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2014-05-16-235
2014년 교육사업의 향방을 論하다!
[Opinion Leader]
‘독서’로 ‘독해력’이
길러질 수 있을까?
공부의 힘, “독해력”
- 스터디포스 언어과학연구소 박기현 소장
‘초등학교 공부는 독서가 전부’라는 말이 있다. 성장기에 이루어져야 하는 독서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는 말임에 틀림없다. 교육기관이나 학부모 모두 독서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며, 실제로 현재 초·중학교에서는 가히 독서열풍이라 할 만큼 다양한 독서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과연 초등학교 때부터 책을 많이 읽은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반드시 높은가.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기만 할까?
“우리 아이는 어릴 때부터 책을 열심히 읽었는데 왜 성적이 자꾸 떨어지는지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담임교사가 학부모를 면담할 때 흔히 듣는 말이다. 독서 교육 덕택에 독해력이 향상되고 그 결과로 학업성취도가 오르는 학생도 있다. 그러나 이런 학생이 그리 많지는 않다. 열심히 많은 책을 읽어도 독서 수준이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는 학생들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사나 학부모들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독서 시간도 많고, 읽은 책의 가짓수도 많은데 왜 제대로 읽어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할까? 어떻게 해야 독서가 공부로 연결될 수 있을까?
여기에서 경쟁적인 독서 교육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읽어낸 책의 양에만 신경 쓰다 보니 책을 읽어도 글쓴이의 주장이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책의 요지만 슬쩍 훑어보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성균관대 조미아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한 주에 책을 5권 이상 읽는다고 응답한 어린이가 50.8%에 달할 정도로 요즘 초등학생의 독서량은 확실히 늘었으나, 많은 학생이 글의 표현이나 의미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글의 줄거리만 대강 기억하는 방식으로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논문에서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메신저의 영향으로 단문을 읽고 표현하는 순발력은 좋아졌지만 긴 문장을 읽는 호흡, 즉 지구력이 약해져 깊이 생각하기를 귀찮아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어려서부터 깊이 생각하는 독서 습관이 잡히지 않으면 나중에 수능 국어영역의 긴 지문을 읽어내는 것을 힘들어할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읽지만 읽어내지 못하는 아이들
중앙일간지에 초등학생들의 독해 능력을 평가한 기사가 실렸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독해 능력을 평가한 결과 “초등학생의 절반이 지문 내용 파악을 못한다”는 결과를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107명을 대상으로 4학년 수준의 신문 기사를 제시하고, 읽기와 쓰기 능력을 평가하였다. 그 결과 107명 중 지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52명, 문장을 제대로 쓰지 못한 학생은 58명, 문단 나누기를 하지 못하는 학생이 98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 학생들이 초등학교 4학년 전체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4학년을 초등학생 전체로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고 있는 초등학생들이 자기 학년 수준의 독해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절반에 가까운 학생이 700자 내외의 쉬운 지문의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결과에 대하여 신문 기사에서는 먼저 학교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현장의 교사들이 수업 시간에 소리 내어 교과서 읽기를 시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읽기를 시키면 워낙 많은 학생들이 제대로 읽지 못하고 더듬거려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 국어의 읽기 교과서에는 동시나 동화 외에도 정보를 찾거나 모으기 위한 글이나 생각과 의견을 나누고 주장하는 글이 실려 있으며, 수업 시간에는 동시 낭독부터 실용문 읽기까지 내용을 공부하기 전에 반드시 읽기를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초등학생의 독해 능력 부족의 문제가 소리 내어 읽기 연습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님은 분명하다. 문제는 읽기를 시키지 않아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읽기를 시키는데도 독해 능력이 향상되지 않는 데 있는 것이다.
읽기를 시키는데도 왜 독해 능력은 향상되지 않는 것일까?
초등학생이 겪고 있는 독해의 어려움이 중학생이 되었다고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모든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책 읽기에 곤란을 겪는 것은 아니다. 읽기 능력이 부족하여 더듬거리거나 읽었던 줄을 다시 읽는 학생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능숙하게 교과서를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읽기가 능숙한 중학생들이 뛰어난 독해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중학교 1학년 수업을 담당하는 국어 교사가 읽기 수업에서 느끼는 안타까움을 토로한 바 있다. 설명문이나 논설문과 같은 실용문 수업을 할 때 학생들에게 읽기를 시키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능숙하게 교과서를 읽는다. 그러나 교과서를 잘 읽는다고 해서 학생들이 내용을 깊이 이해하면서 글을 읽는 것은 아니다. 많은 학생들이 일정한 속도로 쉼 없이 글자를 읽어가지만 이해를 위해 의미 단위로 끊어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면 교과서의 내용을 이해하고 이해한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문자들을 음성으로 바꾸어 전달하는 읽기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읽기습관을 교정하려면 의미 단위로 내용을 이해하며 읽어나가는 연습이 필요하지만 학생들 간의 개인차가 크고, 교과서의 내용을 의미 단위로 끊어 읽는 훈련을 시키기에는 턱없이 시간이 부족하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이 느끼는 독해력 부족으로 인한 공부의 어려움은 초등학생이 느끼는 어려움보다 더 심각하다. 초등학교에 비해 교과 과정의 수준이 높아지는 데다 과목 수도 늘어나 학습량이 대폭 증가한다. 이 때문에 독해 능력의 부족은 일차적으로 학습량의 부족이라는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학습량의 부족은 또 다른 연계 학습의 이해에도 영향을 미쳐 결국 성적하락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독서가 반드시 독해력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현재의 어린이와 청소년은 인터넷과 TV, 게임과 휴대전화에 익숙해진 ‘활자이탈(活字離脫)세대’로 책에서 멀어지면서 독해력과 쓰기능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우려한다. 학생들의 독해력 부족의 원인이 독서량 때문이며 독서를 많이 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성세대의 기대는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교과부나 교육청에서도 일선학교의 독서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즉, 독해력이 부족한 것은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며, 책을 많이 읽으면 독해 능력이 향상된다는 논리이다.
