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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강 창세기 4:18~26 비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56.59
26.09.04(금)
아담과 하와가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큰아들 이름은 가인이고 둘째 아들 이름은 아벨이었죠.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아벨은 가축을 길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서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제물을 바쳤습니다. 제사를 드린 거죠.
농사를 짓는 가인은 당연히 땅의 소산물을 하나님께 바쳐드렸고 아벨은 짐승의 첫 새끼 그리고 기름을 하나님께 바쳐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기쁘게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물은 안 받으셨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채식보다 육식을 더 좋아하시기 때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는가 ?
4장 5절 우리 지난번에 확인했었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으실 때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자기를 되돌아보지 않고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얼굴색이 변했습니다.
화가 난거죠. 그러니까 가인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자기가 원하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인은 내가 하나님께 이런 제물을 바치면 하나님은 당연히 기쁘게 받아야 돼요. 근데 왜 안 받으시느냐 말이죠.
가인이 화가 났습니다.
이 경우에 누가 하나님인가요?
가인 자신이 하나님인 거예요.
바꾸어 말하면 가인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믿은 하나님의 우상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십계명 배울 때 기억나시죠.
십계명 첫 번째 계명이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내게 있게 하지 마라
하나님의 유일신 되심을 십계명을 통해서 선포하셨어요.
그런데 두번째 계명에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또 명령하셨단 말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우상을 타 종교의 신상으로 오해한다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첫째 계명에서 하나님만 유일신 되심을 선포하셨는데 타 종교의 신상을 만들지 말라고 그러시면 타 종교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이니까 그건 하나님의 이율배반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죠 그래서 도대체 그때의 우상이 무슨 우상인지 출애굽기 20장 23절이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너희는 나를 빚어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타 종교의 신상을 금하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단군 신상을 금하신 게 아니여요. 하나님께서는 나의 신상을 만들지 말라는 거여요. 하나님의 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잖아요 무한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분이실 것이라고 상을 만드는 순간에 그건 하나님하고 상관이 없죠
하나님은 그 상 속에 담기시는 분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잘못을 범했었죠.
출애굽 할 때 그들은 홍해에서 열 가지 재앙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이 떨어지는 것 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갈라주시는 홍해를 건너지 않았습니까? 만나와 메추라기도 먹지 않습니까? 그죠
그런데 그들이 시내광야에 도착했을 때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가 보이지 않자 그들이 뭘 합니까? 금붙이를 내어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경배를 드려요.
우리가 언뜻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섬길 수 있을까? 의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우상을 만들어 놓고 아론이 뭐라고 선포했습니까? 바로 이분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엘로힘 하나님이다.
우리 내일을 다 여호와의 절일로 선포하자
하나님처럼 눈에 보이던 모세가 없어지니까 그들은 금송아지라는 우상을 만들고 섬긴 것이 아닙니다.
그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만든 거예요.
그 금송아지가 여호와라는 거여요. 눈에 보이는 모세가 보이지 않자 그들이 익히 이집트에서 보아왔었던 금송아지를 만들고 하나님은 이렇게 생겼었다 이분을 섬기자 경배하자
그리고 그 앞에서 제사를 드리고 기쁘게 뛰놀았단 말이죠. 왜 하필이면 금송아지일까요? 애굽에서 익히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금이라는 게 뭐여요? 인간 욕망의 상징이잖아요.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표현했다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내가 무엇이든지 욕구하는 대로 내게 다 주시는 요술방망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금송아지로 만든 겁니다.
그런데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상을 만드는 사람은 손으로 우상을 만들기 전에 실은 마음으로 먼저 만든다고 그랬죠
하나님은 금송아지 형상이실 거야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욕구하는 것 뭐든지 다 주실 거야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금붙이로 만든 것은 결과이고 이미 하나님의 우상은 그들 마음속에 먼저 만들어 두고 있는 거여요.
여러분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생각하고 내가 기도하고 내가 하나님한테 헌금하고 십일조하고 열심히 봉사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요구하는 것 다 주신다고 하나님의 금송아지를 가진 사람이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어떻게 하겠어요.
성내죠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분노할 때가 있습니까? 하나님 내가 당신을 위해서 충성하는데 나를 왜 이렇게 대접하십니까?
이러는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있단 말이죠.
