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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요. 당신은 아무 말 말고 나 하는 대로만 따라오면 돼. 이동미씨 앞길은 내가 보장하지.
동미: 실장님이 계시는 한 회사 짤리는 일은 없겠군요?
마실장,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며 동미 어깨에 손을 얹는다.
마실장: 오늘밤에 한잔 합시다. 이동미씨를 위해 특별히 세워둔 플랜도 있고.
동미: 그것도……. 원만한 파트너쉽을 위한 거겠죠?
동미, 마실장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서서
동미: (교태로운 미소) 저도 실장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액션 플랜이 있는데…….
동미, 마실장의 허리춤을 끌러 지퍼를 내린다. 바지를 잡고 내리려는데
마실장: (동미 손을 잡으며) 성격이 급하군.
동미, 배시시 웃으며 마실장 뒤로 돌아 그를 감싸듯이 안고는 천천히 넥타이를 푼다.
마실장: (문쪽을 힐끔대며) 잠깐. 여기는 좀 그러니까 내 방으로 가지.
동미, 순간 눈빛이 달라지며 느슨해진 마실장의 넥타이를 잡고 무작정 문쪽으로 걸어간다.
허걱 놀라는 마실장, 끌려가며 넥타이를 붙들랴 발목까지 내려온 바지춤 추스르랴 정신없다.
마실장: 이, 이거 왜 이래 이동미씨. 어쩔려구 그래!
동미: 아, 니 방 가자며!
동미, 회의실 문을 벌컥 연다.
사무실 직원들, 마실장이 동미에게 끌려나오자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 일어선다.
동미: 봤냐? 이게 바로 널 위한 스페셜 액션플랜이다, 이 씨봉새야!
동미, 넥타이를 쥐고 있던 손을 들어 바지춤을 올리고 있던 마실장의 얼굴을 밀어버린다.
나동그라지는 마실장, 일어나서 정신없이 옷매무새를 수습하는데 동미, 회의실에서 코트를 들고 나오다 엉거주춤 지퍼를 올리고 있는 마실장을 보며
동미: 가관이군. (마실장을 밀치며) 비켜!
다시 한번 나동그라지는 마실장.
유유히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동미. 너무 놀라 꼼짝도 못하고 서있는 직원들.
나난NA: 그것이 동미의 회사생활 마지막 액숀이었다고 한다.
씬31. 회사 앞
서류철을 가득 담은 상자를 들고 나오는 정준.
그 뒤를 동미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우아하게 걸어온다.
정준: 이번엔 좀 오래간다 했더니……. 이럴걸 자꾸 취직은 왜 하냐?
동미: 샤럽! (뒤돌아 배웅하는 여직원들에게 손을 흔든다.)
씬32. 본사 로비
긴장된 표정으로 로비를 걷는 나난, 혹시 아는 사람 만날까 두리번거리며 승강기 앞에 선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수헌, 나난을 보고 흠칫 반가움에 놀란다.
나란히 승강기 기다리는 두 사람.
수헌, 할말 있는 듯 나난 힐끔 보는데 그때 땡! 소리가 나며 승강기가 열린다.
사람들 무리 속에서 천부장이 나타난다. 순간 표정 굳는 나난.
천부장: 여어~ 이게 누구야? 나대리, 아니 나매니저님 아니신가?
나난: (억지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천부장: (나난 포옹하며) 반가워, 반가워!
나난, “네에. ” 하는데 얼굴은 인상 잔뜩 찡그리고 천부장 품을 벗어나려 꿈틀댄다.
천부장: (포옹 풀고) 와아, 예뻐졌네, 어휴! 다리도 균형이 팍! 잡혔구만……. 내가 자네 그리 보내놓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장사는 잘되지?
나난: 네…….
천부장: 근데 여긴 어쩐 일이야?
나난: (우물쭈물하면)
천부장: 아, 영수증 맞춰보러 왔구만? 내 매상 올려주러 한번 간다간다 하는데 워~낙 바빠서 말야, 언제 애들 델꼬 놀러갈게. 나중에 보자구! (나난의 엉덩이를 툭툭 치고 간다.)
모욕감에 입술 깨물고 선 나난, 천부장의 뒷모습을 째려보다 돌아서며 주먹을 불끈 쥐고 “개새끼” 중얼거린다.
승강기 안에선 아까부터 수헌이 오픈 버튼을 누른채 기다리고 있다.
나난이 굳은 표정으로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문이 닫힌다.
씬33. 엘리베이터
수헌, 10층을 누르더니 나난에게 묻는다.
수헌: 9층……. 이시죠……. ?
자신의 다리를 시무룩해 보고 있다가 찔끔하는 나난, 아무 말 없이 6층을 꾹 누른다.
무표정하게 나난을 빤히 보다 계기판 올려보는 수헌.
수헌: 한심하죠?
나난: ? (돌아보면)
수헌: (나난 보지도 않고) 이 엘리베이터요……. (중얼) 너무 느려…….
나난, 별 싱거운 놈 다 봤다는 표정을 짓는다.
갑자기 핸드폰 벨이 크게 울린다.
깜짝 놀라는 나난. 느릿느릿 전화받는 수헌.
수헌: 네, 박수헌입니다! 네네……. 네에……. 잠시만요…….
수헌, 한 손으로 양복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들더니 계속 주머니 뒤적뒤적한다.
나난, 자기 자켓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고, 꾸깃꾸깃한 맥주쿠폰이 나오자 수헌에게 내민다.
수헌, 고맙다는 눈짓하더니 통화하며 쿠폰을 벽에 대고 뒷면에 메모를 한다.
수헌: 네, 말씀하세요. 783에…….
그때 땡!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린다. 외식사업부가 있는 6층이다.
나난이 내린다. 수헌, 고개를 빼더니 나난이 내린 곳을 본다.
손에 쥔 쿠폰을 뒤집어보는 수헌.
씬34. 샐러드 바
음식을 쟁반에 올려놓으며 이동하는 나난과 동미.
동미: 그런 새끼들은 코뼈를 팍 뭉개서 구멍 두개만 뚫린 채 다니게 만들어야돼.
나난: 정말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 순수하게 미워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동미: 어딜 가나 그런 새끼는 하나씩 꼭 박혀있다니까!
나난: 난 이성이 너무 강한 게 탈이야.
동미: 잘 먹을께. 칭구야!
나난: ?
동미: (아주 당연하다는 얼굴로) 난 백수잖아.
