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사(禪宗史)를 보면 방거사(龐居士)라는
특이한 선자(禪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에 걸쳐 살다 간 재가신자(在家信者)인데,
마조(馬祖: 중국의 위대한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어록(語錄)이 전해질 만큼 뛰어난 삶을 살았다.
그는 원래 엄청난 재산을 지닌 소문난 부호였다.
그런데 어떤 충격을 받고 그랬는지는 전해지지 않으나,
어느 날 자신의 전 재산을 배에 싣고 바다에 나가 미련 없이 버린다.
어떤 문헌에는 바다가 아니고 동정호(洞庭湖)로 기록되어 있다.
그가 전 재산을 바다에 버리기 전에 사람들에게 나누어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에게 ‘원수’가 된 재산을
남에게 떠넘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 결심을 단행한다.
살던 저택을 버리고 조그만 오막살이로 옮겨 앉는다.
대조리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팔아서 생계를 이으면서
딸과 함께 평생 동안 수도생활을 한다.
있던 재산 다 버리고 궁상맞게 대조리를 만들어 생계를 꾸려가는
그의 행동을, 세상에서는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니라고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진짜로 전개된다.
삶의 가치 척도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이요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어록에는 이런 게송(詩)이 실려 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지만
나는 순간의 고요를 즐긴다.
돈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고요 속에 본래의 내 모습 드러난다.
또 다름과 같이 읊기도 했다.
탐욕이 없는 것이 진정한 보시요,
어리석음 없는 것이 진정한 좌선.
성내지 않음이 진정한 지계요
잡념 없음이 진정한 구도다.
악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인연 따라 거리낌 없이 사니
모두가 함께 반야선(般若船)을 탄다.
출처 : 법정 스님 텅빈 충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