하나님을 원망하는 기도를 실제로 드린단 말이죠. 하나님 정말 당신이 살아계십니까? 라는 기도를 드린단 말이죠. 왜 그렇습니까?
전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우상을 잡고 있기 때문에 지금 가인이 그런 사람이란 말이죠.
하나님은 내가 이렇게 하면 당연히 기뻐해야 돼 그런데 하나님이 내 것 안 받으신단 말이죠. 그러니 가인은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빚어낸 하나님의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예배는 중요합니다. 예배는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죽는 거여요.
내가 죽어야 내가 만들려는 하나님의 우상을 내가 버릴 수 있습니다. 내가 예배를 드리면서 죽지 않는다는 말은 뭐여요?
내가 하나님 우상을 들고 있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 우상을 들고 있을 때는 백번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과 내가 더 멀어지면 멀어지지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이죠.
왜 가인처럼 될 것이니까 결국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내가 원망하고 스스로 분노할 것이기 때문이기 때문이죠.
제가 스위스에서 돌아와서 우리 100주년 기념 교회를 다시 시작하기 전에 그러니까 사람들이 제가 이제 시간이 많다고 생각을 하시고 제 책을 복원하시는 분들이 뭐 상담을 자꾸 이렇게 청하셔요
그런데 그 상담 가운데에서 제일 빈도가 많았던 상담의 내용이 내가 다니는 교회를 옮겨도 좋으냐는 거여요. 이런 이런 문제 때문에 시험에 들어서 교회를 다닐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의 정서상 교회를 옮기면 안 된다는 걸로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옮겨도 되느냐 마느냐 제가 그분들에게 항상 답을 드릴 때 옮기라고 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가 하나밖에 없어요.
가톨릭 신자에게는 교회를 옮길 권리가 없습니다.
10:00
개신교는 여러 교파들이 있거든요.
하나님께서 개신교를 여러 교파를 있게 하셨다고 하는 것은 개신교 교인에게는 자기의 영적 수준에 맞는 교회를 선택할 권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죠.
제가 그분들에게 꼭 이렇게 답을 썼습니다.
주일 예배를 한 번 망치는 것은 주일 예배 한 번 망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주일 예배를 한 번 망쳤다는 것은 그 일주일 삶을 망치는 거예요. 내 주일 예배가 살아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이루어질 때 그 힘으로 일주일의 고비를 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가 주일 예배를 망쳤다면 한 주를 망쳤죠
주일 예배 4번 망치면 한 달 없어졌죠
주일 예배 51번 망치면 1년 없어지죠
그러다가 평생 없어져 버려요
그래서 당신의 영혼이 예배를 드리면서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죽어질 수 있는 교회를 찾아가라 그게 당신을 살리는 길이고 교회를 살리는 길이다.
여러분 예배는 그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들께서 100주년 기념 교회를 다니시면서 100주년 기념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동안에 내가 예배 시간에 내가 영적으로 죽는 걸 체험할 수 없다.
그러면 첫째 여러분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한번 살펴봐야 되겠죠.
여러분들에게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배 시간에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죽어지는 걸 체험 못한다면 여러분들은 이 교회 다니시면 안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의 일주일을 망치고 한 달을 망치고 1년을 망치는 거예요. 왜 망치는가 내가 예배 시간에 내가 죽어야 죽는 훈련을 해야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이 온전히 살아 역사하시는데 내가 죽지 않는다는 것은 가인처럼 하나님의 우상을 쥐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해서 주중 삶이 과연 하나님 앞에 열납되는 삶이 될 수 있겠느냐 그거예요.
예배가 하나님 앞에서 죽어지는 그 중요한 영적 순간이라면 여러분 예배는 주일날 아침에 9시에 이 예배당을 들어오는 순간에 시작되는 게 절대로 아닙니다.
죽어지는 것이 예배라면 여러분들이 집에서 나올 때부터 아니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예배는 시작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무슨 마음으로 예배당을 찾느냐에 따라서 예배의 질이 달라져요 계속 테레비 보다가 시간 맞춰서 그것도 차 세우고 허겁지겁 뛰어서 온다 어떤 분들은 설교 시간에만 맞춰서 또 도착하시는 분들 계시잖아요.