<CUT TO>
테이블. 동미는 고기를 뜯고 있지만 나난은 포크로 샐러드를 먹고 있다.
나난: (흘기며) 다이어트 한다고 그렇게 설쳐대드만…….
동미: 너 알랑가 모르겠다. 백수는 말야, 언제 굶을지 모르기 때문에 기회가 되는 대로 먹어둬야 돼. 이건 다이어트하곤 다른 개념이야. 바로 생존이쥐.
그때 누가 “아가씨!” 하고 웨이트레스를 부른다.
나난: (자기도 모르게 돌아보며) 네! (하다가 허걱 놀란다.)
동미와 주위 사람들, 이상한 눈으로 보고…….
동미: 나 참……. 꼴값을 해요…….
나난: 에이, 빨리 집어쳐야지. 참! 태욱 선배, 말일에 결혼한대!
동미: 지훈이 소개시켜줬다는 선배? 근데?
나난: 그럼 거기에 누가 오겠냐?
동미: (생각하다.) 지훈이?
나난: (고개를 끄덕인다.) 나, 가야돼, 말아야돼?
동미: (잠시 생각하다 허둥지둥 나난의 접시 뺏으며) 야, 먹지마 먹지마! 이것도 살쪄! 이제부터 물도 먹지마! 그리구 당장 맛사지 받으러 가자! 응?
나난: 얘가 왜 이래? (접시 뺏어서 우적우적 먹고)
동미: (다시 뺏으며) 폼나게 하고 가서 너 찬 거 후회하게 만들어버려! (난의 얼굴 들여다보며) 어머, 큰일이다. 왜 이렇게 망가졌냐. (난의 팔뚝 만져보며) 허걱, 이두박근 좀 봐, 완전 마당쇠 팔뚝이네! 힉, 기미도 꼈잖아. 안되겠다 먹어먹어! 비타민이 부족해!
동미, 나난의 입에 푸성귀 쑤셔 넣고 나난, 읍읍! 거리고 있는데 그때 입구에 정준이 모습을 보인다.
동미가 정준을 발견하고 손을 드는데, 정준의 뒤로 지혜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난: 쟤가 지혜니?
동미: 그런가본데…….
그들 앞에 다가온 정준.
정준: 벌써들 시작한 거야? 인사해라. 여기는 내가 말한 김지혜.
지혜: (방긋 웃으며) 안녕하세요.
나난이 어서 오라고 인사를 하고 동미는 앉은 채 고개만 까딱해 보인다.
자리에 앉더니 지혜가 정준의 팔짱을 낀다.
나난, 동미, 눈 똥그래져서 눈길 마주친다.
지혜: 언니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사진보다 더 예쁘시네요. 두분 다…….
나난/ 동미: (흐뭇한 미소)
지혜: 정준씨가 자랑을 어찌나 하든지, 꼭 뵙고 싶었어요. 세분, 불알 칭구라면서요?
벙찌는 나난, 동미. 풋, 웃음을 참는 정준.
동미, 핸드백에서 담배를 찾아 꺼내는데
지혜: (핸드백 보며) 와, 진짜 같다!
동미: (찔끔하나 정색하곤) 이거 진짜예요.
지혜: 그러게요, 저도 진짠 줄 알았어요.
동미: (마음 상한)
정준: 넌 그런거 어떻게 아니?
지혜: 지퍼 날이 너무 촘촘해. 참, 그 마크 떨어질걸요?
나난, 동미의 핸드백 살펴보는데, 마크를 잡아당기자 뚝 떨어진다.
미안해야할 나난, 되려 동미 노려보며
나난: 나까지 속여?
동미, 입은 앙 다문채 콧구멍으로 담배연기를 거칠게 내뿜는다.
씬35. 지하철 복도
주기적으로 전멸하는 광고판 속에 해맑게 웃는 숏컷 헤어의 젊은 여자 모델.
광고판 불꺼지면 그 안에 나난과 동미의 얼굴이 비친다.
광고판의 모델을 바라보고 서있던 나난과 동미, 한숨을 내쉬며 터덜터덜 걸어간다.
동미: 지혠가 걔, 어떻디?
나난: 뭐, 이쁘긴 하더라.
동미: (삐죽) 나이가 이쁜 거지…….
나난: 준이 자식 표정 봤냐? 헤벌레 해갖군…….
동미: 븅신…….
나난: 이번엔 안차일라나…….
큭큭 웃는 두 사람. 가다가 우뚝 서서 나난을 돌아보는 동미.
동미: 야, 걔하고 나하고 같이 있으면 정말 내가 언니처럼 보이냐? 나 정도면 남들이 보기에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나난: (노려보며) 나는? 나는 아예 늙어 보인다 이거야?
동미: 솔직히, 넌 옛날부터 좀 노숙하다는 소릴 들었잖냐.
나난: 그래서, 난 삼십대로 보인다 이거야?
동미: 오늘따라 니 상태가 좀 그랬잖니…….
나난: 내가 보기엔 둘 다 이십대로 보였어. 하나는 스물 둘로 보이고, 또 하나는 스물 아홉으로 보였어. 됐냐?
얼굴이 일그러지는 동미, 나난을 노려보더니, “망할 년!”하고는 휘휘 앞장서 걸어가 버린다.
나난, 피식 한번 웃고는 뒤따라가 옆에 붙어 뭐라고 얘기해도 대꾸 안하는 동미.
나난, 동미의 팔짱을 끼고 애교를 떨고, 투닥거리다 팔짱끼고 가는 두 사람.
“자식, 빈말이래도 같이 타고 가자고 할 줄 알았더니.”
“그러게……. 그래서 아들자식 키워봐야 하나 소용없대잖냐.” “에휴~”
씬36. 하이락 클럽
-테이블
구석진 탁자에 앉아 있는 꼬마손님. 혼자 왔는지 뚱하니 앉아 있다.
메뉴를 내려놓으며 우물쭈물 주문을 받아야 하는지 망설이는 나난.
나난, 어색하지만 배운데로 정중하게 인사하는
나난: (미소) 주문……. 하시……. 겠습니까?
상호: (뚱하니 보기만)
나난: (쪼끄만게 꼴에 손님이라구……. ) 주문 하시……. 겠니?
굳은 얼굴로 다가오는 점장.
점장: (엄한) 다신 오지 말라 그랬지!
꼬마, 침울해지고 나난, 점장과 꼬마를 번갈아보며 갸우뚱한다.
점장: (밉지 않게 흘기는) 이번 한번만이다. 이거 먹구 가서 숙제해.
