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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가 인정한 맛집 거리, 성북동 기사식당길 성북동은 참으로 매력적인 동네다. 한용운, 조지훈, 전형필, 김기창 등 걸출한 문화예술인들의 옛집이 곳곳에 흩어져 있고,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훈민정음 해례본》 등 소장품의 수준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간송미술관이 있다. 그리고 푸짐한 맛집과 색다른 멋집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서울이라는 커다란 갯바위에 붙은 싱싱한 석굴 같은 성북동. 택시기사들이 인정한 맛집이 숨어 있는 성북동 기사식당길을 찾아간다. 성북동 기사식당의 대표주자인 쌍다리기사식당 성공에는 이유가 있다! 쌍다리기사식당 요즘 서울에서 기사식당 보기가 힘들어졌다. 만 원이 안 되는 밥을 팔아서 주차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히 장사가 잘 돼서 주차장을 유지할 수 있는 기사식당만 살아남는 구조가 됐다. 성북동에 남은 네댓 곳의 기사식당이 바로 그런 집들이고, 그 맹주가 ‘쌍다리기사식당’이다. 사실 이 집은 소개하기가 새삼스러울 만큼 이미 유명한 집이다. 하지만 7,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이 선사하는 행복과 만족이 그 어느 맛집보다 크기에, 또 식당의 위치가 성북동 기사식당길 투어의 베이스캠프로 알맞기에 첫 방문지로 낙점!
[왼쪽/오른쪽]기사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40년 가까이 사랑받고 있는 쌍다리 돼지불백 / 쌍다리기사식당 차림표. 돼지불백을 실컷 먹고 싶다면 ‘특’을 추천한다. 7,000원의 행복은 주문 후 오래지 않아 찾아온다. 테이블에 수저를 놓고 대통령 방문 사진에 잠시 놀란 사이, 밥 쟁반이 떡하니 놓인다. 가장 먼저 만나는 성공 포인트는 ‘손님을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는 것. 시간이 돈인 기사님들 앞에서 굼뜨게 움직일 수 없는 법이다. 쟁반 위에는 1식 6찬의 기본 구성에 시원한 조갯국과 이 집의 대표 요리인 연탄불 돼지불백이 놓인다. 일단, 고기 위에 부추만 얹어 맛을 본다. 달착지근한 돼지갈비와는 다른 돼지불백 특유의 감칠맛이 입안을 감싼다. 육질도 훨씬 부드럽다.
그냥 먹어도, 쌈으로 먹어도 연탄불 돼지불백의 고유한 맛은 그대로다.
싱싱한 청상추 위에 쟁반의 찬들을 조금씩 다 얹어본다. 우선 밥, 그다음 고기, 그리고 쌈장, 마늘, 부추, 생채를 잘 싸서 한입에 쏙~! 재료 간의 궁합과 조화가 고기만 먹었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을 연출한다. 그리고 시원한 조개국물로 입가심한다. 그다음은 말없이 이전 행동을 반복한다. 참 오묘하게도 쌈과 밥, 고기의 양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쌈과 함께 나오는 청양고추는 확실히 매콤하니 멋모르고 먹다 화들짝 놀라지 않도록 주의할 것.
[왼쪽/오른쪽]쌍다리기사식당 실내 / 쌍다리기사식당은 연탄불 화덕에서 고기를 구워낸다. 66m²(약 20평) 남짓한 공간에서 시작한 허름한 기사식당이 이제 40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사이 가게 규모는 훨씬 커졌고, 대를 이어 아들 부부가 운영을 맡고 있다. 바깥 사장님은 주차 관리, 안 사장님은 계산대를 지키며 요즘도 화덕에서 손수 고기를 굽는다. 사장님이 웃으며 옛날 에피소드 하나를 전한다. 그날도 열심히 주차 관리를 하는데, 몇 년째 단골이던 기사 한 분이 그랬단다. “지켜봤는데 젊은 사람이 참 열심히 일하네. 내가 남산돈까스 집에 소개해줄까?” 주인장에게 이적을 권유한 것이다. 재치 있는 젊은 사장은 “에이~ 그래도 한곳에서 오래하는 게 낫죠”라며 웃어넘겼다고 한다. 연탄불에 청춘을 불태운 사장 부부의 뚝심으로 쌍다리기사식당은 구청에서 지정하는 ‘성북동 가게 1호점’으로 등록되었다. 오래되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 가게를 성북구청이 인정한 것이다. 기사를 왕처럼, 금왕돈까스 밥보다 조금 특별한 것이 당긴다면 돈가스는 어떨까? 지금이야 흔하디흔한 것이 돈가스지만, 사실 30여 년 전만 해도 식사시간에 칼질하는 것이 그리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서울 시내를 정신없이 누비는 택시기사들이 그 바쁜 점심시간에 갓 튀겨낸 바삭한 돈가스를 맛보는 것은 분명 군침 도는 이벤트였으리라. '금왕돈까스'는 쌍다리기사식당에서 큰길을 따라 150여 m 올라가면 바로 정면에 보인다.
금왕돈까스 전경 정원에 들어서면 고소한 기름 냄새가 먼저 손님을 맞는다. 아담한 단독주택에 통유리로 마감해 식당 내부의 채광이 좋다. 이른 가을날 오후, 볕이 잘 드는 레스토랑에서 아삭한 풋고추에 새콤매콤한 깍두기와 함께 즐기는 큼지막한 돈가스 두 장. 이것이 바로 한국식 돈가스의 유니크함이다.