저도 옛날에 그랬거든요. 그러니 그때 예배는 다 때우는 예배죠 그냥 그야말로 부적삼아 가는 거죠. 썬데이 크리스쳔이니까.
정말 예배는 여러분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일날 예배에 참석할 때 여러분들의 옷 매무새부터 마음가짐부터 예배당에 들어오는 시간부터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내 정신 상태부터 영적 상태부터 내가 정리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하나님 앞에서 분노하는 하나님 우상 쥐는 가인이 될 수 있다. 그런 말이에요.
여러분 가인이 이처럼 하나님의 우상을 쥐고 있었으니 그의 일상의 삶이 바로 세워질 수 있었겠어요. 안 되죠. 하나님께서 자기 제물을 열납하지 않은 것 때문에 가인이 동생을 들로 데리고 가서 처 죽이잖아요.
왜 들로 데리고 가서 죽였다고요. 거기는 아무도 안 보니까 아무도 안 보기 때문에 하나님도 안 보실 거라고 착각한 것이죠.
참 가인이 어리석은 것 같죠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는 게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보지 않으면 하나님도 안 보신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요 근래에 제일 신문을 떠들썩하게 장식한 사건이 그 신정아씨 사건이잖아요. 그죠 그런데 여러분 그런 사건을 여러분들이 접하실 때마다 여러분 뭘 생각하십니까?
그분이 변 아무개 실장하고 주고받던 이메일을 다 지웠단 말이죠. 그분은 지운 것으로 다 숨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가 불과 몇 시간 만에 다 복원했거든요. 그분이 숨겨둔 구좌 다 나왔잖아요.
그분 때문에 어느 재벌 집 부인 집에 숨겨져 있던 몇십억도 다 나오지않아요.
여러분 그런 걸 보시면서 뭘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여러분 사람도 사람이 지운 이메일을 복원시킬 수 있다면 왜 하나님이 못 보시겠어요.
수사관이 사람이 숨긴 것을 찾아낼 수 있다면 왜 하나님이 안 보시겠어요. 가인은 하나님이 안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다 보신거여요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장 2절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사람 눈 감춘다고 생각해요. 뭘 숨겼다고 생각해요.
왜 다른 사람이 안 봤으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감춘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왜 사람은 안 봤지만 하나님은 보셨거든요 당신의 방법으로 다 드러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우리가 망각하면 우리는 내일도 가인처럼 들에 나가서 아벨을 죽이는 짓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가인이 아벨을 쳐 죽였다고요. 문제의 원인을 아벨에게서 찾았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제물을 열납하시지 않은 원인이 나한테 있다고 생각 안 했어요. 제가 너무 잘 드린 거예요. 나는 잘했는데 제가 잘못했어요.
그래서 아벨만 죽여버리면 문제가 해결된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성숙한 사람 그리고 미숙한 사람 구별하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지만 대표적인 기준 중에 하나가 누구 탓을 하느냐는 거예요.
미숙하고 유치한 사람일수록 어떤 문제든지 남 탓을 합니다. 자기를 돌아보지 않아요. 성숙한 사람일수록 일단 자기를 먼저 둘러보죠.
그리고 남을 본단 말이죠. 가인은 자기를 돌아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남 탓을 했어요. 여러분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는 갈수록 풍요로워지지만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참 한심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예요?
사람들은 다 이유를 남에게서 찾습니다. 너에게서 찾아요. 그런데 우리가 남을 가리킬 때 가리키는 손가락은 하나지만 세계는 나를 향하잖아요. 나를 안 본단 말이죠.
오늘 이 땅에서 정치가도 종교인도 실업인들도 자기를 보지 않아요. 그래서 전부 네 탓만 한단 말이죠. 문제가 해결 안 되는 거죠.
아무리 유능한 대통령께서 12월에 뽑히신다 한들 그분 5년 동안에 대한민국이 본질적으로 바뀌어질까요? 천만에요. 그 기대하면 여러분들 다 속습니다.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오늘 사회에 대해서 자기 탓을 하고 자기 책임을 느낄 때 이 사회는 새로워지는 거예요.
돌아가신 시인 구상 선생님이 쓰신 시 가운데 자수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범인이 가서 스스로 고하는 것 자수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그 어린애를 치어 죽인 운전수도 바로 저구요.
그 여인을 교살한 하수인도 바로 저구요.