치킨 몇 조각을 테이블에 내려놓는 점장.
-홀-
북적이는 저녁시간. 입구에서 “어서 오십시오!” 맞는 헬퍼들.
혼자서 머뭇거리며 들어서던 수헌, 데스크에 선 나난에게 말을 건다.
수헌: 저……. 아시죠?
나난: 네?
수헌: (쿠폰 흔들어 보이자)
나난: (의례적 미소) 네……. 몇분이시죠?
헬퍼가 “이쪽으로 오세요!” 안내하자 뚱한 표정으로 따라가는 수헌.
-테이블-
수헌의 테이블에 나난이 다가온다.
나난: 부르셨습니까?
수헌: (맥주잔 가리키며) 맥주맛이……. 느낌이 좀…….
나난: 네? 그럴 리가…….
나난, 수헌의 잔을 빼앗아 입을 대고 맛을 본다.
괜찮은데…….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난. 한번 더 맛을 본다.
나난 뒤로, 경악하는 점장과 서버들 모습 보인다.
수헌: 어때요?
나난, 갸웃거리다 다시 맥주를 마신다. 고개까지 젖히며 꿀꺽 꿀꺽 거의 반쯤 마신다.
이를 본 점장, 이마를 짚으며 비틀거리자, 재호가 얼른 부축한다.
수헌: 정말 아무 느낌 없어요?
나난: (뭐지?)
수헌: (술잔을 받아) 이상하다……. 분명히 여기로 내가 마셨는데……. (나난이 마신 자리로 홀짝대며 마신다.)
당황한 나난, 굳은 얼굴로 수헌을 노려보면 수헌, 재밌다는 듯 낄낄 웃는다.
나난: (화난 듯 외친다.) 손님! 왜 이러……. (트림) 꺼어억~
얼굴 붉히며 황급히 입을 가리는 나난.
나난E: 생각났다! 이 남자…….
빙그레 웃는 수헌.
나난E: 저 느끼한 웃음! “9층이시죠” 그 놈! 여긴 왜 왔지? 혹시……. 날?
-입구 옆
나난을 힐끗 본 후 그냥 나가버리는 수헌.
의심쩍은 눈초리로 수헌을 보는 나난.
나난E: (실망) 아닌가보다……. 우연이었나보다…….
씬37. 하이락 클럽 (다른 날)
입구에서 손님맞으며 “어서 오십시오” 90도로 허리 숙이던 나난, 눈이 똥그래진다.
현관문이 열리더니 왁자지껄하며 수십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무리를 이끌고 가장 앞장서서 들어오는 “어서 오십…….” 하다가 어안이 벙벙해진다.
수헌이 또 수십명의 사람들을 몰고 들어온다.
나난 옆을 지나가면서 한마디하는 수헌.
수헌: 오늘은 고등학교 동창횝니다.
그때 수헌의 핸드폰 울린다. 수헌, 핸드폰 받더니
수헌: (심각하게) 뭐? 두꺼비도 온다구? (핸드폰 닫고) 얘들아, 이쪽이다!
동창들을 우르르 몰고 가는 수헌.
나난E: 고수가 분명하다. 꼴에 눈은 높아가지구…….
씬39. 하이락 클럽 (다른 날)
데스크에 선 점장, 나난을 쿡 찌른다. “왔다!”
입구보는 나난, 기가 막힌 표정이 된다.
수헌이 또 수십명의 사람들을 몰고 들어온다.
반갑게 수헌을 맞는 점장.
여전히 무표정한 수헌, 나난과 점장에게 “안녕하십니까?” 인사한다.
나난: (다 알고 있다는 듯 여유있는 미소) 오늘은 중학교 동창회신가요?
수헌: (정색하고) 아닌데요. 유치원 동창횐데요.
나난: (어이없어 그만 웃고 만다.) 동창회를 참 자주 하시네요…….
수헌: 아, 제가 말씀 안드렸던가요? 유치원 때부터 쭈욱 동창회장을 했거든요. (두꺼비에게) 가자, 두껍아!
두꺼비, 가면서 나난에게 싱긋 웃어보이고 수헌 따라간다. 할말 잃는 나난.
동창들과 우르르 가는 수헌의 뒷모습을 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 설레설레 웃어버리는 나난, 현관쪽으로 돌아서다 기겁을 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일행은 다름아닌 자신의 전(前) 부서의 동료들과 천부장이다.
이영숙이 “언니!” 소리치며 반가워한다.
<천부장 등의 테이블>
천부장: (김지현 보며) 그렇게만 하면 되는거야. 코쟁이들이라고 기죽고 들어가면 그 순간 협상 쫑인거지. 이번같이만 하라구.(하는데)
나난, 맥주잔 네 개를 들고 다가온다. “흠흠”하는 천부장. 탁자위에 맥주잔을 내려놓는 나난.
어쩔줄 몰라 맥주잔을 일어나서 받는 김지현, 이영숙등의 행동이 나난을 더욱 불편하게 한다.
천부장: 이야, 유니폼 봐.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리지? 모델해도 되겠어. 잘 할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네. 하긴 워낙 튼튼하니까.
나난: (천부장앞에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톡 쏘는) 튼튼해서 죄송하네요.
천부장: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있어. 현장 체질일줄 알아봤대니까. 정말 딱이네, 딱이야. 그지? 그지? 이영숙씨?
이영숙은 뭐라 대답하기가 뭐해 우물쭈물한다.
나난, “그럼, 즐거운 시간 되세요”하고 돌아서려는데
천부장: 어, 그럼 수고해. (나난의 엉덩이를 툭툭 친다.)
순간, 표정굳은 나난이 주먹을 불끈 쥐고 “개새……. ”하며 홱 돌아서는 순간, “개새끼!”하는 남자의 나지막한 외침과 함께 퍽! 하며 턱 깨지는 소리가 난다.
아이쿠! 비명 속에서 그대로 낙하하는 천부장의 몸뚱아리.
그걸 보고 놀라는 의류부의 동료들.
쿵! 하고 떨어지는 천부장의 몸뚱아리.
주먹을 움켜쥔 채 놀란 표정으로 천부장을 내려다보는 나난, 고개 들면 수헌이 주먹을 털며 무표정하게 서있다.
“뭐야, 뭐야?” 하며 달려오는 두꺼비와 친구들.
씬40. 경찰서 (밤)
-유치장
수헌, 유치장에 갇혀있다. 멀뚱하다.