[왼쪽/오른쪽]풋고추와 샐러드, 깍두기가 함께 나오는 한국식 돈가스의 전형, 금왕돈까스 / 국내산 돼지고기를 사용해 육질이 부드럽다. 주문과 동시에 나오는 크림수프를 가뿐하게 비우고, 큼지막하게 자른 돈까스를 소스에 충분히 묻혀 입안에 넣는다. 바삭한 튀김과 어우러진 소스 맛이 색다르다. 갖은 재료가 들어가는 돈가스소스는 이 집의 자랑이다. 독특한 향의 소스에 이어 국내산 돼지고기의 우월한 육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안심돈가스는 육질이 더욱 부드럽다. 튀김의 느끼함은 먼저 소스가 잡아주고, 그다음 풋고추, 마지막으로 깍두기가 마무리한다. 그래서 돈가스 두 장을 다 먹어도 느끼함이 없다. 혹 양이 많아 남기게 되면 포장해 갈 수 있다. 깊고 진한 치즈 향 그리고 옛 마을, 씨리어스델리 & 북정마을 돼지불백이나 한국식 돈가스보다 좀더 이국적이고 세련된 메뉴를 원한다면 화덕피자나 파스타, 수제 햄버거를 추천한다. ‘씨리어스델리’는 이탈리아 정통 화덕피자집이다. 주인장은 로마피자스쿨 한국본부에서 수업한 실력파. 5년 전 이곳 쌍다리에 가게를 열었다. 이탈리아 정통 화덕피자 전문점, 씨리어스델리 화덕피자는 토핑을 잔뜩 올린 프랜차이즈 피자와는 그 느낌과 격이 다르다. 풍부하고 깊은 치즈와 함께 화덕에서 구워 담백하면서도 바삭한 피자 맛을 즐길 수 있다. 씨리어스델리의 대표 메뉴는 고르곤졸라 피자. 푸른곰팡이로 숙성시키는 블루치즈 계열인 이탈리아 고르곤졸라 치즈로 만드는 피자다. 치즈의 깊은 맛을 경험하고 싶거나 이색적인 피자를 원한다면 강력 추천한다. 고르곤졸라 피자 외에 7종의 다양한 파스타와 수제 햄버거도 맛이 좋다. 쌍다리기사식당 좌측 주차장 옆에 자리한다.
[왼쪽/오른쪽]씨리어스델리 내부 모습 / 화덕에서 고르곤졸라 피자를 꺼내고 있다. 식사를 했으니 좀 움직여야 할 터. 성북동 기사식당길의 매력은 단지 식도락에 그치지 않는다. 식후 산책 코스도 마련되어 있다. 식당에서 나와 언덕 위 북정마을로 향한다. 달동네에 뭐 볼 것이 있겠냐마는 아파트에서 나서, 아파트에서 자라고, 아파트로 분가하여, 아파트에서 세대를 잇는 요즘, 북정마을의 외피를 스쳐가는 것만으로도 기억 저편에서 무언가를 길어 올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골목길, 촌스런 페인트로 한껏 멋을 낸 녹슨 철대문, 공터에 핀 해바라기와 그 아래 엉켜 있는 호박 넝쿨…. 북정마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아니 이제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옛 서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왼쪽/오른쪽]서울성곽 아래 북정마을. 식사 후 동네 한 바퀴 코스로 딱이다. / 이제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좁은 골목길 당대 최고 문인들의 거처, 심우장 & 수연산방 기사식당에서 약 400m, 길을 따라 10분 정도를 오르면 북정마을 안내판이 보인다. 심우장으로 가려면 안내판에서 우측으로 길을 잡고 트랙을 돌 듯 시계 반대 방향으로 200m 정도 돌아 마을 정상에 우선 올라야 한다. 마을 꼭대기에 오르면 저 멀리 길상사와 각국의 대사관저 등이 보인다. 성북동은 이처럼 복개도로를 기준으로 한쪽 언덕에는 서민들의 마을이, 다른 한쪽에는 고관대작들의 거처가 들어서 있다. 성북동 기사식당길 투어는 물론 서민 마을 투어다. 북정마을 정상에서 심우장을 가리키는 안내판은 가로등 높은 곳에 있어 잘 보이지 않으니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북정마을 해바라기. 멀리 또 다른 성북동이 보인다. 심우장의 ‘심우(尋牛)’는 소를 찾는다는 의미로, 불도(佛道)를 소에 빗댄 불교 수양을 말한다. 조선 불교의 개혁을 위해 부단히 애썼던 한용운이 거처했던 곳의 이름으로 참 적합하고도 간명한 택호다. 잘 알려져 있듯이 심우장은 남향이나 동향이 아닌 북쪽을 향하고 있다. 남향을 하게 되면 조선총독부를 바라보기 때문이었다. 볕이 좀더 잘 들고, 몸이 좀더 편안한 집터 따위는 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심우장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그리 붐비는 곳이 아니니 응달진 마루에 잠시 앉아 만해가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를 감상하거나 건물 안에 들어가 시인의 초상화와 유품을 보고 가는 것도 좋다. 한용운 시인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 [왼쪽/오른쪽]심우장 안에서 바라본 마당. 한용운이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가 보인다. / 심우장 현판 심우장에서 큰길로 내려가 200m쯤 가면 금왕돈까스가 나온다. 금왕돈까스와 성북구립박물관 사이 수연산방이라는 전통찻집에서 오늘의 산책을 마무리한다. 1930년대 최고의 산문가로 평가받았으나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작품조차 공개되지 못했던 상허 이태준의 옛집을 그의 외종손녀가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태준이 1933년에 지어 1946년까지 살았던 이 집은 작가가 불우했던 성장기를 지나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며 작품활동에 전념했던 공간이다. 전통차와 함께 한옥 살림집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왼쪽/오른쪽]멋스러운 한옥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수연산방 / 수연산방 대청마루 [왼쪽/오른쪽]성북동에 있을 당시 이태준 작가의 가족사진. 이태준은 이곳에 살 때 작가로서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수연산방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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