그 은행 갱 도주범도 바로 저구요
실은 지금까지 미궁에 빠진 사건이란 사건의 정범이야말로 바로 저 올시다
범행동기요 글쎄 가난과 무지와 역사의 악순환 아니 제 안을 흐르는 가인의 피가 저런 죄를 저질렀다고나 할까요? 저런 악을 빚었다고나 할까요? 이제 기꺼이 호송을 받으며 고요히 교수대에 오르렵니다.
20:12
최후에 할 말이 없느냐고요. 솔직히 말하면 죽는 이 순간에도 저는 최소한 4천만과 공범이라는 이 느낌을 버리지 못해 안타까운 것입니다.
이 시인은 이 세상이 이렇게 형편없이 된 게 자기 탓이라는 거예요. 이 시인이 언제 권총을 들고 은행 깽 짓을 했겠어요. 근데 그것도 내 탓이라는 거예요.
왜 내가 나눌 것을 안 나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겁니다. 최후 진술할 것 없냐 있긴 있는데 대한민국이 이렇게 썩어 빠진 것은 4천만 명이 다 공범이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다 공범 아니여요.
만약에 내가 내 탓을 하지 못하고 계속 정치인 욕만 하고 다른 사람만 비판만 한다면 우리는 가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의 탓을 하는 것이야말로 사탄을 불러들이는 첩경이라고 그랬습니다. 정말 우리 스스로가 우리 탓을 먼저 하고 나를 먼저 둘러봄으로 내 주위가 새로워지고 이 사회가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이죠.
9절 다시 한번 보실까요?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자기 동생을 쳐죽이고 잘못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는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아담에게 아담을 부르시는 것과 똑같죠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아담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즉시로 두려워서 나무 사이에 숨었죠. 만약에 이 들판이 아니고 나무가 있으면 가인도 나무 사이에 숨었겠죠.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었기 때문에 가인은 자기 거짓 속으로 숨어버렸단 말이죠. 난 모릅니다. 하나님 도피해버렸어요.
10절
이랬을 때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아담에게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문제의 핵심을 일깨워주시듯이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여기에 호소하느니라 번역되어 있는 히브리어 짜아크는 분사형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분사형은 현재 진행형의 뜻이라 그랬습니다.
지금 가인은 자기 동생을 살해한 것을 지난 과거의 일회성 해프닝으로 여기는 거예요. 이건 끝난 거예요. 아무도 모르는 거야.
하나님께서 지금 뭘 일깨워주시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현재 진행형으로 내게 호소한다는 게 뭐예요? 부르짖는다의 뜻이 뭐예요? 너를 고발하고 있다는 거죠.
네가 지금 행한 일은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거야 영원토록 내게 네가 행한 것을 고발하는 현재 진행으로 그 엄청난 죄를 지은 것이라는 겁니다.
이건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돌이킬 수 없는 거라는 겁니다. 철회할 수 없는 거라는 겁니다. 내일이 되어도 천년 후가 되어도 현재진행형으로 너의 죄는 고발당하는 죄라는 것입니다.
11절
땅이 그 입을 벌려 내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내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라 네가 네 동생의 피를 땅에 흘려서 땅을 오염시켰으므로 네가 땅으로부터 저주받을 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네가 그런 죄를 지었다는 것이어요 자기가 왜 두려운지 모르고 그저 내가 벗어서 두렵습니다.
아담이 이야기했을 때 이건 네가 먹었을 때만 두려운 거다 네가 먹었느냐 정확하게 일깨워 주시듯이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가인이 행한 짓이 돌이킬 수 없는 죄임을 일깨워 주셨단 말이죠.
13절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웁 니다. 죄벌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보어는 죄라 그랬습니다.
내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의 죄를 토로했습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회개한 겁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14절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 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내가 행한 짓은 죽어 마땅한 죄였습니다.
내가 지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 말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가인은 자기의 잘못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지적 앞에서 아담과 하와가 우리가 먹었다던가 제가 먹었다 하지 않고 둘 다 내가 먹었습니다 라고 먹은 행위 자체를 하나님 앞에서 고백한 것과 똑같죠
아담과 하와가 자기 잘못을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고 가죽옷을 입혀주시고 아담이 하와를 하파 생명이라고 이름 짓고 그렇게 하잖아요. 그죠
15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7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의 죄를 깨달은 가인을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표를 주셨습니다. 아니다. 넌 절대 죽지 않는다. 내적 확신뿐만 아니라 생명의 표 외적 증표까지 주셔서 그를 살려주셨단 말이죠.
