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철원 평화문화 광장의 엄숙한 울림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회장 김영수)는 제22회 자유․민주․평화통일 염원하는 결의대회 및 추모제를 성료(盛了)했습니다. 26일 13시 철원 평화문화 광장 전몰장병 추모비 앞에서 각 시․도지부에서 600여 명 고령의 회원이 함께한 가운데 35도를 넘나드는 찜통더위 속에 탈 없이 무사히 마쳤습니다. 제주도지부에서는 15명이 참여, 24일 아침 출발하여 26일 저녁 귀도 했습니다. 올해는 안팎의 사정과 제7사단 신병교육대 공사 등 일부 프로그램 생략으로 지난해 보다 축소돼 진행했습니다. 다음은 행사장 가는 길에 현충시설 참배 등 그 발자국 흔적들입니다.
첫째 날 - 7월 24일
인천 맥아더 동상
- 6․25 전쟁 영웅 “전쟁에서 승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 일대에 있는 자유공원은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 근대식 공원입니다. 현재 명칭인 '자유공원'으로 바뀐 것은 1957년부터입니다. 이곳에 건립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동상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장군의 공을 기리는 뜻에서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만들었고 공원 남동쪽 부지에 장군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당시 김정렬 인천시장에 의해 공원 명칭이 '자유공원'으로 명명됐습니다.
1957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 동상 건립위원회가 세운 동상에는 “정의에는 국경이 없고 투쟁에는 산도 물도 거침이 없다.”라고 시작하는 건립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In war, there is no substitute for victory)”, “인천상륙작전은 5,000대 1의 도박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지만 나는 그런 모험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인천에 상륙할 것이며 적을 분쇄할 것이다.”라는 맥아더 장군의 어록은 유명합니다.
6․25 참전인천지구전적비
- 위풍당당한 동상에서 그날 승리의 함성이...
6․25전쟁 초기 낙동강 방어선에 배수진을 친 국군은 북한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입니다. 1950년 9월 15일 유엔군과 국군이 펼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단숨에 전세는 역전됐습니다. 역전의 발판이자 구국의 희망이 된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비가 바로 6․25 참전 인천지구 전적비입니다. ‘.... 오늘 이 언덕에 서 보면 그날 저 바다에 가득하였던 전함 승리의 고동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비문이 인상적입니다.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 자유 수호의 역사가 숨 쉬는 공간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고 보존하기 위해 건립된 전쟁기념관입니다. 기념관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된 날짜에 맞춰 1984년 9월 15일에 개관했습니다. 제1전시관은 인천상륙작전의 구상, 계획의 발전 과정, 인천상륙작전의 특징, 한국전쟁 당시 각 군의 역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2전시관은 인천상륙작전 상황을 담은 디오라마와 영상실, 포토 존, 체험형 전시와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야외 전시장에는 탱크, 수륙양용장갑차, 고사기관총, 함포, 호크 유도탄, 전투 정찰기, 카고트럭 등 전쟁 관련 대형 장비가 다수 전시되어 있습니다. 해벽을 오르는 미 해병대, 응봉산(지금의 자유공원) 기상대 탈환 후 환호하는 미 해병대 모습을 담은 조형물도 볼 수 있습니다. 맨 위 자유 수호의 탑에 오르면 서해와 인천 시가지가 내다보입니다. 제22회 휴전선 155마일 횡단 행사에 참여한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제주도지부 회원은 자유 수호의 역사가 숨 쉬는 이 공간에서 인천상륙작전 상황을 담은 약 15분 동안 영상물 관람 등 시청각 견학했습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 문자의 시간과 사람들의 시대정신이 새겨진 문자 전문 박물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프랑스 샹폴리옹세계문자박물관, 중국문자박물관에 이어 세계 3번째로 개관한 문자 전문 박물관입니다. 문자가 품고 있는 모든 것의 이야기로부터 새롭고 중요한 정보를 모아 연구하고, 전시와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 문자의 역사적 가치를 공유하고, 문자로 문화의 다양성을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문자인 ‘쐐기문자’에서부터 ‘한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던 문자의 탄생과 발전, 미래의 이야기를 담고 문자의 시간과 사람들의 시대정신이 새겨진 문자 전문 박물관입니다.