-경찰서 조사계
일각에서 타이프 치는 경찰 앞에 앉은 나난, 천부장이 조서를 꾸미고 있다.
천부장, 한쪽 콧구멍에 휴지 틀어막고 있다.
천부장: (펄펄뛴다.) 조서는 무슨 조서야! 저런 자식은 삼년은 콩밥을 먹여야 돼!
경찰: (짜증) 진정하시고……. 차근차근 말씀해 보세요. 그러니까…….
천부장: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그냥 말하고 있는데 쳤다니까! (나난보고) 그지, 그지? 아, 말도 못해! 자유주의 대한민국에서 말도 못하냐고! 내가 말이야, 법 없어도 사는 사람이야! (나난보고) 그지, 그지?
경찰: (말 자르며) 이 분 엉덩이를 만졌다면서요!
천부장: (찔끔해서 더 큰소리) 아구, 나 참나, 기가 막혀서……. 아니, 고생하는 게 안됐어서 오빠 같은 맘으루다가, 격려 좀 해줬기로서니, 그게 뭐? 저 자식이 얘 기둥서방이라도 되나…….
벌떡 일어서는 나난, 미처 앞자리의 경찰이 말릴사이도 없이 “개새끼!” 외치며 천부장에게 어퍼컷을 날린다.
우당탕 뒤로 넘어가는 천부장. 벙찐 경찰.
-유치장
수헌과 똑같은 포즈로 유치장에 갇혀 있는 나난.
-경찰서 조사계
천부장: (양쪽 코를 휴지로 막고 울먹) 봤자나……. 나는 사실대로 말한 죄 밖에 없어. 말만 했는데……. 그지, 그지?
경찰: (짜증스런 표정으로 쳐다본다.)
-유치장
게걸스럽게 설렁탕 먹는 수헌.
반대편에서 힘없이 앉은 나난, 설렁탕 먹는 둥 마는 둥 깨작거리고 있다.
철창 앞에서 털털한 목소리로 수헌을 위로하는 두꺼비
두꺼비: 야, 닭똥집, 걱정마라. 다 연락해놨다.
수헌: ?
두꺼비: 거 왜, 양조장집 꼴통, 남부지원에 있잖냐. (나난에게) 많이 드세요. 먹어야 투쟁하죠. (주먹 불끈하며) 투쟁~ 투쟁~
나난, 어이없다.
두꺼비, 핸드폰 울리자 여보세요? 하며 저쪽으로 간다.
수헌: 저기요!
나난: (돌아보면)
수헌: 거기 깍두기 좀 남아요?
나난, 철장 사이로 깍두기 밀어주고 계속 먹는다.
수헌: 저기요…….
나난: (또 뭐냐는 듯 보면)
수헌: 나중에 밥 한번 먹읍시다. 오늘은 일이 좀……. 꼬여설라무네…….
기가 막혀 하는 나난
나난: 뭐. (우물쭈물) 그러게 누가 남의 일에 간섭하래요?
수헌: 그게 어떻게 남의 일입니까?
나난: (잉?)…….
수헌: 그래서 밥 살거예요, 안 살거예요?
나난: 뭐, 이렇게 된거 미안하긴 한데요…….
수헌: (말 자르며) 그쪽이 안사면 내가 삽니다!
한동안 서로를 쳐다보는 두 사람.
경찰off: 나난씨, 나오세요.
유치장 문이 열리고, 점장이 기다리고 있다.
나난, 나오는 뒤로 홀로 남겨진 수헌.
수헌: 저……. 저 이봐요! 혼자만 가깁니까?
나난: (획 돌아보고, 꾸벅 인사하며) 그럼, 즐거운 시간 되세요.
뒤의 수헌을 의식하며 걸어나오는 나난.
나난E: 오랜만에 자존심이 살아났다. 나난, 아직 먹어준다, 아자 아자 아자!
씬41. 경찰서 앞 (밤)
그때 불쑥 두부를 내미는 점장.
점장: (진지) 먹어!
나난: (뚱하게 보면)
점장: 먹어. 꼭 먹어줘야 된대.
나난, 앞을 보고 눈이 똥그래진다.
두꺼비와 수헌의 친구들이 스크럼을 짜듯 비장한 표정으로 일렬로 서있다.
점장: 데모하나?
선두에 선 두꺼비, 주먹을 쥐고 팔을 옆구리에 착 붙이더니 팔을 귀엽게 들썩들썩하며 바리톤으로 노래하기 시작한다.
두꺼비: 한번 만나줘요~
친구들: (들썩들썩 모션) 울라 울랄라~
두꺼비: 제발 부탁예요~
친구들: (모션) 울라 울랄라~
점장, 웃음보가 터진듯 까르르, 주책없이 웃어댄다.
나난, 쪽팔려서 점장을 재촉하며 종종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간다.
두꺼비와 친구들, 나난을 좇아 뒤돌아 계속 노래한다. “한번 만나줘요, 울라 울랄라~”
점장: (덩달아 따라한다.) 한번 만나줘라, 울라 울랄라
멀어지는 나난의 뒷모습 보며 씨익 웃는 두꺼비, 뒤에서 노래하던 안경 쓴 꼴통을 향해
두꺼비: 야, 꼴통! 이제 닭똥집 빼줘라!
씬42. 분식집
정준, 지혜 따라 라면 시킨다. 갑자기 뾰롱통해지는 지혜.
지혜: 왜 라면 시켜?
정준: ……. 딴거 시킬까? 김밥? 뭐 먹고 싶은거 있어?
지혜: 난 라면. 뭐 먹고 싶어?
정준: 뭐. 아무거나…….
지혜: 뭐 먹고 싶어!
정준: (눈치보며) 라……. 면…….
지혜: (버럭) 뭐 먹고 싶어!!!
정준: (움찔) 설렁탕.
지혜: 그러게 싫으면서 왜 따라들어와. 제발 한번이라도 싫다고 좀 해봐. (일어나며) 나가자!
정준 끌고 나가버리는 지혜.
아줌마, “이봐요!” 부르다 벙찌게 보는…….
씬43. 설렁탕집
정준, 우적우적 설렁탕 먹고 있다. 지혜, 보다가
지혜: 내가 젤 짜증날 때가 언젠지 알아?
정준: …….
지혜: (말 자르며) 그 사람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 느껴질 때……. 정준씨……. 참 좋은 사람이야…….
정준: …….
씬44. 용산 전자상가
모니터에 화려하게 펼쳐지는 3D.