그러니까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창세기 3장 아담에게서 있었던 그 패턴이 가인에게 똑같이 되풀이됐죠
죄를 짓고 자기 죄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가시고 당신의 은혜로 말씀으로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회개케 하시고 용서해 주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3장 4장에서 이처럼 되풀이되어서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여러분 복음은 절대로 마태복음 1장 1절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은 직후부터 창세기 3장부터 하나님의 복음은 시작합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우리가 결론을 세 가지를 맺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고 우리가 아무리 보잘것 없는 죄인이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 한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 소망의 원천이 어디에서 부터있는가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를 바로 세우시고 가인을 바로 세우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 같은 죄인도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독생자마저도 우리를 위해서 보내주실 수 있으셨던 것이죠.
아담과 하와를 버리시고 가인을 무책임한 인간으로 버리신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도 두려울 수밖에 없잖아요. 그죠
6절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자 가인이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부여받고 자식을 낳았단 말이죠. 그 아니 가인하고 그 아내가 자식을 낳아서 아이 이름을 에녹이라고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자식의 이름은 부모의 신앙 고백이라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죠 에녹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다음 시간에 볼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에녹하고는 지금 다른 에녹이에요.
그런데 에녹을 히브리말로 하노크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크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는데 그 동사의 뜻이 봉헌한다는 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려주시고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내 삶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거예요. 봉헌한다는 뜻이 뭐예요? 내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 당신 거라는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가인이 동네를 만들고 성을 만들고 그 성읍 자체를 에녹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삶의 터전 자체를 나 개인의 생명은 말할 것도 없고 나에게 딸려 있는 모든 삶의 이 터전 이 자체 가정 일터 모두를 하나님께 봉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인을 욕하기만 하지만 회개한 가인은 우리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30:20
여러분 중요한 사실은요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사람들 하나님께서 내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라고 깨닫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라는 겁니다.
내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4장 1절에서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와와 아담도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아이를 낳았을 때 가인이라고 했는데 그 가인은 얻음이라는 뜻이죠.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했다.
이 자식마저도 하나님께서 주셨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아담 하와처럼 가인 부부처럼 왜 모든 것이 다 하나님 것이라고 고백하겠습니까?
세계 어느 나라든지 법은 말이죠. 민법은 말이죠.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만 그에게 속한 재산에 대한 재산권을 인정해줘요
여러분이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여러분 코끝에서 딱 호흡이 끝나죠.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운명하셨습니다. 하면 그때부터 그건 여러분 재산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이 벌어지겠죠.
살아 있는 동안에만 내 거여요.
그러면 이 생명이 내 것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이 생명을 주셨어요.
그러면 이 생명이 있는 동안에 나에게 속해 있는 것도 결국 누가 주신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것이잖아요.
따라서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본 것임을 고백하는 사람은 모두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 것임을 고백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거꾸로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생명보다 이 세상의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아직까지도 생명이 더 귀한 걸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한 번밖에 없는 이 생명의 기회를 이 세상의 것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탕진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절 26절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생명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 사실을 깨달을 때만 내게 달려있는 것 때문에 내 생명을 소진하고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생명의 도구로 쓰므로 내 생명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가인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생명이 주님께서께로부터 다시 왔으니까 고백하면서 사는 삶을 삽니다.
지난 주일날 우리가 두 번째 교훈을 생각을 해봤습니다.
두 번째 교훈이 뭐죠 부모가 회개했다고 해서 자식들은 저절로 의인이 되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식들을 모두 개별적으로 거듭나야 돼 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으므로 죄의 dna를 우리는 다 타고납니다.
가인이 죄지었잖아요. 그죠 아벨을 거듭나지 못한 가인이 동생을 쳐 죽였단 말이죠. 여러분 내 자식 중에서 내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이 거듭나지 못할 때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다른 형제들의 원수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그런 경우 보잖아요.
거듭나지 않은 한 형제가 거듭난 여러 형제들을 일평생 괴롭히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해서 내 자식들도 절로 잘 믿을 것이다. 그건 아니란 말이죠.
