 눈도 내어 주는 그 사랑의 마음이.. 하느님의 사랑을 닮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국수한 그릇 나누는 상인이나 눈을 빼준 어머니의 사랑을 따듯한 마음으로 묵상하며... 우리모두가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길은 이길 밖에 없습니다. 내가 죽고 너를 살리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
13.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
마태복음 25장을 최후의 심판을 보면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느냐? 입을 것을 주었느냐? 마실 물을 주었느냐? 나를 찾아 봤느냐? 묵주기도를 백단 바쳤느냐? 같은 것이 아니고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었느냐? 오른 쪽에 있는 사람이 무어라고 해요? 나는 그렇게 해준 적이 없다. 언제 그렇게 했냐니깐 지금 너희가 살아가는 삶 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한테 해 준 것이다. 이렇게 남한테 해 줄 수 있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배고픈 사람을 나 몰라라 하지 말고,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 예수님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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