복잡한 통로 한 귀퉁이의 용산 전자상가 매장 안이다.
동미: (화면에 거의 코를 가져다대고) 으와~~ 죽이는데?
모니터에서 동미의 이마를 밀어내는 선호. 이전 동미의 회사 직원 중 하나다.
선호: 소위 IT업계의 첨단을 걷는다면서 책상머리에만 붙어 있었으니 이런 것도 모르죠…….
그때 조심조심 커피 세 잔을 들고 오는 용팔.
용팔이: 언니, 커피 드시와용~
테이블에 앉는 선호와 동미. 동미, 용팔에게 “땡큐!”하며 찡긋 웃어보인다.
동미: (커피 홀짝이며) 월급쟁이 때려치고 용팔이 하니까 살만하냐?
용팔: 듣는 용팔이 기분 나쁘네. 어디 월급쟁이랑 비교해요. 이래뵈도 사장인데? 안그냐 사장아?
선호: 그러게. 잘나가던 웹디자이너가 실업자 되니까 살만 해요?
동미: 아쭈~ 그건 그렇고……. 사장아, 저런 건 얼마하냐?
선호, 용팔이 서로 마주 보고 경계의 눈초리를 나눈다.
씬45. 동미방
쿵하고 놓이는 커다란 박스. 박스가 바닥에 놓이면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의 선호.
선호: 내가 무슨 짐꾼인줄 알아요?
보면, 선호 뒤의 동미, 조그마한 전자상가 쇼핑백을 들고 서 있다.
동미: 짜식이……. 그럼, 우아한 내가 들고 오리? (침대에 걸터 앉는다.)
선호: (따라서 방바닥에 철푸턱 앉으며) 쳇, 결재나 빨리 해줘요.
동미: 얌마, 이백만원이 문제냐? 내가 창업하면 이천만원으로 돌려준다.
선호: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내 능숙하게 박스 열며) 창업하긴 진짜 할려나 부네.
동미: 내가 헛소리하는 거 본적있냐? 나의 탁월한 소프트웨어에 너의 하드웨어가 합쳐지면 환상의 커플이다. 결정했다. 너 우리회사 개발상무해라.
선호: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 묵묵히 박스만 개봉한다.)
동미: (선호보고) 짜식이……. 결재해준다니깐……. 사내새끼가 쫀쫀하긴…….
선호: 이선배, 정말 창업할 거면 그땐 나도 끼워줘요.
동미: ?
선호: (어깨를 으슥해보이며 씩 웃고) 폼 나잖아. 선배랑 일하면…….
동미: (키킥 웃으며) 짜식이 눈은 있어 가지고……. 일루 와봐. 뽀뽀 한번 해줄께.
선호: (놀라 뒤로 몸을 빼면서) 왜 그러셔요? (방바닥에다 손가락으로 선을 긋고) 이 선 넘어오면 저도 책임 못져요!
동미: 그래? 그럼 난 더 좋고.
동미가 선호를 잡아서 정말 뽀뽀 할려고 하자, 기겁을 하는 선호 도망친다.
쫓아가는 동미. 도망가는 선호, 사정을 한다. "선배, 정말 이러지 말아요, 네?"
그 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준, 안색이 별로 좋지 않다.
정준, 장난치고 있는 동미와 선호를 한심하게 본다.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는 선호. 그제야 정준을 보는 동미.
동미: 야, 왔으면 왔다고 기척을 해야할 거 아냐.
정준: (동미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동미: 오늘 데이트 있다고 하지 않았어? 늦는 줄 알았는데…….
정준은 경멸의 표정으로 동미를 노려보고 그냥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동미, ‘재 왜 저래? 하는 표정. 선호, 뻘쭘하다.
씬46. 예식장 건물 앞.
분주한 예식장 앞.
한껏 맵시를 낸 나난, 웅장한 예식장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다.
나난NA: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비록 그노무 술 때문에 다이어트는 어이없이 실패했지만, 내 미모는 아직 먹어준다 이거야! 기다려라, 이지훈!
씩씩하게 들어가는 나난.
씬47. 예식장 로비
신랑과 얘기나누면서도 힐끔힐끔 주위를 살피고, 티 안나게 슬쩍 머리를 넘기고 옷매무새를 자꾸 매만지는 나난,
신랑에게 인사 건네는 새로온 하객들에 밀려 물러난다.
나난을 아는척하는 선배와 반갑게 인사하다, 순간 굳는 나난.
저만치 하객들 사이에 지훈이 얼어붙은 듯 나난을 보고 있다.
<점프>
동창들과 얘기하는 나난, 최대한 담담한 척 표정관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괜히 오호호~ 크게 웃는 나난의 뒤로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억지로 나난을 외면하고 있는 듯한 지훈이 보인다.
나난NA: 그가 보고 있다……. 날 보고 있다…….
나난: (동창들에게) 잠깐만…….
나난, 돌아서자 지훈, 얼른 고개 돌리더니 사람들과 얘기하는 척 한다.
나난, 지훈을 향해 자신감 넘치는 포즈로 또각또각 걸어가기 시작한다. (슬로우 모션)
나난NA: 봐라, 너 없어도 난 잘살고 있다!
최대한 자신감 넘치게, 도도하게! 나난, 화이튕!
나난이 지훈 앞에 선다.
만면에 함박웃음을 지은 나난, 척 손을 내밀면서 한다는 말이
나난: 어서 오세요?
말을 내뱉자마자 “힉!” 놀라는 나난 머리 위로 육중하게 찍히는 자막.
자막: 개. 망. 신.
지훈, 조금 당황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나난과 악수하며
지훈: 오랜만이야……. 잘 지냈니?
지훈과 마주보며 흐음~ 미소짓는 나난, 머리 속으론 무슨 말을 할지 우왕좌왕이다.
자막: 대답해! 어서!
어색한 짧은 침묵.
나난: 나 외식사업부로 옮겼어……. 얘기……. 들었니?
지훈: 응. 매니저……. 라구?
나난: 응…….
지훈: 일은……. 재밌어?
나난: 어, 재밌어.
또 할 말이 없다. 나난, 대화가 끊기려고 하자 서둘러 말을 내뱉는다는 것이
나난: 쿠폰 줄까?
핸드백에서 쿠폰을 찾는 나난, 속으로 울상이다.
자막: 이건 또 뭬야?
이미 지훈에게 쿠폰을 내밀고 있는 나난.
나난: (웃으며) 가끔 놀러와. 매상 좀 올려주라.