가인이 죄를 짓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인생도 하나님께 애노코 봉헌하고 자기 가정도 일터도 봉헌합니다.
그런다고 해서 그 자식들과 후손이 절로 의인이 됐느냐 그건 아니라는 거예요.
18절 보십시다.
에녹이 에녹은 가인의 아들입니다.
이랏을 낳고 그러면 이랏은 가인은 뭐예요? 손자
이랏은 므두야엘을 낳고 므두야엘은 증손자
무후야엘은 무두사엘을 낳고 그럼 무드사엘은 뭐예요? 고손자
무두사엘은 라맥을 낳았더라 고손자 밑에는 뭡니까?
예 누구쯤 아시면 가르쳐주죠 전 진짜 몰라서 묻는 거예요. 고고손자 예 그렇죠. 저도 그것밖에 없더라고요. 6대손밖에 없더라고요.
6대손부터는 이름이 없나 봅니다.
아 현손 아 현손 좋네요.
자 가인의 현손 때의 일입니다. 지금
19절 현손 틀림없죠 자 현손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결혼을 일부다처제로 하라고 하셨나요? 아니에요.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드시고 둘이서 한 몸을 이루는 그러니까 한 남자와 두 여자 너희들 셋이서 한 몸 이거 아니에요.
둘이서 한 몸입니다. 그런데 가인의 현손대에 가서 이 신성한 결혼을 깨뜨려요 두 여자를 취했습니다.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실라였더라
아다라는 말은 아름답다 이런 말이고요.
실라라고 하는 말은 딸랑거리다 이런 말이에요. 그러니까 실라는 뭐 귀걸이도 하고 목걸이도 하고 딸랑딸랑 이러고 다니나 봐요.
그러니까 정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둘이 한 몸을 이루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뜻을 실천해야 될 결혼을 라멕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저 육감적으로 예쁘고 딸랑거리는 여자와 자기의 정욕을 채우고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으로 지금 더럽히고 있습니다.
20절
아다는 첫째 부인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
본래 아벨이 가축을 쳤는데 죽었잖아요.
그랬더니 야발이 가축을 치는 조상이 되었다 목축업의 목축업자들의 조상이 되고
21절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 수금과 퉁소를 잡았다.
요즘 말로 하면 음악 가무 예술 그런 시조가 되었다는 겁니다.
22절 실라 라맥의 두 번째 부인이죠.
실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들었다
구리와 쇠로 청동기와 철기 문화를 지금 꽃피우는 거죠. 기계산업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성경에는 여자 이름은 잘 안 나오는데 누이 이름을 일부러 썼습니다. 나아마였다.
이 나아마라고 하는 뜻도 아름답다 달다 질기다 이런 말이에요. 그러니까 야발은 목축업을 번성시켰고 유발은 음악 예술 두발가인은 기계산업 그다음에 나아마는 이미 그때 사치산업 향락산업 이런 것이 지금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가인의 자식들이 계속 대를 거듭하면서 목축업 예술 기계산업 향락산업 인류 문명사회가 계속 발전해 가는 거죠.
그런데 인류 문명 사회가 발전해 나가는 만큼 그들의 영적 상태도 같이 발전했는가 아니라는 거예요.
23절
라맥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실라여 내 목소리를 들어라 라맥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자기 아내 둘이를 앉혀놓고 내 말을 들어라 이러고 아주 호기롭게 선언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 자체에 이미 인간의 교만이 배어 있는 것 아시겠죠. 그죠 근데 그 내용을 지금 뭐라고 말하는가?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사람과 소년을 두 사람을 죽였다는 말이 아니라 여기에서 사람과 소년은 동격으로 쓰여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젊은 소년을 지금 라멕이 죽였습니다.
왜 죽였는가 상세한 내용은 없지만 아마 그 소년이 실수로 라멕에게 상처를 입혔나 봐요 그 상처 때문에 내가 젊은 소년을 죽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죽였다라고 쓰여진 히브리 말이 하라그입니다. 하라그 히브리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동물을 죽일 때는 샤하트라는 동사를 썼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의도적이든 아니면 무의식적이든 죽이는 것 살인하는 거 있잖아요 라차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라멕이 말한 하라그라고 하는 것은 무자비하게 살육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칼을 들고 있으면 한 번 찔러 죽이는 게 아니라 머리에서 발끝까지 찔러 죽이는 거예요. 무자비하게 살육하는 겁니다.