소래포구
소래포구는 아픈 과거가 만들어낸 관광지입니다. 1930년 후반 화약의 원료인 양질의 소금을 이 지역에서 수탈하기 위해 철도를 건설하면서 소래포구의 발전사가 시작됩니다. 해방 후에는 실향민들이 모여들어 무동력선 한두 척으로 새우를 잡고 젓갈을 만들어 새벽부터 새우젓을 이고, 지고 나가 팔면서 소래 사람들의 삶은 꾸려졌습니다. 어시장에는 새우와 젓갈 그리고 꽃게로 유명합니다. 특히 대하, 꽃게 철이 되면 축제를 열 정도로 그 싱싱함과 맛이 일품이고 도심의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바다 내음과 싱싱한 해산물이 필요할 땐 소래포구를 찾고 있습니다.
둘째 날 - 7월 25일
재일학도의용군 참전비
6․25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거주 애국청년 학도 641명은 재일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합니다. 이들은 병역의무가 없었음에도 조국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1950년 9월 15일부터 같은 해 11월 14일까지 5차례에 걸쳐 전선에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원산 상륙작전, 백마고지 전투 등 수많은 격전지에서 무수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61명이 전사하고 83명이 행방불명됩니다. 또 1952년 4월 미국과 일본 간에 평화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주권을 회복한 일본 정부가 재일학도의용군의 일본 재입국을 거절하여 242명이 부득이 한국에 잔류하게 됩니다.
재일학도의용군은 1954년 9월 국립정양원에서 수용 보호를 받던 중에 임의단체인 재일학도의용대를 조직하여 회원의 권익 보호와 친목을 위한 사업을 추진합니다. 1965년 9월 25일에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정관을 제정하고 1967년 12월 31일에 「국가유공자 및 월남 귀순자 특별원호법」이 개정됨에 따라 재일학도의용군에 대하여도 부분적인 원호가 시작되었고, 1985년 1월 1일 「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됨으로써 재일학도의용군이 명실상부한 국가유공자로, 그 유족이 국가유공자의 유족으로 예우를 받게 됩니다.
용문사
- 천 년 역사의 영험한 은행나무가 있는 고찰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 782 (용문면)에 있는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 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합니다. 일설에는 경순왕(927~935 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하였다고도 합니다. 용문사는 천 년 역사의 영험한 은행나무가 있는 고찰입니다. 나이는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는 높이 42m, 뿌리 부분 둘레 15.2m인 동양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습니다. 천 년 역사의 영험한 이 은행나무는 통일신라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전설이 있습니다. 나라에 재앙이 있으면 이 은행나무가 소리 내어 그것을 알렸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조선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고 합니다. 1907년 정미의병 대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으나 용문사 은행나무만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아 용문사 입구를 지키고 있다고 하여 ‘천왕목(天王木)’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이런 지킴이 정신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절 입구에는 ‘한국민족독립운동발상지’ 기념비와 함께 2015년에 세워진 기념비 7기도 있습니다.
수많은 의병의 업적과 그 정신을 기억하며 세워진 양평 의병 기념비와 용문 항일투쟁 기념비, 국난에서도 나라를 지키고 국권을 되찾고자 했던 선조들의 고귀한 정신을 받들어 건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각 기념비 앞에는 독립운동, 항일투쟁, 의병으로 온 생애를 바쳤던 분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습니다. 그 이름을 통해 다시금 그분들의 정신을 배우고 되새겨 봅니다. 평소 나라 사랑 지킴이 정신을 배우는 유족회원들은 휴전선 155마일 횡단 행사장으로 가는 길에 임들의 호국정신과 고귀한 희생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고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습니다.
