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혼(招魂)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1925년 12월에 펴낸 시집 《진달래꽃》에 처음 발표된 김소월의 시.
이 시는 1920년대 《창조》지를 통해 등단한 김소월이 습작기를 지나 스스로의 독자적 시세계를 구축한 이후 창작된 작품이다. 지금까지 애송되는 소월의 초기시가 대부분 수많은 개작과정을 거쳤음에 반해 《초혼》은 소월 전기 시를 총결산한 시집 《진달래꽃》에 완성된 형태로 첫선을 보였다는 점에서 소월 시 연구에 남다른 위상을 차지한다.
이 시 발표이전 소월시가 주관적인 개인적 경험세계에 머물렀다면 《초혼》에서 소월은 자아의 확대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시제목인 초혼이 우리의 전통적 상례의 한 절차인 고복 의식(皐復儀式)에서 빌려왔음을 통해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민간에서 흔히 초혼으로 부르는 이 의식은 사람의 죽음이 곧 혼의 떠남이라는 믿음에 근거하여 이미 떠난 혼을 불러들여 죽은 이를 다시 살려내려는 간절한 소망이 의례화된 것으로서, 그 절차는 임종 직후 북쪽을 향해 죽은 사람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행위가 중심을 이룬다. 이 시에서 소월은 전5연에 걸쳐 반복되는 '이름이여!' '그 사람이여!' '부르노라' 등으로 망자의 이름을 직접 세 번 부르는 고복의식의 절차를 문학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이 시의 시상(詩想)은 연과 연이 잇달아 연속되는 일종의 연쇄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죽은 이를 '임'이라 본다면 제1연은 임의 상실과 그에 대한 충격을 표현하고 제2연에서는 임의 상실로 인한 나의 영향을, 제3연에서는 상실의 충격이 일몰과 사슴울음으로 대표되는 '세계'로까지 확산되었음을 나타낸다. 이어 제4연에서는 이미 임의 상실이 수습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임을 인식하는 상황이 표출된다. 그러나 좌절을 좌절로서 끝내지 않으려는 나의 단단한 의지가 5연에서는 매섭게 표현된다.
이 시와 동일한 발상에서 쓴 소월의 시로 1925년 1월 간행된 《영대(靈臺)》 5호에 실린 '옛님을 따라가다가 꿈깨어 탄식함이라'가 있음을 근거로 이 시에 나타난 임은 경험적 연인이 아니라 소월이 궁극적으로 갈구한 지향점으로 보는 이가 있다. 이렇게 임을 확대시켜 본다면 소월시 《산유화》에서 '저만치'를 두고 수많은 논자들이 의미부여를 했듯이 본 작품에서도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다'는 좌절적 인식은 절망의 넋두리가 아닌 이상과 현실, 자아와 세계 사이의 거리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가 값진 절창으로 두고두고 애송되는 이유는 바로 망부석 모티브를 빌려 쓴 마지막 연에 있다. 임과 나의 처절한 거리감을 인식했지만 '선 채로 돌이 되어도/부르다가 내가 죽을 그 이름이여'라고 외치는 것보다 더 큰 비장함이 있을까. 소월은 동시대의 시인 만해처럼 단절된 세계가 화합하리라는 미래의 전망을 가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많은 대중적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한(恨)의 논리로 요약되는 민족적 정서와 많이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 카페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