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유튜브에 들러 북한 관련 동영상들을 몇개 보다 보면
북한의 소위 "꽃제비" 관련 동영상들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꽃제비"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유랑, 유목, 떠돌이라는 뜻을 가진 러시아어 '꼬체브니크'(кочевник)(꼬제비예)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고 합니다.
하여튼, 유튜브에 있는 북한 동영상들 중에 "꽃제비"가 등장하는 동영상을 보면
장마당 등에 떠돌아 다니는 어린 걸인소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주지하디시피 소위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즉, 일반 인민들의 의식주 등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해주어야 하는 사회체제라는 말입니다.
그런 사회에서....도대체 어떻게 "꽃제비" 현상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수십년에 걸친 미국의 강력한 대북경제봉쇄 조치로
북한의 경제가 몰락하여 배급체제의 상당 부분이 작동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러나....장마당 등에 떠도는 "꽃제비"들의 존재를 북한관리들이 모를리 없을 것인데
그들은 왜 그런 아동들에 대해 나몰라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남한처럼 처음부터 자본주의 국가라면....
그런 사회적 현상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겠지만 말입니다.
즉, 남한사회에도 여전히 상당수의 걸인들과 노숙자들이 존재함을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건 뭐....서울역 주변의 지하철역에 가보면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일이지요.
노숙인에 '누에고치 박스집' 선물한 대학생들
건축학 전공 사회공헌모임 '비 온 대지' 9개월에 걸쳐 개발
"누에고치서 나비가 나오듯 노숙인도 이 집에서 살다가 다시 사회인으로 거듭나길"
"장기적으로 자립할 길 마련을"
조선일보

http://media.daum.net/photo/society/newsview?newsid=20120211031409016


암튼, 내 글은 포털 다음의 기사댓글에서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로서는 사실상 똑같은 내용이라고 생각되는
댓글을 올렸음에도 말입니다.
(뱀발)
북한 관련한 글을 올리다 보니....
아주 어렸을 적 들은 얘기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우리 어머님이 동네 아줌마들과 어울려
일상 잡담을 나누던 중 우연히 6.25 전쟁 관련한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물론, 나로서는 아주 어린 나이였으므로....그 때 들은 얘기를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나이 든 후에야 그 얘기가 다시 생각난 것이지요.
6.25 전쟁 당시 아직 시집도 안간 앳된 처녀로서 산골마을에 살던 어머님이
직접 겪었던 경험이라는데...
당시 인민군은 낮에는 산에 숨어 있다가....밤에만 마을에 내려와
동네 사람들에게 밥을 해달라고 부탁하곤 했었답니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은 밥을 해서 그들에게 제공했다고 합니다.
물론, 인민군들이 마을 사람들을 무고하게 해치거나 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인지....마을 처녀들 중에는 잘생긴 "꽃미남" 인민군 총각에게
연애감정에 빠져 스스로 애간장이 타던 마을처녀들도 더러 있었던가 봅니다.
인민군들은 당시 대개는 매우 어린 나이들이었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내가 그 얘기를 듣던 매우 어린 나이 당시에는
그게 도대체 무슨 얘기들인지 전혀 아무런 느낌도 없다가....
나중에 내가 나이든 후에야....그 얘기들이 그런 류의 얘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어쨌든....
위 얘기를 통해서 나는.....유신독재 반공교육 내용과는 달리
6.25전쟁 당시의 북한 인민군들이 모두 무고하게 사람들을 죽이는 등
"흉악한 짓"들만을 하고 다니던 사람들만은 아니었다는 인상을
갖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어느 게시판에서인지....그와 같은 내용을 읽은 적도
있는 것 같군요.
전쟁상황에서....대개의 군인들은 아마도
마을 부녀자들을 강간하는 등 못된 짓들을 벌이기 일쑤인 것 같은데 말이지요.
예컨데, 그런 류의 내용은 이라크나 아프간 전쟁 등에서 우리가 흔히 읽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첫댓글 참고가 될지 모르겠는데요, 탈북자중에 황해도출신이 있어서 어떻게 종단여행을 해서 두만강을 넘었냐니까 북한은 사회주의국가답게 시스템은 잘돼있어서 단위내의 사람들은 잘 챙겨주지만 타지로부터의 여행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네요. 그래서 걸리지 않고 여행할 수 있었대요. 추측컨대 꽃제비가 있다면 어떤 이유로든 단위로부터 떨어져나오거나 아니면 단위와 단위 사이의 경계에서 소외된, 그래서 아무도 챙겨주지 못한 사람들의 일부가 아닐까요?