세미원(洗美苑)
- 물과 꽃의 정원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수로 93에 있는 물과 꽃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공간입니다. 세미원 연꽃박물관은 연꽃이라는 단일한 주제 아래 연꽃 관련 생활용품, 고서, 음식 등의 유물이 전시된 세계 유일의 박물관입니다. 여러 자료에 의하면 세미원 6만 2천 평 정원은 수질정화 능력이 뛰어난 연꽃을 주로 심어 한강 물 정화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꽃 가득한 여름이 가장 아름다우며 각 계절에 맞는 테마로 정원을 꾸며 사계절 내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연일 35도를 넘나드는 찜통더위에 회원들은 제22회 휴전선 155마일 횡단 추모제 행사장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 잠시 들러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치유하여 여유로움을 갖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셋째 날 - 7월 26일
소이산 모노레일
- 철원평야를 한눈에 펼쳐볼 수 있는 소이산 정상에 가는 길
강원 특별자치도 철원군 철원읍 금강산로 262 (철원 역사문화공원 철원역)의 소이산 모노레일은 철원 역사문화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는 모노레일입니다.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모노레일로 왕복 1.8km로 너른 들녘 풍경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산 정상 전망대에 도착하면 철원평야가 드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내려올 때도 역사문화공원 일대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멋진 장관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철원평야는 민통선 구역이라 사람들이 상주하지는 않고 농사를 위해 제한된 시간 안에 출입만 가능한 곳입니다. 이날 정상의 전망대는 공사 중이어서 회원들은 그 중간 쉼터에서 철원평야와 북녘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으며 아쉬움을 대신했습니다.
백마고지 전적지
- ‘철원 DMZ 평화의길’ 출발 지점
‘철원 DMZ 평화의길’ 출발 지점은 백마고지 전적지입니다.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백마고지. 당시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기록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자료에 의하면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한국군 9사단과 중국군 제38군 3개 사단은 이 고지를 두고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쏟아진 포탄만 28만 발. 목숨을 잃거나 다친 국군이 3,500여 명, 중국군은 1만여 명에 달했습니다. 뺏고 뺏기는 고지전에서 땅의 주인도 24차례나 바뀌었습니다. 이 현장을 눈앞에 두고 강응봉 지부장이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백마고지 이름의 유래도 전투와 관련이 깊습니다. 극심한 포격으로 나무가 모두 쓰러지고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백마가 누워 있는 것처럼 보여 백마고지라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사실, 전적지가 있는 곳이 백마고지는 아닙니다. 백마고지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어 지금도 일반인의 접근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대신 남한에서 가장 북쪽, 백마고지가 잘 보이면서도 일반 국민의 출입이 가능한 곳에 ‘DMZ 평화의길' 전적지를 조성했습니다. 이날 해설사는 강응봉 지부장(백마고지 영웅 故 강승우 중위 아들)이었습니다.
제22회 자유․민주․평화통일 염원 결의대회 및 추모제
- 철원 평화문화 광장의 엄숙한 울림
제22회 자유․민주․평화통일 염원 결의대회 및 추모제, 엄숙한 울림이 있는 이날 행사는 6․25 남침 전쟁 발발 74주년과 6․25 전쟁 정전협정 제71주년을 맞아 산화한 호국영령 추모제와 동시에 참된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염원하는 자유․민주․평화통일 염원 결의대회입니다. 이를 통해 국민에게 국가안보의 중요성과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을 널리 홍보하고 유족들에게는 위로와 평안을 기원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날 행사는 김영수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회장을 비롯하여 보훈부를 포함한 정부 고위 관계자, 지역 군 관계자, 지역 기관 단체장과 관계자, 유족회 전국 시․도지부장, 회원 등 많은 각계 인사들이 참여했습니다. 시종 엄숙한 분위기 속에 봉행 된 제1부 개회식 및 헌화․분향, 제2부 추모제에 이어 제3부는 자유․민주․평화통일 염원 결의대회 형식으로 2시간 넘게 진행됐습니다. 추모제의 성격을 알리는 독축, 제관인 초헌관(김영수 회장), 아헌관(양영석 강원지부장), 종헌관(강응봉 제주지부장)을 중심으로 제례를 마치고, 결의대회를 끝으로 폐식했습니다.
올해 행사는 안팎의 사정과 제7사단 신병교육대 공사로 인해 입소 후 병영체험 등 일부 프로그램 생략으로 지난해에 비해 축소됐습니다. 그렇지만, 올해도 연일 35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고령임에도 아무 탈 없이, 그리고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2024년도 휴전선 155마일 횡단’ 행사를 마친 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글 / 사진 : 오을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