나난NA: 오우~ 마이~ 가-아-ㅅ~~
씬48. 동미 정준네 거실
정준, 고무장갑 끼고 큰 고무다라이에 김치 버무리고 있다.
정준, 손 척 내밀며 “소금!” 하면, 동미, 정준 손에 소금봉지 들이부으며 아무리 생각해도 못 참겠는 듯 자지러지게 웃어대자, 정준, “그만 그만! 그만 붜!” 외친다.
나난, 옆에 퍼질러 앉아 속상한지 맥주 벌컥벌컥 마신다.
동미: 아유 아부지……. 아구 배야…….
나난: 아! 씨바, 정말 그지같어. (하더니 한손으로 맥주캔을 콱 우그러뜨린다.)
정준: (손내밀며) 고춧가루! 동미 너땜에 난이까지 다 버렸다…….
동미: (고춧가루 부으며) 뭐가?
정준: 쟤 봐라, 방금 칠공주파 보스 같았어!
동미: (불끈해서 침 튀어가며) 어떻게 그게 나 때문이야?
나난: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든다. 나도 원래는 요조숙녀였어. 벌레 한 마리만 봐도 어머머~ 자지러지는 니 여자친구하고 똑같았단 말이야. 알어?
그런데 정준은 지혜의 이야기가 나오자 어두운 얼굴을 하고 묵묵히 김치만 버무린다.
동미: (정준 눈치보며) 얘가 잘나가다 걔 얘기는 왜 꺼내냐?
나난: 왜에? 뭐가 잘 안돼?
동미: 낸들 아니.
나난: 야, 임정준! 연애전선이라는 게 다 그런 거다. (김치 집어먹더니) 아, 맛있다!
동미, “그래?” 하더니 저도 김치 하나 집어 맛있게 먹는데 정준, 인상을 찌푸리며 갑자기 "에잇", 하더니 손에 힘을 주어 김치를 버무린다.
동미: 야야, 너 빨래하니? 김치 다 물러져!
정준: (생각하다.) 니들도 그러냐?
나난: 뭐가?
정준: 여자들은 다 그래?
동미: 뜬금없이 뭔 소리야?
정준: 됐다…….
동미: (어이없다.) 뭐야…….
<앞 43 설렁탕 씬의 인터컷>
C#. 지혜: 결혼하자고 쫓아다니는 남자 있다? 집안도 빵빵하고 능력도 있고, 키도 크다? 나도 그 사람 싫지 않다? 어떻게 할까? 1번 정준씨가 패준다, 2번 둘 다 만난다, 3번 내가 사라진다.
동미, 절구통에 마늘 빻다가 절구공이 팡 내려치며, 동미 4번! 년놈을 작살낸다!
나난: (사래걸려 켁켁거리다.) 그럼, 걔가 지금껏 양다리를 걸쳤단 말야?
정준: (김치 버무리며) 양다리까지는 아니구…….
C#. 지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그리구……. 나 아직 어려.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보고 싶어.
동미: 그게 뭔 말이래?
정준: 나하곤 결혼 생각 한 적 없대. 하긴……. 니들 같으면 나같은 놈하고 결혼하겠냐?
동미, 나난, 금방 대답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정준, 비참한 듯 한숨쉰다.
나난: 뭐, 너야 100점짜리쥐. 착하지……. 사람좋지……. 성격좋지 에……. 또. (마땅히 생각이 안나자 미안한 듯) 돈이야 뭐……. 돈이야……. (얼버무린다.)
정준: (어두워지며) 주식이라도 해볼까?
동미: (기가 막혀) 차라리 복권을 긁어라, 짜샤!
나난: 그래서, 헤어지재?
C#. 지혜: 왜 꼭 결혼 아니면 헤어져야 하는 거지?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잖아. 정준씨의 그 언니들처럼……. 나도 그러고 싶어.
나난: 넌 걔 친구로 대할 수 있어?
정준: 아니.
나난: 그래서, 뭐라고 했어?
정준: 그러자고 했어.
동미: 저런 븅신!
정준: 날 만나는 동안은 진짜루 최고로 행복하게 해줄 거야. 그래서 죽을 때까지 날 못 잊게 만들거야.
나난: 아주 소설을 써라, 써!
동미: 야! 걔가 왜 그런줄 알아? 그 쪽 새끼는 밥이고, 넌 라면이거덩! 맨날 밥만 먹고 살기는 지겨우니까, 가끔 라면이 먹고 싶은 거야!
정준: (뚱해선 김치 버무리며)……. 지혜는 라면을 더 좋아해.
벙쪄서 보다가 기가 막혀 허, 웃어버리는 나난과 동미.
나난: 야, 걔가 마음 바꿔서 돌아올거 같애?
정준: …….
동미: (혀차며) 저 자식 저거, 벌써 신혼집 커튼 색깔 고민하고 있을 거다. 야, 지금 그 기지배가 원하는 건 추억거리야. 시집은 좋은데로 골라가고, 넌 싹 털고 가긴 아쉬우니까 심심풀이로 붙여두겠다는거 아냐. 너 옛날에 그 짓 잘했잖아. 씹던 껌 책상 밑에 붙여놓고, 생각나면 씹다가 또 붙여놓고……. 결국 단물 빠지면 끝이. 끝! 근데 뭐? 죽을때까지 못잊게 해줘? 껌딱지 못잊는 인간 봤냐, 이 븅신아?
동미의 말에 모욕감으로 얼굴이 벌개지는 정준.
동미: 언제 철들래? 서른 다 되서 그딴 년한테 호구나 잡히고…….
화난 표정의 정준, 고무장갑 낀채 벌떡 일어난다.
나난,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둘 사이에서 눈치만 본다.
정준: 이동미,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마.
동미: 야, 그 기지밴 지금 장사하고 있는 거야. 시퍼런 몸뚱아리로 평생 잘먹고 잘살려고!
정준: 함부로 말하지 말랬지! 니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냐?
잠깐 멈칫하는 동미. 정준의 질문 속에 담긴 가시를 알아차린다.
동미, 아무 말 없이 마늘을 맨손으로 다라이의 김치에 넣고 버무리기 시작한다.
동미: 너한텐 우습게 들리겠지만 적어도 난 거래 같은 건 안해. 맘맞은 인간하고만 까놓고 즐기고 까놓고 사랑한다!
정준: (빈정거리듯이) 그렇구나. 그런게 사랑이구나. 미안하지만 니 입에서 사랑얘기가 나오니깐 왜 이렇게 웃기게 들리지?