라맥이 선현이 나에게 약간의 상처를 입혔다고 해서 내가 무자비하게 젊은 사람을 죽였어 아내들아 들어봐라
그리고 그 다음 말이 뭔가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7배일지인데 라맥을 위하여는 벌이 77배이리라 하나님께서 가인이 제가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하니까 아니야 너 죽지 않아 너를 죽이는 자는 벌을
7배 받을 것이야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가인이 자기 죄를 회개했기 때문에 그런데 라멕은 지금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여놓고 말하기를
가인을 해치는 자가 벌을 7배를 받는다면 나를 해치는 자 누구든지 나에게 상처를 입히고 나에게 덤비는 자는 벌을 77배를 받으리라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성경에서 지금 이 구절은 인간이 노래로 기록한 최초의 부분이에요. 인간이 최초로 부른 노래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교만을 그것도 복수극을 자화자찬하는 노래입니다. 그래서 이 노래를 가리켜서 신학자들 성경학자들은 칼의 노래라고 해요.
칼의 노래 교만의 극치에 찬미가여요 인간이 언어의 칼로 복수의 칼로 마음대로 세상을 난도질하고 있는 것을 이 노래를 통해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칼의 노래라고 합니다.
보십시오. 가인은 회개했잖아요. 그죠 하나님이 내 자식도 내 내 삶도 내 가정도 일터도 하나님께 봉헌합니다.
이렇게 했는데 세월이 흘러가니 그 자식들 가운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들은 열심히 인간 문명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공헌했습니다.
목축업도 번성시키고 예술도 번성시키고 산업도 번성시키고 사치산업도 번성시키고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 교만의 극치에 있으면서도 귀동냥으로 들은 성경 말씀 몇 구절 가지고 내가 이렇게 살아도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지키실 것이고. 누구든지 나를 해치면 그가 77배의 벌을 받으리라고 교만하게 살고 있습니다.
가인보다도 더 형편없는 하나님의 우상을 지고 나간다 그 말이에요. 여러분 날이 갈수록 우리 사회는 정말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한 10년전 20년전은 말할 것도 없고요.
10년전에 제가 컴퓨터 워드 프로세스를 처음 배울 때만 해도 컴퓨터가 이렇게 발전될 것이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상상 못했겠죠. 그죠
오늘날 사람들이 유발처럼 야발처럼 두발가인처럼 이 문명사회를 위해서 헌신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뛰어요.
그러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지 않고 개별적으로 거듭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아니할 때 우리의 삶은
라맥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어진다는 거예요.
25절 보십시다.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아담과 하와가 세 번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둘째 아들 아벨은 죽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셋째 이름을 셋이라고 지었습니다.
26절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
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셋이 아들을 낳고 자기 아들 이름은 에노스라고 했단 말이죠.
그리고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 1장부터 4장 26절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적은 한 번도 없잖아요.
그런데 왜 비로소 이때에 불렀다고요.
에노스라는 이름 뜻이 뭐라 그랬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아담의 세 번째 아들이었던 셋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구나 왜 자기 큰 형이 자기 둘째 형 아벨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잖아요.
그리고 그 큰형의 자식들이 어떻게 돼 가는지를 지금 보는 겁니다. 아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구나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무슨 뜻이겠어요.
하나님 저는 평생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름을 에노스라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기에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이때에 이 시대에 살던 모든 사람들이 여호의 이름을 불렀다 오해하기 쉬운데 그런 말이 아니에요.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셋이 아들을 낳고 에노스라고 하였으며 그때에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이 아버지인 셋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도 해석이 되고 아들인 에노스가 불렀다고도 되고 만약에 사람들 복수라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 아버지 그 아들이 그렇게 불렀다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자 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달았을 때 인간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부를까요?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인간이 자기의 실상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기의 본질을 깨닫는 거여요. 자기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어요. 내가 아무리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도 어느 날 코 끝에서 호흡이 끝나는 순간에 한 줌의 재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걸 통감할 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것만 내 코끝에서 호흡이 끝나는 날 공동묘지를 뛰어넘어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아는 거란 말이죠.