하여튼, 어떤 이유에서인가.....당국의 관리체제에서 벗어난 어린아이들임에
틀림 없다고 봅니다. 그나저나....아무리 행정단위가 다른 지방이라고 할지라도
모르는 외지인들이 떠돌아 다니는 것을 검열하거나 감시하는 사람들 조차도 없는 모양이지요?
어떻게 황해도에서....두만강까지 아무런 제재도 없이 갈 수 있었다는 말인지...
철저한 통제와 감시사회라는 북한사회 관념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우리사회의 노숙자도 수급자계층보다는 차상위에서 많이발생하지 않습니까?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기계의 고장도 언제나 접촉부분에서 많이 발생하듯 말입니다. 추측이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사실 연변 등 북중접경 지역의 걸식 아동들을 촬영해서
북한 꽃제비라고 우겨도....아마 구분하기 힘들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실제로 북한에도
걸식아동들이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물론, 남한에 노숙인 등 걸식인들이 훨씬 더 많겠지만....
네, 믿을 게 못 됩니다.
기사와 동영상 조작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입니다.
중국에는 호구부에 등록도 안 된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른바 농민공들~ 그들은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산다고 합니다.
당연히 학교도 못 다니고요...
그들이 사는 마을이 동영상의 배경과 그리도 흡사하다고 합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중국 사람입니다.
그분 왈, 북한은 중국 농촌과 매우 비슷하다.
--> 북 관련 동영상 보고 한 소리입니다.
모든 사회에 다 있는 거야요.......미쿡,닐본,유럽....
저희 부친께서도 625때 인민군보다 국군의 횡포가 심했다고 하셨죠
나이가 들어 이해가 가는게 중국의 모택동은 농민들의 마음을 얻었고 장개석은 그 반대였죠
그래서 소수의 모택동이 도망을 다니면서 중국을 공산화하였고 북한의 김일성도 엄격한 군대의 규율을 유지하여 남한에서 횡포가 적은게 아니었나
생각을하게 되었죠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작고하셨지만 제 선친은 6.25 참전 군인이셨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시절이던 70년대 초반
약주 한잔 거나하게 드시면 가끔 6.25 경험 말씀을 하셨는데,
그 서슬 퍼렇던 유신통치 시절에 의외로 인민군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말씀하셔서
어린 자식들인 제 형제들이 더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말씀의 요지인 즉,
전쟁 통에도 인민군들은 남쪽 민간인들에게 매우 신사적으로 대했으며
작은 폐라도 끼치는 것을 극도로 삼가했다.
심지어는 농민들이 가꾸어놓은 고추 하나 호박 하나도 함부로 건들지 않았다.
오히려 강제로 약탈해 소 잡아먹는 건 예사이고
방화 강간 살인 등 온갖 무도한 짓을 저지른건 미군,국방군,경찰이다.
너희들도 나중 혹 전쟁이 나거든 미군,국방군,경찰을 조심하라.
너희들이 아직 나이가 어려서 믿기 어렵겠지만
애비가 전쟁의 최일선에서 직접 목격한 뼈져리고 참혹한 경험이다.
너희들이 정신차리지 않으면 불행한 역사는 분명 반복됨을 명심하라.
현실만 봐도 그렇습니다 우파는 수단 방법을 안가리고 목적을 이루지만
좌파는 그래도 양심을 지키는 부류니가..
짐작이 가네요..누가 더 하류 인간인지.
나도 그렇게 들은 기억이 나네요
인민군들은 신사적이었는데 남한의 경찰들 특히 전투경찰의 횡포가 심했다죠
저의 큰 어머니께서도 6.25 때
인민군이 아닌 국군의 총탄에 잘못 되셨다고 하더군요.
어릴적 저도 당시 인민군들은 먹을 것은 더러 요구했어도
민간인들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정론직필님의 지극히 지당하신 포털댓글이 추천제로에 마이너스만 6점이라니 기가막힙니다..
이나라는 진짜 답이없네요.. 온통 적막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