그 말에 모욕감을 느끼는 동미,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정준의 빰을 한 대 갈기고 만다.
철썩! 소리와 함께 돌아가는 정준의 얼굴에 고춧가루 때문에 빨갛게 손자국이 난다.
“나쁜 자식!” 파르르 떨며 한마디 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동미. 쾅! 문이 닫힌다.
어쩔 줄 모르는 나난, 중간에 서서 양쪽을 번갈아 보며 소리친다.
나난: 이동미, 너 얼렁 안나와? 임정준, 너도 사과해! (짐짓 화난 척) 김치 담그다 무슨 짓이야, 친구들끼리! 나 정말 화났어!
정준, 고무장갑을 벗어 던지고 거칠게 방으로 들어가더니 쾅! 문을 닫아버린다.
나난: (망연자실) 김치 갖고 가야되는데…….
씬49. 청담동 패션샵 거리 (밤)
김치통을 껴안고 걸어가던 나난, 문득 걸음을 멈춘다.
어느 패션샵 앞에 설치된 멀티비젼을 바라본다.
올해의 프레타 포르테 패션쇼가 방영되고 있다.
나난NA: 원래 나는 저기에 있어야 했다. 내년도 패션경향을 취재하고 내년상품을 기획하고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씬50. 하이락 클럽 (낮)
<홀>
난처한 얼굴을 하고 점장 뒤에 서 있는 나난.
점장 앞의 테이블에는 부티나는 복장의 이십대 초반 여자 둘이 울그락불그락 열을 낸다.
여자1: 도대체 이걸 서비스라고 하는 거예요?
점장: 죄송합니다. 오더 처리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여자2: 늦게 나온건 그렇다 치고 전 쉬림프를 주문했는데 이 폭립은 뭐죠?
나난: 저기, 그건…….
점장: (나난을 가로막으며) 자긴 가봐……. (손님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무언가 말을 더 하려던 나난, 물러선다.
<주방>
열이 바짝 오른 주방장, 식칼 들고 길길이 날뛰고 있다.
주방장: 서빙을 어떻게 하는거야? 응? 바쁘다구 순서도 없이 오더 쉿을 툭툭 던져놓고 가버리면 주방에선 뭘 기준으로 음식을 내라구?
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은혜와 재호등 서버들.
슬그머니 주방으로 들어오는 나난.
주방장, 나난을 힐끗 보곤 칼든 채 삿대질하며 나난 들으라는 듯, 서버들만 조지는…….
주방장: 이런 것까지 일일이 설명해야되냐? 도대체가 기준을 잡는 사람이 있어야지, 벅적거리면서 뛰어만 다니면 다 일이 되는 거야?
면목 없는 나난의 얼굴에서…….
E: 쨍그랑 접시깨지는 소리
<CUT TO>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작이 나는 스테이크 접시.
나난, 눈을 흡뜨고 경직된 표정으로 중년남을 본다.
중년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나난의 얼굴에 만원짜리 세 장을 휙 던진다.
나난의 얼굴에 맞고 바닥에 떨어지는 지폐…….
중년남: (나난에게) 너나 처먹어. 기집년이……. 재수없게 어딜 꼬나봐…….
나난을 째려보고 그대로 나가버리는 중년남.
나난, 바닥에 떨어진 지폐를 내려보고 있다가, 천천히 허리를 숙여 돈을 줍는다.
나난, 주변 손님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나난: 죄송합니다.
손님들, 다시 자기들만의 화제로 빠져든다.
나난: (이미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객장을 향해)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씬51. 하이락 클럽 건물 옥상 (낮)
나난, 옥상문을 열고 터덜터덜 걸어와 담에 기대어 선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혀서 눈물이 절로 난다.
나난, 하늘을 한껏 째려보며 눈물 삼키려 하지만 줄줄 흐른다.
점장이 슬그머니 올라와 보다가 나난 옆에 선다.
빌딩 숲을 바라보고 선 두 사람…….
점장, 담배 한대를 불쑥 내밀자 나난, 고개를 돌리고 보다 담배를 받아든다.
점장이 불을 붙여주자 나난,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더니 이내 콜록거리다 겨우 잠잠해진다.
점장: 드러워서 못해먹겠지?
나난: …….
점장: 그럴 땐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씨발, 좆 같다!”
나난: (의외라는 듯 점장 보면)
점장: (하늘 향해 연기 후우, 내뿜고) 한번 해봐.
나난: (담배만 만지작 거리고……. )
점장: 도대체 잘하는게 뭐야?
나난: (보면)
점장: 담배도 못펴, 욕도 못해, 술은 잘마셔?
나난: …….
점장: 참, 주먹질은 잘하지.
서로 보고 피식, 웃는 두 사람.
씬52. 하이락 클럽 입구 (늦은 밤)
영업이 끝나고 셔터가 내려지는 하이락클럽.
나난, 피곤한 기색으로 돌아서면 수헌이 서있다.
수헌: 타요.
나난: 왜요?
수헌: 나한텐 차가 있고 당신은 지금 무지 피곤하니까.
수헌을 쳐다보는 나난. 수헌 뒤로 길가에 세워진 아반떼가 보인다.
나난E: 하긴……. 무지 피곤하긴 하다. 성의를 무시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고…….
수헌, 조수석 문을 가리키며 타라는 손짓한다.
나난, 잠시 생각하다 다가서자 수헌, 운전석으로 걸어간다.
나난, 문을 여는데 문이 안열린다. 낑낑 잡아당기는 나난, 난처한 얼굴로 수헌 보면 수헌, 혼잣말로 참! 하더니 성큼성큼 차 뒤로 가서 트렁크를 열었다 세게 쾅 닫는다.
그러자 저절로 탁! 하고 열리는 조수석 문. 놀라는 나난.
나난, 찜찜한 표정으로 올라타자 수헌, 운전석에 탄다.
나난: (안전벨트를 매려는데 안된다.) 이거……. ?
수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아, 그거 손으로 붙잡고 있어야 돼요.
나난, 벙찐 표정으로 보자 수헌, 시동걸며 태연하게 말한다.
수헌: 차야 굴러만 가면 되죠.
씬53. 달리는 차안 (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이 아름답다.
나난, 힘겹게 안전벨트 부여잡고 피곤해서 넋빠진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다.
수헌: 원래 그렇게 까다로워요?
나난: (심드렁) 네? 네…….
수헌: 군대동기까지 소집해야 하나 했어요.
나난: 네…….