여러분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이렇게 중요
해요 누가복음 15장의 탕자가 자기가 자기를 모를 때 어떻게 해요. 아버지 재산 반을 받아서 가잖아요.
자기가 자기를 모를 때는 우리 아버지 부잔데 아버지 재산 반만 가져가면 나는 아버지 10배 부자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아버지를 자기 스스로 자발적으로 떠났던 그 아들이 언제 아버지에게 되돌아가요 아 내 능력으로는 돼지가 먹는 쥐염 열매도 못 먹는구나
본문의 말대로 하면 나는 에노스구나 이대로 가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구나 우리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얼마나 많은데 자기 존재의 실상을 깨달았을 때 아버지에게 일어나서 갔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여요. 그러면 우리가 지난주에 마지막 세 번째 결론이 뭐였습니까?
아버지가 부모가 아버지 어머니가 회개했다고 자식이 절로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니고 자식도 개별적으로 거듭나야 된다고 했습니다.
50:13
그래서 지난번에 내렸던 세 번째 마지막 결론적인 교훈이 그러므로 우리 자식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교육은 해외 유학 보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교육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교육은 예배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그랬죠 그런데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이유를 알아야 될 거 아니에요.
왜 예배드려야 되는가 에노스이기 때문에 지금 셋이 얼마나 지혜로운 아버지인지 자기 자식에게 인생은 에노스라는 것부터 가르쳤습니다.
어릴 때부터 중요한 것은 이 족보가 무슨 족보가 됐어요. 그리스도의 족보가 되었습니다. 에노스인 것을 아는 사람만 그리스도에게 자기를 족보인 것이지요
그것만이 에노스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길이거든요.
그래서 셋은 정말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첫 번째 깨달아야 될 사실은 인간은 에노스라는 것 그것부터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의 족보를 통해서 크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게 되시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요.
아담과 하와에게 자식이 둘이 있었잖아요.
가인이 있고 아벨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아벨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제사를 드렸고 똑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가인은 왜 자기 편한 대로 제물을 드렸는가
가인의 이름의 뜻은 어둠이라 그랬죠
여호아로 말미암아 내가 득남했다 어둠이다.
그러니까 가인은 그 아버지 밑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걸 주셔 굉장히 긍지를 갖고 살 수는 있겠죠. 그죠 그러나 어느 날 자기 교만에 빠지니까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되었단 말이죠.
아벨의 이름의 뜻은요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행복하게 살면서 가인을 낳았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가정을 일구었어요.
그러나 이 세상의 삶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에덴 동산에 비하면 허무하잖아요. 이 세상의 삶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면 허무하게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깨달았어요.
둘째 아들 이름은 헤벨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니까 아벨이 되었습니다. 아벨이라고 지었어요.
그 둘째 아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되 이 세상을 목적으로 살면 그 인생은 허무하게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을 그 아들에게 가르쳤다는 사실을 우리 알게 되죠.
그래서 그 아들은 허무한 인생이 주님 안에서만 영원한 의미를 지닐 수 있기에 제물을 바쳐도 하나님 중심으로 바쳐드렸고 인생이 허무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가인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 자식들에게 가르쳐야 될 것이 있다면 인생은 헤벨이다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면 너도 끝날 때 후회하고 허무만 노래한다.
여호와를 경외해라 인생은 에노스다 언젠가 우리는 단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다면 하나님을 위해 살아라
그것을 우리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어야지요 그러려면 우리가 바로 그런 삶을 살아야 되잖아요.
그런 삶을 살면서 우리 자식들에게 그런 신앙교육을 할 때 우리의 족보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겠지요. 그런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인생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면 허무하게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오늘 아침에 해가 떠서 이 시간이 되기까지에도 온 지구 땅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에서 세상을 목적으로 삼았던 사람들은 모두 허무하다고 후회하고 가슴을 치며 이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주님 인생은 에노스입니다.
누구든지 언젠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가 되면 코끝에서 호흡이 멎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 자신들이 잊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이 사실을 매일 잊지 아니함으로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우리의 중심을 다해 인격을 다해 부르게 하시고 경배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쫓게 하여 주옵소서 이 사실을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의 심령 속에 각인시켜주는 믿음의 부모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신앙이 단절됨이 없이 대를 이어 거듭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족보가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도구로 쓰임받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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