그렇다면 책을 많이 읽으면 독해력이 반드시 향상될 수 있을까?
독서에 대한 관심 자체는 권장할 만한 것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보이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초·중학생들의 독서량은 2002년 11.6권에서 2011년 16.5권으로 대폭 늘어났지만 독서시간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고, 읽은 내용에 대한 이해정도도 낮아지고 있다는 결과가 일간지에 보도된 적이 있다. 즉 ‘독서는 많이 하고 있으나 제대로 된 독서를 하고 있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의 극단적 사례로 ‘로봇증후군현상’을 들 수 있다. 한 케이블 TV에서 방영된 ‘영재의 비법’에서는 ‘로봇증후군현상’을 보이는 한 아동을 소개하였는데 ‘로봇증후군’은 쉽게 말하면 책을 건성으로 읽는 것을 말한다. 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아동은 지능지수 128의 9살 아동으로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하루에 책을 열 권 넘게 읽는 독서광이지만 학교 성적은 매우 낮았다. 전문가의 진단에 따르면 아이는 책을 열심히 읽고 있지만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기계적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로봇증후군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1. 책을 읽을 때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멍하다.
2. 책장은 넘겼지만 바로 앞장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
3. 책을 읽었어도 내용에 대해 질문하면 대답을 잘 하지 못한다.
4. 읽기 어려운 곳이 있냐고 물으면 없다고 대답하지만 막상 내용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
‘로봇증후군현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독서량이 많다는 것이 꼭 좋은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조사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한 중앙일간지는 학교에서 ‘다독왕’에 선정된 학생들이 많은 양의 책들을 읽기는 하지만 읽었던 책의 요점을 물어보면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발표한 독서통계에서도 학생들의 독서량(읽은 책의 권수)이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독서시간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독서운동의 맹점을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로 2008년 제출된 OECD의 보고서를 들 수 있다. OECD의 보고서는 “한국 학생들은 암기력이나 응용력은 뛰어나지만, 주어진 과제의 목적이나 텍스트의 중심 요지를 파악하는 독해력은 부족하다”라고 지적한 바가 있다. 이것은 한국 학생들이 독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지만 읽기능력은 향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부모와 선생님의 강요에 의한 독서가 겉핥기식 독서로 이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강요에 의한 겉핥기식 독서는 지식을 암기하는 공부로 어느 정도 해결되는 초등학교 과정에서는 큰 문제를 보이지 않지만 중·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여 낭패를 보게 될 가능성이 많다. 지금의 초·중등 학생들이 하고 있는 독서는 내용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안목을 기르는 사고력 중심의 독서가 아니라, 단지 책을 읽고 그 줄거리를 기억하여 독서기록장에 기록하는 줄거리 중심의 독서이기 때문이다.
독해력은 책을 읽는 활동인 ‘독(讀)’과 이해하는 과정인 ‘해(解)’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생기는 힘이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깊이 이해하는 독서가 독해력 향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줄거리 중심의 독서로는 독해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독해력이 우수한 학생들은 독서를 통하여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면서 독해력을 더 키워나가는 데 반하여, 독해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독서를 하더라도 피상적 이해에 그치고 독해력 결함은 교정되지 못한 채 남아 있게 된다.
무조건 많이 읽게 한다고 상책은 아니다!
어떤 과목이든 학습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지시만 한다면 아무런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독서도 무조건 많이만 읽게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읽는 연습을 많이 하면 글을 잘 읽을 수 있지만 올바른 읽기 방법을 모르고 읽기만 강요하게 되면 자칫 독서에 흥미를 잃을 수 있다.
요즘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독서지도를 하는 경우는 많지만 단순히 권장도서를 읽게 하고 독후감을 쓰는 정도이며, 독해력을 향상시켜 더 깊은 독서를 하도록 하는 독해전략 지도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글을 잘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지 못한 상태에서 독서하게 하고 독후감을 쓰거나 문제를 풀어보게 하는 방식의 독서교육은 피해야 한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무작정 글을 읽게만 할 것이 아니라, 독해과정을 이해하고 아이들의 독해력을 향상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독해는 훈련을 받으면 향상되는 일종의 능력이다. 실험에 의하면 독해력 훈련을 받은 사람은 독해력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보다 책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높게 나타났다. 또한 학력이 높은 사람은 학력이 낮은 사람보다 일반적으로 높은 독해력을 가지고 있지만 훈련을 통해 이러한 차이를 줄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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