수헌: 나란 인간, 궁금하지 않아요?
나난: 네? 네…….
수헌: 우노증권에 다닙니다. 이름은 박수헌이구요.
나난: 네…….
수헌: 난이씨가 일하던 사무실 바로 위층인데……. 몰랐죠?
나난: 네…….
수헌: 언제 시간 좀 만듭시다!
나난: 네……. (했다 놀라 돌아보며) 네?
그때 뭔가 터지는 펑! 소리가 난다.
깜짝 놀라는 나난. 수헌, 역시 화들짝 놀란다.
본넷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씬54. 거리 (밤)
길가에 수헌 차 서있고 나난, 피곤에 쩔은 얼굴로 도로가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눈이 거의 감긴 게 졸려서 기절하기 직전이다.
나난: (짜증이 묻어나는) 고칠 수 있긴 하는 거예요?
본넷 열고 수리하고 있는 수헌, 검댕 묻은 얼굴을 삐죽 내밀며
수헌: 말씀 안 드렸던가요? 저 정비병 출신입니다.
다시 본넷 안으로 고개 들이미는 수헌.
<CUT TO>
나난이 택시에 오르자, 택시 부웅 떠난다.
이를 망연자실 바라보는 수헌.
‘빵빵’
수헌, 머리 긁적이며 돌아서면 견인차에 수헌차가 매달려있다.
씬55. 동미 정준네 거실 (밤)
동미, 문 빼꼼히 열고 눈치보며 까치발로 걸어나온다.
자기 냉장고를 열어 맥주 한병을 꺼내는데 정준의 방문이 벌컥 열리고 정준이 나온다.
동미는 맥주를 딴 다음 병마개를 싱크대에 탁, 던져버리고 찬바람나게 정준을 스쳐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정준도 인상을 부욱, 긋고 자기 냉장고를 열어 맥주 한 병을 꺼내 들고는 동미의 방을 노려보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다가 다시 걸어와 부엌불을 끄고 들어가 버린다.
쿵, 소리와 함께 어둠에 쌓이는 거실.
전화벨이 오프사운드로 들린다.
씬56. 동미의 방
동미, 맥주마시며 인터넷 고스톱 하고 있다.
동미: 대학로? 왜, 마로니에 공원에서 배드민턴이라도 치자디?
화면 오른쪽 상단에 나난의 목 위 얼굴만 동그랗게 뜨더니 동미를 내려보며 말한다.
나난: 안 만나주면 텐트치고 데모할 기세더라구…….
동미: 큼…….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덥썩 먹지 마라. 젠장, 또 쌌어! 누굴 잊기 위해서 급하게 새 남자 만나는 거 위험하다.
그때 방 밖에서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놀라는 동미. “잠깐만” 하고 방문으로 걸어가면 나난의 얼굴이 없어진다.
문 밖에서 정준이 말하는게 들린다.
정준: 공과금이다. 내꺼 여기다 놓고 갈테니깐 니꺼 합해서 내일 니가 내라.
방문을 열어보면 방바닥에 세금 계산해 논 종이와 지폐와 10원짜리 동전들이 놓여있다.
그걸 집어드는 동미. 수화기에서 나난이 소리치는 게 들린다.
나난: (소리) 뭐야? 준이야?
동미: 응.
나난의 얼굴이 다시 처음크기의 동그라미로 나타난다. 동미가 다시 침대로 와 철푸덕 앉으면, 나난의 얼굴이 그쪽을 향해 본다. 조금씩 커지는 나난의 동그라미.
나난: 니들 아직도 화해 안했어?
동미: 안했어. 아니 안한다! 참, 나 돈 좀 꿔주라. 여기서 빨리 나가고 싶은데 보증금이 모자란다.
나난: 야, 이동미. 너 보증금 모자라서 정준이네 집으로 들어간 게 엊그제야. 그리구 그때랑 지금 집값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 줄 알어?
동미: 됐어, 이년아. 너한테 돈 이야기하는 내가 바보지.
나난: 화해해. 그러면 꿔줄게.
동미: 됐어! 차라리 딸라빚을 내고 말지…….
나난: 야, 준이 성격 몰라? 그 소심한 인간, 너한테 사과하고 싶어서 안절부절하고 있을 거다.
동미: 뭐? 안절부절? 그런 자식이 공과금 주고 가냐? 것두 10원짜리 한장까지 칼같이 계산해서? 저런 놈을 지금껏 친구라고 생각한 내가 미친 년이다.
나난: 암튼 내 돈 필요하면 화해해.
조금씩 커지던 나난의 동그라미가 완전한 화면크기가 되어 다음 씬으로 연결된다.
씬57. 나난의 방
찰카닥, 전화를 끊는 나난.
손에 들고 있던 풍선으로 동물만들기 연습을 마저 하다, 빵 터뜨린다.
“휴우-” 한숨을 내쉬곤 다시 수화기를 들어 번호를 누른다.
전화벨 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정준의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며 화면 오른쪽 상단에 정준 얼굴이 뜬다.
대화도중 정준의 동그라미가 점점 커진다.
나난: 야, 임정준, 너 남자가 왜 이렇게 째째해?
정준: (나난 내려다보며) 무슨 소리야?
나난: 아직도 뻗띵기고 있대메? 사과 안할 거야?
정준: 사과는 동미가 먼저 해야돼. 난 지가 누구랑 연애를 하든 간섭 안했어. 근데 지는…….
나난: 야, 동미가 왜 그랬는지 너 몰라?
정준: (뚱한 표정)…….
나난: 정말 모르겠어? 너 취직 못하고 빌빌거릴 때 걷어 멕인 게 누구였어?
정준: (뚱한 표정)…….
나난: 빨리 화해해. 안 그럼 나 니들 둘 다 안 본다.
나난이 전화를 끊으면 정준의 동그라미가 완전한 화면 크기가 되어 다음 씬으로 이어진다.
씬58. 정준과 동미의 집
<화면분할>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기는 정준. (앞에 가계부가 펼쳐져 있다.)
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곰곰히 생각하는 동미.
그러다 벌떡 일어나는 두 사람. 동시에 방을 나선다.
정준과 동미, 각각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다 마주치면 화면이 합쳐진다.
서로를 보고 속으로는 뜨끔했지만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딴전 피우는…….
힐긋 상대의 눈치를 보기를 여러번…….
그러다 동시에 상대에게 말을 거는 두 사람.
“야”,……. 말이 부딪히자 어색해하는 두 사람.
다시 침묵이 찾아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